6화(5,367자)

방송은 기록이 됩니다

이혼식 플래너 · 석다감

10월 14일 목요일 오후 두 시⁠, 연플래닝 사무실에 사람이 다섯 명 들어오자 열두 평이 여섯 평이 되었다⁠. 「⁠달빛채널⁠」 국승현 피디⁠, 어깨에 카메라를 멘 촬영감독⁠, 노트북을 든 막내 작가⁠, 주희⁠, 솔지⁠. 촬영감독이 구도를 잡느라 뒷걸음질하다 칸막이 뒤 식탁보를 건드렸다⁠. 식탁보가 흘러내리고 접이식 침대 다리 하나가 드러났다⁠.

“⁠저건⁠…⁠.⁠”

“⁠소품이에요⁠.⁠” 주희가 식탁보를 도로 덮었다⁠. “⁠신부 대기실 소파 대용이요⁠.⁠”

솔지가 헤드셋에 대고 아주 작게 말했다⁠. “⁠실장님⁠, 거짓말 늘었어요⁠.⁠”

“⁠들려⁠, 솔지 씨⁠.⁠”

국 피디는 마흔 중반이었고 말이 빨랐다⁠.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기획안을 보여 주었다⁠. 「⁠안녕의 기술 — 헤어지는 사람들을 돕는 직업⁠」⁠. 이삿짐 센터⁠, 유품 정리사⁠, 그리고 이혼식 플래너⁠. 마지막 칸에 주희의 사진이 들어갈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식 당일이 핵심이에요⁠. 케이크 반 가르는 거⁠, 반지 넣는 거⁠. 혹시 식장에서 누가 울거나 싸우면⁠…⁠.⁠” 국 피디가 손바닥을 비볐다⁠. “⁠그게 그림이죠⁠.⁠”

문이 열리고 차건우가 들어왔다⁠. 서류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무실 안을 한 번 훑더니 카메라 렌즈부터 손바닥으로 가렸다⁠.

“⁠촬영 중이면 저는 나가겠습니다⁠.⁠”

“⁠아직 안 찍어요⁠.⁠” 촬영감독이 렌즈 뚜껑을 닫았다⁠.

*

건우는 의자에 앉지 않고 서류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의뢰인 서규환 명의의 통지였다⁠. 「⁠본인은 방송 촬영에 동의하지 않으며⁠, 촬영이 이루어지는 식에는 참석하지 않음⁠」⁠. 규환의 서명이 삐뚤게 들어가 있었다⁠.

“⁠식은 두 사람이 같이 들어와야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건우가 주희를 보았다⁠. “⁠그럼 제 의뢰인이 안 가면 식은 없습니다⁠.⁠”

국 피디가 종이를 보고⁠, 주희를 보고⁠, 다시 건우를 보았다⁠. “⁠변호사님⁠, 얼굴은 다 가려 드려요⁠. 목소리도 바꾸고요⁠.⁠”

“⁠가게 이름은요⁠?⁠”

“⁠그것도 가리죠⁠.⁠”

“⁠성수동 붉은 벽돌 건물에 반달 카스텔라 줄 서는 가게가 몇 곳입니까⁠?⁠” 건우가 말했다⁠. “⁠화면에 반달 하나만 비쳐도 다 압니다⁠. 방송이 나가면 아내분 변호사가 녹화본을 떠서 법원에 냅니다⁠. 피디님 프로그램이 제 사건의 증거 목록에 들어갑니다⁠.⁠”

“⁠그럼 그림이 안 나오는데요⁠.⁠”

주희가 탁상종을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셋이 종을 보았다⁠.

“⁠그림은 제가 나올게요⁠.⁠”

국 피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의뢰인은 안 나와요⁠. 하늬도 절대 안 나와요⁠. 식 당일은 안 찍어요⁠. 대신 제가 나와요⁠. 제가 식순 짜는 거⁠, 종 치는 거⁠, 케이크 시안 보러 다니는 거⁠, 다 찍으세요⁠. 이혼식 플래너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저 혼자로도 보여 줄 수 있어요⁠.⁠”

건우가 주희를 보았다⁠. 안경 너머 눈이 한 번 깜박였다⁠. 첫날 사무실에서 카스텔라 조각을 싸 가던 때와 같은 깜박임이었다⁠.

국 피디는 한참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실장님 얼굴은 다 나가요⁠. 가림 없이⁠.⁠”

“⁠네⁠.⁠”

“⁠결혼식 플래너 그만둔 이유도 물어볼 거예요⁠.⁠”

주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국 피디는 대답을 승낙으로 받았다⁠. 막내 작가가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고 탁상종을 가리켰다⁠. “⁠저거 이름 있어요⁠? 자막에 넣게요⁠.⁠” 솔지가 먼저 대답했다⁠. “⁠탓 종이요⁠. 탓하면 딩⁠.⁠” 주희는 그런 이름을 붙인 적이 없었지만⁠, 막내 작가는 벌써 받아 적고 있었다⁠. 건우가 서류 봉투를 닫았다⁠. 의뢰인의 통지는 꺼낸 그대로 탁자 위에 남았다⁠. 건우는 통지를 다시 집어 넣지 않았다⁠.

*

인터뷰는 사무실 창가에서 찍었다⁠. 블라인드를 반쯤 올리자 길 건너 웨딩 회사 광고판이 화면 구석에 들어왔다⁠. 「⁠당신의 시작을 가장 빛나게⁠」⁠. 촬영감독이 좋아했다⁠.

“⁠10년 동안 결혼식을 사백 번 넘게 하셨죠⁠. 왜 그만두셨어요⁠?⁠”

카메라 위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촬영감독 뒤에 건우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아직 가지 않았다⁠. 의뢰인 이야기가 나오는지 보겠다고 했다⁠.

“⁠결혼식은 다들 잘하니까요⁠.⁠” 주희가 말했다⁠. “⁠시작은 사진도 남고 영상도 남아요⁠. 끝은 아무것도 안 남아요⁠. 서류 한 장이랑 문자 몇 통⁠.⁠”

“⁠문자요⁠?⁠”

주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금빛 숫자판이 창빛에 번쩍였다⁠. “⁠다음 질문 해 주세요⁠.⁠”

국 피디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촬영이 끝나고 장비를 챙기는 동안 건우가 창가로 왔다⁠. 목소리를 낮췄다⁠.

“⁠문자 몇 통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의뢰인 이야기는 아니군요⁠.⁠”

“⁠변호사님 의뢰인 이야기 아니에요⁠.⁠” 주희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광고판이 사라졌다⁠. “⁠제 이야기도 방송엔 안 나가요⁠. 편집해 달라고 할 거예요⁠.⁠”

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에 남은 통지를 반으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카스텔라 조각을 넣던 자리였다⁠.

*

10월 19일 화요일 밤 열 시 오십 분⁠, 12월 첫 주 본방송을 앞두고 예고편이 먼저 나갔다⁠. 주희와 솔지는 사무실에서 떡볶이를 사다 놓고 노트북으로 보았다⁠. 십오 초짜리였다⁠. 주희가 탁상종을 치는 장면⁠, 클립보드를 넘기는 손⁠, 화면 아래 자막⁠. 「⁠이혼도 식이 됩니까⁠?⁠」⁠. 그리고 마지막 일 초⁠, 화면 가장자리에 남자 손바닥 하나가 흐릿하게 들어왔다가 빠졌다⁠. 렌즈를 가리던 건우의 손이었다⁠.

“⁠실장님⁠, 변호사님 손 나왔어요⁠.⁠”

“⁠얼굴은 안 나왔어⁠.⁠”

“⁠손이 더 유명해질 것 같은데요⁠.⁠”

열한 시부터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솔지가 숫자를 불렀다⁠. 열다섯⁠, 스물둘⁠, 서른⁠. 자정을 넘기자 마흔한 건이었다⁠. 「⁠저희 부모님 이혼식 가능할까요⁠?⁠」 「⁠친구 이혼 축하 파티도 하세요⁠?⁠」 「⁠종 어디서 사요⁠?⁠」⁠. 솔지가 떡볶이 포크를 든 채 의자 위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 대학 동아리 회장의 춤이었다⁠. 주희는 웃다가⁠, 칸막이 뒤 식탁보 밑으로 삐져나온 침대 다리를 보았다⁠. 마흔한 건이면 다음 달에는 원룸 보증금을 낼 수도 있었다⁠.

자정 십 분⁠, 건우에게서 문자가 왔다⁠. 「⁠제 손바닥은 초상권이 없습니까⁠?⁠」

주희는 한참 웃다가 답장했다⁠. 「⁠손바닥은 의뢰인 동의 없이 나와도 돼요⁠. 변호사님 것이니까요⁠.⁠」

「⁠동의한 적 없습니다⁠.⁠」

「⁠그럼 종 한 번 칠게요⁠.⁠」

답이 오지 않았다⁠. 일 분 뒤에 왔다⁠. 「⁠잘 나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청담 웨딩인 단톡방도 밤새 시끄러웠다⁠. 솔지가 아침에 화면을 보여 주었다⁠. 「⁠연 실장 방송 탔네⁠」 「⁠이혼식이 뜨면 우리 결혼식은⁠?⁠」 「⁠결혼식장에서 이혼식 받는 홀 어디래요⁠? 신부들이 알면 난리 남⁠」⁠. 마지막 글 밑에 화이트벨홀 신 실장이 아무 말 없이 읽음 표시만 남겼다⁠. 주희는 신 실장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전화하면 무슨 말을 하든 변명이 되었다⁠.

점심 무렵에는 양가에서 전화가 왔다⁠. 먼저 보란의 아버지였다⁠. “⁠봤다⁠! 동호회 사람들이 다 봤어⁠. 종 치는 거 좋더라⁠. 그 종 어디서 샀냐고 다들 물어⁠.⁠” 사진관을 마흔 해 한 사람답게 구도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끊었다⁠.

삼십 분 뒤에는 명순이었다⁠. “⁠그 종 소리 때문에 우리 떡집 손님들이 다 따라 해⁠. 떡 고르다가 딩⁠, 값 깎다가 딩⁠.⁠” 명순의 목소리 뒤로 정말로 누군가 “⁠딩⁠!⁠” 하고 외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장이 다 알아⁠. 규환이 이혼하는 거⁠.⁠”

“⁠어머님⁠, 방송에는 규환 씨 안 나와요⁠.⁠”

“⁠안 나와도 다 알아⁠. 동네는 그래⁠.⁠” 명순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래도 당신 얼굴은 잘 나왔더라⁠. 정장 색이 좋아⁠.⁠”

전화가 끊기고 주희는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보았다⁠. 명순에게서 칭찬을 들을 줄은 진행표 어디에도 없었다⁠.

*

10월 21일 목요일⁠, 망원동의 작은 영상 업체 「⁠필름봄⁠」⁠. 보란의 사촌 동생은 서른 초반의 남자였는데⁠, 주희가 들어서자 모니터 화면을 급하게 내렸다⁠. 사무실 벽에 결혼식 스틸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주희는 식 당일 동선표를 펼쳐 촬영 위치를 같이 정했다⁠.

“⁠카메라는 두 대예요⁠. 하나는 뒤에서 넓게⁠, 하나는 무대 정면⁠.⁠” 사촌 동생이 말했다⁠. “⁠인사할 때 무선 마이크 하나 따로 달아도 되죠⁠? 음성만 따로 받으려고요⁠.⁠”

“⁠결혼식에서는 보통 안 그러는데요⁠.⁠”

“⁠이혼식은 처음이라서요⁠. 소리가 중요하대요⁠.⁠”

“⁠누가요⁠?⁠”

사촌 동생이 펜을 떨어뜨렸다⁠. 주우면서 말했다⁠. “⁠누나가요⁠. 보란 누나⁠.⁠” 펜을 집어 든 사촌 동생이 다른 것을 물었다⁠. “⁠하객석에 가게 직원분들 자리는 어디예요⁠? 반응 컷 따려고요⁠.⁠”

주희는 하객 자리표를 펼쳤다⁠. C 탁자⁠, 밀과달 직원 열두 명⁠. 사촌 동생이 C 탁자 자리에 동그라미를 쳤다⁠. 반응 컷은 결혼식에서도 땄다⁠. 신부 친구들이 우는 얼굴⁠, 신랑 아버지가 박수 치는 손⁠. 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목 뒤가 이상하게 서늘했다⁠.

*

10월 22일 금요일 밤 아홉 시 사십 분⁠,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보낸 사람 필름봄⁠, 받는 사람 남보란⁠. 참조에 연플래닝 주소가 들어 있었다⁠. 보란이 보낸 메일에 사촌 동생이 전체 답장을 누른 것이었다⁠. 제목은 「⁠11/27 촬영표 최종 — 누나 확인⁠」⁠.

첨부 파일을 열었다⁠. 시간 순서대로 줄이 이어졌다⁠. 입장⁠, 하객 인사⁠, 반지⁠. 그리고 한 줄이 노랗게 칠해져 있었다⁠.

「⁠14⁠:20 신랑 감사 인사 — 무대 정면 고정⁠, 무선 마이크 별도 녹음⁠. 무편집 원본 2부⁠: 1부 하늬⁠, 1부 윤 변호사님 제출용⁠」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C 탁자(⁠밀과달 직원⁠) 반응 컷 — 인사 중 얼굴 전부⁠」

보란이 원래 보낸 메일도 아래에 붙어 있었다⁠. 짧았다⁠. 「⁠인사할 때 ‘⁠가게⁠’라는 말이 나오면 절대 자르지 말고⁠. 윤 변호사님이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대⁠.⁠」

주희는 메일을 두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읽지 않고 화면만 보았다⁠. 연습실에서 정면에서 찍어 달라던 보란의 목소리와⁠, 식 날이 제일 중요하다던 말이 떠올랐다⁠. 원고를 다 지웠겠다며 빨리 끝나던 웃음도 떠올랐다⁠. 감사 인사가 식순에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고 보란은 놀라지 않았다⁠. 반달 카스텔라 상자를 먼저 들고 와 탁자 가운데로 밀어 놓던 손도⁠, 하늬의 도화지가 처음 나오던 계단참도 차례로 떠올랐다⁠.

탁자 위에 보란이 지난주에 놓고 간 반달 카스텔라 상자가 있었다⁠. 하나가 남아 있었다⁠. 주희는 카스텔라를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손끝에 설탕 가루가 묻었다⁠. 놋쇠 탁상종이 상자 옆에서 형광등 빛을 받고 있었다⁠. 탓하는 말에 치는 종이었다⁠. 지금은 칠 사람이 없었다⁠.

주희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연락처에서 「⁠차건우 변호사⁠」를 눌렀다가 문자 창을 열었다⁠. 「⁠변호사님⁠, 영상 업체 일로 드릴 말씀이⁠」까지 쓰고 지웠다⁠. 보내는 순간 이 메일은 건우의 서면이 될 것이었다⁠. 의뢰인은 둘이었다⁠. 한 의뢰인의 메일을 다른 의뢰인의 변호사에게 넘기는 플래너는 청담동 어디에서도 다시 일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보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일곱 번 가고 끊겼다⁠. 문자가 왔다⁠. 「⁠하늬 재우는 중이에요⁠. 내일 새벽 가게에 있어요⁠. 토요일은 제가 반죽해요⁠.⁠」

보란은 여전히 토요일마다 반죽을 하러 가게에 갔다⁠. 별거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주희는 알람을 새벽 네 시에 맞추고 접이식 침대를 폈다⁠. 침대 다리가 딸깍 소리를 냈다⁠. 형광등을 끄자 탁상종의 놋쇠 빛이 어둠 속에서 한동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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