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97자)

추석 다음 날의 상견례

이혼식 플래너 · 석다감

9월 16일 목요일 낮 열두 시⁠, 망원동 한정식집 「⁠소담정⁠」 이층 방⁠. 추석 다음 날이라 골목에는 아직 전 부치는 냄새가 남아 있었고⁠, 방 안에는 상견례용 긴 상이 차려져 있었다⁠. 상 양옆으로 방석이 다섯 개씩 마주 보았다⁠. 주희는 가방에서 자리 카드 열 장을 꺼냈다⁠. 결혼식 때 하객 탁자에 올리는 것과 같은 크림색 카드였다⁠.

차건우는 이미 와 있었다⁠. 방문 바로 옆 방석이었다⁠.

“⁠출구 옆이네요⁠.⁠”

“⁠한정식집에도 출구는 있습니다⁠.⁠”

주희는 건우의 방석 앞에 카드를 하나 놓았다⁠. 「⁠차건우 변호사님⁠」⁠. 그러고는 나머지 카드를 상 위에 섞어 놓기 시작했다⁠. 신랑 집안이 한 줄⁠, 신부 집안이 한 줄 앉는 상견례 자리를 엇갈리게 바꿨다⁠. 규환의 어머니 옆에 보란의 아버지⁠, 보란 옆에 건우⁠, 규환 맞은편에 주희⁠.

“⁠이혼식은 섞어 앉아요⁠. 양가가 마주 보면 마주 보고 싸우세요⁠.⁠”

헤드셋은 끼지 않았다⁠. 대신 놋쇠 탁상종을 상 한가운데⁠, 갈비찜 놓일 자리에 내려놓았다⁠.

열두 시 오 분⁠, 백명순이 계단을 올라왔다⁠. 예순여덟이었고⁠, 망원시장에서 떡집을 서른 해 한 사람이었다⁠. 카디건 밑으로 떡집 앞치마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자리 카드를 보더니 자기 카드를 집어 들고 상 오른편 끝으로 옮겼다⁠.

“⁠나는 우리 식구 옆에 앉을 거요⁠.⁠”

“⁠어머님⁠, 오늘은 우리 식구 남의 식구가 없어요⁠.⁠” 주희가 카드를 도로 가져다 놓았다⁠. “⁠다 한 상이에요⁠.⁠”

명순이 주희를 아래위로 훑었다⁠. 세이지 그린 정장과 진주 귀걸이와 머리에 꽂힌 만년필을 차례로 보았다⁠. “⁠당신이 그 잔치꾼이구먼⁠.⁠”

*

규환과 보란은 따로 도착했다⁠. 규환이 먼저 왔고⁠, 보란은 칠 분 늦게 아버지와 같이 왔다⁠. 주희는 규환을 계단참으로 도로 내보냈다⁠. 명순이 방석에서 반쯤 일어났다⁠.

“⁠여기가 무슨 결혼식장이야⁠? 애를 왜 내보내⁠?⁠”

“⁠두 분이 같이 들어오셔야 시작해요⁠. 제 식은 그래요⁠.⁠”

“⁠이혼하는 애들을 같이 들어오래⁠.⁠”

“⁠이혼하는 분들이라서 같이 들어오시는 거예요⁠.⁠”

계단참에서 규환과 보란이 다시 만났다⁠. 보란의 아버지가 두 사람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가⁠, 상황을 알아채고 한 발 비켜났다⁠. 일흔한 살⁠, 수원에서 사진관을 마흔 해 하다 작년에 문을 닫은 사람이었다⁠. 목에 낡은 필름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규환과 보란이 문을 같이 통과하는 순간 셔터 소리가 났다⁠. 찰칵⁠.

“⁠아빠⁠.⁠”

“⁠버릇이다⁠.⁠”

모두 자리에 앉았다⁠. 명순은 보란의 아버지 옆이었고⁠, 둘은 서로 쳐다보지 않고 갈비찜만 보았다⁠. 하늬는 오지 않았다⁠. 표솔지가 합정 연습실에서 하늬와 상자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주희가 그렇게 짰다⁠. 어른들 싸움을 열 살이 볼 까닭은 없었다⁠.

*

싸움은 하객부터 시작했다⁠.

“⁠시장 상인회 서른 명⁠.⁠” 명순이 손가락을 접었다⁠. “⁠우리 아들 가게 떡을 누가 대 줬는데⁠. 망원시장 사람들 빼면 안 돼⁠.⁠”

“⁠사진 동호회 열다섯 명⁠.⁠” 보란의 아버지가 말했다⁠. “⁠내 딸 결혼식도 내가 찍었어⁠. 이혼식도 내가 찍는다⁠.⁠”

“⁠사진은 괜찮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원본만 한 부 저한테 주십시오⁠.⁠”

“⁠변호사가 사진은 왜⁠?⁠”

“⁠제가 다 봐야 합니다⁠. 무엇이 찍혔는지⁠.⁠”

주희는 클립보드에 숫자를 적었다⁠. 서른과 열다섯⁠, 부부 각자의 친구들⁠, 가게 직원 열두 명⁠. 화이트벨홀 소연회장은 백 석이었다⁠. 넘쳤다⁠.

명순이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그리고 하늬는 우리 집 애야⁠. 식 끝나면 주말마다 나한테 와⁠.⁠”

“⁠양육 협의서에는 하늬가 엄마와 산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머님⁠.⁠” 건우가 말했다⁠. “⁠확인기일에 법원에 내는 서류입니다⁠. 아버지가 주말마다 만나고⁠, 명절은 번갈아 보냅니다⁠.⁠”

“⁠그러니까 이번 추석에도 애가 오전엔 우리 집⁠, 저녁엔 저 집 갔잖아⁠. 송편을 두 번 먹었어⁠. 애 배 터지겠어⁠.⁠”

“⁠우리 집에서는 반만 먹었어요⁠.⁠” 보란의 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 송편이 더 맛있다더라⁠.⁠”

명순이 입을 다물었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주희는 명순의 입꼬리를 보았다⁠. 양가가 처음으로 같은 것을 두고 웃을 뻔했다⁠.

명순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컵을 탁 내려놓았다⁠. “⁠근데 이거 하나는 알아 둬⁠. 그 가게 보증금 일억⁠, 내 돈이야⁠. 2018년에 떡집 적금 깨서 내가 줬어⁠.⁠”

딩⁠.

주희의 손가락이 종 꼭대기에 있었다⁠. 명순이 종을 보았다⁠. 처음 보는 물건을 보는 눈이었다⁠.

“⁠어머님⁠, 오늘은 돈 이야기 하면 종이 울려요⁠. 식에서도요⁠.⁠”

“⁠내 돈 얘기를 내가 하는데 종을 쳐⁠?⁠”

건우가 헛기침을 했다⁠. 주희는 건우가 무슨 계산을 하는지 알았다⁠. 명순의 1억은 건우 의뢰인에게 유리한 말이었다⁠. 어머니가 빌려준 돈이면 가게에서 빼고 나눠야 할 몫이 되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준 돈이면 아들 혼자의 몫이 된다⁠. 어느 경우든 보란이 가져갈 몫은 줄었다⁠. 그런데 돈 이야기 금지는 건우가 넣은 규칙이었다⁠.

건우가 입을 열었다⁠. “⁠어머님⁠, 돈 이야기는 식에서 안 됩니다⁠. 제가 정한 규칙입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저한테 따로 해 주십시오⁠.⁠”

딩⁠.

건우가 주희를 보았다⁠.

“⁠변호사님⁠, 따로도 여기서 말씀하시면 종이에요⁠.⁠”

명순 옆에서 보란의 아버지가 웃음을 참느라 카메라 끈을 꽉 쥐었다⁠. 그러다 웃음이 다른 데로 샜다⁠. “⁠일억이면 큰돈이지⁠. 근데 내 딸 손목도 봐⁠.⁠” 보란의 아버지가 보란의 오른팔 소매를 걷었다⁠. 손목 안쪽에 하얗게 아문 줄이 하나 있었다⁠. “⁠반죽 치다가 손목 신경 눌려서 수술했어⁠. 2021년이야⁠. 그 가게 반죽 절반은 얘 손목이 쳤어⁠.⁠”

딩⁠.

“⁠아빠⁠.⁠” 보란이 소매를 끌어내렸다⁠. 얼굴이 빨개졌다⁠. 규환은 보란의 손목을 보지 않으려고 숟가락을 보았다⁠. 숟가락에 자기 얼굴이 거꾸로 비쳤다⁠.

주희는 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갈비찜이 들어왔다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식어 갔다⁠.

*

명순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좋아⁠. 당신 잔치 해⁠. 대신 조건이 있어⁠.⁠” 명순이 주희를 똑바로 보았다⁠. “⁠식장에서 돈 얘기 한마디라도 나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 누가 하든⁠.⁠”

“⁠네⁠, 어머님⁠.⁠”

“⁠그리고 반지⁠.⁠” 명순이 손바닥을 규환 앞에 내밀었다⁠. “⁠내놔⁠.⁠”

규환이 머뭇거리다 지갑을 꺼냈다⁠. 회의 날 핸드크림을 바르고 빼낸 반지를 지갑 동전 칸에 넣어 다녔다⁠. 명순이 반지를 받아 손수건에 싸서 가방 속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내가 해 준 거야⁠. 결혼할 때 내가 금은방 가서 맞췄어⁠. 녹이긴 뭘 녹여⁠.⁠”

“⁠어머님⁠, 그건 하늬 목걸이로⁠…⁠.⁠”

“⁠하늬 목걸이는 내가 해 줄 거야⁠. 내 돈으로⁠.⁠”

딩⁠. 이번에는 주희가 치기 전에 보란의 아버지가 쳤다⁠. 모두 보란의 아버지를 보았다⁠. 보란의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돈 얘기잖아⁠.⁠”

건우가 손바닥을 반쯤 들었다가 내렸다⁠. 주희는 클립보드의 반지 줄을 보았다⁠. 유리 접시에 반지 두 개⁠. 이제 하나였다⁠. 하나로는 목걸이 원판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건우가 주희 뒤에서 말했다⁠. “⁠1억 이야기에 종 치신 거⁠,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편 들려고 친 거 아니에요⁠.⁠”

“⁠압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건우가 난간을 잡았다⁠. “⁠종이 없었으면 저는 어머님 말씀을 받아 적었을 겁니다⁠. 서면 한 장이 저절로 써지는 이야기였거든요⁠.⁠”

“⁠그런데 왜 따로 하자고 하셨어요⁠?⁠”

“⁠버릇입니다⁠.⁠” 건우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좋은 증거를 보면 손이 먼저 나갑니다⁠. 연 실장님 종처럼요⁠.⁠”

주희는 계단 중간에서 돌아보았다⁠. 건우가 두 계단 위에 있어서 눈높이가 맞았다⁠. 계단 창으로 든 햇빛이 뿔테 안경알에 비쳐 눈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종 몇 번 맞으셨는지 아세요⁠?⁠”

“⁠두 번입니다⁠.⁠”

“⁠세 번이요⁠. 반지 때 손 드셨다 내리셨잖아요⁠. 그것도 칠 뻔했어요⁠.⁠”

건우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았다⁠. 계단 아래에서 보란의 아버지가 셔터를 눌렀다⁠. 찰칵⁠.

*

오후 세 시⁠, 주희는 망원시장 떡집 앞에 서 있었다⁠. 간판에 「⁠백가네 떡방⁠」⁠. 명순은 가게 안쪽에서 가래떡을 썰고 있었다⁠. 추석 다음 날이라 진열대는 거의 비었고⁠, 바닥에 쌀가루가 하얗게 깔려 있었다⁠.

“⁠왜 따라왔어⁠?⁠”

“⁠떡 주문하러요⁠. 식장 답례떡이요⁠.⁠”

명순이 칼을 멈췄다⁠. 주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가방을 내려놓고 벽에 걸린 앞치마를 둘렀다⁠. 결혼식 10년 동안 신부 할머니 비위를 맞추는 법은 하나였다⁠. 손을 보태는 것⁠. 명순이 썬 떡을 주희가 상자에 담았다⁠. 열 개씩⁠, 두 줄로⁠. 떡에서 아직 김이 났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건너편 생선 가게 주인이 고무장갑을 낀 채 고개를 내밀었다⁠. “⁠형님⁠, 규환이 이혼한다며⁠? 잔치도 한다며⁠?⁠”

“⁠누가 그래⁠?⁠”

“⁠시장에 다 돌아⁠. 방앗간 집 며느리가 SNS에서 봤대⁠.⁠”

“⁠잔치는 무슨 잔치⁠. 떡 주문 들어온 거야⁠.⁠” 명순이 칼등으로 도마를 쳤다⁠. 생선 가게 주인이 고개를 집어넣었다⁠. 명순이 주희에게 낮게 말했다⁠. “⁠봐⁠. 동네가 이래⁠.⁠”

선반 위 라디오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명순은 박자에 맞춰 칼을 내렸다⁠. 탁⁠, 탁⁠, 탁⁠. 서른 해를 같은 박자로 썰어 온 칼이었고⁠, 떡 굵기가 자로 잰 듯 똑같았다⁠. 주희의 세이지 그린 소매에 쌀가루가 하얗게 앉았다⁠. 털어 내려다 그만두었다⁠. 상견례 자리에 입고 온 정장이 떡집에서 쌀가루를 뒤집어쓰는 날도 있었다⁠. 결혼식 10년 동안 신부 대기실에서 파운데이션을⁠, 폐백실에서 밤 대추 물을 묻혀 본 옷이었다⁠.

한참 썰다가 명순이 말했다⁠. “⁠규환이 아버지는 술 먹고 들어와서 상 엎는 사람이었어⁠. 나는 이혼 못 했어⁠. 그때는 그런 거 하면 동네에서 손가락질했어⁠.⁠”

주희는 떡을 담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근데 이혼을 잔치로 한다고⁠. 사람 다 불러다 놓고⁠.⁠” 명순이 칼끝으로 도마를 두드렸다⁠. “⁠내가 상 엎는 소리 들으면서 버틴 서른 해는 뭐가 되냐고⁠.⁠”

“⁠어머님이 버티신 걸 아무도 못 봤잖아요⁠.⁠”

명순이 고개를 들었다⁠.

“⁠규환 씨랑 보란 씨는 사람들 앞에서 끝내고 싶대요⁠. 아무도 못 본 데서 끝나는 거⁠, 어머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명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썰어 놓은 떡 한 줄을 주희 상자에 더 얹었다⁠. “⁠답례떡은 내가 해⁠. 남의 떡 올리면 안 돼⁠. 이백 개⁠.⁠”

“⁠백 개면 돼요⁠. 소연회장이 백 석이에요⁠.⁠”

“⁠이백 개 해⁠. 남으면 싸 가게⁠.⁠” 명순이 다시 칼을 들었다⁠. “⁠반지는 안 줘⁠.⁠”

*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연플래닝 연주희 실장님이시죠⁠? 케이블 채널 「⁠달빛채널⁠」의 국승현 피디입니다⁠. 「⁠안녕의 기술⁠」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목소리가 빨랐다⁠. “⁠반지 목걸이 게시물 봤어요⁠. 이혼식 준비하는 과정⁠, 처음부터 찍고 싶습니다⁠.⁠”

주희는 떡 상자를 고쳐 들었다⁠. 상자 바닥으로 온기가 올라왔다⁠. 방송 한 번이면 문의 일곱 건은 일흔 건이 될 수도 있었다⁠. 접이식 침대를 접는 날이 달력에서 한 장 넘어왔다⁠.

“⁠처음부터요⁠. 끝까지는요⁠?⁠”

“⁠식 당일까지요⁠.⁠” 피디가 말했다⁠. “⁠사실 그날이 제일 중요하죠⁠.⁠”

주희는 시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건우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손바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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