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5,805자) · 강윤재 · 8월 27~28일

제외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27일 2304, 6번 관의 바깥문이 열리고 무인정이 어둠 속으로 밀려 나갔다.

사세보 부두에서 크레인에 실려 온 길이 3미터짜리 원통이었다. 제하는 어뢰실 콘솔 앞에서 그것이 관을 벗어나는 3초 동안 숨을 쉬지 않았고, 화면의 점이 선체에서 떨어져 나오자 그제야 어깨를 내렸다. 비어 버린 걸이에는 이름표 두 장만 남았다. 옛 일련번호 옆에 새 번호가 붙어 있었고, 제하는 이번에도 그것을 떼지 않았다.

해도대 모서리에는 윤재가 붙여 둔 쪽지가 있었다. 선단까지 62킬로미터. 어뢰 4. 전지 나흘. 무인정 5시간. 숫자 넷이 전부였고, 이제부터 한 줄씩 줄어들 것이었다.

“선단은 9노트로 내려오고 우리는 3노트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만나는 시각은 0415 전후다. 그 전에 눈이 먼저 가서 선단 밑을 본다.”

“눈이 말을 합니까?”

조타장이 물었다. 제하가 태블릿을 가슴에 안은 채 대답했다.

“20분에 한 번, 0.4초만 합니다. 새우 소리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이 바다에서 제일 시끄러운 게 새우라서 그 결을 빌렸습니다.”

“월급도 안 받고 새우 일을 하는 놈이군.”

발령소의 누군가가 코로 웃었다. 웃음은 배 밖으로 한 뼘도 나가지 않았다.

*

2330에 무인정이 처음 말했다. 지완이 헤드폰을 한쪽만 들어 올렸다가 도로 눌렀다.

“새우 둘, 새우 셋, 쉬고, 새우 하나. 들렸습니다. 제 귀에 들렸으니 저쪽 귀에도 들릴 수 있습니다.”

“저쪽 귀가 이걸 새우로 읽을 확률은?”

“제하 하사 말로는 열에 아홉입니다.”

“남은 하나는?”

“그 하나가 리 첸입니다.”

윤재는 대꾸하지 않고 쪽지의 무인정 칸을 연필로 한 번 두드렸다. 두드린 자리에 연필심이 조금 눌려 박혔다.

그 뒤 한 시간 동안 무인정은 12노트로 달렸다. 달리는 동안은 말하지 않았다.

0042에 첫 핑이 왔다. 선단 맨 앞의 052D 한 척이 정시마다 한 번씩 쏘는 것이었다. 둥글고 날카로운 소리가 선체를 쓸고 지나가며 발령소의 모든 어깨를 한 치씩 올렸다. 이 배는 층 밑에 있었고, 핑은 층에서 꺾였다. 무인정은 층 위에 있었다.

“무인정, 핑을 맞았습니다.”

제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화면의 점이 한 번 떨었다.

“반사가 있었습니까?”

“0.3입니다. 어선 크기입니다. 큰 건 아닙니다.”

“그럼 어선이다.”

윤재가 말했다. 저쪽 화면에 어선으로 찍혔다면, 어선이 바다에 많은 이 해역에서는 눈길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갈 일이었다. 0043에 두 번째 핑이 다른 방위에서 왔다. 점은 더 떨지 않았다. 제하가 태블릿 모서리를 문지르던 손가락을 멈췄다.

*

0050에 무인정이 선단의 줄 밑으로 들어갔다.

무인정이 말하는 간격이 20분인데도 지완은 헤드폰을 벗지 않았다. 무인정이 듣는 소리를 압축해서 보내는 동안 이쪽에서는 무인정이 놓친 것을 귀로 채워야 했다. 지완은 눈을 감았고, 제하는 화면의 숫자를 그녀의 귀에 하나씩 불러 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벌써 말이 필요 없는 길이 나 있었다.

“앞에서부터 불러 보겠습니다. 첫 번째, 날개 박자가 느립니다. 낮습니다. 배가 물을 깊게 밀고 있습니다.”

“흘수 11.”

“두 번째, 높습니다. 가볍습니다. 세 번째는 첫 번째와 같고, 네 번째는 두 번째와 같습니다. 다섯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깊습니다.”

“12.”

짐으로 눌린 배는 물을 깊게 밀고, 깊게 미는 배의 소리는 아래에서 올라온다. 지완은 눈을 감은 채 손바닥으로 허공을 눌렀다가 들어 올렸다. 눌린 배와 뜬 배의 차이를 손이 먼저 알았다. 제하가 화면 한쪽에 다섯 줄을 세우고 그 옆에 숫자를 적었다. 11, 5.5, 11, 6, 12.

“수송선 셋이 짐을 다 실었습니다. 합치면 6만 3천 톤쯤입니다. 나머지 둘은.”

제하가 말을 끊었다. 윤재가 물었다.

“나머지 둘은?”

“반도 안 찼습니다. 신양 7호와 푸캉 3호가 이름표를 달고 수송선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데, 짐이 거의 없습니다. 이 소리로는 빈 배와 다를 게 없습니다.”

조타장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가 도로 쥐었다.

“빈 배를 왜 줄 가운데에 세웁니까?”

“끼운 겁니다.”

윤재가 해도 위의 다섯 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연필 끝이 신양 7호 위에서 멈췄다.

“우리가 쏘지 못한다고 계산한 겁니다. 짐 실은 배 곁에 사람 탄 빈 배를 붙이면 어뢰가 갈 길이 좁아지고, 쏘는 사람의 손이 한 번 더 머뭇거립니다. 저쪽은 그 한 번을 사러 이 배 두 척을 가져온 거고요.”

이름표 있는 배였다. 선원 각 스물 안팎이라고 요약지에 적혀 있던 배였다. 윤재는 그 숫자를 여태 입에 올리지 않고 있었다.

*

0120에 기관실에서 호출이 왔다. 백 소령이었다. 송수화기 너머에서 전지 펌프가 낮게 돌고 있었다.

“부장, 제하 하사한테 숫자를 들었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되나?”

“말씀하십시오.”

“전지로 따지면 짧을수록 좋다. 가벼운 둘을 먼저 쳐라. 사람이 물에 뜨면 호위가 구조에 붙고, 호위가 구조에 붙으면 그 사이에 수송선 셋은 우리 거다. 한 발이면 되고 나머지 어뢰는 전부 큰 배에 쓴다. 싸게 먹히는 계산이야.”

“그건 승조원을 쏘는 겁니다.”

“알아. 그 계산을 하는 게 내 일이고, 안 하겠다는 건 부장 일이다.”

백 소령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이견이었지만 부탁에 가까웠다. 이 배에서 숫자로 살려 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숫자를 쓸 때마다 그는 그 값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윤재는 송수화기를 쥔 채 어뢰 담당 중사를 봤다. 중사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는 두 발씩입니다. 빗나가면 끝입니다. 큰 배 둘에 두 발씩 넣고, 한 척은 포기하는 게 확률로는 맞습니다.”

“한 척을 포기하면 3주분의 3분의 1이 닿는다.”

“빗나가면 전부 닿습니다.”

“한 발씩 셋이다.”

윤재가 말했다. 중사가 입을 다물었다. 윤재는 송수화기에 대고 다시 말했다.

“기관장님 계산은 맞습니다. 틀린 건 하나뿐입니다. 저 배가 무엇을 싣고 있는지는 알지만,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타고 있는 건 사람이야.”

“예, 사람입니다.”

수화기에서 한참 숨소리만 났다. 그러다 백 소령이 말했다.

“전지 계산은 내가 다시 한다. 한 발씩이면 한 발이 남지?”

“남깁니다.”

“쏘지 않으려고?”

“쏘지 않으려고요.”

전화가 끊겼다. 끊기는 소리가 났는데, 평소처럼 문을 끝까지 잡고 닫는 소리 같았다.

*

0135에 지완이 손바닥 전체를 들었다. 멈추라는 뜻이었다.

“푸캉 쪽입니다. 기관실에서 일정하지 않은 소리가 납니다.”

“기계가 고장 난 건가?”

“아닙니다. 쇠를 두드립니다. 두 번, 세 번, 쉬었다가 한 번. 일정하게 두드리지 않고 두드릴 때마다 조금씩 세기가 다릅니다. 기계는 그렇게 안 합니다.”

제하가 헤드폰 한쪽을 빌려 귀에 대 봤다. 오래 대지 않았다.

“점검하는 소리입니다. 배관을 두드려서 안을 듣는 겁니다.”

“누가 합니까?”

“사람이 합니다.”

지완은 헤드폰을 도로 받아 눌렀다. 목소리가 낮았다.

“사람 사는 배 소리입니다.”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령소의 누구도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고, 그 말이 일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없었다. 지완은 3주 전에 방위를 부르는 일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은 따로라고 말했고, 그 말대로 해 왔다. 지금도 방위는 불렀다. 불러야 하는 것을 다 부르고 나서 그 한 줄을 덧붙인 것이었다.

윤재는 쪽지의 숫자 아래 빈 자리에 두 줄을 따로 적었다. 줄 위에는 제외라고 썼다. 신양 7호, 선원 스물 안팎. 푸캉 3호, 선원 스물 안팎. 그리고 위쪽 빈 자리에 세 줄을 적었다. 앞 수송선, 가운데 수송선, 뒤 수송선.

어뢰 담당 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무엇을 향해 장전하는지는 알고 하고 싶습니다.”

“1번 관은 앞 수송선. 2번 관은 가운데 수송선. 3번 관은 뒤 수송선이다. 신양 7호와 푸캉 3호는 장전하지 않는다.”

“4번 관은요?”

“비운다.”

중사는 흰 테이프 세 장에 매직으로 글자를 써서 관 문 위에 붙였다. 앞, 가운데, 뒤. 네 번째 관 문에는 테이프를 붙이지 않았다. 테이프를 뜯다가 한 장이 남았는데, 그 한 장을 손에 든 채 한참 서 있다가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

0305에 제하가 소리를 낮췄다.

“무인정이 위를 듣습니다. 로터 소리입니다. 헬기가 떴습니다.”

지완이 헤드폰을 눌렀다. 선단 맨 앞 052D의 헬기였다. 헬기는 선단 앞쪽 3킬로미터에서 멈춰 서서 소나를 물속에 내렸고, 한 번 담갔다가 끌어 올려 옆으로 옮겨 다시 담갔다. 담글 때마다 한 번씩 핑을 쏘았다. 순서가 있었다. 바둑판처럼 칸을 채우며 무인정이 있는 자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선 크기가 어선 모양으로 안 움직였다고 의심한 겁니다.”

제하가 말했다. 선택지가 둘이었다. 무인정을 층 밑으로 눌러 숨겨 두는 것이 하나였다. 숨기면 눈은 살지만 소리를 낼 수 없고, 소리를 못 내면 마지막 40분 동안 선단의 줄이 어떻게 흩어지는지 볼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무인정이 일부러 소리를 키워 남쪽으로 내빼는 것이었다. 헬기가 그쪽을 따라가고, 이 배는 그 틈에 들어간다. 눈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부장님, 제가 정하겠습니다.”

윤재가 제하를 봤다. 제하는 태블릿을 안은 채 화면의 점을 보고 있었다. 그 점은 아직 쓸 수 있는 시간을 40분 남기고 있었다.

“정해.”

제하는 화면의 숫자를 바꿨다. 속력을 높였다. 무인정의 추진기가 일부러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완이 헤드폰을 눌렀다. 선단에서 멀어지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작은 배가 도망치는 소리였고, 작은 배가 도망치는 소리는 누가 들어도 도망치는 소리였다.

0311에 헬기가 소나를 끌어 올렸다. 로터 소리가 남쪽으로 기울었다. 제하는 콘솔 위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손가락이 걸이의 이름표 쪽으로 반 뼘 뻗어 있었다.

“붙었습니다. 따라갑니다.”

“됐다.”

0314에 무인정과 마지막 통신이 끊겼다. 제하가 콘솔에서 손을 뗐다. 걸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름표 두 장은 그대로 있었다.

*

0330부터 이 배는 눈 없이 갔다.

3노트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동안 지완의 귀가 눈을 대신했다. 선단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 정도로 많은 스크루가 한꺼번에 도는 소리는 지난 석 달 동안 처음이었고, 소리가 커질수록 지완은 헤드폰을 더 가볍게 눌렀다. 오 하사가 조리실에서 쟁반을 가져왔다. 쟁반 밑에 행주를 깔았고, 쟁반 위에는 소금만 뿌린 주먹밥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조타장이 그것을 받아 들고 입을 다문 채 씹었다.

“이번에는 소금도 소리가 납니까?”

“입 다물고 드시면 안 납니다, 조타장님.”

“지난번에도 그 말 했지 않나.”

“그때도 맞았습니다.”

조타장은 대꾸하지 않고 계속 씹었다. 발령소의 누군가가 두 번째로 코로 웃었다.

0345에 윤재는 쪽지의 숫자를 한 번 더 읽었다. 선단까지 6킬로미터. 어뢰 4. 전지 사흘 반. 무인정 칸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쪽지 아래쪽의 두 줄, 신양 7호와 푸캉 3호는 그대로였다. 그 아래에 이제 적을 것이 없었다.

“만나는 시각은 0415 그대로다. 모두 제자리.”

0355에 지완이 손을 들었다. 손가락 하나였다. 손바닥이 아니라 하나만 올라온 것은 석 달 동안 처음이었다.

“말합니다.”

“누가?”

“선단 전부가요. 지금 막 시작했습니다. 호위도, 수송선도, 민간선도.”

스피커가 아니라 헤드폰 틈으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는 소리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암호로 눌린 전문들이 겹쳐서 쏟아지는 소리였고, 이 바다에서 이렇게 많은 무전이 한꺼번에 나간 적은 없었다. 윤재는 벽시계를 봤다. 0358이었다. 초침이 정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같은 초에 합니다. 전부가 같은 초에 말합니다.”

지완의 헤드폰 줄이 목덜미에서 한 번 떨었다.

3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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