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5,110자) · 강윤재 · 8월 8~9일

태평양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8일 1400, 워싱턴. 백악관 지하 상황실의 벽 화면 셋 가운데 가운데 것에 태평양이 떠 있었다.

일요일 오후였다.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 넥타이를 맨 사람은 절반이었다. 국가안보보좌관이 상석에 앉았고, 그 오른쪽에 합참의장이, 왼쪽에 국무부 차관 하나가 앉았다. 오른쪽 화면에는 하와이의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나와 있었다. 그쪽은 아침이었다. 사령관의 등 뒤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어 얼굴 반쪽이 하얗게 날아가 있었다.

화면 위 태평양에는 푸른 점 둘이 찍혀 있었다. 항공모함 전단 둘이었다. 둘 다 괌 동쪽에 있었다. 대만 해협까지는 비행기로 반나절이었다.

“해협에 들어가면 한 척은 잃는다고 봅니다.”

합참의장이 말했다. 그는 앞에 놓인 요약 한 장을 뒤집어 놓고 말했다. 숫자를 보지 않아도 외우고 있었다.

“유럽에서 한 척을 빼 달라는 요청이 사흘째 옵니다. 폴란드는 회랑이 끊기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두 전선에 항모를 다 넣을 수 없습니다. 셋은 더더욱 못 합니다. 태평양에 있는 두 척은 태평양에 두되, 해협 안으로는 안 넣는 겁니다.”

“그건 해협을 버리는 겁니다.”

화면 속 사령관이 말했다. 소리가 반 박자 늦게 들어왔다.

“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안 넣을 뿐입니다. 해협은 사람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무인 수상정과 무인 잠수정으로 해협을 덮는 계획이 있습니다. 대만에 넘기면 대만이 몹니다. 우리 배가 들어가지 않아도, 해협이 저쪽에게 지옥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대만이 몬 무인정이 저쪽 수송선을 치면, 저쪽은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 셉니다.”

국무부 차관이 말했다. 보좌관은 세 사람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손목시계를 봤다. 그리고 결론을 말했다. 항모 전단 해협 진입 불가. 무인 체계 대만 이전 승인, 인도 시기 추후. 결정은 벽 쪽에 선 보좌관실 직원이 받아 적었다. 직원은 받아 적은 종이 맨 위에 날짜와 시각을 적고, 그 아래 참석자 칸에 직책만 적었다. 이름을 적는 칸은 없었다. 사령관이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의 얼굴 반쪽을 비추던 햇빛이 구름에 가려 잠깐 어두워졌다.

*

8월 9일 0900, 베이징.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의 벽시계 아래에서 계획서가 한 장 넘어갔다.

탁자 상석에는 뒷모습만 있었다. 등받이 높은 의자 위로 흰 머리의 뒤통수가 조금 보였고, 그 사람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말은 배석자가 옮겼다. 배석자가 읽은 계획서의 제목은 짧았다. 제3제대 편성 및 출항.

대형 수송선 셋. 징발 민간 화물선 둘. 호위 052D 넷. 탄약과 연료 3주분. 출항 8월 27일. 도착 예정 8월 29일. 호위 선두 칸에는 이름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해협 추적 전대, 리 첸 중령. 그 이름 옆에 누군가 연필로 작게 보고 3이라고 적었다가 지운 자국이 있었다. 배석자가 날짜를 읽을 때 탁자 한쪽의 해군 쪽 참석자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호위 넷 가운데 한 척이 지난달 대파돼 끌려와 있었다.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배석자가 그를 한 번 봤고, 그는 몸을 도로 세웠다.

“9월 1일까지 교두보 확정. 이 선단이 닿으면 확정입니다.”

배석자의 말이 끝나자 뒷모습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끄덕임은 짧았다. 배석자가 계획서에 날짜를 적어 넣었다. 8월 27일. 글씨가 인주처럼 번졌다.

*

같은 날 0300, 신채호함은 심도 20에서 18분 동안 떠 있었다.

받은 것은 셋이었다. 여느 때의 정세 요약, 합참 전문 하나, 그리고 함내 회람이라는 딱지가 붙은 긴 문서 하나. 합참 전문은 두 줄이었다. 이동 개시 보고 없음. 사유 포함 즉시 보고할 것. 요약의 마지막 줄은 이번에도 이 해역에 우군 잠수함 없음이었다. 그 위에 한 줄이 더 붙어 있었다. 미 항모 전단 괌 동쪽 유지. 사령부 판단은 D-8이었다.

윤재는 합참 전문을 해도대 위에 올려놓았다. 회람은 접어 서랍에 넣었다. 두꺼웠다. 읽을 시간이 없었다.

조타장이 요약의 마지막 줄을 어깨 너머로 읽고 코로 숨을 내쉬었다.

“이 해역 우군 없음. 이제 이건 날씨 예보입니다. 오늘도 맑음, 오늘도 우군 없음.”

발령소의 누군가가 웃음을 삼켰다. 윤재는 웃지 않았지만 조타장을 말리지도 않았다. 여섯 주 동안 같은 줄을 받았다. 처음 받았을 때 함장은 그 줄을 방송으로 읽었고, 발령소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조타장이 그 줄로 농담을 했다. 윤재는 그게 나빠진 것인지 나아진 것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다만 조타장이 농담을 할 때 손잡이를 쥔 손에서 힘이 조금 빠진다는 것은 알았다.

*

1100에 바다가 딸깍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였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지완이 볼륨을 낮췄다 올렸다 하며 한참 세다가 포기했다.

“무인 수상정입니다. 스물이 넘습니다. 작은 겁니다. 각자 아래로 짧게 쏩니다. 능동입니다. 약합니다. 바닥까지는 안 닿고 층까지만 닿습니다.”

“어떻게 움직이나?”

“줄을 맞춰서 옵니다. 빗자루로 쓸듯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옵니다.”

윤재는 추진을 끊었다. 배가 240에서 섰다. 층 바로 아래였다. 딸깍 소리가 층에 부딪혀 꺾였다. 스무 개의 작은 핑이 머리 위에서 제각각의 박자로 울렸고, 그 박자가 겹쳐 비 오는 날 양철 지붕 같았다. 발령소 사람들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에는 배관밖에 없었다. 그래도 올려다봤다. 오 하사는 조리실에서 끓이던 국 냄비의 불을 끄고, 뚜껑이 떨지 않게 행주를 뚜껑과 냄비 사이에 끼워 두었다. 그러고는 국자를 손에 든 채 조리대 옆에 서서, 발령소 사람들처럼 천장을 올려다봤다.

1210에 줄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1224에 하나가 섰다. 신채호함 바로 위였다. 딸깍 소리가 한 자리에서 계속됐다. 층에 부딪혀 힘이 빠진 소리가 선체에 아주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만큼이었다. 저쪽 화면에도 그만큼 흐리게 찍힐 것이었다.

“고장입니까, 들은 겁니까?”

제하가 태블릿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무인정은 그의 영역이었다. 윤재가 그를 봤다.

“자네 생각은?”

“고장이면 떠내려갑니다. 저건 제자리에서 기관을 조금씩 돌려 버팁니다. 버티라는 명령을 받은 겁니다. 누가 저걸 보고 있다가, 뭔가 흐린 게 찍혀서 세워 둔 겁니다.”

40분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배는 서 있으면 천천히 가라앉았고, 가라앉으면 층에서 멀어졌다. 조타장이 그것을 알고 수평타를 손대지 않았다. 조금씩 가라앉게 두었다. 250, 255. 딸깍 소리가 한 겹 더 멀어졌다. 1304에 머리 위의 무인정이 기관을 올려 줄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 확인할 것이 없어진 것이었다. 1340에 딸깍 소리가 모두 서쪽 끝으로 사라졌다.

지완이 헤드폰을 벗고 한동안 귓바퀴를 손가락으로 주물렀다.

“사람이 탄 배는 저렇게 오래 안 섭니다. 지루해서라도 한 번은 움직입니다. 저건 안 지루해합니다.”

윤재는 그 말을 해도 여백에 적어 두었다. 사람 없는 배는 지루해하지 않는다. 이 해협에 그런 배가 늘고 있었다.

제하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화면을 켜 둔 적이 없었는데 그는 태블릿 모서리를 하도 문질러서 그 자리가 반들반들했다.

*

1800에 윤재는 사관실에서 답신을 썼다.

백 소령의 종이가 옆에 있었다. 8월 3일에 그가 해도대 위에 펴 놓았던 그 종이였다. 8.5 / 8.5. 그 아래에 백 소령이 오늘 아침 한 줄을 더 적어 두었다. 전지 잔여 4일. 진해까지 물속으로 8.5일. 그 숫자를 두 번 동그라미 치지 않았다. 한 번도 치지 않았다. 적어만 두었다.

윤재는 양식에 적었다. 사유. 전지 부족으로 이동 불가.

적은 문장은 사실이었다. 이 배는 지금 물속으로는 진해에 닿지 못했다. 반은 가다가 떠야 했다. 뜨면 대한해협 앞의 초계기가 봤다. 그러나 수면으로 가면 닿을 수 있었다. 보급을 청하면 닿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8월 3일에 떠났으면 닿았다. 이 배가 지금 닿지 못하는 까닭은 전지가 아니라 엿새 전의 부장이었다. 그 부분은 문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관실 문이 열렸다. 백 소령이었다. 커피를 타러 온 것이었다. 그는 윤재의 손에 들린 양식을 봤다. 윤재는 감추지 않았다. 백 소령은 커피를 타면서 양식의 한 줄을 읽었다.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줄이었다.

“사실이네.”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휘젓지 않고, 들고 나갔다. 나가다가 문턱에서 멈췄다.

“내 숫자로 쓴 거지.”

“예.”

“그럼 틀리진 않았겠네.”

문이 닫혔다. 이번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양식을 통신 담당에게 넘기지 않고 한동안 들고 있었다. 그러다 항해일지를 폈다. 칸이 없는 자리에 적었다.

1810 합참 답신 — 전지 부족으로 이동 불가. 사실이나 전부가 아님.

여덟 번째였다. 이 일지는 언젠가 누군가 읽을 것이었다. 돌아가면 읽을 것이고, 돌아가지 못하면 더 꼼꼼히 읽을 것이었다. 그 사람이 이 한 줄을 읽고 부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적을 수 있게, 윤재는 그 줄을 자기 손으로 먼저 적었다. 적고 나서 볼펜 뚜껑을 닫았다. 닫는 소리가 작았다.

*

2300에 부상해서 답신을 보냈다. 송신은 40초였다. 40초 동안 전지 잔량 표시가 한 칸 내려갔다. 보내는 데 쓴 전기였고, 보낸 문장이 말하는 바로 그 전지였다. 조타장은 초를 세다가 40에서 멈추고 윤재를 봤다. 전자 지원 화면은 비어 있었다.

2330에 윤재는 서랍에서 회람을 꺼냈다. 어느 연구소가 돌린 워게임의 요약이라고 첫 장에 적혀 있었다. 대만 상륙을 스물네 번 돌렸다고 했다. 결론은 둘째 장에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상륙은 실패한다. 다만 방어하는 쪽도 대가를 치른다. 미국은 항공모함 둘을 잃는 것으로 잡는다. 전투기는 수백 대를 잃는 것으로 잡는다.

윤재는 셋째 장을 폈다. 손실표였다. 가로로 나라가 적혀 있었다. 미국, 일본, 대만, 중국. 세로로 함정의 종류가 적혀 있었다. 항모, 구축함, 잠수함, 수송선. 칸마다 숫자가 빼곡했다. 수송선 칸의 중국 쪽 숫자가 가장 컸다. 누가 그 수송선을 끊는지는 표에 없었다. 표는 누가 무엇을 잃는지만 셌다. 무엇을 끊었는지는 세지 않았다. 잠수함 칸에는 미국과 일본과 대만과 중국이 있었다.

한국은 표의 어느 줄에도 없었다.

윤재는 손실표를 접지 않고 해도대 위에 펴 둔 채로 그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가로줄 넷, 세로줄 넷의 칸 사이로, 누군가 자로 대고 그은 선이 손바닥 밑에서 조금 볼록하게 만져졌다.

2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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