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5,163자) · 강윤재 · 8월 12일(목)

남는다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12일 0200, 우군 해역 끝자락에서 군수지원함의 검은 선체가 수면 위로 낮게 누워 있었다.

사흘 전 보낸 답신에 대한 합참의 답이 이 배였다. 전지가 모자라 못 간다면 전지를 채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보급관 문 대위가 무선으로 먼저 알렸다. 산소와 수소 열이틀치, 진해까지의 항로 서류, 그리고 봉투 하나. 탄약은 이번에도 없었다.

윤재는 함교탑 위에 올라가 있었다. 여섯 주 만에 처음 맡는 바깥 공기였다. 짠 냄새가 코 안쪽을 찌르듯 들어왔고, 그 뒤에 군수지원함의 배기가스 냄새가 섞였다. 바람이 차지 않았다. 8월이었다. 배 안에서는 계절을 잊고 있었다. 수면에 달빛이 부서져 흩어졌고, 두 배 사이에 걸린 보급 호스가 파도를 따라 천천히 출렁였다.

0215에 산소가 먼저 넘어오기 시작했다. 발령소 벽의 잔량 표시가 한 칸씩 올라갔다. 백 소령이 기관실에서 그 숫자를 불러 올렸다. 하나, 둘, 셋. 부르는 사이가 일정했다. 넷에서 다섯으로 넘어갈 때만 조금 길었는데, 그때 수소 호스가 걸려 이음매를 다시 조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문 대위가 고무보트로 건너와 봉투를 윤재 손에 쥐여 주었다. 그는 7월에 사세보 부두에서 크레인 밑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때보다 살이 빠져 있었다.

“항로 서류는 대한해협 경유입니다. 8월 20일 진해 입항. 그리고 이건 정보본부 요약입니다. 같이 넣으라고 해서요.”

“어뢰는?”

“서류가 아직입니다. 부두 반장이 상자를 방수포로 덮어 두고 매일 들여다봅니다. 그 사람이 들여다본다고 서류가 오는 건 아닌데요.”

문 대위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웃었다. 웃는 얼굴이 금방 굳었다. 함교탑 난간을 쥔 그의 손가락이 하얬다.

*

0235에 지완이 함내 전화로 올라왔다.

“위에 뭔가 있습니다. 프로펠러 하나, 작습니다. 높지 않습니다. 사람 탄 비행기 소리가 아닙니다.”

윤재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는 달과 구름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구름 가장자리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한 번 깜빡였다. 항법등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아래를 찍을 때 나는 빛이었다.

“무인기다. 보급 중지. 호스 끊어.”

군수지원함 갑판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호스 연결부의 잠금쇠를 푸는 쇳소리가 났다. 산소 호스는 이미 풀렸고, 수소 호스가 아직 걸려 있었다. 수병 둘이 호스 끝을 붙들고 잠금쇠와 씨름했다. 잠금쇠 하나가 끝까지 안 풀렸다. 한 수병이 몸을 던지듯 체중을 실었고, 쇠가 풀리며 그가 갑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문 대위는 이미 고무보트에 내려가 있었다. 그는 보트에서 한 번 뒤돌아 윤재를 봤다. 무엇을 말하려던 얼굴이었는데 말하지 않았다.

윤재는 마지막으로 함교탑에서 내려왔다. 사다리를 잡은 손바닥에 바닷물이 미끄러웠다. 해치를 닫기 전에 한 번 더 하늘을 봤다. 구름 가장자리의 불빛은 이제 깜빡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고 있었다. 그는 해치 손잡이를 두 손으로 돌려 잠갔다. 쇠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그 소리가 여섯 주 동안 이 배에서 낸 소리 가운데 가장 컸다.

0241에 해치가 닫혔다. 0243에 신채호함은 잠항을 시작했다. 군수지원함은 반대 방향으로 기관을 올렸다. 무인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두 배 사이를 한 번 오가다가 군수지원함 쪽을 따라갔다. 큰 쪽을 따라간 것이었다.

0320에 헬기 둘이 왔다. 무인기가 부른 것이었다. 2시간 동안 두 헬기가 번갈아 청음기를 담갔다. 신채호함은 250에서 섰다가, 청음기가 옮겨 갈 때마다 그 반대쪽으로 2노트를 걸었다. 0510에 로터 소리가 북쪽으로 멀어졌다. 한 번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헬기는 군수지원함이 떠 있던 자리를 뒤졌다. 조타장은 2시간 동안 2노트를 걸었다 끊었다 하기를 열한 번 했다. 걸 때마다 손잡이를 반 칸만 밀었고, 끊을 때마다 손바닥으로 손잡이 끝을 덮어 쥐었다. 마지막에는 손잡이 가죽이 그의 땀으로 검게 젖어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

0600에 윤재는 사관실에서 봉투를 열었다.

항로 서류는 두 장이었다. 대한해협을 지나는 침로와 부상 가능 지점이 표시된 해도 사본, 그리고 진해 입항 절차. 해도 사본에는 부상 가능 지점 여섯이 붉은 볼펜으로 동그랗게 표시돼 있었다. 동그라미가 반듯했다. 컴퍼스를 대고 그린 것이었다. 사본 귀퉁이 확인란에 작전처 상황장교의 서명이 있었다. 차민경. 윤재는 모르는 이름이었다. 여섯 개의 동그라미를 컴퍼스로 그리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다. 정보본부 요약은 한 장이었다. 윗부분은 여느 요약과 같았다. 아랫부분에 따로 칸을 두고 적은 것이 있었다.

제3제대. 8월 27일 전후 저장성 앞바다 출항 추정. 구성 — 대형 수송선 셋, 징발 민간 화물선 둘. 호위 052D 넷. 민간선 선명 신양 7호, 푸캉 3호. 선원 각 20명 내외.

윤재는 그 칸을 오래 봤다. 여섯 주 동안 이 배가 끊은 배들은 이름이 없었다. 방위와 톤수와 흘수만 있었다. 이름이 있는 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선원 수가 적혀 있는 배도 처음이었다. 6월 초 첫 배를 가라앉히고 나서 윤재는 함장에게 몇 명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번에는 쏘기도 전에 알았다.

그는 요약지를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폈다. 접은 자리에 흰 금이 났다.

0800에 그는 기관실로 내려갔다. 방송하기 전에 한 사람에게는 먼저 말해야 했다. 백 소령은 전지 함체 옆에서 최민석과 함께 온도 기록지를 넘기고 있었다. 윤재가 말하기도 전에 백 소령이 기록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방송하려고?”

“예.”

“해. 나는 여기서 들을게. 여기 스피커가 제일 작아.”

최민석이 기록지를 든 채로 둘을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록지의 다음 장을 넘겼다. 넘기는 손끝이 조금 빨랐다.

*

0900에 방송을 했다.

여섯 주 동안 이 배에서 방송을 한 사람은 함장뿐이었다. 윤재는 송화기를 쥐기 전에 한 번 헛기침을 했다. 헛기침이 스피커로 나갔다. 식당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났다가 멎었다. 윤재는 볼륨을 가장 낮게 줄이고 말했다.

“부장이다. 8월 3일 합참이 동해로 빠지라고 명령했다. 오늘 새벽 받은 보급은 그 명령을 이행하라고 보낸 것이다. 우리는 가지 않는다. 이 해역에 남는다. 어뢰는 없다. 어뢰 없이 듣고, 들은 것을 보낸다. 8월 말에 이 해역으로 큰 선단 하나가 온다. 그 선단이 오는 것을 듣고 보낼 배는 이 해협에 우리밖에 없다. 이 결정은 부장이 한다. 명령을 어긴 책임도 부장이 진다. 이상.”

송화기를 내려놓았다. 발령소는 조용했다. 조타장이 손잡이에서 한 손을 떼어 무릎 위에 올렸다. 지완은 헤드폰을 쓴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지완이 무엇을 듣고 있는지 윤재는 알지 못했다.

0910에 발령소 뒤쪽 해치가 열렸다. 백 소령이었다.

“부장, 이견 남긴다. 일지에 적어.”

백 소령은 해도대 앞에 섰다. 기관복 가슴 주머니에 볼펜 세 자루가 꽂혀 있었다. 그는 그 가운데 하나를 꺼내 윤재에게 내밀었다. 자기 볼펜으로 적으라는 것이었다.

윤재는 그 볼펜을 받아 항해일지를 폈다. 백 소령이 불렀다. 윤재가 받아 적었다. 0915 기관장 백 소령 이견. 합참 명령 이행 건의. 사유 — 어뢰 전무, 전지 부족, 승조원 안전. 부장 불수용.

“원문대로 적었나?”

“원문대로 적었습니다.”

백 소령은 일지를 돌려 자기 눈으로 한 줄씩 읽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칸이 없는 자리에 적힌 아홉 번째 줄이었다. 이견을 적는 칸은 일지에 없었다.

그는 볼펜을 돌려받지 않고 윤재 손에 둔 채로 돌아섰다. 해치 앞에서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전지는 내가 살린다.”

그는 해치를 넘어갔다. 해치 문을 끝까지 손으로 잡고 닫았다.

0930에 구획마다 소식이 돌아왔다. 누가 보낸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발령소 앞을 지나며 한 마디씩 흘리고 갔다. 조리실에서는 오 하사가 방송을 듣고 나서 쌀을 씻다 말고 쌀 포대의 남은 양을 손바닥으로 쟀다고 했다. 어뢰실의 중사는 빈 거치대 옆에 앉아 방송을 들었고, 끝나자 풀려 있던 고정 띠를 처음으로 가지런히 감았다고 했다. 비워 두던 자리를 이제 정리한 것이었다. 전지실에서는 최민석이 방송 내내 함체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고 했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떼지 않았다고 했다.

*

1100에 윤재는 발령소에서 요약지의 그 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읽을 까닭은 없었다. 발령소 사람들은 선단이 온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런데 윤재는 그 칸을 혼자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수송선 셋. 징발 민간 화물선 둘. 그는 거기서 한 번 멈췄다가 이름을 읽었다.

“신양 7호. 푸캉 3호. 선원 각 스물 안팎.”

조타장이 입속으로 그 이름을 따라 했다. 중국어 발음이 서툴렀다. 지완은 헤드폰 한쪽을 들어 올렸다. 제하는 태블릿 모서리를 문지르던 손가락을 멈췄다. 누구도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한참 뒤 제하가 태블릿을 안은 채로 작게 말했다.

“푸캉은 넉넉하고 건강하라는 뜻일 겁니다. 배 이름은 다 그런 걸로 짓습니다. 무사히 다녀오라고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타장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방송 앞에서 윤재가 한 것과 같은 헛기침이었다. 윤재도 몰랐다. 민간 화물선이었다. 짐을 싣는 사람들이 탔다. 이 배가 그 선단을 듣고 보내면, 누군가 그 배들을 쏠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 배는 쏘지 않았다. 쏘지 않는 배가 들은 것으로 누가 무엇을 하는지는 이 배가 정하지 않았다.

그는 요약지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는 전문 셋과 사탕 두 알이 이미 들어 있었다.

*

1400에 백 소령이 기관실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평소처럼 낮았다.

“부장, 잔량 다시 셌다. 새벽에 끊겼을 때 산소는 다 넘어왔는데 수소가 반만 들어왔어. 호스가 먼저 풀렸다.”

“얼마입니까?”

“열이틀이 아니라 엿새.”

윤재는 대답하기 전에 해도를 봤다. 제3제대가 오는 날은 8월 27일 전후였다. 오늘은 12일이었다. 엿새로는 그날에 닿지 않았다. 닿지 않는다는 것을 해도 위에서 손가락으로 세 번 세어 확인했다. 세 번 다 같았다. 선단이 오기 아흐레 전에 이 배의 전지가 먼저 바닥났다.

“알겠습니다.”

“아직 안 끝났어. 엿새는 지금처럼 쓰면 엿새야. 덜 쓰면 늘어. 늘리는 건 내 일이고.”

전화가 끊겼다. 윤재는 송수화기를 걸고 발령소 벽의 잔량 표시를 봤다. 새벽에 조타장이 손가락으로 세다가 멈춘 칸이었다. 여섯 번째 칸 아래에 누군가 유성펜으로 짧은 가로줄을 하나 그어 두었다.

2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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