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5,274자) · 강윤재 · 9월 2일(목)
두 번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9월 2일 0610, 제주 남동쪽 바다에서 해군 헬기 한 대가 신채호함 함교탑 위 20미터에 떠 있었다.
너울이 컸다. 잠수함은 물 위에 오래 떠 있도록 지은 배가 아니었고, 파도가 올 때마다 둥근 선체가 술병처럼 좌우로 굴렀다. 헬기에서 내려온 쇠줄 끝의 들것이 그 구르는 갑판 위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백 소령과 갑판 수병 둘이 들것 양쪽 끈을 붙들고 버텼다. 들것 위에는 함장이 묶여 있었다.
들것을 갑판까지 올리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의무실에서 함교탑까지는 사다리 둘과 해치 둘이었고, 해치는 어깨 넓이였다. 7월 말에 건너왔던 군의관은 목을 꺾지 말라고 했다. 남 중사가 함장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쳤고, 최민석과 제하가 들것을 세로로 세워 한 칸씩 밀어 올렸다. 해치를 지날 때마다 남 중사가 숫자를 셌다. 셋에 밀고, 셋에 멈췄다. 반창고 감긴 최민석의 손이 사다리 가로대에서 두 번 미끄러졌고, 두 번 다 제하가 들것 아래를 어깨로 받았다. 함장은 그동안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해치 밖으로 머리가 나가자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침 햇빛이었다.
“헬기 연료 12분입니다!”
함교탑의 통신 담당이 외쳤다. 무전에서 헬기 조종사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0612에 큰 너울 하나가 선체 옆구리를 쳤다. 갑판이 30도쯤 기울었고, 들것이 쇠줄에 매달린 채 바다 쪽으로 쏠렸다. 갑판 수병 하나가 미끄러지며 끈을 놓쳤다. 백 소령이 그 끈을 왼손으로 낚아채고, 오른손으로 함교탑 난간을 잡았다. 장갑 낀 손바닥이 난간에 쓸리는 소리가 바람을 뚫고 들렸다.
“줄 감지 마! 다음 너울 지나고!”
헬기가 기다렸다. 갑판이 반대쪽으로 넘어갔다가 수평으로 돌아오는 그 한 박자에, 백 소령이 손을 들었다. 쇠줄이 감기기 시작했다. 들것이 갑판에서 떨어져 올라갔다. 함장은 들것 위에서 고개를 조금 돌려 함교탑의 윤재를 봤다. 바람 때문에 말은 들리지 않았다. 입 모양만 보였다. 윤재는 그 입 모양을 두 번 읽었다. 첫 줄부터 읽으십시오.
0619에 들것이 헬기 문 안으로 사라졌다. 헬기는 머리를 진해 쪽으로 돌렸다. 백 소령이 갑판에 주저앉아 장갑을 벗었다. 손바닥 가죽이 한 줄 벗겨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장갑을 도로 꼈다.
*
0700에 윤재는 발령소로 내려갔다.
나흘째 물 위였다. 8월 29일 저녁 처음 올린 안테나로 보낸 한 줄에 합참은 한 줄로 답했다. 진해로 귀환. 정세 요약은 확정 뒤 보낸다. 그 뒤로 나흘 동안 이 배가 받은 것은 항로와 기상뿐이었다. 사람들은 석 달 만에 하늘을 보며 멀미를 했다. 물속에서는 한 번도 토하지 않던 조타장이 둘째 날 아침 갑판 난간에 매달려 있었고, 오 하사가 그 등에 대고 김 넣은 주먹밥을 권했다가 욕을 먹었다.
해도대 모서리에 함장의 커피잔이 그대로 있었다. 잔 안쪽에 갈색 줄이 여러 겹 앉아 있었다. 아무도 그 잔을 씻지 않았다. 함장이 씻지 말라고 했고, 씻을 사람도 정하지 않았다.
0852에 통신 단말이 울었다. 감열지가 한 줄씩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에 정세 요약, 발신 합참이 찍혀 있었고,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붙어 있었다. 음성 파일 1건, 승조원 청취용.
윤재는 감열지가 다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종이가 단말에서 떨어지기 전에 끝을 잡았다. 석 달 동안 그는 요약을 마지막 줄부터 읽었다. 마지막 줄은 늘 같았다. 이 해역 우군 잠수함 없음. 그 줄을 먼저 읽어 두면 나머지를 견딜 수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종이 끝에 댔다가 맨 위로 옮겼다.
첫 줄은 짧았다.
상륙은 실패했다.
그 아래에 줄이 이어졌다. 9월 1일 대만 서해안 교두보에서 철수 시작. 철수 병력은 3만 안팎으로 추정. 8월 29일 0500 이후 중국 해군과 공군이 해협과 서해에서 동시에 물러남. 해협 수송로 재개 없음. 윤재는 한 줄씩 읽었다. 읽는 동안 종이가 너울에 맞춰 손 안에서 조금씩 흔들렸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채 어깨 너머로 첫 줄을 읽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손잡이에서 두 손을 떼고 바지에 문질렀다. 손잡이 가죽은 석 달 동안 그의 땀으로 검게 젖어 있었다. 그 손잡이에서 두 손을 다 뗀 조타장을 윤재는 처음 봤다.
*
0910에 지완이 음성 파일을 함내 방송에 걸었다.
발령소 스피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합참 공보실의 누군가였다. 목소리는 감열지의 문장을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상륙은 실패했다. 9월 1일, 철수 시작. 물 위에서는 볼륨을 줄일 까닭이 없었다. 기관실에서도, 어뢰실에서도, 조리실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같은 박자로 울렸다. 식당에서 누군가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같이 들렸다.
목소리가 해협을 지나 한반도로 넘어갔다.
“8월 29일 서해 방면 교전 종료.”
지완이 정지 단추를 눌렀다.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스피커에서는 지직거리는 잡음만 났다. 지완은 헤드폰을 쓰지 않은 채 단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윤재를 돌아봤다.
“부장님, 이 줄 한 번 더 틀어도 되겠습니까?”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완이 되감기 단추를 눌렀다. 화면의 막대가 몇 칸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다시 재생을 눌렀다.
“8월 29일 서해 방면 교전 종료.”
윤재는 두 번 들었다. 첫 번째에는 서해라는 말만 들렸다. 두 번째에야 종료라는 말이 들렸다. 지완은 두 번째가 끝나자 재생을 그대로 두었다. 목소리는 다음 줄로 넘어갔다. 지완은 다음 줄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단말 옆에 붙여 둔 종이를 손끝으로 만지고 있었다. 6월의 바르샤바 기사와 7월의 날짜 넷만 남은 기사, 그 둘 사이에 언제부턴가 마산 시외버스 시간표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조타장이 코를 한 번 훌쩍였다.
“멀미입니다.”
아무도 그 말을 고치지 않았다.
*
0940에 윤재는 요약을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장은 언론 요약이었다. 국내외 기사 몇 건의 제목과 첫 문단이 묶여 있었다. 맨 끝 기사의 바이라인은 서울통신 배소현이었다.
그는 그 이름을 한 번 읽었다. 7월에는 그 이름을 두 번 읽었다. 두 번 읽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썼는지, 왜 썼는지를 다 짐작해야 했다. 오늘은 한 번이면 됐다. 그 사람은 서울에 있었고, 기사를 썼고, 기사는 여기까지 왔다.
기사 아래에 사진 한 장이 흐리게 인쇄돼 있었다. 칠판이었다. 날짜 칸마다 5월 23일부터 분필 가위표가 이어졌는데, 들쭉날쭉한 크기로 보아 아이들이 돌아가며 친 것이었다. 마지막 가위표는 9월 1일 칸에 있었다. 9월 2일 칸은 비어 있었고, 칠판 받침에 분필 한 토막이 눕혀져 있었다. 사진 설명은 한 줄이었다. 대만 서해안 어느 읍내 초등학교 강당, 오늘 아이들은 날짜를 지우지 않았다.
윤재는 사진을 한참 봤다. 그러고는 마지막 줄을 찾았다. 바이라인 아래에는 아무 줄도 없었다. 석 달 동안 거기 있던 이 해역 우군 잠수함 없음이 빠져 있었다.
그는 감열지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는 전문 셋과 박하사탕 두 알이 아직 들어 있었고, 단추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
1200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 하사가 쟁반마다 김을 한 묶음씩 올렸다. 석 달 동안 이 배에 김은 실려 있었지만 아무도 먹지 않았다. 씹으면 소리가 났다. 조타장이 김 한 장을 집어 밥을 싸서 입에 넣고 일부러 크게 씹었다. 바삭 소리가 식당에 퍼졌다. 맞은편의 갑판 수병이 따라 씹었고, 옆 식탁의 어뢰 담당 중사가 따라 씹었다. 곧 식당 전체가 김 씹는 소리로 찼다. 오 하사는 국자를 든 채 조리실 문턱에서 그것을 봤다.
“조타장님, 그렇게 크게 안 씹으셔도 됩니다.”
“석 달 치를 씹는 거다. 원래 이보다 커야 해.”
*
1400에 윤재는 혼자 사관실에서 항해일지를 폈다.
칸이 있는 자리에 먼저 적었다. 0610 함장 헬기 후송. 0852 정세 요약 수신. 0910 음성 요약 함내 방송. 칸이 있는 자리에 적는 말은 늘 짧았고, 오늘도 짧았다.
그는 쪽을 앞으로 넘겼다. 8월 24일의 쪽이었다. 가장자리에 네모 쉰셋이 모두 칠해져 있었고, 칸 밖 맨 아래에 그가 적은 한 줄이 있었다. 쉰셋.
볼펜 뚜껑을 열었다. 적을 말은 여러 개였다. 상륙은 실패했다. 쉰셋 전원 귀환 중. 쏘지 않은 한 발. 서해 교전 종료. 어느 것이든 칸이 없는 자리에 적으면 규정 없는 줄이 하나 더 생길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지에 그런 줄을 적을 자리는 이제 없었다. 쉰셋이 한 줄씩 그 자리를 다 썼다. 그의 몫은 그 쪽 맨 위 첫 칸에 이미 있었다. 한 사람에 한 줄이었다.
사관실 문이 열렸다. 백 소령이 커피를 타러 들어왔다. 그는 벗겨진 손바닥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일지를 펴 놓고 볼펜을 든 윤재를 그는 한 번 봤다.
“마지막 줄 적나?”
“안 적습니다.”
“왜?”
“다 찼습니다.”
백 소령은 대답하지 않고 종이컵에 물을 부었다. 휘젓지 않았다. 나가다가 문턱에서 한 번 멈췄다.
“이견 없다.”
문이 닫혔다. 이번에도 끝까지 손으로 잡고 닫았다. 윤재는 볼펜 뚜껑을 닫았다. 일지를 덮었다. 표지의 모서리가 석 달 동안 해도대에 쓸려 둥글게 닳아 있었다.
*
1530에 진해에서 무선이 왔다. 작전처 상황장교라고 했다.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또렷했고, 내일 0800 입항, 3번 부두라는 말을 두 번 불렀다. 윤재는 받아 적고 나서 송화기를 놓지 않았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8월에 보내 주신 해도 사본의 동그라미 여섯, 컴퍼스로 그리셨습니까?”
무선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예. 손으로 그리면 반지름이 틀립니다.”
“넷째 동그라미에서 1킬로미터 비켜 올라왔습니다. 도는 무인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해도에 고쳐 놓았습니다.”
무선이 끊겼다. 윤재는 가슴 주머니에서 해도 사본을 꺼내 넷째 동그라미 옆의 연필 가위표를 한 번 봤다. 그 사람이 진해의 해도 위 어딘가에 같은 가위표를 쳤을 것이었다.
*
1700에 윤재는 발령소로 돌아왔다.
해 질 녘이었다. 함교탑 해치가 열려 있어서, 기울어 가는 햇빛이 사다리 가로대를 하나씩 타고 내려와 발령소 바닥의 고무 매트 위에 노랗게 누워 있었다. 석 달 동안 붉은 야간 조명과 형광등밖에 비친 적 없는 바닥이었다. 견시 둘이 위에서 수평선을 봤다. 진해까지는 하룻밤이 남아 있었다.
그는 조리실에서 보온병을 가져왔다. 해도대 모서리의 함장 잔을 집었다. 잔은 가벼웠다. 그는 씻지 않은 그 잔에 커피를 따랐다. 김이 올라왔고, 갈색 줄 위로 새 커피가 한 겹 더 찼다. 함장이 부장님이 드시라고 한 커피였다.
윤재는 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해도대 위에 내려놓았다. 너울 하나가 선체를 들어 올렸다가 옆으로 눕혔다. 배가 기울었다.
커피잔 표면은 한쪽으로 밀린 채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