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5,149자) · 강윤재 · 7월 28일~8월 1일
존댓말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28일 0300, 발령소 한가운데 함장 의자가 비어 있었다.
높은 등받이에 팔걸이가 달린 의자였다. 인조 가죽이 해져서 팔걸이 끝에 누런 스펀지가 조금 비어져 나와 있었고, 함장은 생각할 때 그 스펀지를 엄지로 눌러 넣는 버릇이 있었다. 윤재는 그 의자 옆에 섰다. 앉지 않았다. 발령소 사람들도 그 의자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침로 180. 심도 300 유지. 속력 5노트.”
조타장이 복창했다. 목소리가 평소처럼 굵었다. 복창하고 나서 그는 손잡이를 쥔 채로 고개만 조금 돌렸다.
“부장님, 남쪽이면 우군 해역입니다.”
“알아.”
“…도망입니까?”
“도망이다.”
조타장은 더 묻지 않았다. 윤재가 함을 맡아서 처음 내린 명령이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어뢰가 없었다. 함장이 없었다. 저쪽은 방위를 알았고, 날이 밝으면 헬기가 뜰 것이었다. 남쪽으로 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뿐일 때는 그것을 하는 사람이 덜 괴로운 법인데, 윤재는 그렇지 않았다. 이 배에서 처음으로 등을 돌리자고 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이 발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지완이 헤드폰을 쓴 채 말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건 없습니다. 052D 셋은 전부 동쪽에 있습니다. 한 척은 기관 소리가 안 납니다. 끌려가는 소리만 납니다.”
윤재는 그 말을 들었지만 해도에 적지 않았다.
0330에 그는 항해일지에 지휘가 넘어간 시각을 한 번 더 적고, 방송 대신 사람을 보냈다. 방송은 소리였다. 수병 둘이 앞뒤로 나뉘어 구획마다 같은 말을 전했다. 함장님 부상, 의식 있음, 지금부터 부장 지휘. 전하는 수병이 지나간 구획마다 잠깐 손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기관실에서는 아무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고 수병이 돌아와 말했다. 백 소령이 고개만 끄덕였다고 했다.
*
7월 28일 1100, 052D 함교. 리 첸은 창밖으로 2번함을 봤다.
1번함이 2번함을 끌고 있었다. 굵은 예인줄이 둘 사이에서 팽팽해졌다 늘어졌다 했다. 2번함의 선미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갑판 위에 흰 천을 덮은 것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아홉이었다. 전대 사령부로 올라간 사상자 보고는 전사 아홉, 부상 스물넷이었다. 2번함 함장은 살았다. 무전으로 그는 아홉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고, 리 첸은 그것을 받아 적었다. 받아 적는 동안 한 번도 펜을 멈추지 않았다.
1040에 초계 헬기가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폭뢰를 떨어뜨린 해역 서쪽 해면에 기름띠, 길이 약 2킬로미터. 잔해는 없음.
저우 소령이 그 종이를 들고 왔다.
“기름입니다, 함장님. 지난번에 기름이 없다고 격침을 막으셨습니다. 이번엔 있습니다.”
리 첸은 해도를 봤다. 기름띠의 자리는 2번함이 맞은 자리에서 서쪽으로 4킬로미터였다. 밤새 해류는 서쪽으로 흘렀다. 2번함의 연료 탱크가 터진 것도 밤이었다. 어느 쪽 기름인지는 헬기가 말하지 않았다. 헬기는 기름만 봤다.
“시료는?”
“헬기는 시료를 못 뜹니다. 함정이 가야 합니다. 1번함은 예인 중이고 3번함은 2번함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가.”
“사령부가 지금 보고를 기다립니다. 2번함이 맞았습니다. 전대가 여섯 주 동안 한 척도 못 잡았는데 한 척을 잃었습니다. 오늘 보고에 아무것도 없으면 전대장님이 내일 이 배에 오십니다.”
리 첸은 대답하지 않고 전문 양식을 폈다. 오래 들여다봤다. 기름띠, 2킬로미터. 폭뢰 일곱, 설정 셋으로 나눔. 0205 이후 수중 소음 없음. 그는 한 줄씩 적었다. 적은 것은 다 사실이었다. 사실을 이어 놓으니 그것은 격침이었다. 그는 마지막 칸에 격침 추정이라고 적고, 그 옆에 괄호를 열어 시료 미확인이라고 덧붙였다. 괄호는 전문을 받는 사람이 읽지 않는 자리였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는 서명을 하고 종이를 저우에게 건넸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가서 보고 2라고 적힌 줄을 지우고 보고 3이라고 고쳐 적었다. 궈원의 이름 아래 칸이 조금 좁아졌다.
*
7월 29일 1400에 헬기가 왔다.
지완이 먼저 들었다. 로터가 수면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다음에 물속으로 무언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줄에 매달린 청음기였다. 헬기는 떠 있는 채로 청음기를 물에 담그고 한동안 듣다가 끌어 올려 다른 자리로 옮겨 가 다시 담갔다. 담글 때마다 가끔 한 번씩 능동 핑을 쐈다.
“서쪽 3킬로미터입니다. 다음은 남쪽으로 옮길 겁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바둑판처럼 칸을 채웁니다.”
윤재는 추진을 끊었다. 배가 300에서 천천히 섰다. 층 아래였다. 위에서 쏜 핑은 층에 부딪혀 꺾였고, 꺾인 소리가 이 배까지 닿을 때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칸이 가까워지면 닿았다. 1432에 청음기가 동쪽 1킬로미터에 들어왔다. 1447에 800미터에 들어왔다. 핑이 한 번 왔다. 발령소 벽에 가는 소리가 스쳤다. 윤재는 초시계를 보지 않았다. 지완의 어깨만 봤다. 어깨가 내려가지 않았다.
청음기는 40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 끌려 올라갔다. 로터 소리가 북쪽으로 멀어졌다. 1531에 지완의 어깨가 내려갔다. 발령소의 누군가가 무릎을 짚고 앉았다. 그날 헬기는 두 번 더 왔고, 두 번 다 이 배가 선 칸의 옆 칸에서 청음기를 끌어 올렸다.
7월 30일은 조용했다. 헬기는 오지 않았고, 신채호함은 5노트로 남쪽을 향해 하루를 갔다. 오 하사는 흰죽을 끓여 한 그릇에 뚜껑을 덮고, 뚜껑 위에 매직으로 함장이라고 적어 의무실로 보냈다. 돌아온 그릇은 절반이 비어 있었다. 오 하사는 그릇을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남은 절반을 버리지 않고 조리실 냉장고 맨 위 칸에 넣었다. 그날 저녁 조타장이 냉장고를 열었다가 그 그릇을 보고 슬그머니 도로 닫았다. 조타장은 흰죽을 싫어한다고 여섯 주 동안 말해 온 사람이었다.
그날 밤 지완이 당직을 넘기면서 윤재에게 한 줄을 보고했다. 북쪽 멀리 그 배의 발전기 떨림이 한 번 잡혔다가 사라졌다고 했다. 움직이는 소리는 아니었다. 선 채로 떠는 소리였다. 윤재는 그 방위를 해도에 옮겨 적고, 그 옆에 선 채로라고 작게 적었다.
그날 밤 윤재는 의무실에 들렀다. 함장은 깨어 있었다. 말이 느렸다. 한 문장을 말하는 데 숨을 두 번 쉬었다. 그는 오른쪽 눈이 조금 흐리다고 했고, 남 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적었다. 함장이 윤재를 보고 손짓했다. 윤재가 몸을 숙였다.
“맞힌 배… 몇 명이었나?”
“모릅니다.”
“적어 둬. 모른다고.”
윤재는 발령소로 돌아가 항해일지를 폈다. 칸이 없는 자리에 적었다. 0118 명중 구축함, 승조원 수 모름. 함장 요청. 여섯 번째였다. 6월 초에 몇 명이었느냐고 물은 것은 윤재였고, 그때 지금 묻지 말라고 한 것은 함장이었다.
*
7월 31일 2300, 우군 해역 안쪽에서 군수지원함을 만났다.
사세보를 떠나 대한해협 남쪽을 돌아온 배였다. 보급관 문 대위가 무선으로 먼저 알렸다. 산소와 수소와 식량을 싣고 왔고, 탄약은 이번에도 없었다. 서류가 여전히 도쿄에 있었다. 그리고 군의관 한 사람이 같이 왔다.
군의관은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와 해치로 내려왔다. 서른 중반의 대위였고, 사다리를 내려오다 마지막 칸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는 의무실에서 40분 동안 함장을 봤다. 손전등으로 눈을 비추고, 손가락을 따라오게 하고, 이름과 날짜를 묻고, 이마의 붕대를 풀어 상처를 보고 다시 감았다. 나와서 윤재에게 말했다.
“옮겨야 합니다. 머리 속을 찍어 봐야 압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옮깁니다. 파도가 2미터입니다. 해치로 들것을 올리려면 목을 꺾어야 하고, 보트에서 한 번 더 꺾어야 합니다. 안에서 피가 나고 있으면 그 두 번이 더 위험합니다. 여기 두시는 게 낫습니다. 제 판단입니다.”
군의관이 말을 마치기 전에 의무실 커튼 안에서 함장의 목소리가 났다. 느렸다.
“안 내려.”
군의관은 윤재를 봤다. 윤재는 커튼 쪽을 봤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군의관은 약 상자를 남 중사에게 넘기고, 먹는 순서를 두 번 불러 주고, 보트로 돌아갔다. 사다리를 올라가다 한 번 돌아봤다.
보급은 0140에 끝났다. 전지는 다시 찼다. 발령소 벽의 잔량 표시가 한 칸씩 올라가 열이틀에서 멈췄다. 어뢰 거치대는 비어 있었다. 조타장이 벽의 표시를 손가락으로 따라 세다가 열둘에서 멈추고, 손가락을 거두어 주머니에 넣었다.
*
8월 1일 1700, 남 중사가 윤재를 의무실로 불렀다.
함장은 침상에 반쯤 기대 앉아 있었다. 붕대는 새것이었다. 얼굴의 부기가 조금 빠졌고, 눈은 맑았다. 말은 여전히 느렸다. 그는 윤재에게 앉으라고 했다. 의무실에는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윤재는 그 의자에 앉았다.
함장은 한동안 윤재를 봤다. 무엇을 말할지 고르는 얼굴이 아니었다. 고른 말을 입에 올릴 숨을 모으는 얼굴이었다.
“부장님.”
윤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함장이 이 배에서 그를 부장이라고 부른 것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부장님은 처음이었다. 남 중사가 커튼 밖에서 약병을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
“이제 부장님 배입니다.”
함장은 그 말을 한 번에 했다. 숨을 두 번 쉬지 않았다. 말하고 나서 그는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존댓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재가 일어나려 하자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덧붙였다.
“커피는… 부장님이 드세요. 제 잔은 안 씻어도 됩니다.”
윤재는 의자에서 일어나 경례를 하려다 말았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경례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이고 있었다.
*
1800에 부상했다. 18분이었다. 함장 의자는 여전히 비어 있었고, 조타장이 그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은 채 입속으로 초를 셌다. 윤재는 그 손을 치우라고 하지 않았다. 전자 지원 화면은 비어 있었다.
받은 요약은 짧았다. 마지막 줄은 이 해역 우군 잠수함 없음이었고, 그 위의 사령부 판단은 상륙군 보급 잔량 추정 D-12였다. 그 위에, 요약의 맨 앞에 전문 하나가 따로 붙어 있었다. 머리에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긴급. 본문은 한 줄이었다. 8월 3일 0400 정시 부상, 합참 지시 수신 대기.
무슨 지시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윤재는 그 전문을 두 번 읽었다. 두 번 읽어도 한 줄이었다. 합참이 잠수함 한 척에 날짜와 시각을 박아 부르는 일은 드물었고, 드문 일은 대개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해도대 모서리에는 함장의 커피잔이 그대로 있었다. 윤재는 그 잔을 들어 조리실로 가져가려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잔 안쪽에 여러 겹의 갈색 줄이 나이테처럼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