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5,135자) · 배소현 · 8월 6일(금)

침몰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6일 0900, 서울 국방부 기자실. 배소현은 2시간 전에 넘긴 기사의 반응을 보지 않으려고 노트북 화면을 반쯤 덮어 두고 있었다.

폴란드 기사였다. 철수 명령을 어기고 전선에 남은 한국인 정비관 하나가 여권법 위반으로 수사 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이번에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아도 폴란드 쪽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 것이었다. 기사를 넘기고 나서 그녀는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그다음 한 시간 동안 합참 정례 브리핑 자료를 읽었다. 자료 둘째 장에 한 줄이 있었다. 해협 상륙군 해상 보급 추정 잔량 9일. 지난달 검열관이 밀어 놓았던 종이에서는 16일이었다. 소현은 그 숫자에 밑줄을 그으려다 그만두었다. 숫자에 밑줄을 그으면 그 숫자를 쓰고 싶어졌다.

0940에 기자실 대표 전화가 그녀 자리로 넘어왔다.

“서울통신 배소현 기자님이세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였다. 경상도 억양이 조금 섞여 있었다.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다. 떨리지 않게 하려고 한 마디씩 끊어 말하고 있었다.

“지난달에 대만 쪽 배 없어진 기사 쓰신 분 맞지요? 제가 그 기사를 오려 놨어요. 우리 딸이 그런 기사를 챙겨 보라 캐서.”

“네, 제가 썼습니다. 어떤 일로…”

“문자가 왔어요. 아침에. 우리 딸 배가 가라앉았다고.”

소현은 볼펜을 쥐었다. 여자는 문자를 읽어 주었다.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화면을 보며 읽는지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해군 당국은 귀하의 가족이 복무하는 신채호함이 작전 중 침몰되었음을 통보합니다. 유가족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볼펜이 멈췄다. 소현은 수첩에 신채 까지 적고 더 적지 못했다. 그 이름을 그녀는 알았다. 5월 이후 한 번도 오지 않은 번호의 사람이 마지막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식당에서 물수건을 접으며 한 번 말한 이름이었다. 배 이름은 말해도 되는 거라고 했다. 어디 있는지는 말하면 안 되고.

그녀에게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가족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기자님?”

“네, 듣고 있어요. 따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최지완이요. 하사예요. 소리 듣는 일 해요.”

소현은 그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신채 옆에 적었다. 두 이름이 한 줄에 나란히 놓였다.

*

1030에 소현은 문자를 캡처해 받아 통신사 보안팀의 후배에게 보냈다. 후배는 20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선배, 이거 해군 아니에요. 발신번호는 해군 대표번호처럼 보이는데 앞에 국제 접속 번호가 숨어 있어요. 해외 문자 대행 서버에서 한꺼번에 쏜 거예요. 그리고 문장이요. 우리 군은 통보합니다 이런 말 안 써요. 침몰되었음도 이상하고요. 유가족이라는 말을 확인도 전에 쓰는 데는 없어요. 번역기 돌린 문장을 사람이 한 번 다듬은 거예요.”

“누가 보냈는지는?”

“그건 몰라요. 근데 받은 사람들 번호가 한 명단에서 나온 것 같아요. 같은 초에 다 갔어요.”

같은 초였다. 소현은 전화를 끊고 가족 커뮤니티를 뒤졌다. 해군 가족들이 쓰는 비공개 게시판에 아침부터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도 받았어요. 저희 남편도요. 해군에 전화했는데 확인해 줄 수 없대요. 글쓴이는 서른을 넘었다. 오후 한 시에 진해 잠수함사령부 정문에서 모이자는 글이 있었다.

소현은 노트북을 덮고 1200 KTX를 끊었다.

기차는 절반쯤 비어 있었다. 대전을 지나면서 객실 앞 화면에 속보 자막이 흘렀다. 대만 해협에서 중국 구축함 한 척 대파, 중국 외교부 역외 국가 개입 주장. 소리는 꺼져 있었다. 맞은편 자리의 남자가 그 자막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창밖으로 논이 지나갔다. 벼가 한창 푸르렀고, 논둑마다 흰 비닐 조각이 새를 쫓느라 펄럭였다.

소현은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놓고 그 번호를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5월 24일 새벽이었다. 잘 다녀올게. 그녀가 보낸 답은 조심해였다. 그 뒤로 대화창 아래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적으려고 엄지를 올렸다가 내렸다. 물속에서는 받지 못했다. 받지 못할 곳으로 보내는 말은 보내는 사람만 읽었다. 그녀는 대화창을 닫고, 지완의 어머니가 보내 준 캡처를 다시 열어 문장을 한 글자씩 읽었다. 침몰되었음을. 그 되었음이 이상하다고 후배는 말했다. 이상한 것을 붙들고 있어야 나머지를 버틸 수 있었다.

*

1540, 진해. 잠수함사령부 정문 앞 보도에 사람이 스물쯤 모여 있었다.

한여름 오후였다. 아스팔트에서 열이 올라와 신발 밑창이 끈적했다. 정문 초소 옆 가로수 그늘에 사람들이 몰려 서 있었는데, 그늘이 좁아서 몇은 볕에 서 있었다. 젊은 아내가 아기를 안고 있었고,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가 있었고, 교복 입은 남자아이가 어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다들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었다. 누구도 화면을 켜지 않았다. 같은 문장이 거기 있었다.

해군 공보장교는 소령이었다. 엄 소령이라고 이름표에 적혀 있었다. 그는 정문 앞에 혼자 나와 있었다. 가족들의 질문에 같은 대답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부인도 확인도 못 드립니다. 해당 문자는 해군이 보낸 것이 아닙니다. 소현은 그가 한 가족에게 그 말을 하고 다음 가족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세 번 들었다.

그녀가 명함을 내밀자 엄 소령의 얼굴이 한 번 굳었다가 풀렸다. 그는 그녀를 초소 옆 그늘 끝으로 데려갔다.

“해군이 안 보냈다고 하셨죠. 그럼 이 문자는 가짜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가짜라고 하면 배가 안 가라앉았다는 말이 됩니다. 안 가라앉았다는 건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고요. 어디 있는지 물으시겠죠. 그 배는 서류상 그 바다에 없습니다.”

“가족에게라도요. 기사 말고. 저 사람들한테만.”

“가족에게 한 말은 한 시간이면 기사가 됩니다.”

엄 소령은 소현을 봤다. 비난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안한 얼굴이었다. 그는 초소 안에서 생수 한 병을 가져와 뚜껑을 따서 그녀에게 건넸다. 병 겉에 물방울이 맺혀 손바닥이 금방 젖었다. 초소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이었고, 가족들에게도 오후 내내 한 병씩 돌린 것이라고 초병이 나중에 말했다.

“기자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이 문자를 보낸 쪽이 바라는 게 그겁니다. 우리가 가짜라고 말해서 배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해 주는 거요. 이 문자는 가족을 겨눈 게 아니라 제 입을 겨눈 겁니다.”

소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맞았다. 지난달 검열관이 한 말과 같은 모양이었다. 이 한 줄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이번에는 한 줄을 쓰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지켰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볕 아래 서 있었다.

*

1700에 두 번째 문자가 왔다.

정문 앞 가족들의 휴대전화가 거의 같은 초에 울렸다. 이번에는 문장 아래에 주소 하나가 붙어 있었다. 신채호함 생존자 및 수습자 명단 확인.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가 그 주소를 누르려고 엄지를 올렸다. 소현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모르는 사람의 손목이었다. 손목이 뜨거웠고, 땀에 젖어 있었다.

“누르지 마세요. 누르면 이 전화에 든 게 다 넘어가요. 아드님 번호도요.”

아버지는 소현을 봤다가 화면을 봤다. 엄지가 화면 위에서 떨렸다. 그는 결국 누르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뒤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뒤집어 넣는 손이 오래 걸렸다.

소현은 정문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한 문장을 쳤다. 오늘 해군 가족들이 받은 침몰 문자는 해외에서 보낸 가짜다.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사실이었다. 이 문장이 나가면 저쪽은 확인을 얻었다. 가짜라는 것은 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배가 거기 있다는 것은 저쪽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문장을 지웠다. 지난달에는 해역을 지웠다. 이번에는 전부를 지웠다.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였다.

*

1830에 지완의 어머니가 왔다.

마산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쉰 후반쯤이었고, 앞치마를 벗지 않은 채였다. 손에 비닐봉지 하나를 쥐고 있었다. 봉지 안에 물기가 덜 마른 행주가 들어 있었다. 아침에 문자를 받았을 때 행주를 빨고 있었다고 했다. 욕조에 받아 둔 물로.

“딸이 그랬어요. 엄마는 욕조 물도 안 버리고 걸레 빤다고. 배에서 그 얘기를 했다 카대요.”

소현은 그 얘기를 몰랐다. 그 배의 누군가는 알 것이었다. 지완의 어머니는 소현을 한참 올려다봤다.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기자님이 뭔가 알지 않느냐는 얼굴이었다. 모른다고 해도 믿지 않을 얼굴이었고, 안다고 하면 무너질 얼굴이었다.

소현은 그 앞에서 한동안 말을 고르지 못했다. 쓸 수 있는 문장은 하나였다. 그 문장은 기사로는 쓸 수 없었다. 근거가 없었다. 후배의 전화 한 통과 번역투 문장 몇 개와, 이 문자를 보낸 쪽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5월 이후 한 번도 울리지 않은 휴대전화 한 대.

“가짜예요.”

어머니가 눈을 깜빡였다.

“기자님이 어떻게 아세요?”

“몰라요. 증명은 못 해요. 그래도 가짜예요.”

어머니는 소현의 얼굴을 오래 봤다. 그러다 비닐봉지를 다른 손으로 옮겨 쥐었다. 행주의 물기가 봉지 바닥에 조금 고여 있었다.

“기자님이 그렇다 카면요.”

어머니는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한 번 보고, 지우지 않고 화면을 껐다. 그리고 소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가족들 쪽으로 걸어가 무언가를 말했다. 소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몇이 소현 쪽을 돌아봤다. 소현은 고개를 숙였다. 근거 없는 말을 한 사람이 받는 눈이었다.

*

2140, 진해 역 앞 모텔 방. 소현은 잠수함사령부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당직실이 받았다. 그녀는 기자라고 밝히지 않았다. 오늘 문자를 받은 가족의 지인이라고 했다. 거짓은 아니었다. 당직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작전처 상황실로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 시간에 가족 문의를 받는 곳이 거기뿐이라고 했다. 신호음이 네 번 갔다.

“작전처 상황장교 차민경 대위입니다.”

여자 목소리였다. 피곤했지만 또렷했다. 전화기 너머로 무전기 잡음과 누군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소현은 그 여자를 몰랐다. 그 여자도 소현을 몰랐다.

“오늘 문자, 가짜 맞죠?”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무전기 잡음만 남았다. 대답을 고르는 침묵이 아니었다. 대답하면 안 되는 사람이 수화기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있는 침묵이었다. 소현은 그 침묵을 오래 들었다. 들으면서 그것이 대답이라고 믿기로 했다.

소현은 모텔 창틀에 비닐봉지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헤어질 때 지완의 어머니가 쥐여 준 것이었고, 봉지 안에는 방울토마토 여섯 알이 들어 있었다.

2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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