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5,542자) · 구재현 · 8월 19일(목)
F-16V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19일 0640, 구재현 소령의 해상초계기가 열두 번째 부이를 놓았을 때 우현 창밖에 비행기 둘이 붙어 있었다.
고도 7천 미터의 쌀쌀한 공기 속에서 그것들은 날개 끝을 이쪽 날개 끝에서 1킬로미터쯤 띄우고 나란히 날고 있었다. 동체는 회색이었고 꼬리에 붉은 별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J-16(중국 공군의 쌍발 전투기)이었다. 아래로 처진 날개 밑에는 긴 미사일이 둘씩 매달려 있었다. 기장 우 중령이 인터콤으로 말했다.
“일곱 번째 접근입니다. 이번엔 안 가는데요.”
“우리 선은 거기까지 갑니다.”
재현은 전술 화면의 점선을 짚었다. 대만 방공식별구역과 중국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가장자리의 선이었다. 선 안쪽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가지 않았고, 바깥쪽에서 하는 일은 국제법이 허락했다. 허락한다는 것과 상대가 허락한다고 믿는다는 것은 별개였다.
“8분째입니다. 저쪽이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돌아 나갑니까?”
“돌아 나가면 부이를 열둘밖에 못 놓습니다.”
“소령님.”
“열둘도 놓은 겁니다. 이쪽 선 위를 한 번 더 돕니다.”
우 중령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J-16 한 대가 날개를 기울여 아래 배 쪽을 보여 주었다. 꼬리가 아니라 미사일 두 발의 머리가 이쪽을 향했다. 그것이 신호였다. 말하지 않고도 알아들으라는 것이었다. 재현은 그 신호를 보고 부이 상자의 열세 번째 뚜껑을 열게 했다.
0653에 J-16 둘이 날개를 흔들고 위로 빠졌다. 빠지기 직전에 한 대의 조종사가 헬멧을 이쪽으로 돌렸다. 고글 속이라 눈은 보이지 않았다. 재현은 손을 들지도 않았고 내리지도 않았다. 기내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통신 분석 유 상사가 헤드셋을 내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은 밥값 했네요. 쟤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입니다.”
“점심은 열한 시에 먹는 거지.”
“저쪽은 일찍 먹습니다.”
화면 구석의 글자가 바뀌었다. 진해에서 이륙 전에 받은 요약이 자동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상륙군 보급 잔량 사령부 판단 D-6.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제3제대 선발 호위함 둘, 해협 남쪽 입구 진입. 재현은 그 줄을 한 번 읽고 지나가려다 되돌아와 다시 읽었다. 호위함 둘은 오늘 이 구역의 바다를 쓸고 있었다. 그 바다가 이 비행기의 아래였다.
*
1310에 전자 지원 장비(상대의 레이더와 무전을 엿듣는 장비)가 동쪽에서 새 점을 올렸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 뒤에 또 하나, 또 하나가 붙었다. 낮고 빠른 점들이었다. 해면 위 100미터쯤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레이더에 걸리지 않으려고 파도에 붙어 나는 높이였다. 여덟까지 센 뒤에 재현은 세는 것을 멈췄다. 더 오지 않았다.
“대만 F-16V(대만 공군의 개량형 전투기)입니다. 편대 여덟입니다. 미사일 둘씩. 방위 270으로 갑니다.”
유 상사의 목소리가 평소의 반으로 낮아졌다. 그는 헤드셋을 한 손으로 누른 채 다른 손으로 메모지에 호출부호를 받아 적고 있었다. 개방 주파수로 편대장이 부하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중국어였다. 번역은 유 상사의 손이 했다.
“청운 하나, 청운 둘, 청운 셋. 호출부호가 청운입니다. 하나부터 여덟까지입니다.”
“알려야 합니까?”
기장의 목소리였다. 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릴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대만은 이 비행기를 모르는 척했고, 이 비행기는 대만 편대를 모르는 척해야 했다. 그것이 이 하늘에서 한국 비행기가 지켜야 하는 선이었다. 그러나 알리지 않는다고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기록은 한다. 전부.”
“예.”
1316에 호위함 둘의 레이더가 바뀌었다. 전자 지원 화면에서 가는 선 둘이 굵어지면서 빨강으로 변했다. 수색에서 추적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4초였다. 그 4초 뒤에 첫 번째 대공 미사일이 올라가는 열 신호가 화면에 번쩍였다. 두 발, 네 발, 여섯 발이 이어졌다. 점들이 갈라졌다. 여덟이 넷과 넷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점들이 낮은 곳에서 위로 솟았다가 다시 낮게 꺾였다. 호위함에 대함 미사일을 쏘려고 거리를 재는 기동이었다.
1318에 화면이 하얘졌다.
점이 하나씩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화면 전체가 흰 눈으로 덮였다.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이었다. 호위함 둘이 이쪽의 레이더에 한꺼번에 잡음을 쏟았다. 7천 미터 위의 비행기까지 눈이 멀었다. 음향분석관이 소리쳤다.
“레이더 소실! 전자 지원 소실! 부이는 삽니다!”
“부이만 듣습니다. 전부 올리세요.”
재현은 헤드폰을 쓰지 않았다. 대신 부이 스피커의 볼륨을 올렸다. 바다 속 소리가 기내에 퍼졌다. 처음에는 새우 소리와 먼 선박의 엔진 소리가 섞인 평소의 바다였다. 그 위로 해면에서 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한 번 떨어졌다. 둔하고 짧았다. 곧바로 한 번 더. 세 번째가 뒤따랐다.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앞의 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다음 소리가 겹쳐 떨어졌다.
음향분석관이 숫자를 셌다. 입술이 숫자를 따라 움직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번째에서 멈췄다가 여섯, 일곱, 여덟.
기내가 조용해졌다. 부이가 마지막으로 전한 소리는 호위함 쪽에서 난 폭발 하나였다. 재현은 그것이 대함 미사일이 명중한 것인지 바다에 박힌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알 방법이 없었다.
*
같은 시각 1319, 신채호함의 발령소에서 지완이 헤드폰을 한쪽 귀에서 뗐다.
“머리 위가 아닙니다. 멉니다. 물에 쇠가 떨어집니다.”
윤재는 해도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발령소 벽의 잔량 표시는 하루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320에서 이 배는 속력 없이 서 있었고, 서 있는 동안 전기는 조금씩만 먹었다. 소리는 더 조용하게 쓰는 것이 이 배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몇 개인가?”
“하나. 둘. 셋.”
지완은 소리가 나는 만큼 센 뒤 눈을 감았다.
“여덟입니다. 한 번에 떨어진 게 아닙니다. 사이사이가 달랐습니다. 하나는 길게 부서졌습니다. 기름 소리가 났습니다.”
“우군인가, 적인가.”
“소리로는 모릅니다.”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칸이 있는 자리에 적었다. 1319 상방 원거리 낙하음 8. 칸이 없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아홉 줄 아래가 비어 있었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채 낮게 말했다.
“저희 위로 안 떨어진 겁니까?”
“우리 위로는 안 떨어졌다.”
“그럼 누구 위로 떨어진 겁니까?”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해도 위에 없었다.
*
1330에 재현의 화면이 돌아왔다.
흰 눈이 걷히자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점이 여덟 개 있던 자리가 파도 반사로 희뿌옇게 번져 있었다. 돌아가는 점도 없었다. 서쪽으로 간 점이 한 번 올라가 있어야 했는데, 올라온 점이 없었다.
“소령님, 연료.”
기장의 목소리였다.
“복귀 연료선까지 40분입니다. 이륙 때 계산한 시각보다 12분 일찍 들어갑니다. 재밍에 선회를 두 번 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1338에 전자 지원 화면이 짧게 울었다. 호위함 한 척의 추적 레이더가 이쪽으로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경보음이 기내에 퍼졌다. 조준이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이 비행기를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 중령이 말없이 조종간을 눌러 기체를 기울였다. 급선회였다. 몸이 좌석에 눌렸다. 재현의 어깨가 안전띠에 걸렸다. 40초 뒤에 경보음이 멎었다. 호위함이 이쪽을 놓은 것이었다.
“돌아갑니다.”
기장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한 번만 더 돌겠습니다.”
“소령님!”
“비콘입니다. 낙하산이 펴졌으면 구조 비콘(조종사가 떨어진 자리를 알리는 무선 신호)이 울립니다. 10분 안에 울립니다. 서쪽 가장자리에서 한 바퀴만 돌면 들립니다.”
“연료가 안 됩니다.”
“착륙 연료는 남습니다. 예비가 없어집니다.”
기내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유 상사가 헤드셋을 벗어 가슴에 안았다. 우 중령이 한참 앞을 보다가 인터콤으로 말했다.
“한 바퀴입니다. 11분 안에 돕니다. 11분이 지나면 제 판단입니다.”
“감사합니다.”
비행기가 큰 원을 그리며 서쪽 가장자리를 돌았다. 재현은 비콘 주파수를 열고 이어폰 한쪽을 귀에 눌러 붙였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위성 잡음이었고 바다의 숨소리 같았다. 3분이 지날 때마다 유 상사가 시계를 봤고, 볼 때마다 숫자를 입술로만 만들었다. 7분째에 이어폰 속 잡음이 한 번 높아졌다. 모두 일어났다가 앉았다. 파도 소리였다. 9분째에 한 번 더 높아졌다. 그것도 파도였다.
11분째에 우 중령이 말했다.
“끝났습니다. 돌아갑니다.”
재현은 이어폰을 귀에서 뗐다. 귀 위쪽이 눌려 있었다. 비콘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여덟 사람이 모두 비콘을 펴지 못했거나, 펴지 못할 곳에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 뜻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1510에 비행기는 제주에 내렸다. 착륙한 뒤에도 오래 엔진이 돌았다. 정비병이 연료 계기를 보고 휘파람을 불다가 입을 다물었다. 연료가 15분어치 남아 있었다.
재현은 보고 서식을 열었다. 칸이 셋이었다. 접촉 위치, 접촉 성격, 판단. 접촉 성격 칸에는 우군, 적성, 미상 가운데 하나를 넣어야 했다. 그는 미상을 눌렀다. 판단 칸이 남았다. 칸은 두 줄이었다. 한 줄에 80자쯤 들어갔다.
그는 유 상사의 메모지를 옆에 펼쳐 놓았다. 거기에 여덟 개의 호출부호가 받아 적혀 있었다. 청운 하나. 청운 둘. 청운 셋. 그는 판단 칸에 적었다. 대만 공군 F-16V 8기 낙하음 8, 구조 비콘 11분 청취 중 무신호. 호출부호 청운 1, 청운 2.
두 줄이 다 찼다.
재현은 칸의 끝에서 커서를 한참 보았다. 칸이 더 늘어나지 않았다. 호출부호는 아직 여섯이 남아 있었다. 그는 서식의 칸 아래로 마우스를 내려 첨부 파일을 열고 새 문서를 만들었다. 거기에 청운 3부터 청운 8까지 한 줄에 하나씩 적었다. 적고 나서 판단 칸으로 돌아와 줄 끝에 한 구절을 덧붙였다. 전 호출부호 별첨.
보내기를 눌렀다. 서식이 자동으로 넘어갔다. 세 단계를 거쳐 각 사령부로 갔다. 첨부 파일은 사람이 열어 보지 않으면 가지 않는 문서였다. 열어 볼 사람이 있을지 재현은 몰랐다.
유 상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소령님, 그거 안 써도 되는 겁니다.”
“칸이 모자라서 별첨으로 뺐다.”
“한 줄에 하나씩이면 호출부호가 아니라 이름 같습니다.”
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 상사는 헬멧을 겨드랑이에 끼고 문 쪽으로 갔다.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저희 편이 아니라서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편이 아니라서 쓰는 거다.”
*
1620에 재현은 비행 중 받은 부이 자료를 복기했다. 화면은 한 칸씩 되감겨 오후의 바다를 다시 지나갔다. 낙하음 여덟의 파형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 아래, 파형들과 따로 떨어져 있는 구석에서 선 하나가 눈에 걸렸다.
12번 부이였다. 해저 층 아래에 가는 선이 하나 서 있었다. 50헤르츠 근처였다. 아주 약했다. 축 소리는 없었다. 발전기만 정확한 박자로 울고 있었다. 6월 초 같은 구역에서 8시간 동안 듣고도 모르겠다고 적었던 그 선이었다.
그는 마우스를 멈췄다. 낙하음 여덟 개와 선 하나가 한 화면에 있었다. 위에서 여덟 사람이 떨어지는 동안, 그 아래 층 밑에서는 이름 없는 배가 소리를 죽이고 서 있었다. 재현은 파형 옆 칸에 선 하나의 시각을 적었다. 1319에서 1331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