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5,345자) · 강윤재 · 8월 14일(토)
320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14일 0100, 신채호함은 해협 남쪽 입구의 골 위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날 오후부터 머리 위가 시끄러웠다. 호위함 둘과 헬기 셋이 해협 남쪽 입구를 칸칸이 나눠 뒤지고 있었다. 사흘 전 무인기가 군수지원함을 찍은 자리에서 멀지 않았다. 저쪽은 그 보급선이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어제 하루 동안 신채호함은 두 번 청음기를 피했고, 두 번 다 속력을 올려야 했다. 속력을 올리면 전지가 줄었다. 어젯밤 백 소령이 올려 보낸 잔량은 사흘이었다. 엿새가 이틀 만에 사흘이 되어 있었다.
위에서 숨을 곳이 없으면 아래로 가야 했다. 해협 남쪽 입구는 바닥이 한 번 꺼지는 자리였다. 얕은 대륙붕이 끝나고 골이 시작됐다. 골 안쪽은 깊고 차가웠고, 위에서 오는 소리가 층에 한 번, 골 벽에 한 번 꺾였다.
“심도 280.”
조타장이 복창했다. 배가 앞으로 기울었다. 250을 지날 때 선체가 처음으로 울었다. 쇠가 눌리는 낮은 소리가 발령소 벽을 따라 앞에서 뒤로 번졌다. 270에서 한 번 더 울었다. 발령소 사람들은 그 소리를 알았다. 알아서 더 오래 들렸다.
“300.”
300에서 배를 한 번 세웠다. 선체의 소리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천장 배관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바깥 바다가 차가워서 배관 겉에 습기가 엉긴 것이었다. 물방울은 배관을 따라 한쪽으로 흘러 모였다가, 가장 낮은 이음매에서 한 방울씩 떨어졌다. 조타장의 어깨에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닦지 않았다.
“320.”
윤재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발령소 누구도 복창 말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320은 이 배가 두 번째로 내려가는 깊이였다. 첫 번째는 7월 초의 근접 폭발 때였고, 그때는 20분을 머물고 올라왔다. 이번에는 올라올 날짜가 없었다.
0132에 320이었다. 선체가 길게 한 번 울고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뒤에도 사람들은 한동안 벽을 봤다.
*
0400에 백 소령이 발령소로 올라왔다. 손에 기록지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이산화탄소가 빨리 올라. 흡수제를 교체 주기대로 갈면 여드레치 남았어. 전지는 사흘이고. 흡수제를 아끼면 공기가 나빠지고, 공기가 나빠지면 사람이 숨을 더 쉬어. 숨을 더 쉬면 산소를 더 먹어.”
“교체 주기를 늘리면?”
“한 번에 네 시간씩 늘리면 흡수제는 열흘이 넘게 가. 대신 사람들이 머리가 아파. 두통약이 오십 알 남았어. 쉰셋이면 한 알씩이다.”
윤재는 기록지를 받아 봤다. 백 소령의 숫자는 늘 그렇듯 각이 져 있었다. 맨 아래 칸이 비어 있었다. 결정을 적는 칸이었다. 윤재가 적었다. 교체 주기 네 시간 연장.
“두통약은 아껴 주십시오. 제일 나중까지.”
“아끼는 건 오 하사가 잘해.”
백 소령이 기록지를 도로 받아 들고 내려갔다. 그 뒤로 발령소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무거워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하품을 했고, 다른 누군가가 따라 했다. 하품은 옮았다. 이산화탄소가 먼저 하품으로 왔다.
*
0700에 머리 위의 로터 소리가 골 바로 위로 옮겨 왔다.
헬기는 어제부터 해협 남쪽 입구를 바둑판처럼 나눠 칸마다 청음기를 담갔다. 지완은 그 순서를 밤새 받아 적었고, 0640에 해도 위의 칸 하나를 연필로 짚으며 다음은 여기라고 했다. 연필 끝은 신채호함의 자리에서 반 칸 비켜 있었다. 반 칸은 800미터였다.
0704에 청음기가 물에 들어갔다. 줄이 풀리는 소리가 층을 뚫고 가늘게 내려왔다.
“깊이 담급니다. 층 아래까지 내렸습니다. 어제 것보다 줄이 깁니다.”
어제까지 저쪽은 층 위만 들었다. 층 아래로 청음기를 내리는 헬기는 처음이었다. 320은 층 아래에서도 가장 깊은 자리였고, 이 배가 덮고 있는 단 한 장의 담요였다. 그 담요 밑으로 누가 손을 밀어 넣고 있었다.
제하가 해도대 뒤에서 태블릿을 안은 채 입술만 움직였다.
“부장님, 무인정을 내보내면 저 소리를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윤재는 어뢰실 걸이에 매달린 원통을 떠올렸다. 사세보에서 실려 온 마지막 하나였고, 이 배에 남은 눈은 그것 하나였다.
“안 된다. 그건 선단 때 쓴다.”
“선단까지 살아 있어야 쓰지 않습니까?”
조타장이 숨을 들이켰다. 제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윤재는 대답 대신 지완을 봤다. 지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바닥의 생김새를 그리듯 천천히 움직였다.
“동쪽 200미터에 골 벽이 있습니다. 벽에 붙으면 저쪽 귀에는 벽하고 우리가 한 덩어리로 들립니다.”
“200미터면 얼마나 걸리나?”
“1노트로 6분입니다. 움직이는 동안 선체가 웁니다.”
“간다. 1노트, 동쪽.”
0706에 추진축이 돌았다. 배가 움직이는 것은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320의 물이 선체를 고쳐 쥐는 소리가 났다. 쇠가 길게 눌렸다가 풀리는 그 소리를 발령소의 모두가 천장을 보며 들었다. 0708에 첫 핑이 왔다. 층 아래로 내려온 핑은 날카로웠고, 선체를 한 번 쓸고 지나가며 해도대 위의 볼펜을 아주 조금 떨게 했다.
“우리를 봤나?”
“아직 반쪽입니다. 벽하고 우리가 따로 들립니다.”
0710에 두 번째 핑이 왔다. 지완이 손가락 셋을 폈다가 하나씩 접었다. 남은 거리였고, 손가락 하나가 50미터였다. 0712에 손가락이 모두 접히자 조타장이 추진을 끊었다. 배는 벽 앞에서 관성으로 한 뼘쯤 더 밀려가다 섰다. 세 번째 핑은 벽에 부딪혀 두 겹으로 돌아왔다. 지완이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한 덩어리입니다.”
0731에 청음기가 끌려 올라갔고, 로터 소리는 다음 칸으로 옮겨 갔다. 제하는 태블릿을 가슴에 붙인 채 어뢰실 쪽을 한 번 돌아봤다. 발령소 벽의 전지 잔량 표시는 그 6분 사이에 반 칸이 내려가 있었다.
*
0930에 최민석이 연료전지 배관을 따라 기어가고 있었다.
전지실 뒤쪽, 연료전지 모듈과 저장 용기 사이의 좁은 통로였다. 사람 하나가 옆으로 누워야 겨우 들어갔다. 민석은 오른손 장갑을 벗고 맨손바닥을 배관에 대고 있었다. 한 뼘씩 옮기며 쇠의 온도를 짚었다. 계기는 모듈의 압력이 조금씩 떨어진다고 했다. 어디서 떨어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계기는 숫자만 말했다.
“어디서 새는지 모르면 어떻게 찾나?”
통로 입구에 쪼그려 앉은 윤재가 물었다. 민석은 돌아보지 않았다.
“새는 자리는 차갑습니다. 새어 나가는 게 쇠를 식힙니다. 손바닥으로 짚으면 한 군데가 조금 더 찹니다.”
“얼마나 조금?”
“입김 한 번만큼요.”
민석은 손바닥을 한 뼘 더 옮겼다. 배관은 스무 개가 넘는 이음매를 지나 모듈로 들어갔다. 그는 이음매마다 손을 멈추고 한참 있다가 다음으로 갔다. 열네 번째 이음매에서 손이 멈춘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떼었다가 다시 댔다. 세 번을 그렇게 했다.
“여기입니다. 나사 하나가 반 바퀴 풀렸습니다. 조이면 됩니다. 조일 때 공구가 쇠에 닿으면 소리가 납니다.”
“고무 대고 조여.”
민석은 주머니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잘라 만든 고무 조각을 꺼냈다. 공구 머리에 고무를 감고, 이음매 나사에 댔다. 반 바퀴를 조이는 데 4분이 걸렸다. 한 번에 손톱만큼씩 돌렸다. 조이는 동안 그는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 조이고 나서 그는 다시 손바닥을 대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계기의 압력 숫자가 떨어지기를 멈췄다.
*
1400에 윤재는 사관실에서 표를 짰다.
산소 배분표였다. 백 소령의 숫자를 받아 사람 쉰셋을 칸에 나눴다. 깨어서 일하는 사람은 산소를 가장 많이 먹었다. 깨어서 가만히 있는 사람은 그 절반쯤이었다. 자는 사람은 그보다 덜 먹었다. 배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가만히 떠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기다리는 데 필요한 사람은 적었다.
그는 당직을 최소로 줄였다. 발령소 넷, 음탐 하나, 기관 둘, 의무 하나. 나머지 마흔다섯은 자는 칸에 들어갔다. 표 맨 아래에 윤재가 한 줄을 적었다. 비당직자는 취침. 이것은 명령임.
1430에 방송 대신 수병 둘이 구획을 돌며 표를 붙였다. 식당에서 누군가 그 표를 보고 웃었다.
“부장님이 자라고 명령하셨어.”
“명령이면 자야지.”
사람들이 하나둘 침상으로 갔다. 침상이 모자라는 배였다. 몇은 어뢰실 빈 거치대 옆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한 수병은 빈 거치대에 등을 대고 누워 눈을 감았다. 어뢰가 누워 있던 자리였다. 어뢰 담당 중사가 그것을 보고 뭐라고 하려다 입을 닫고, 자기 모포를 그 수병 발치에 던져 주었다.
1540에 윤재가 조리실 앞을 지나다가 멈췄다.
오 하사가 자고 있었다. 쌀 포대 두 개를 겹쳐 놓고 그 위에 앉은 채였다. 등은 조리실 벽에 기대 있었고, 무릎 위에 국자가 놓여 있었다. 손은 국자 자루를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근무 중에 자는 오 하사를 윤재는 처음 봤다. 여섯 주 동안 이 배의 누구도 본 적이 없을 것이었다. 오 하사는 표에서 자는 칸이 아니라 조리 당직 칸에 들어 있었다. 윤재가 그렇게 적었다.
오 하사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작게 시작했는데 금방 커졌다. 발령소 쪽에서 지완이 헤드폰을 벗고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이 들리는지 묻는 얼굴이었다. 윤재는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그리고 오 하사의 어깨를 아주 조금 밀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주었다. 코 고는 소리가 멎었다. 오 하사는 깨지 않았다. 윤재는 조리대 옆에 걸린 앞치마를 벗겨 오 하사의 무릎 위, 국자 위에 덮었다. 그리고 조리 당직 칸의 오 하사 이름 옆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
2300에 윤재는 발령소에서 혼자 벽의 숫자들을 보고 있었다.
이산화탄소 수치는 경고선 아래 한 칸이었다. 전지 잔량은 사흘에서 반 칸 내려와 있었다. 심도계는 320이었다. 머리 위의 소리는 멀었다. 지완 대신 음탐을 선 하사가 호위함 하나가 층 위를 서쪽으로 지나간다고 불렀다. 멀었다. 이 깊이까지는 핑이 오지 않았다.
2250에 남 중사가 두통약 통을 들고 발령소로 왔다. 그는 통을 해도대 위에 내려놓지 않고 손에 쥔 채로 물었다. 아끼라고 하셨는데, 당직 가운데 셋이 글자가 두 겹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윤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남 중사는 조타장과 음탐 당직과 전기 당직에게 한 알씩 내밀었다. 조타장은 손을 저으려다 말고 약을 받아 혀 밑에 넣었고, 물 없이 녹였다. 이 깊이에서는 물 삼키는 소리도 컸다. 통 안에는 마흔일곱 알이 남았고, 남 중사는 그 숫자를 뚜껑에 볼펜으로 적은 뒤 의무실로 돌아갔다.
2310에 기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민석이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데 끝이 조금 흔들렸다.
“부장님, 연료전지 냉각수 계통 밸브 하나가 안 닫힙니다. 시트가 상했습니다. 닫으면 쇠가 쇠를 치는 소리가 납니다.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납니다.”
“안 닫으면?”
“물이 샙니다. 조금씩입니다. 조금씩인데 멈추지 않습니다.”
윤재는 송수화기를 쥔 채로 천장을 봤다. 천장 배관 이음매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맺혀 떨어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