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5,168자) · 강윤재 · 8월 2~3일
전문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8월 2일 2310, 서울. 합참 지하 작전본부의 작은 회의실은 에어컨이 너무 세서 다들 윗옷을 벗지 못했다.
탁자 위에 해도 한 장이 펴져 있었다. 대만 해협이었다. 해도 위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표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배는 서류상 이 해도 위에 없었다. 작전본부장이 탁자 한쪽 끝에 앉았다. 해군 출신의 중장이었고, 손등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맞은편 끝에 국가안보실 차장 한도겸이 앉았다. 자정이 가까운데도 넥타이가 목까지 올라가 있었다.
한도겸 앞에는 종이 두 장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베이징 외교부의 어제 브리핑 번역본이었다. 한 문장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해협에서 활동 중인 역외 국가의 잠수함. 다른 하나는 해협에서 구축함 한 척이 대파됐다는 외신 요약이었다.
“역외 국가라는 말을 저쪽이 처음 썼습니다.”
한도겸이 먼저 말했다. 그는 종이를 보지 않았다.
“지난달에 저쪽 관영 매체가 미상 잠수함을 격침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확인도 부인도 안 했어요. 그런데 그 배가 살아서 저쪽 구축함을 쳤습니다. 저쪽이 이제 그 배가 누구 배인지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해협의 당사국이 됩니다. 서해는 지금도 뜨겁습니다. 산둥에 두 발이 나간 지 한 달입니다. 그 위에 해협까지 얹을 수는 없어요.”
“그 배가 빠지면 해협의 보급선이 다 닿습니다.”
본부장이 받았다. 그는 화상 자국이 있는 손을 해도 위에 얹었다.
“지금 상륙군 보급을 열하루로 봅니다. 그 배가 여섯 주 동안 끊어서 거기까지 왔습니다. 빠지면 그 숫자가 다시 늘고, 교두보가 굳습니다. 교두보가 굳으면 저쪽이 다음에 볼 곳은 서해입니다. 해협이 우리 전선이 아니라는 건 해협이 무너지기 전까지만 맞는 말입니다.”
“어뢰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없습니다.”
“어뢰도 없는 배를 거기 둘 이유가 뭡니까?”
“듣는 배입니다. 그 배가 듣고 보낸 게 우리가 해협에서 가진 전부입니다. 미국은 항모를 동쪽에 뒀고, 일본은 서류를 쥐고 있고, 우리 초계기는 그 배를 미상이라고 적습니다. 그 배 말고는 해협 안에 귀가 없습니다.”
한도겸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둘 다 옳았다. 방 안의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올라온 대령 하나가 벽 쪽에 서서 수첩을 쥐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 중 누구의 말도 받아 적지 않았다. 결론만 적으라는 지시를 받고 온 사람이었다.
“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겁니다.”
한도겸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그 배는 벌써 일곱 척을 쐈어요. 여덟 척째가 구축함이었고요. 우리가 쏜 나라로 읽히는 날을 하루라도 늦추는 게 제 일입니다. 본부장님 말씀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본부장님 말씀이 맞는 날이 오면, 그날 다시 정하면 됩니다.”
그는 손목시계를 봤다. 그리고 결론을 말했다. 신채호함은 동해로 빠진다. 대한해협 경유. 어뢰 전무 시 즉시. 그는 그 말을 자기 손으로 적지 않았다. 벽 쪽의 대령이 받아 적었다. 본부장은 해도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떼지 않은 채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2340에 전문이 작성됐다. 0400 정시 부상에 맞춰 나가도록 송신 대기열 맨 앞에 올라갔다. 한도겸이 나간 뒤에도 본부장은 한동안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그는 해도를 접지 않고 탁자 위에 편 채로 두었다. 아무 표시도 없는 해도의 해협 한가운데를 손끝으로 한 번 눌렀다가, 불을 끄고 나갔다.
*
8월 3일 0400, 신채호함은 심도 20으로 올라갔다.
안테나가 수면을 뚫었다. 전자 지원 화면이 켜졌다. 조타장이 입속으로 초를 셌다. 윤재는 함장 의자 옆에 서서 수신 표시등을 봤다. 0403에 수신이 시작됐다. 압축된 전문이 한 덩어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긴 전문이었다. 표시등의 초록 막대가 느리게 차올랐다. 부상한 배는 파도를 그대로 받았다. 물속에서는 없던 흔들림이 발바닥으로 올라왔고, 몇 사람이 벽의 손잡이를 잡았다. 여섯 주 동안 물속에 있던 몸은 이 흔들림을 먼저 멀미로 받았다.
0409에 지완이 전자 지원 화면을 짚었다.
“수색 레이더입니다. 남동쪽, 초계기입니다. 아직 멉니다. 원을 그리며 쓸고 있습니다.”
“수신 얼마나 남았어?”
“3분입니다.”
초계기의 레이더는 바다 위를 원을 그리며 쓸었다. 한 바퀴에 몇 초였다. 그 원 안에 수면 위로 솟은 안테나 하나가 들어가면, 화면에 작은 점 하나가 떴다. 파도가 높으면 파도에 섞였다. 오늘 파도는 1미터였다. 섞이기에는 낮았다.
0411에 레이더가 한 번 이쪽을 스쳤다. 화면의 선이 짧게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0412에 수신 표시등이 다 찼다. 수신 완료.
“안테나 내려. 심도 150, 서쪽으로. 속력 올려.”
배가 앞으로 기울며 내려갔다. 0414에 레이더가 두 번째로 이쪽을 쓸었다. 이번에는 선이 오래 솟아 있었다. 무언가를 봤다는 뜻이었다. 봤는지, 파도를 봤는지는 저쪽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었다. 확신하지 못하면 부이를 던졌다.
0425에 부이가 떨어졌다. 넷이었다. 이 배가 내려간 자리의 동쪽이었다. 신채호함은 그때 층 아래로 들어가 서쪽으로 3킬로미터를 가 있었다. 0440에 넷이 더 떨어졌다. 더 동쪽이었다. 초계기는 이 배가 동쪽으로 갔다고 읽었다. 대한해협이 동쪽에 있었다. 저쪽도 그쪽을 짐작하고 있었다.
0510에 지완이 헤드폰을 벗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더는 없었다.
*
0520, 윤재는 해도대 앞에서 전문을 폈다.
프린터에서 뽑아낸 감열지가 아직 따뜻했다. 요약은 다음 장에 있었다. 첫 장은 전문 하나였다. 머리에 긴급, 발신 합참.
신채호함은 동해로 빠진다. 대한해협 경유, 8월 20일까지 진해 입항. 이동 개시 즉시 보고. 어뢰 전무 시 즉시.
윤재는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줄부터 읽는 버릇이 이번에는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한 단어씩 읽었다. 빠진다. 합참이 이 배에 쓴 동사였다. 귀환도 철수도 아니었다. 빠진다는 말은 빈자리를 남긴다는 말이었다.
다음 장의 요약에는 다른 것들이 있었다. 대만 서해안 해저 케이블 복구선이 또 되돌아갔다는 것, 연평도 쪽 무전이 사흘째 조용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줄 위의 사령부 판단. 상륙군 보급 잔량 추정 D-11. 윤재는 그 숫자를 오래 봤다. 이 숫자를 하루 줄이려고 이 배는 여섯 주를 여기 있었다.
그는 항해일지를 폈다. 칸이 있는 자리에 먼저 적었다. 0403 수신 개시, 0412 수신 완료, 0414 수색 레이더 탐지, 0425 부이 4, 0440 부이 4, 회피. 그리고 칸이 없는 자리에 적었다.
0412 귀환 명령 수신. 부장 판단 보류.
일곱 번째였다. 적고 나서 그는 볼펜을 해도대 위에 눕혔다. 볼펜이 조금 굴러가다 해도 위의 연필 자국에 걸려 섰다. 판단 보류라는 말도 칸이 없는 말이었다. 명령을 받은 사람이 판단을 보류한다고 적는 칸은 일지 어디에도 없었다.
*
0600에 윤재는 의무실 커튼 앞까지 갔다.
커튼 안에서 함장의 숨소리가 들렸다. 고르게 들리다가 한 번씩 길어졌다. 남 중사가 커튼 틈으로 윤재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주무신다는 뜻이었다. 윤재는 커튼에 손을 댔다가 걷지 않았다. 전문을 들고 들어가면 함장은 읽을 것이었다. 읽으면 무언가를 말할 것이었다. 이제 부장님 배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이 종이를 내밀면 그 말을 도로 가져가 달라는 것이 됐다.
그는 커튼에서 손을 떼고 돌아섰다.
*
0900에 발령소에서 전문을 읽었다.
방송은 하지 않았다. 발령소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읽었다. 조타장, 지완, 당직 수병 셋, 그리고 뒤쪽에서 태블릿을 안고 있던 제하였다. 윤재는 전문을 소리 내어 한 번 읽었다. 읽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타장이 먼저 숨을 내쉬었다. 길게 내쉬었는데, 그 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조타장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제하가 태블릿 모서리를 문지르던 손가락을 멈췄다. 지완은 헤드폰을 목에서 벗어 무릎 위에 놓았다. 벗어 놓은 헤드폰에서 바다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언제 갑니까?”
조타장이 물었다. 윤재는 전문을 접었다.
“아직 모른다.”
“즉시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뢰 전무 시 즉시. 그렇게 적혀 있어.”
“어뢰는 전무입니다, 부장님.”
“알아.”
조타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손잡이를 쥐었다 놓았다. 윤재는 전문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는 7월에 넣어 둔 요약지가 이미 두 장 있었고, 셋이 되자 단추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단추를 풀어 둔 채로 두었다.
0930부터 1130까지 배는 150에서 천천히 서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가지 않았다. 아무도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해도 위에 대한해협은 오른쪽 위 구석에 있었고, 배의 침로를 나타내는 연필 선은 그 반대쪽으로 짧게 뻗어 있었다.
1030에 윤재는 배를 한 바퀴 돌았다. 어뢰실에서는 어뢰 담당 중사가 빈 거치대의 고정 띠를 여전히 감지 않은 채로 두고 있었다. 조리실에서는 오 하사가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윤재를 보고 국자를 든 채 차렷 자세를 했다. 국자에서 국물이 한 방울 떨어져 그의 운동화 코에 앉았다. 윤재는 편히 하라고 했다. 오 하사는 편히 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부장님, 찌개에 두부를 넣을까요, 뺄까요?”
“왜?”
“두부가 사흘 치 남았습니다. 오늘 넣으면 사흘 뒤에 없고, 안 넣으면 사흘 뒤에 있습니다.”
윤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 하사는 윤재의 얼굴을 한동안 보다가, 두부 한 모를 꺼내 반만 썰어 넣었다. 남은 반은 랩으로 싸서 냉장고 맨 위 칸, 함장 이름이 적힌 흰죽 그릇 옆에 넣었다.
*
1150에 발령소 뒤쪽 격벽의 해치가 열렸다.
기관장 백 소령이 들어왔다. 기관복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고 있었고, 팔뚝에 검은 기름 자국이 한 줄 나 있었다. 기관실에서 곧장 온 것이었다. 백 소령은 발령소에 거의 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난 여섯 주 동안 그가 발령소에 온 것은 보급 때 잔량을 맞추러 온 두 번뿐이었다. 발령소 사람들이 그를 봤다가 윤재를 봤다.
백 소령은 해도대 앞까지 와서 섰다. 그는 해도 위의 연필 선을 봤다. 서쪽으로 짧게 뻗은 선이었다. 한참 그 선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부장, 전문 봤다.”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해도대 위에 펴 놓았다. 기관실에 돌리는 사본이었다. 여백에 기관장의 글씨로 숫자 몇 줄이 적혀 있었고, 맨 아래 숫자에는 볼펜으로 두 번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