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60자)

반지는 녹이면 금이에요

이혼식 플래너 · 석다감

9월 6일 월요일 오후 세 시 오십오 분⁠, 연플래닝 사무실 문이 열리고 서규환이 혼자 들어왔다⁠. 주희는 클립보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문을 가리켰다⁠.

“⁠다시 나가 주세요⁠.⁠”

“⁠네⁠?⁠”

“⁠두 분이 같이 들어오셔야 회의가 시작돼요⁠. 사모님 오시면 같이 들어오세요⁠.⁠”

규환은 오 초쯤 문고리를 쥐고 서 있다가 도로 나갔다⁠. 솔지가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실장님⁠, 저 진짜 내보낼 줄 몰랐어요⁠.⁠” 주희는 대답 대신 탁자 가운데에 놋쇠 탁상종을 내려놓았다⁠. 웨딩 회사에 다닐 때 신랑 입장 큐로 치던 종이었다⁠. 그만두던 날 짐 상자에 몰래 넣어 왔다⁠.

계단참에서 규환이 벽을 보고 기다리는 동안 차건우가 올라왔다⁠. 건우는 문 앞에 선 의뢰인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사정을 듣더니 자기도 규환 옆에 나란히 붙어 벽을 보았다⁠. 솔지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나갔다가 빈손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변호사님도 같이 기다리세요⁠. 의뢰인 혼자 세워 둘 수 없대요⁠.⁠”

네 시 칠 분⁠, 남보란이 계단을 올라왔다⁠. 문은 한 사람 반 너비였다⁠. 규환과 보란이 동시에 문틀을 지나다 어깨가 부딪쳤고⁠, 둘 다 사과하지 않았다⁠. 건우가 뒤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

“⁠오늘부터 규칙이 하나 더 있어요⁠.⁠” 주희가 종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맑은 소리가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회의든 식이든 누구 탓을 하는 말이 나오면 제가 이걸 칩니다⁠. 치면 하던 말을 멈추시면 돼요⁠.⁠”

보란이 웃었다⁠. “⁠결혼식 때 이런 거 있었으면 좋았겠네요⁠.⁠”

“⁠결혼식 때는 다들 탓을 안 하잖아요⁠.⁠”

“⁠안 하죠⁠. 나중에 하죠⁠.⁠”

회의는 하객 이야기로 시작했다⁠. 보란이 친구 명단을 읽다가 말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이 새벽 네 시에 나가서 밤 열 시에 들어오는 거 다 알아⁠.⁠”

딩⁠. 보란이 입을 다물었다⁠.

규환이 탁자 모서리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매출표만 봤잖아⁠.⁠”

딩⁠. 규환도 입을 다물었다⁠.

건우가 볼펜을 들었다⁠. “⁠제 의뢰인께서는 혼인 기간 동안 일방적으로 노동을⁠…⁠.⁠”

딩⁠. 건우가 종을 내려다보았다⁠. 종을 친 주희의 손가락은 아직 놋쇠 꼭대기에 있었다⁠.

“⁠변호사님도요⁠?⁠”

“⁠변호사님도요⁠.⁠”

건우는 볼펜을 내려놓고 잠깐 종을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규칙을 하나 더 넣겠습니다⁠. 재산 이야기도 종을 쳐 주십시오⁠. 가게⁠, 집⁠, 보증금⁠, 금액⁠, 누구 명의인지⁠. 식장에서든 회의에서든 한마디라도 나오면 합의가 깨집니다⁠. 깨지면 두 분은 확인기일 전부터 다시 서면을 주고받게 됩니다⁠.⁠”

보란이 건우를 보았다⁠. 규환은 보란을 보지 않았다⁠. 주희는 클립보드에 한 줄을 보탰다⁠. 네 번째 규칙⁠, 돈 이야기에도 종⁠.

“⁠좋아요⁠. 변호사님 규칙도 제 종으로 칠게요⁠.⁠”

*

“⁠반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주희가 사진 한 장을 탁자에 놓았다⁠. 금반지 두 개를 녹여 만든 작은 원판 목걸이였다⁠. “⁠두 분 반지를 식장에서 유리 접시에 같이 넣으시면⁠, 녹여서 하늬 목걸이로 만들어요⁠. 깨지도 버리지도 않고⁠, 하늬 목에 남는 거예요⁠.⁠”

건우가 서류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전자저울을 꺼냈다⁠. 금은방에서 쓰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걸 왜 가지고 다니세요⁠?⁠”

“⁠가사 사건에는 금이 자주 나옵니다⁠.⁠” 건우가 저울 전원을 켰다⁠. 「⁠0⁠.00g⁠」⁠. “⁠반지를 빼 주시겠습니까⁠?⁠”

보란이 반지를 쑥 빼서 저울에 올렸다⁠. 「⁠3⁠.75g⁠」⁠. 한 돈이었다⁠. 규환이 반지를 잡아당겼다⁠. 반지는 손가락 두 번째 마디에서 멈추고 더 나오지 않았다⁠. 새벽마다 반죽을 치대는 손이었고⁠, 10년 동안 손가락이 반지보다 굵어졌다⁠. 규환이 비틀었다⁠. 반지는 꿈쩍하지 않았다⁠.

“⁠솔지 씨⁠, 핸드크림⁠.⁠”

솔지가 핸드크림을 들고 달려왔다⁠. 규환이 손가락에 크림을 짜 바르고 다시 비틀었다⁠. 보란이 보다 못해 규환의 손목을 잡았다⁠. 둘이 같이 당기자 반지가 빠지면서 규환의 팔꿈치가 탁상종을 쳤다⁠. 딩⁠. 아무도 탓을 하지 않았는데 종이 울렸고⁠, 솔지가 칸막이 뒤에서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7⁠.50g⁠」⁠. 두 돈⁠.

“⁠합쳐서 세 돈입니다⁠.⁠” 건우가 저울 숫자를 보았다⁠. “⁠요즘 시세면 따님 피아노 학원 일 년 치가 넘습니다⁠. 혼인 중에 산 금이니 나눌 재산에 들어갑니다⁠.⁠”

“⁠그럼 반지는 빠져요⁠?⁠” 주희가 물었다⁠.

“⁠아니요⁠. 두 분이 각자 자기 반지를 자기 손으로 넣으시면⁠, 두 분이 따님에게 똑같이 주는 겁니다⁠. 반반이면 다툴 게 없습니다⁠.⁠” 건우는 저울을 닫았다⁠. “⁠대신 접시 앞에서 금값 이야기는 안 됩니다⁠.⁠”

“⁠금값 이야기를 누가 해요⁠?⁠”

“⁠방금 제가 했습니다⁠.⁠” 건우는 주희가 종에 손을 올리기 전에 덧붙였다⁠. “⁠회의라서 했습니다⁠.⁠”

반지는 살았다⁠. 주희는 다음 줄로 넘어갔다⁠. 서로에게 드리는 감사 인사⁠. 건우의 손바닥이 올라오기도 전에 보란이 먼저 말했다⁠.

“⁠그건 빼요⁠. 하기 싫은 사람한테 시키는 거 아니에요⁠.⁠”

규환은 핸드크림이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주희는 줄을 긋지 않고 괄호를 쳤다⁠. 건우가 괄호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클립보드 맨 위에는 수요일에 받은 도화지가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주희는 식순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쓰고 같은 괄호를 쳤다⁠. 마지막 춤⁠.

“⁠저 춤 못 춰요⁠.⁠” 규환이 말했다⁠.

“⁠하늬가 알아요⁠. 세 번 밟으셨다고⁠.⁠” 주희가 말했다⁠.

건우가 도화지의 크레파스 음표를 보았다⁠. “⁠춤은 재산이 아닙니다⁠. 반대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으며 덧붙였다⁠. “⁠다만 춤은 영상으로 남습니다⁠. 누가 찍는지는 제가 알아야 합니다⁠.⁠”

*

여섯 시⁠, 성수동 밀과달 본점⁠. 붉은 벽돌 공장 건물 1층이었고⁠, 유리문에 「⁠반달 카스텔라 오늘 품절⁠」이 붙어 있는데도 줄이 길 끝까지 이어졌다⁠. 건너편 건물에는 「⁠임대⁠」 현수막이 둘 붙어 있었다⁠. 이 동네 월세가 오를 때마다 가게가 하나씩 빠졌고⁠, 빠진 자리에 팝업 매장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주방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사모님⁠!⁠” 누군가 외쳤다가 입을 막았다⁠. 보란은 앞치마 걸이에서 자기 이름이 수놓인 앞치마를 보고 손을 뻗다가 거뒀다⁠. 건우가 주방을 한 바퀴 훑었다⁠. 주희는 건우가 직원 수를 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번 오븐이 또 문이 안 닫혀요⁠.⁠” 막내 제빵사가 말했다⁠.

규환이 오븐 문을 두 번 밀었다⁠. 문은 닫혔다가 도로 벌어졌다⁠. 보란이 다가가 구두 굽으로 오븐 문 아래 모서리를 툭 찼다⁠. 문이 딸깍 닫혔다⁠. 주방이 조용해졌다⁠. 보란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털었다⁠.

케이크 시안은 규환이 미리 만들어 두었다⁠. 흰 크림을 바른 2단 케이크였다⁠. 주희가 말했다⁠. “⁠식장에는 처음부터 반으로 잘라서 올려요⁠. 무대 위에서 칼을 드는 사람이 없게요⁠. 끝나면 두 분이 반쪽씩 들고 가세요⁠.⁠”

“⁠반으로 자르면 크림이 무너져요⁠.⁠” 규환이 말했다⁠. “⁠위 단 무게 때문에⁠.⁠”

“⁠가운데에 얇은 판을 세워 넣으면 돼⁠.⁠” 보란이 말했다⁠. “⁠우리 결혼식 케이크 그렇게 했잖아⁠. 당신이 밤새 만든 거⁠.⁠”

규환이 고개를 들었다⁠. 10년 전 자기 결혼식 케이크를 자기 손으로 구운 신랑이었다⁠. 건우가 손바닥을 반쯤 들었다가 내렸다⁠. “⁠결혼식 케이크 이야기는 재산 이야기가 아닙니다⁠. 계속하셔도 됩니다⁠.⁠”

“⁠위에 반달 카스텔라 두 개 올리자⁠.⁠” 보란이 말했다⁠. “⁠반쪽마다 하나씩⁠.⁠”

“⁠그건 가게 간판이야⁠. 식장에 올리면⁠…⁠.⁠”

“⁠잠깐만요⁠.⁠” 이번에는 건우의 손바닥이 끝까지 올라갔다⁠. 반달 카스텔라를 처음 누가 만들었느냐가 재산분할 서면의 첫 장이었다⁠. 주희는 가방에서 탁상종을 꺼내 조리대 위에 놓고 쳤다⁠. 딩⁠. 직원들이 반죽을 치다 말고 돌아보았다⁠.

“⁠그걸 들고 다니세요⁠?⁠” 건우가 물었다⁠.

“⁠변호사님은 저울을 들고 다니시잖아요⁠.⁠”

케이크 위에는 아무것도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규환이 시안 케이크를 상자에 담는 동안 주희는 2번 오븐 옆 타일 벽을 보았다⁠. 기름때 앉은 타일에 사진 한 장이 투명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자가 쟁반을 들고 웃고 있었고⁠, 쟁반 위에 반달 모양 카스텔라가 여섯 개 누워 있었다⁠. 사진 귀퉁이에 볼펜으로 쓴 날짜가 보였다⁠. 「⁠2018⁠. 3⁠. 10⁠」⁠. 테이프를 여러 번 갈아 붙였는지 가장자리가 겹겹이 누렜다⁠.

보란도 사진을 보았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 막내 제빵사에게 2번 오븐은 문 아래를 차야 한다고⁠, 손으로 밀면 경첩만 상한다고 일러 주었다⁠. 막내가 “⁠네⁠, 사모님⁠” 하고 대답했다가 또 입을 막았다⁠. 건우는 사진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고 지나갔다⁠. 증거를 모으러 다니는 사람이 사진 앞을 그냥 지나가는 것을 주희는 보았다⁠.

*

가게 밖 골목은 줄 선 사람들로 좁았다⁠. 주희와 건우는 품절 안내문 앞으로 나란히 밀려났다⁠. 줄 맨 앞의 대학생 둘이 휴대전화로 안내문을 찍었다⁠. 이 동네에서는 품절도 사진 거리였다⁠.

“⁠아까 사진⁠, 왜 안 찍으셨어요⁠?⁠”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분 변호사가 찍을 테니까요⁠.⁠”

건우가 서류 가방을 열었다⁠. 안주머니에서 냅킨에 싼 것을 꺼냈다⁠. 수요일에 사무실에서 싸 간 카스텔라 조각이었다⁠. 닷새가 지나 가장자리가 말라 있었다⁠.

“⁠그걸 아직 갖고 계세요⁠?⁠”

“⁠먹을 때를 못 찾았습니다⁠.⁠” 건우가 냅킨을 펴고 조각을 반으로 쪼개 한 덩이를 주희에게 내밀었다⁠. “⁠반반이면 다툴 게 없습니다⁠.⁠”

주희는 조각을 받았다⁠. 말라 있었지만 달걀 냄새는 남아 있었다⁠. 입에 넣자 겉은 바스락거렸고 속은 아직 촉촉했다⁠. 건우도 자기 몫을 먹었다⁠. 씹는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다 삼키고 나서 말했다⁠.

“⁠괄호 치신 거 봤습니다⁠.⁠”

“⁠네⁠.⁠”

“⁠줄을 긋지 않고 괄호를 치셨죠⁠.⁠”

“⁠식순 줄은 의뢰인이 지우는 거예요⁠. 저는 괄호까지만 쳐요⁠.⁠”

“⁠그 괄호가 열리면 저는 다시 손을 들 겁니다⁠.⁠”

“⁠네⁠. 그때 저는 다시 종을 칠게요⁠.⁠”

건우가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털었다⁠. 줄 선 사람들이 한 칸씩 앞으로 갔고⁠, 둘은 한 칸씩 뒤로 밀려났다⁠.

*

밤 열한 시 사십 분⁠, 주희는 사무실 접이식 침대에 누웠다⁠. 엄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좋아요 눌렀다⁠. 근데 이혼식이 뭐니⁠? 밥은 먹었니⁠?⁠」 주희는 「⁠먹었어⁠」 하나만 보내고 카스텔라 부스러기가 묻은 손가락을 이불에 문질렀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로 기사 하나를 읽었다⁠. 일본에는 2009년부터 이혼식을 차려 온 사람이 있었고⁠, 거기서는 식마다 두 사람이 망치 하나를 같이 쥐고 결혼반지를 내리쳤다⁠. 녹여서 아이 목에 걸어 주는 식은 기사에 없었다⁠. 주희는 화면을 끄고 천장의 화재 감지기 불빛을 보았다⁠. 초록 불이 오 초마다 한 번씩 깜박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규환 고객님⁠」⁠.

“⁠늦게 죄송해요⁠.⁠” 규환의 목소리 뒤로 오븐 환풍기 소리가 들렸다⁠. 아직 가게였다⁠. “⁠변호사님한테는 말 안 하고 전화드리는 거예요⁠.⁠”

“⁠네⁠, 말씀하세요⁠.⁠”

한참 아무 소리도 없었다⁠. 환풍기만 돌았다⁠. 주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클립보드에 괄호 쳐 둔 줄이 떠올랐다⁠.

“⁠인사요⁠.⁠” 규환이 말했다⁠. “⁠빼지 말아 주세요⁠. 제가 하고 싶어요⁠.⁠”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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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산책2026.11.06· 2화

    반지를 녹여서 딸 목걸이로 만든다는 순서 너무 좋았어요. 건우가 재산 이야기 금지를 네 번째 규칙으로 넣는 것도 변호사다웠고요. 마지막에 남편이 몰래 전화하는 데서 다음 화를 바로 눌렀습니다.

    • 석다감작가2026.11.06

      헤어지는 날에도 남길 것 하나는 고르고 싶었어요. 몰래 건 전화가 주희의 식순을 어떻게 흔드는지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