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5,161자) · 강윤재 · 7월 28일(수)
근접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28일 0100, 머리 위에서 물이 한꺼번에 찢어졌다.
한 발이 아니었다. 지완이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걸 틈도 없이 소리가 겹쳐 들어왔다. 수면을 뚫는 소리가 여섯, 여덟, 열둘이었다. 대잠 로켓이었다. 052D의 발사기에서 한꺼번에 날아올라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진 것들이 가라앉으면서 정해진 깊이를 찾아갔다. 떨어진 자리는 미끼 수송선의 동쪽이었다. 이 배가 저녁까지 있던 자리였다.
0101에 첫 폭발이 왔다. 멀었다. 멀어도 선체가 울렸다. 둔한 망치로 배를 옆에서 한 번 친 것 같았고, 그 울림이 발바닥에서 무릎으로 올라왔다. 두 번째, 세 번째가 이어졌다. 발령소 천장의 케이블 묶음이 흔들리며 먼지를 떨어뜨렸다. 해도 위에 회색 먼지가 얇게 앉았다. 먼지는 여섯 주 동안 케이블 틈에 쌓인 것이었고, 사람의 살비듬과 코르크 가루와 담배를 끊은 조타장의 은단 가루가 섞여 있었다.
“동쪽 1,200입니다. 우리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 자리는 모릅니다. 짐작으로 쏘는 겁니다.”
지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지완은 헤드폰을 다시 썼다. 폭발이 끝나면 다음 소리를 들어야 했다.
“052D 셋이 움직입니다. 한 척이 능동으로 쏩니다. 남쪽에서 옵니다. 제일 시끄럽습니다. 그 배는 아닙니다. 그 배는 아직 안 움직입니다.”
능동 소나(소리를 쏴서 되돌아오는 것을 듣는 방식, 쏘는 순간 내 위치도 알려 준다)의 핑이 선체에 닿았다. 날카롭고 높은 소리가 한 번, 몇 초 뒤에 또 한 번 왔다. 핑이 선체에 닿을 때마다 발령소의 모두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 소리는 되돌아가서 저쪽 화면에 이 배를 그렸다. 아직은 흐릴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닿으면 선명해질 것이었다.
*
0104에 윤재가 해도대 앞에서 함장을 봤다.
“어뢰를 씁니다.”
“짐배에 쓴다고 했지.”
“저건 짐배가 아닙니다. 쏘면 모래가 가라앉습니다. 남쪽에서 능동으로 쏘며 오는 배에 씁니다. 저 배가 우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저 배가 맞으면 나머지가 그 배로 갑니다. 사람을 건지러 갑니다. 그 사이에 빠집니다.”
“그 배는?”
“그 배는 안 움직입니다. 쏘면 우리가 어디서 쐈는지 그 배가 듣습니다. 들어도 늦게 오게 해야 합니다.”
함장은 해도를 봤다. 먼지가 앉은 해도 위에 남쪽 052D의 방위선이 윤재의 연필로 그어져 있었다. 선이 이 배의 자리를 향해 곧게 좁혀 오고 있었다. 함장은 손바닥으로 해도 위의 먼지를 한 번 쓸었다.
“쏠 자리를 알 때까지 쏘지 말라고 했지.”
“예.”
“지금이 그 자리야. 쏴.”
0106에 어뢰실에서 중사가 반창고 감긴 밸브 손잡이를 돌렸다. 관에 물이 차는 소리가 났다. 여느 때라면 발령소가 얼어붙었을 소리였다.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로켓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그 폭발 소리가 물 차는 소리를 덮었다. 저쪽이 낸 소리 속에서 이쪽이 소리를 냈다. 두 번째 폭발 무리가 끝나기 전에 관이 찼다.
0109에 문이 열렸다. 0110에 한 발이 나갔다.
배가 한 번 떨었다. 이 배에서 나가는 마지막 한 발이었다. 유선이 풀려 나가는 가는 소리가 발령소 스피커로 들어왔다. 윤재는 초시계를 봤다. 어뢰 담당 화면에 어뢰의 선이 남쪽으로 곧게 뻗었다. 남쪽의 052D는 핑을 멈추지 않았다. 핑을 쏘는 동안 그 배는 자기 귀가 반쯤 멀어 있었다. 쏜 소리가 되돌아오는 것을 들으려고, 다른 소리는 흘려들었다.
“어뢰, 표적 추적 시작했습니다. 거리 3,000.”
“유선 끊지 마. 끝까지 쥐고 있어.”
0116에 남쪽 052D의 핑이 멎었다. 어뢰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기관이 한꺼번에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가속이었다. 기만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어뢰 담당이 유선으로 어뢰의 머리를 기만기 쪽이 아니라 기관 소리 쪽으로 붙들어 두었다.
0118에 지완이 말했다.
“명중입니다.”
폭발은 멀고 길었다. 선체가 먼저 울리고, 그다음에 쇠가 찢어지는 소리가 물속으로 번져 왔다. 가라앉는 소리는 아니었다. 불이 나서 뭔가가 계속 터지는 소리였다. 발령소의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조타장은 손잡이를 쥔 채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
0120, 052D 함교. 창밖 남쪽 바다 위에 불기둥이 섰다.
2번함이었다. 선미 쪽이었고, 불빛이 해면에 길게 번져 뒤집힌 부두처럼 흔들렸다. 무전으로 2번함 함장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침수, 조타 불능, 사상자 다수. 목소리는 차분했는데 말과 말 사이가 너무 길었다. 2번함 함장은 리 첸이 교관이던 시절의 생도였다. 함장실 유리판 밑 단체 사진에서 셋째 줄 왼쪽 끝에 서 있던 얼굴이었고, 그때도 대답하기 전에 한 번 숨을 고르는 버릇이 있었다.
저우 소령이 리 첸을 봤다. 리 첸은 해도대 위에 어뢰가 날아온 방위선을 그었다. 음탐장이 어뢰 발사음의 방위를 불러 주었다. 선은 미끼 수송선의 서쪽, 조금 북쪽으로 뻗었다. 그 선 끝에 그 배가 있었다.
“1번함, 3번함은 2번함으로. 구조와 소화.”
“함장님, 그러면 그 배가 빠집니다.”
“우리가 간다. 폭뢰, 방위선 끝. 심도 설정 셋으로 나눠서.”
리 첸의 052D가 기관을 걸었다. 여섯 주 동안 서서 듣던 배가 처음으로 전속으로 달렸다. 함교의 바닥이 떨었고, 해도대 위 연필이 굴러 저우 소령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저우는 줍지 않았다.
*
0128에 지완이 헤드폰을 한쪽 귀에서 떼었다.
“그 배가 옵니다. 전속입니다. 곧장 우리 쪽입니다.”
“심도 300. 서쪽으로. 속력 올려.”
이제 숨을 까닭이 없었다. 저쪽은 방위를 알았다. 모르는 것은 깊이였다. 배가 앞으로 기울며 내려갔다. 선체가 눌리는 소리가 벽을 따라 번졌다. 200을 지나면서 발령소 누군가가 벽의 손잡이를 쥐었다. 240에서 지완이 말했다.
“머리 위입니다. 뭔가 떨어졌습니다. 여러 개입니다.”
0131에 첫 폭뢰가 터졌다. 가까웠다. 선체가 옆으로 떠밀렸고, 발령소의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붉은 비상등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가 더 가까웠다. 발령소의 격벽이 울었다. 쇠가 늘어났다가 돌아오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사람의 목에서 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세 번째가 오른쪽 위에서 터졌다.
배가 옆으로 기울었다. 발령소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왼쪽으로 쏠렸다. 해도대 앞에 서 있던 함장이 손잡이를 잡으려 팔을 뻗었는데,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손이 닿지 않았다. 함장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이마가 해도대 모서리에 부딪쳤다. 둔한 소리가 났다. 폭뢰 소리보다 작았는데, 발령소의 모두가 그 소리를 따로 들었다.
함장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해도대 모서리의 쇠 테두리에 붉은 것이 묻어 있었다.
윤재는 함장 곁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대신 해도대를 붙들고 섰다.
“의무 하사 발령소로. 심도 300 유지. 서쪽으로 계속.”
*
0134에 의무 하사 남 중사가 구급 가방을 끌어안고 발령소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함장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옆으로 돌리고, 숨을 확인하고, 이마의 찢어진 자리에 거즈를 눌렀다. 거즈가 금방 붉게 젖었다. 그는 새 거즈를 얹고 그 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숨은 쉬십니다. 의식이 없습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여기 둬. 들것 가져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폭뢰는 조금 멀었다. 그 배는 방위는 알았지만 깊이를 셋으로 나눠 떨어뜨렸다. 셋 가운데 하나가 맞으면 됐다. 신채호함은 가장 깊은 설정보다 더 깊이 내려가고 있었다. 280, 290. 벽 어딘가에서 볼트가 하나 튕겨 나가는 소리가 났다. 최민석이 기관실에서 이상 없다고 보고했다. 이번에도 제시간이었다.
“300입니다.”
“해저까지 얼마나 되지?”
“서쪽으로 가면 바닥이 한 번 꺼집니다. 골입니다. 거기 벽을 따라 가면 위에서 오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흩어집니다.”
지완이 해도 대신 소리로 바닥을 그렸다. 윤재는 그 말대로 배를 골 쪽으로 틀었다. 해저 노드는 평평한 바닥에 깔려 있었다. 골 안쪽에는 없었다. 거기까지 깔 시간이 저쪽에도 없었을 것이다.
0150에 여섯 번째 폭뢰가 뒤쪽 멀리서 터졌다. 0205에 일곱 번째가 더 멀리서 터졌다. 그 뒤로 폭뢰는 오지 않았다. 052D의 기관 소리가 동쪽으로 멀어지다가 멈췄다. 2번함 쪽이었다.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볼펜이 손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그는 볼펜을 다시 쥐고 적었다. 0110 어뢰 1발 발사, 0118 수상함 1척 명중, 0131부터 폭뢰 7, 0133 함장 부상, 부장 지휘. 어뢰 잔량 0. 적고 나서 그는 잔량 칸의 0을 한동안 봤다. 숫자 가운데 가장 둥근 숫자였다.
0215에 구획마다 피해 보고가 다시 올라왔다. 윤재는 하나씩 받아 적었다. 전기실, 벽 볼트 하나 이탈, 누수 없음. 기관실, 이상 없음. 어뢰실, 이상 없음. 조리실, 냄비 둘이 바닥에 떨어졌고 국이 쏟아졌음. 사람은 쉰둘이 제자리에 있었고, 하나는 들것 위에 있었다. 오 하사가 쏟아진 국을 걸레로 훔치다가 윤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걸레를 쥔 채 일어섰다. 윤재는 앉으라고 손짓했다. 오 하사는 앉지 않고 물컵 하나를 내밀었다. 윤재는 그것을 받아 한 번에 마셨다. 물이 미지근했고, 쇠 맛이 났다.
어뢰실에 들렀을 때 어뢰 담당 중사가 빈 거치대 앞에 서 있었다. 한 발이 누워 있던 자리였다. 거치대의 고정 띠가 풀린 채 늘어져 있었고, 중사는 그 띠를 감아 정리하려다 말고 손에 쥔 채로 서 있었다. 윤재가 들어오자 그는 띠를 거치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감지는 않았다. 다음에 누울 것이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비워 두겠다는 손이었다. 옆 걸이에서는 제하가 사세보에서 온 무인정의 외피를 손바닥으로 쓸며 긁힌 데가 없는지 보고 있었다. 이 배에 남은 무기는 이제 그것 하나였고, 그것은 쏘는 물건이 아니었다.
*
0250에 남 중사가 윤재를 불렀다.
함장은 발령소 뒤쪽 좁은 통로에 깔린 들것 위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 감은 붕대 위로 붉은 것이 조금 번져 있었다. 눈꺼풀이 떨렸다. 윤재가 들것 곁에 쪼그려 앉았다. 함장의 입술이 움직였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윤재가 귀를 가까이 댔다.
“부장.”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함장은 한 번 숨을 고르고 다음 말을 했다.
“지휘.”
그것뿐이었다. 함장의 눈이 다시 감겼다. 남 중사가 맥을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든 것이었다. 윤재는 일어섰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발령소로 돌아오니 해도대 모서리는 누군가 이미 닦아 두었고, 닦은 자리만 쇠 테두리의 페인트가 벗겨져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