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5,412자) · 강윤재 · 8월 29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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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29일 0600, 심도계 바늘이 300에서 처음으로 위로 움직였다.
조타장이 수평타를 반 칸 올렸다. 배가 아주 조금 머리를 들었고, 해도대 위의 연필이 뒤쪽으로 한 뼘 굴러가 쪽지 모서리에 걸렸다. 한 시간 전부터 바다 위의 소리가 하나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0512에 북쪽의 052D 둘이 기관을 올려 북서쪽으로 갔다. 0530에는 헬기 소리가 제 배 위로 내려앉아 멎었다. 0555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배가 기관을 걸었다. 발전기가 한 번 떨었고, 축이 돌았고, 그 소리가 북쪽으로 멀어졌다.
“전부 갑니다. 쫓아가는 소리가 아닙니다. 돌아서 가는 소리입니다.”
지완이 헤드폰 한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눈 밑이 검었다. 그녀는 어제 0900부터 헤드폰을 벗지 않았다.
“왜 돌아가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같은 시각에 돌았습니다.”
윤재는 모르는 것을 해도에 적지 않았다. 시각만 적었다. 0512부터 0555, 수상 접촉 전부 북서로 이탈. 기관실에서 백 소령이 전화로 잔량을 불렀다. 전지 하루 반. 흡수제 이틀. 숫자 가운데 가장 짧은 것이 이 배가 물속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도 150.”
320은 지나간 숫자였다. 바늘은 280을 지나고 240을 지났다. 지날 때마다 선체가 내려갈 때와 반대 방향으로 울었다. 눌렸던 쇠가 펴지는 소리였다. 발령소의 몇이 그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
0720, 심도 150에서 지완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위에 비행기입니다. 엔진이 넷입니다. 낮게 돕니다.”
발령소가 굳었다. 엔진 넷 달린 초계기는 6월부터 이 배 위에 부표를 뿌린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윤재는 추진을 끊으라고 했다. 배가 서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0731에 해면이 한 번 갈라졌다. 부표 하나였다. 하나만 떨어졌다.
“하나입니다. 더 안 떨어집니다. 핑도 안 쏩니다.”
부표 하나는 그물이 되지 않았다. 6월부터 이 배 위에 떨어진 부표는 늘 여럿이었고, 줄을 맞춰 깔렸고, 깔리자마자 서로 귀를 나눠 가졌다. 하나만 떨어진 부표는 무엇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다고 알리는 것처럼 들렸다. 윤재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틀리면 쉰셋이 값을 치르는 생각이었다.
0805에 두 번째 것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부표가 아니었다. 물에 떨어지자마자 치익 하고 타는 소리가 났다. 해면에서 연기를 피우는 표지탄이었다. 사냥하는 비행기는 표적 자리에 연기를 피워 뒤에 오는 것에게 알렸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손등에 핏줄을 세웠다.
“뒤에 뭐가 옵니까?”
“아무것도 안 옵니다.”
지완이 한참 듣고 대답했다.
“표지탄이 떨어진 자리는 우리 위가 아닙니다. 동쪽 4킬로미터입니다. 비행기는 그 연기 둘레를 크게 돕니다. 부표를 하나 던져 놓고 듣지도 않습니다. 사냥하는 비행기는 저렇게 안 돕니다.”
“그럼 뭐 하는 비행기냐?”
“기다리는 비행기 같습니다.”
윤재는 한동안 해도를 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잠망경 심도.
*
0900, 심도 20. 잠망경이 수면을 뚫었다.
햇빛이 렌즈에 먼저 쏟아졌다. 윤재는 눈을 한 번 찡그렸다가 손잡이를 돌렸다. 바다가 먼저 보였고, 그다음에 하늘이 보였다. 회색 기체 하나가 낮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날개 밑에 엔진이 넷이었다. 기체가 기울어 날개 윗면이 햇빛을 받았을 때, 거기 붉은 동그라미가 하나 보였다. 일본의 바다를 지키는 해상자위대의 대잠 초계기, P-1이었다.
통신 마스트 하나만 올렸다. 0904에 개방 주파수로 영어가 들어왔다. 통신 담당 수병이 받아 적으며 옮겼다.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에 알린다. 여기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다. 우리는 귀함을 우군으로 식별했다. 오늘 이 상공은 우리가 지킨다. 응답할 필요는 없다.”
발령소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군이랍니다. 석 달 만에 처음 듣는 말입니다. 요약 마지막 줄이 이번에는 틀렸네요.”
지완은 헤드폰을 눌러 엔진 소리를 들었다. 한참 듣고 나서 혼자 말하듯 말했다. 같은 엔진인데 다르게 들립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윤재뿐이었다.
윤재는 잠망경을 한 바퀴 더 돌렸다. 동쪽 표지탄 연기 너머 해면에 검은 것들이 흩어져 떠 있었다. 수십이었다. 어젯밤 1941에 한꺼번에 소리가 끊긴 무인 수상정들이었다. 어떤 것은 뒤집혀 있었고, 어떤 것은 안테나가 촛농처럼 녹아 휘어 있었다. 사람이 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위의 하늘이 이미 한 번 탔다. 윤재는 그 하늘 아래에서 이 배가 300미터 물속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고, 생각을 거기서 멈췄다.
*
1000에 백 소령이 발령소로 올라왔다.
“부상은 찬성이다. 전지가 그렇게 말해.”
그는 해도대 앞에 서서 잠망경 손잡이를 봤다.
“그런데 저 목소리가 진짜라는 건 누가 정하지? 저쪽도 영어는 해. 우군이라는 말이 제일 싸게 먹히는 미끼야. 올라가서 해치를 열었는데 저게 아니면, 쉰셋이 다 갑판 위에 서 있게 된다.”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 반대다. 올라가되 해치는 안 연다.”
1032에 개방 주파수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영어 뒤에 서툰 한국어가 이어졌다. 진해 작전처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통신 담당이 받아 적은 종이를 윤재에게 내밀었다. 부상 가능 지점 여섯 가운데 넷째에서 올라오라.
윤재는 가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8월 12일 보급 때 문 대위가 건네준 해도 사본이었다. 붉은 동그라미 여섯이 컴퍼스로 반듯하게 그어져 있었고, 귀퉁이 확인란에 차민경이라는 서명이 있었다. 넷째 동그라미는 동쪽 30킬로미터였다. 표지탄 연기가 오르는 쪽이었다.
백 소령이 사본을 들여다봤다.
“이 종이 본 사람이 몇이야?”
“이 배하고 진해입니다.”
백 소령은 한참 동그라미를 보다가 사본을 돌려주었다.
“이견 거둔다. 해치도 열어.”
*
1230, 심도 60. 동쪽으로 가는 길 위에서 지완이 고개를 들었다.
“앞에 하나 살아 있습니다. 잔해 사이입니다. 작은 기관이 돕니다. 섰다가 돌고, 섰다가 돕니다.”
제하가 태블릿을 끌어안고 음탐실로 건너왔다. 그는 헤드폰 한쪽을 빌려 한참 들었다.
“머리가 탄 놈입니다. 핑은 못 쏘는데 다리가 살아 있습니다. 키가 한쪽으로 꺾여서 같은 원을 돕니다. 저런 건 앞에 걸리는 걸 다 받습니다.”
“자폭형인가?”
“소리로는 모릅니다. 모르면 그렇다고 치는 게 맞습니다.”
60미터 아래의 배를 수상정이 받을 수는 없었다. 위험한 것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넷째 동그라미가 그 원 안에 걸려 있었다. 제하는 지완이 부르는 방위를 받아 태블릿에 점을 찍었다. 점 열둘이 모이자 원이 그려졌다. 반지름 700미터, 한 바퀴에 9분이었다. 그는 원 바깥 동쪽에 작은 가위표를 쳤다.
“여기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동그라미에서 1킬로미터 비켜납니다.”
“진해가 넷째 동그라미라고 했다.”
“진해는 저게 도는 걸 모릅니다. 진해 대신 제가 1킬로미터를 책임지겠습니다.”
윤재는 태블릿의 가위표를 해도 사본의 넷째 동그라미 옆에 연필로 옮겨 적었다. 제하가 처음으로 태블릿 모서리를 문지르지 않았다.
*
1500에 심도 60에서 지완이 개방 주파수를 스피커로 돌렸다. P-1이었다.
“연료가 줄었다. 1600에 기지로 돌아간다. 교대기는 1730에 도착한다.”
1600부터 1730까지 90분이었다. 넷째 동그라미까지는 1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이 배가 넷째 동그라미에 닿는 시각이 정확히 그 빈칸 한가운데였다. 기관실에서 백 소령이 전화로 덧붙였다. 전지 반나절.
“기다리면 전지가 먼저 끝납니다.”
“올라가면 빈 하늘입니다.”
조타장과 지완이 동시에 말하고 서로를 봤다. 윤재는 쪽지의 전지 칸을 연필로 두드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간다, 넷째 동그라미로. 빈 하늘이면 빈 하늘 아래서 올라간다.
1552에 개방 주파수가 한 번 더 울렸다. 이번 말은 짧았다.
“교대기가 늦는다. 우리가 남는다. 돌아갈 연료는 오키나와 쪽으로 바꿨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채 고개를 숙였다. 열흘 전 이 해협 가장자리에서 연료 바늘을 보며 한 바퀴를 더 돈 한국 초계기가 있었다는 것을 이 배의 누구도 몰랐다. 저 위의 사람들도 그 일을 몰랐다.
*
1700, 심도 0.
배가 수면을 밀어 올리는 소리가 났다. 물이 갑판을 타고 양옆으로 쏟아졌다. 윤재가 함교탑 해치 손잡이를 두 손으로 돌렸다. 쇠가 풀리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고, 해치가 열리자 바깥 공기가 아래로 쏟아져 들어왔다. 짠 냄새가 코 안쪽을 찔렀다. 그 뒤에 햇볕에 데워진 쇠 냄새가 따라왔다.
“한 사람에 12초다. 나도 12초, 누구도 더 안 본다. 조타장이 센다.”
조타장은 초시계를 들고 사다리 밑에 섰다. 첫 번째로 올라간 것은 지난주 식당에서 올라가고 싶다고 말한 갑판 수병이었다. 그는 사다리를 오르다 중간에서 한 번 멈췄고, 해치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나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타장이 열둘을 불렀다. 그가 내려왔다. 얼굴이 젖어 있었는데, 바닷물이 튄 것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전기실 하사가 올라갔고, 어뢰 담당 중사가 올라갔다. 오 하사는 앞치마를 두른 채 올라가 12초 동안 하늘이 아니라 바다를 봤다. 제하는 태블릿을 안고 사다리에 발을 올렸다가, 하늘은 화면으로 보는 게 아니라는 조타장에게 그것을 맡기고 빈손으로 올라갔다. 최민석은 반창고 감은 손으로 사다리를 쥐었고, 백 소령은 올라가서 12초 내내 P-1이 도는 쪽만 봤다. 지완은 헤드폰을 목에 건 채 올라갔다. 해치 밖에서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12초 동안 들은 것이 무엇인지는 그녀만 알았다.
쉰한 번째가 윤재였다. 동그랗게 잘린 하늘이 아니었다. 하늘은 끝이 없었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가 구름 가장자리를 붉게 태우고 있었다. 초계기 하나가 그 아래를 천천히 돌았다. 열둘에 그는 내려왔다.
함장은 사다리를 오를 수 없었다. 남 중사와 백 소령이 함장을 양쪽에서 부축해 사다리 밑, 열린 해치 바로 아래에 세웠다. 함장은 고개를 뒤로 젖혀 위를 봤다. 해치 구멍만큼 동그랗게 잘린 하늘이었다. 조타장은 초시계를 눌렀다. 열둘이 지났고, 함장은 고개를 내리며 물었다.
“열둘 맞나?”
“제 시계로는 열하나 반입니다. 반은 함장님 몫으로 얹어 드렸습니다.”
남 중사가 마지막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쉰셋이었다.
해치 밑에서 오 하사가 앞치마 끈을 고쳐 매며 물었다.
“부장님, 이제 김 넣어도 됩니까?”
“넣어라.”
“씹는 소리 나도 됩니까?”
“오늘은 나도 된다.”
조리실 쪽에서 누군가 박수를 한 번 쳤다가, 스스로 놀라 손을 내렸다. 석 달 동안 이 배에서 손뼉 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다.
*
1800에 통신 마스트 옆으로 위성 안테나가 오르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서 올리는 안테나는 18분을 세지 않아도 됐다.
윤재는 송신 단말 앞에 섰다. 보낼 것은 한 줄이었다. 085, 심도 0, 승조원 쉰셋. 어뢰 잔량 1. 조타장은 초시계를 해도대 위에 내려놓았다. 숫자는 쉰세 번째 12초에서 멈춘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