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6,486자) · 최민석 · 8월 16일(월)

기관실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16일 0050, 냉각수 예비 탱크의 눈금은 어제 이맘때보다 두 칸 내려가 있었다.

민석은 기관실 중앙 통로에서 안 닫히는 밸브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팔뚝 굵기의 관에 달린 주황색 핸들이었고, 핸들 밑 몸체에는 서른 시간 가까이 새어 나온 냉각수가 말라 하얀 얼룩으로 앉아 있었다. 물은 한 번에 많이 새지 않았다. 새는 만큼 예비 탱크에서 채웠고, 채울 때마다 눈금이 반 칸씩 내려갔다. 백 소령은 그 숫자를 수첩에 적었다. 전지 사흘이 이틀이 됐다. 하루는 물이 먹은 것이었다.

백 소령이 수첩을 덮었다.

“닫는다.”

“소리가 납니다.”

“안다. 몇 번 치고 나면 쇠판이 붙어. 붙을 때까지만 견디면 돼.”

“붙지 않습니다. 시트에 홈이 파였습니다. 붙으려다 튕기고, 튕기면 물이 다시 밀어 올립니다. 닫아 놓고도 계속 딱, 딱 합니다.”

민석은 말하면서 손바닥을 핸들 위에 얹었다. 누르지 않고 얹기만 했는데도 쇠가 가늘게 떠는 것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물이 관 안에서 쇠판을 밀 때마다 나는 떨림이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제가 잡고 있겠습니다. 핸들을 누른 채로 쇠판을 시트에 붙여 놓으면 안 칩니다. 손이 누르는 동안은 조용합니다.”

“손이 언제까지 누르나.”

“위에서 수색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백 소령은 대답 대신 기관실 벽의 전화기를 들었다. 발령소와 한참 말을 나눴다. 통화는 짧았고, 끊고 나서 백 소령은 송수화기를 걸이에 걸지 않고 한동안 손에 들고 있었다.

“지완 하사 판단으로 위의 수색 구역이 0700에 서쪽으로 넘어간다. 그때까지 소리는 안 된다는 게 부장 말이다.”

“그때까지 잡겠습니다.”

“6시간이야.”

“예.”

“팔이 나간다. 한 시간이면 저리기 시작하고, 2시간이면 감각이 없고, 세 시간째부터는 자기가 쥐고 있는지도 모르게 돼. 그때 놓치는 거야.”

“그러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은 못 하게 될 거다.”

민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배관공이었다. 아버지는 쇠가 말을 한다고 했고, 말을 하는 쇠는 눈으로 보지 말고 손으로 들으라고 했다. 그 말을 이 배에서 입에 올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0110부터 한다. 한 시간마다 내가 물어볼 거고, 그때 ‘예’ 말고 다른 말을 하면 교대 넣는다.”

*

0110에 민석은 핸들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을 그 위에 겹쳤다. 체중을 팔뚝이 아니라 어깨에서 실었다. 쇠판이 시트에 닿는 순간이 손에 왔다. 떨림이 한 번 크게 일어났다가 잦아들었고, 그 뒤로는 손바닥 밑에서 쇠가 낮게 웅웅거리기만 했다. 딱 소리는 나지 않았다.

기관실이 조용해졌다. 전지가 도는 소리와 환풍기가 가장 낮은 단에서 도는 소리뿐이었다. 백 소령은 제어 콘솔 앞 의자에 돌아앉아 송수화기를 어깨에 끼웠다. 발령소가 부르는 것을 그가 입술로 받아 민석에게 옮겼다.

0140에 로터 소리가 북쪽에서 왔다. 헬기였다. 멀었다. 백 소령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북쪽을 가리켰다. 민석은 눈으로 알았다고 했다. 대답을 소리로 하지 않아도 되는 배였다.

0200에 오 하사가 왔다. 조리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채였고, 한 손에 보온병을, 한 손에 행주를 감은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숟가락 머리에 행주를 세 겹 감고 고무줄로 묶어 두었다. 쇠가 쇠에 닿지 않게 한 것이었다.

“입 벌려.”

오 하사가 속삭였다. 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오 하사는 숟가락을 든 채 한 발 다가왔다.

“두 손 다 쓰고 있잖아. 6시간을 빈속으로 어떻게 해. 흰죽이야. 씹는 소리도 안 나.”

민석은 입을 벌렸다. 죽이 따뜻했고 참기름 냄새가 났다. 한 숟가락에 하나, 하나에 한 번씩 오 하사가 행주 자락으로 민석의 턱을 닦았다. 백 소령이 콘솔 앞에서 등을 돌린 채 어깨를 떨었다. 웃는 것이었다. 소리 없이 웃는 일은 이 배에서 다들 잘했다.

“이 배에서 제일 비싼 숟가락이다. 기관장님 앞에서 제가 먹여 주는 거 기록에 남기지 마십시오.”

“적을 칸이 없어.”

백 소령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오 하사는 숟가락을 닦으며 나갔다. 나가면서 해치를 손으로 끝까지 잡고 닫았다.

0215에 핑이 처음 왔다.

북쪽에서 헬기가 청음기를 물에 담갔고, 가는 소리가 선체를 한 번 쓸었다. 가볍고 높은 소리였다. 소리가 선체에 닿는 순간 민석의 손바닥 밑에서 쇠판이 핑 소리와 같은 박자로 한 번 떨었다. 쇠가 소리를 듣고 따라 우는 것이었다. 손에 힘을 한 겹 더 실었다. 떨림이 눌렸다. 핑이 두 번째로 왔다. 이번에는 조금 가까웠다. 쇠판이 또 떨었고, 민석은 또 눌렀다.

0300에 첫 시간이 지났다. 백 소령이 입술로 괜찮으냐고 물었고, 민석은 “예”라고 입술로만 대답했다. 어깨 뒤쪽이 뜨거웠다.

*

0340에 오른쪽 손가락 끝이 저리기 시작했다. 백 소령의 말이 맞았다. 한 시간이 아니라 2시간 반 만이었지만, 저림은 말한 순서대로 왔다.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손목으로. 저림을 쫓으려고 몸을 움직이면 핸들이 움직였다. 민석은 대신 핸들 둘레의 눈금을 셌고, 센 숫자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셌다. 세 번을 세어도 마흔여덟이었다.

0400에 백 소령이 물었다. 민석은 “예”라고 했고, 입술이 마른 소리로 갈라졌다. 백 소령은 교대를 넣지 않았다.

0420에 백 소령이 송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헬기가 접촉을 올렸다. 남쪽 1킬로미터. 투하 준비라고 한다.”

민석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숨을 죽이려다 숨이 어긋난 것이었다.

“아직 우리를 잡은 건 아니다. 지완 말로는 바닥 반사다. 헬기가 바닥 반사를 우리로 읽었다.”

0424에 해면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선체 밖 멀리에서 쇠통이 물에 떨어졌다. 한 발이었다. 그다음 0431에 한 발이 더 떨어졌다. 소리가 가까웠다. 민석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손이 더 잘 들렸다. 쇠판은 조용했고 손바닥 밑에서 웅웅거렸다. 그것만이 그의 일이었다.

0434에 폭발이 왔다.

가까웠다. 500미터쯤이었다. 배가 옆으로 한 번 밀렸고, 기관실 전등이 한 번 깜빡였고, 환풍기가 한 박자 쉬었다가 돌았다. 관 속의 물이 놀라 뛰었다. 민석의 손바닥 밑에서 쇠판이 튀어 올랐다가 시트에 내리꽂혔다.

딱.

그 소리는 크지 않았다. 폭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기관실의 모두가 그 소리를 따로 들었다. 쇠가 쇠를 친 소리였다. 민석의 오른손이 핸들에서 밀려났고, 왼손이 반 박자 늦게 그것을 따라가 다시 눌렀다. 소리는 한 번뿐이었다.

백 소령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송수화기가 어깨에서 떨어져 줄에 매달려 흔들렸다. 그는 그것을 받아 귀에 대고 한참 들었다. 얼굴이 굳었다.

“헬기가 선회한다. 우리 쪽으로 돈다.”

민석의 목이 말랐다. 입을 열 수 없었다. 열면 숨이 소리가 됐다. 그의 손바닥 밑에서 쇠판이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부장이 기만기를 쓴다고 한다.”

백 소령이 입술로 말했다. 이번에는 소리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날까 봐 입술만 움직이는 것이었다. 0436에 기관실 벽 너머로 발사통이 철컥 한 번 울렸다. 사출관에서 통 하나가 물로 나갔다. 기만기가 이 배의 소리를 흉내 내며 서쪽으로 멀어졌다. 민석의 손바닥으로 그 소리가 올라왔다. 이 배의 소리를 이 배가 낸 것이 아니었다.

헬기의 로터 소리가 기관실 벽을 통해서도 들릴 만큼 가까웠다가, 방향을 틀었다. 0441에 세 번째 쇳덩이가 물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서쪽이었다. 0442에 폭발이 왔다. 멀었다. 배가 흔들리지 않았다. 기관실 전등이 깜빡이지 않았다.

백 소령이 의자에 도로 앉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기만기가 하나 나갔다. 셋 남았다.”

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은 그대로였다. 딱 소리가 난 순간 놓쳤던 반 박자만큼 손바닥이 쇠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닿은 자리가 화끈거렸다.

*

0500, 베이징. 중앙군사위원회의 야간 상황실에서 당직 배석자가 종이 한 장을 들고 탁자로 걸어갔다.

탁자 상석은 비어 있었다. 낮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배석자는 빈 의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종이를 탁자 한가운데에 놓았다. 종이 맨 위에 제3제대라는 이름이 있었다. 닝보 항 적재 완료. 수송선 셋, 징발선 둘. 탄약과 연료 3주분. 이상 없음.

그 아래에 서명할 칸이 하나 있었다. 배석자는 서명하지 않았다. 서명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낮에 올 사람의 자리에 놓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힐 때까지 방에서 소리를 낸 것은 벽시계뿐이었다.

*

0540에 왼손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저림이 끝나고 감각이 사라졌다. 민석은 눈을 뜨고 손이 핸들 위에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손등의 핏줄이 푸르게 솟아 있었고, 손톱 밑이 하얬다. 쇠판은 조용했다. 손이 어떻게 누르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누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면 손을 펴지 못해 퇴근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쥔 채로 졸았다.

0600에 백 소령이 물었다. 민석은 “예”라고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는데 백 소령이 알아봤다. 백 소령은 의자에서 일어나 민석 곁으로 왔다.

“한 시간 남았다.”

민석은 눈으로 끄덕였다.

“교대 넣는다.”

민석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이었다. 저었다기보다 턱을 조금 옆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백 소령은 한참 민석의 옆얼굴을 봤다. 땀이 턱 끝에 맺혀 한 방울 떨어졌고, 떨어진 자리에서 쇠에 닿아 아주 작게 치직 하는 소리가 났다. 기관실의 모두가 그 소리에 얼어붙었다가 풀렸다.

“그럼 마지막 한 시간은 내가 있는다. 여기 서서 본다.”

백 소령은 민석의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 있는 것이 일이었다.

0700에 백 소령이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수색 구역이 서쪽으로 넘어갔다. 이제 소리 나도 된다. 놓아.”

민석은 놓지 못했다. 손이 놓이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놓았는데 손가락이 핸들을 쥔 모양 그대로 굳어 있었다. 손을 펴라고 팔에 명령하자 어깨가 먼저 떨렸다. 이마에서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갔다. 눈이 따가웠고 닦을 손이 없었다.

“안 펴지나.”

백 소령이 물었다. 민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를 악물 때 이가 부딪쳐 소리가 났다. 기관실에서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백 소령 하나뿐이었다.

백 소령은 대답 없이 오른손을 들었다. 기름이 손톱 밑에 까맣게 낀 손이었다. 그는 그 손을 민석의 손등 위에 얹었다. 가만히 얹기만 했다. 그 손에 서서히 체중이 실렸다. 민석의 손등에 백 소령의 손바닥 열이 닿았다. 따뜻했다. 민석은 그 손이 자기 손을 눌러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 밑의 쇠를 눌러 주는 것을 알았다.

“빼.”

백 소령이 말했다. 민석은 자기 손을 빼려 했다. 굳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백 소령의 손 밑에서 민석의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새끼손가락이 먼저, 약지가 그다음이었다. 손가락 하나가 풀릴 때마다 그 자리에 백 소령의 손바닥이 내려왔다. 쇠판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엄지가 풀렸고, 민석은 손을 핸들 밑에서 빼냈다.

핸들은 이제 백 소령의 손바닥 밑에 있었다.

민석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왔다. 손가락이 갈고리 모양으로 굳어 있었고, 펴려고 하자 아팠다. 아픈 것이 반가웠다. 백 소령이 한 손으로 핸들을 누른 채 다른 손으로 공구함을 가리켰다.

“거기 고무 망치 있다. 내가 소리 내서 붙이는 동안 자네는 위의 소리만 들어.”

*

0745에 민석은 기관실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은 오 하사가 가져온 얼음 수건 속에 들어 있었다. 수건 사이로 얼음이 녹으며 물이 팔목을 타고 흘렀다. 뜨거웠다가 나중에는 가려웠다.

백 소령은 0720부터 고무 망치로 쇠판을 쳤다. 세 번이었다. 세 번째 소리가 났을 때 쇠판이 시트에 붙었다. 기관실의 모두가 그 소리를 기다려 숨을 참고 있었는데, 소리가 난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헬기는 서쪽에 있었다. 소리는 쇠에서 선체로, 선체에서 물로 나갔고, 먼 데서 누가 들었더라도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백 소령은 고무 망치를 공구함에 도로 넣고 핸들에서 손을 뗐다. 밸브는 닫혀 있었다. 이제 물은 새지 않았다.

그가 민석 앞으로 와서 쪼그려 앉았다.

“전지 이틀이다. 물이 새던 몫은 안 줄어.”

“압니다.”

“다음에는 시트부터 갈 생각을 해라. 예비 시트가 없으면 예비를 만들 생각을.”

“예.”

“그리고.”

백 소령은 주머니에서 박하사탕 한 알을 꺼내 민석의 수건 위에 놓았다. 수건에 놓인 사탕이 젖기 전에 민석은 입을 벌렸다. 백 소령이 포장을 벗겨 입에 넣어 주었다. 사탕이 이에 부딪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이 배에서 낸 사람은 오늘 민석 하나였다.

0930에 기관실 벽의 스피커가 켜졌다. 발령소에서 흘러나온 지완의 목소리였다. 낮았고, 평소보다 느렸다.

“위에서 큰 소리가 납니다. 폭발은 아닙니다. 쇳덩이가 물에 떨어집니다. 하나.”

백 소령이 고개를 들었다. 민석은 수건 속에서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멉니다. 동쪽입니다. 비행기 소리 같습니다.”

기관실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민석의 손 밑에서 얼음 한 조각이 수건 속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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