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5,452자) · 강윤재 · 8월 28일(토)
셋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28일 0500, 선단은 4노트로 걷고 있었고 신채호함은 그 한가운데 밑에서 같은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수심 150이었다. 머리 위에서 스크루 다섯이 저마다 다른 박자로 물을 때렸다. 해도대 위 쪽지에는 윤재가 점 다섯을 찍어 두었다. 앞 수송선은 방위 010에 900미터, 가운데 수송선은 거의 머리 위 400미터, 뒤 수송선은 방위 190에 1,100미터. 신양 7호는 앞 수송선의 왼쪽에, 푸캉 3호는 가운데와 뒤 사이 오른쪽에 있었다. 쪽지 맨 위에는 어뢰 4, 전지 사흘 반이 적혀 있었다.
“가운데부터 간다. 제일 가깝고, 양옆에 민간선이 끼어 있어서 나중에는 못 쏜다.”
“양옆 거리는?”
“신양 쪽 180, 푸캉 쪽 220.”
어뢰 담당 중사가 2번 관의 유선 드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미 세 번 짚은 자리를 네 번째로 짚었고, 짚고 나서 윤재를 봤다. 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은 내가 부른다. 부르기 전에는 누가 손을 들어도 열지 마라.”
0503에 문이 열렸다. 문 소리가 선단의 스크루 소리 속에 묻혔다. 2번 관에서 어뢰가 나갔고, 배가 사람 팔 하나만큼 흔들렸다. 유선이 풀려 나가는 소리가 가늘게 이어졌다.
“거리 600, 30초.”
지완이 불렀다. 어뢰는 신양의 배 밑과 푸캉의 배 밑 사이로 곧게 달렸다. 어뢰의 귀는 닫혀 있었다. 열린 귀는 가장 가까운 큰 소리로 가기 때문이었고, 그 소리가 민간선일 수 있었다. 윤재는 초시계의 숫자 대신 중사의 손등을 봤다.
“거리 200.”
“아직.”
“거리 120.”
“개방.”
중사가 키를 눌렀다. 0504에 폭발이 왔다.
*
낮고 긴 소리가 물속을 지나갔다. 선체가 먼저 울었고, 쇠가 늘어나다 끊어지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가운데 수송선이 기관실부터 꺾이고 있었다. 지완이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불렀다.
“명중입니다. 신양과 푸캉은 기관이 안 멎었습니다. 흔들렸고, 물기둥이 위로 올랐고.”
그녀의 목소리가 한 박자 멎었다.
“갑판에서 사람이 뜁니다. 뛰는 소리가 선체를 타고 내려옵니다.”
윤재는 그 말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해도대 쪽지의 가운데 점에 줄을 그었다. 줄이 점을 지나 쪽지 가장자리까지 갔다.
0505에 핑이 쏟아졌다. 호위 둘이 한꺼번에 쏘았고, 둥글고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서 선체를 쓸었다. 발령소 벽의 계기 바늘이 핑마다 한 번씩 떨었다. 0506에 바다가 위에서 찢어졌다.
“로켓입니다. 여럿입니다. 그 배입니다.”
첫 폭발은 300미터 밖이었다. 선체가 옆에서 한 대 맞은 것처럼 밀렸고, 천장의 먼지가 해도 위로 떨어졌다. 조리실에서 냄비가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났다. 오 하사가 뚜껑을 행주로 묶어 놓고 두 손과 무릎으로 눌렀을 것이었다. 두 번째 폭발이 더 가까웠다.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붉은 비상등으로 바뀌었다.
“기만기 사출. 심도 200.”
배가 아래로 기울었다. 윤재는 배가 내려가는 동안 선체의 소리를 들었다. 쇠가 눌리는 낮은 소리였고, 그 소리 가운데 한 번 길게 우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했다.
“1번 관 물 채워. 소리가 이 로켓 소리 밑에 들어간다.”
“앞 수송선입니까?”
“앞 수송선, 지금이다.”
중사가 반창고 감긴 손잡이를 돌렸다. 물 차는 소리는 폭발 소리에 가려 발령소에도 닿지 않았다. 윤재는 어뢰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0508에 1번 관에서 두 번째 어뢰가 나갔다. 거리 900.
배가 한 번 더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가라앉기도 전에 세 번째 로켓 무리가 떨어졌다. 이번 것은 어뢰가 나간 방위선 위였다. 유선이 풀려 나가는 자리를 누가 알고 겨눈 것이었다.
“유선 끊지 마. 끝까지 쥐고 있어.”
“쥐고 있습니다. 거리 500.”
0509에 어뢰실 쪽에서 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어뢰 담당 화면의 가는 선이 끊겼다. 중사가 화면 앞에서 손을 뗐다. 뗄 수밖에 없었다.
“유선 절단입니다. 어뢰가 혼자 갑니다.”
“방위는?”
“앞 수송선 쪽입니다. 신양이 그 앞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지완이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눌렀다. 신양 7호가 방금 선단에서 갈라져 왼쪽으로 급하게 꺾고 있었다. 혼자 가는 어뢰는 가장 가까운 큰 소리로 갔다. 신양의 스크루가 지금 이 바다에서 제일 컸다. 윤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발령소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뢰가 방위를 틉니다.”
지완이 불렀다. 윤재는 숨을 멈췄다.
“앞 수송선 쪽입니다. 신양이 아닙니다. 신양을 지나갑니다. 신양 배 밑을 지나가고.”
그녀가 말을 멈췄다. 한참 뒤에 이었다.
“0510. 명중입니다.”
폭발은 멀고 길었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채 눈을 감았다 떴다. 어뢰가 신양을 지나친 까닭을 윤재는 나중에 한 번 더 따져 보았다. 심도 설정이 깊었고, 신양의 흘수는 얕았고, 어뢰의 귀는 위쪽을 반만 봤다. 운이 반이었다. 운이 반이라는 사실은 일지에 적을 칸이 없었다.
0511에 기관실에서 호출이 왔다. 최민석이었다.
“냉각수 이음매 하나가 풀렸습니다. 폭발에 흔들려서요. 새는 건 지금 손으로 막고 있습니다. 소리는 안 납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제 손이 버티는 만큼입니다.”
“교대 넣겠다.”
“아직은 제 손이 맞습니다.”
*
0514에 지완이 말했다.
“선단이 흩어집니다. 신양은 서쪽으로 전속입니다. 푸캉은 동쪽으로 갑니다. 줄이 없어졌습니다. 뒤 수송선이 멈췄고, 배를 틀기 시작합니다. 후미 호위가 그쪽으로 붙습니다.”
“거리?”
“뒤 수송선 1,300. 후미 호위가 우리 쪽으로 들어옵니다. 1,800.”
윤재는 쪽지의 마지막 점을 봤다. 남은 수송선 하나, 남은 어뢰 둘, 호위 둘. 그리고 아직 모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두 호위는 이제 이 배의 자리를 대략 알았다. 알면서 쏘지 못하는 까닭이 하나 있었다. 앞 수송선과 가운데 수송선이 가라앉으며 내는 소리가 아직 이 바다를 덮고 있었다. 그 소리는 12분을 더 갈 것이었다.
“속력 6노트. 뒤 수송선 밑으로 간다. 가라앉는 소리 속으로.”
“소리가 납니다, 부장님.”
“저쪽도 못 듣는다.”
배가 앞으로 나갔다. 윤재는 조타장의 손등에 핏줄이 서는 것을 봤다. 0521에 거리가 700으로 줄었다. 후미 호위의 핑이 이쪽 방위선으로 한 번 스쳤다가 지나갔다. 0524에 후미 호위가 한 번 더 가까이 왔다. 1,100이었고, 속력이 오르고 있었다.
“3번 관 준비.”
“준비됐습니다. 방위 190, 거리 700.”
“발사.”
“잠깐만요.”
지완이 말했다. 윤재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헤드폰 한쪽을 들어 올린 채 지완은 눈을 감고 있었다.
“부장님, 한 번 더 듣겠습니다.”
“후미 호위가 1,100이다.”
“압니다. 40초만요.”
윤재가 중사를 봤다. 중사가 손을 키 위에서 한 뼘 띄웠다. 후미 호위의 핑이 한 번 더 왔다. 이번에는 한결 가까웠다. 지완은 눈을 감은 채 손바닥으로 허공을 눌렀다가 들어 올렸다. 눌린 배와 뜬 배의 차이를 손이 먼저 알았다.
“방위 190은 뒤 수송선이 아닙니다. 신양입니다. 서쪽으로 가던 신양이 흩어지며 방위를 한 바퀴 돌아서 지금 뒤 수송선 자리로 들어와 있습니다. 소리가 가볍습니다. 뒤 수송선은 방위 205로 틀었습니다.”
발령소가 얼어붙었다. 조타장의 엄지가 손잡이 가죽 위에서 멈췄다. 어뢰는 이미 3번 관에 들어 있었고, 문은 열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중사의 손이 키 위에서 아주 조금 떨렸다. 윤재는 쪽지의 제외 칸에 적힌 이름 둘을 봤다. 신양 7호, 선원 스물 안팎. 방위 190이 그 이름 위에 겹쳐 있었다.
“방위 205로 바꾼다.”
“바꿨습니다. 거리 760.”
“0527, 발사.”
문이 열렸고 어뢰가 나갔다. 0528에 후미 호위의 핑이 이 배의 방위선을 지나갔다. 한 번이었다. 선체가 그 소리를 받아 떨었다. 마지막 어뢰가 신양 7호의 배 밑을 지나갈 때, 그 가벼운 스크루 소리는 어뢰의 귀 위쪽을 스쳤을 뿐이었다. 윤재가 입을 열었다.
“개방.”
중사가 눌렀다.
0529에 폭발이 왔다. 지완이 한참 뒤에 불렀다.
“명중입니다. 뒤 수송선입니다. 신양 7호는 서쪽으로 갑니다. 기관은 살아 있습니다.”
윤재는 쪽지에 세 번째 줄을 그었다. 줄을 긋는 손이 한 번 미끄러졌고, 그는 그 손을 반대 손으로 눌러 잡았다. 쪽지 위에 남은 점은 둘이었다. 신양 7호와 푸캉 3호였다. 둘 다 이름 아래에 선이 없었다.
*
0530부터 0600까지 이 배는 소리 속을 걸었다.
수송선 셋이 가라앉는 소리는 서로 겹치며 바다의 한 구석을 오래 울렸다. 그 소리 밑에서 신채호함은 심도 250으로 내려가 6노트로 남쪽을 향했다. 위에서 호위 둘이 로켓을 떨어뜨렸다. 폭발은 한 번에 하나씩 점점 멀어졌다. 0545에 헬기가 둘 올라왔고, 소리가 층 위에서 바둑판을 그렸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없었다. 이 배는 전지를 하루만큼 먹었고, 올라가면 헬기가 기다렸다.
0600에 윤재는 항해일지의 칸 있는 자리를 폈다. 0504 수송선 1 명중. 0510 수송선 1 명중. 0529 수송선 1 명중. 수송선 3척 합계 6만 3천 톤. 지금까지 합계 15만 4천 톤. 어뢰 잔량 1. 승조원 수 미상. 적고 나서 그는 잔량 칸의 1을 한동안 봤다. 1은 0보다 둥글지 않았다.
“한 발 남았다.”
“예.”
“쏠 자리를 알 때까지 쏘지 마. 함장님이 그러셨다.”
조타장이 대답 대신 손잡이를 쥐었다. 오 하사가 조리실에서 올라와 발령소 문턱에서 쟁반을 내밀었다. 소금만 뿌린 주먹밥 하나가 놓여 있었고, 쟁반 밑에 행주가 깔려 있었다. 윤재는 그것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입 다물고 씹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
*
0900, 신채호함 발령소.
3시간 동안 호위는 두 번 로켓을 떨어뜨렸고, 두 번 모두 이 배에서 멀었다. 0820에 후미 호위가 속력을 내어 북으로 갔다. 구조였다. 그 배는 수송선 셋의 선원을 건지러 갔다. 남은 것은 한 척이었다.
“정면입니다.”
지완이 불렀다. 목소리가 낮았다.
“선두 호위입니다. 방위 000, 거리 1,400. 서 있습니다. 기관이 안 납니다.”
윤재가 해도를 봤다. 1,400이었다. 7월 2일에 이 배를 7분 동안 앉혀 놓았던 그 거리였다. 어뢰 담당 화면에 제원이 한 줄 떠 있었다. 윤재가 입력하지 않은 줄이었다. 중사가 입력했고,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쏠 수 있으면 쏠 수 있다고 적어 둡니다. 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채호함의 제원 화면에 선두 호위가 들어와 있었다. 방위 000, 거리 1,400, 남은 어뢰 1.
*
같은 시각, 선두함 함교.
리 첸은 소나실에서 올라온 종이를 해도대 위에 놓았다. 세 번 들었다고 음탐장이 말했다. 어뢰 소리를 세 번, 폭발을 세 번. 네 번째는 아직이었다. 그는 발사 제원 화면 앞에 섰다. 화면에 방위 180, 거리 1,400의 한 점이 있었다. 지난 석 달 동안 한 번도 그려 보지 못한 점이었다.
덮개 위에 놓인 그의 손가락은 아직 덮개를 올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