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5,201자) · 강윤재 · 7월 26일(월)

덫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26일 0000, 지완이 헤드폰 한쪽을 귀에서 떼었다가 다시 눌렀다.

“수송선 하나입니다. 방위 310, 동쪽으로 갑니다. 날개가 넷이고 축이 하나입니다. 12노트쯤 됩니다.”

“호위는?”

“없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없습니다. 한 시간을 들었는데 수송선 소리 말고는 새우 소리뿐입니다.”

발령소에 불빛이 붉게 깔려 있었다. 야간 조명이었고, 그 빛 속에서는 사람 얼굴이 다 조금씩 늙어 보였다. 조타장이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해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섯 주 동안 호위 없는 짐배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6월 초의 1만 8천 톤이었고, 그 배는 두 발에 8분 만에 가라앉았다. 조타장은 그날 일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의 엄지손가락이 손잡이 가죽을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

윤재는 해도 위에 수송선의 방위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선을 한참 내려다봤다. 연필 끝이 종이에 닿은 채로 멈춰 있었다.

“이상합니다.”

함장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뭐가?”

“여섯 주 동안 저쪽은 짐배마다 호위를 둘씩 붙였습니다. 민간선에는 속력까지 맞춰 줬습니다. 이틀 전에 그 배가 우리를 쫓지 않고 섰습니다. 쫓지 않는 사냥꾼은 기다리는 사냥꾼입니다. 그리고 오늘 짐배가 혼자 옵니다.”

“덫이라는 거지.”

“덫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함장은 대답하지 않고 해도대 서랍을 열었다. 부상 때 받은 정세 요약이 접힌 채 들어 있었다. 7월 25일 밤 18분 동안 받은 것이었다. 함장은 마지막 장을 펴서 윤재 앞에 놓았다. 사령부 판단 한 줄에 누군가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 두었다. 상륙군 보급 잔량 추정 D-14. 윤재가 그은 밑줄은 아니었다.

“열나흘이야. 저 배 하나가 닿으면 이게 얼마나 늘지?”

“짐에 따라 다릅니다. 탄약이면 사나흘입니다.”

“사나흘이면 해안 포가 사나흘 더 울어.”

*

0130에 지완이 수송선의 소리를 더 풀었다. 흘수가 깊었다. 짐을 가득 실은 배였다. 기관 소리 사이사이로 선체가 파도를 받아 둔하게 우는 소리가 섞였고, 그 울림이 빈 배보다 낮았다. 짐이 무엇인지는 소리로 알 수 없었다. 모래를 실어도 흘수는 깊었다.

윤재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함장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부장, 자네가 저쪽이면 덫을 어떻게 놓겠나?”

“짐배를 앞에 두고, 호위는 멀리 둡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거리 밖에, 기관을 끄고 띄워 둡니다. 그리고 우리가 짐배에 다가가는 소리를 들을 귀를 따로 둡니다.”

“어디에?”

“모르겠습니다. 위에는 없습니다. 부이 떨어지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럼 없는 거 아닌가?”

“들리지 않는 겁니다.”

함장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잔 가장자리에 커피 자국이 여러 겹 남아 있었다. 사흘째 씻지 않은 잔이었다. 물을 아끼느라 이 배에서는 잔을 씻지 않고 헹구기만 했다.

“자네 말이 맞을 수 있어.”

함장은 잔을 해도대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발령소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귀를 이쪽으로 열었다.

“맞을 수 있다는 걸 알고 간다. 안 가면 저 배가 닿아. 저 배가 닿으면 그만큼 우리가 이 바다에 있을 까닭이 준다. 덫이면 덫인 걸 알고 들어가서 덫인 걸 알고 나온다. 틀리면 내가 틀린 거야. 자네가 아니라.”

윤재는 한동안 해도를 봤다. 함장의 손바닥이 수송선 방위선 끝에 얹혀 있었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보다 틀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 이 배의 함장은 그 반대였다.

“어뢰는 한 발입니다.”

“알아. 그래서 짐배에 쓴다. 그게 제일 확실하니까.”

“저쪽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함장이 그 말에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만 조금 올라갔다.

“그러니까 저쪽도 틀릴 수 있지.”

*

같은 시각, 신채호함 동쪽 15킬로미터.

052D 넉 척이 해면에 떠 있었다. 기관은 전부 꺼져 있었다. 발전기만 최저로 돌았고, 레이더도 꺼져 있었다. 함교 창밖은 달이 없어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리 첸은 함교 가운데 선 채로 2시간째 앉지 않았다.

해도대 위에 전대 공병대가 지난주에 깐 것이 그려져 있었다. 해저 청음 노드 스물넷이었다. 바닥에 붙어 소리를 모으고, 모은 소리를 가는 선으로 부표 하나에 올려 보냈다. 노드는 전기를 거의 먹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켜져 있어도 꺼진 것처럼 조용했다. 들을 때만 깨어났다.

저우 소령이 해도대 옆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미끼가 너무 뻔합니다. 호위 없는 수송선은 그 배도 한 번 먹어 봤습니다. 두 번은 안 속을 겁니다.”

“뻔해도 와.”

“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그 배는 어뢰가 하나야. 지난번에 한 발만 쐈어. 하나 남은 배는 아무것도 안 쏘거나 제일 확실한 걸 쏴. 호위 없는 짐배가 제일 확실해. 뻔한 게 확실한 거야.”

리 첸은 해도대 가장자리에 붙인 종이 한 장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전대의 잔량표였다. 대잠 어뢰 열둘, 대잠 로켓 여든, 폭뢰 마흔, 초계 헬기 가동 둘. 넉 척을 다 합친 숫자였다. 지난 여섯 주 동안 그 배 하나를 위해 쓴 것이 이만큼이었다. 그는 표의 맨 아래 칸을 봤다. 그 칸은 전대가 채워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적은 것이었다. 미끼 선원 열둘.

미끼 수송선에는 해군 예비역 열둘이 타고 있었다. 짐칸에는 모래와 빈 탄약 상자가 실려 있었다. 흘수를 맞추려고 실은 짐이었다. 열둘은 자원했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리 첸은 그 보고서를 믿지 않았지만 고치지도 않았다.

“노드가 그 배를 먼저 들으면 됩니다. 그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노드는 들어. 우리는 기다려. 그 배가 먼저 소리를 내게.”

*

0500부터 신채호함은 3노트로 수송선을 향해 갔다.

그 전에 배 안을 한 번 훑었다. 조용히 가기 전에는 늘 하는 일이었다. 식당 의자 다리마다 감은 고무가 벗겨진 데가 없는지 보고, 공구함 서랍을 테이프로 붙이고, 침상의 금속 버클을 수건으로 감쌌다. 환풍은 한 단 내렸다. 화장실 물은 내리지 않기로 했다. 제하가 어뢰실 걸이에 걸린 무인정의 고정끈을 한 번 더 조였고, 조이다가 끈 끝의 쇠고리가 걸이에 닿을까 봐 손바닥으로 덮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수송선은 12노트로 동쪽으로 갔고, 신채호함은 그 앞길을 비스듬히 끊는 선을 따라 갔다. 가까워지는 데 네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발령소 사람들은 네 시간 동안 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할 일이 없는 것이 이 배에서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오 하사가 0600에 주먹밥을 들고 왔다. 소리가 나지 않게 쟁반 밑에 행주를 깔았다. 한 사람에 하나씩, 김 없이 소금만 뿌린 것이었다. 조타장은 주먹밥을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 하사, 이거 김은?”

“김은 씹을 때 소리가 납니다, 조타장님.”

“그럼 밥은 소리가 안 나?”

“밥은 입 다물고 드시면 안 납니다.”

조타장은 입을 다물고 먹었다. 옆에 있던 수병 하나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다가 조타장과 눈이 마주쳤고, 조타장은 입 안 가득 밥을 문 채로 그를 노려봤다. 볼이 부풀어 있어서 노려보는 얼굴이 되지 않았다.

0730에 수송선과의 거리가 1만 미터를 넘어섰다. 0830에 7천 미터였다. 지완은 수송선 소리를 한쪽 귀로, 나머지 바다를 다른 쪽 귀로 들었다. 헤드폰 한쪽을 조금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두 가지를 따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윤재는 그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교범에도 없었다.

“동쪽은 조용합니다. 너무 조용합니다.”

“너무 조용한 게 뭔가?”

“이 해역은 원래 새우가 많습니다. 새우 소리가 동쪽으로 갈수록 줄어듭니다. 줄다가 어느 선에서 끊깁니다. 새우가 없는 게 아니라, 뭔가가 새우 소리를 가립니다.”

“배인가?”

“배면 기관 소리가 납니다. 기관 소리는 없습니다. 떠 있는 겁니다. 큰 게.”

함장이 해도를 봤다. 동쪽 15킬로미터 언저리에 윤재가 연필로 물음표 하나를 그렸다. 함장은 그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계속 간다.”

*

0910, 동쪽 15킬로미터. 미끼 수송선의 선장이 무전으로 052D를 불렀다. 약속된 호출이 아니었다. 통신장이 리 첸을 돌아봤고, 리 첸은 송수화기를 직접 받았다.

“함장님, 속력을 더 올려도 되겠습니까? 12노트로는 뒤가 자꾸 걸립니다.”

선장의 목소리는 쉰이 넘어 보였다. 예비역 명단에 그는 전직 연안 여객선 선장으로 적혀 있었다. 리 첸은 해도 위 미끼의 자리를 봤다. 속력을 올리면 소리가 커졌고, 소리가 커지면 그 배는 짐배가 서두른다고 읽을 것이었다. 서두르는 짐배는 겁먹은 짐배였다.

“12노트로 가세요. 침로도 그대로.”

“알겠습니다.”

선장은 끊지 않았다. 잡음이 몇 초 흘렀다.

“맞으면 건져 주십니까?”

통신장이 고개를 숙였다. 리 첸은 송수화기를 쥔 손을 바꿔 쥐었다. 지난달 기름띠에서 건진 둘이 떠올랐다. 스물셋 가운데 둘이었다.

“건집니다. 우리가 제일 가까이 있어요.”

그는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잔량표 맨 아래 칸의 열둘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쳤다. 저우 소령은 그 동그라미를 봤지만 무엇을 뜻하는지 묻지 않았다.

*

0955에 거리 4,500이었다. 조준을 풀 수 있는 거리까지 반 시간이 남았다. 윤재는 1번 관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한 발이었다. 이 배에 남은 마지막 한 발이었고, 이 한 발을 쏘면 다음 보급 때까지 이 배는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뢰실에서는 어뢰 담당 중사가 1번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유선 드럼의 풀림 방향을 손가락으로 다시 짚었다. 이미 세 번 짚은 것이었다. 관에 물을 채우는 밸브 손잡이에는 누가 붙였는지 모를 반창고가 한 줄 감겨 있었다. 손잡이를 돌릴 때 쇠가 쇠에 닿는 소리를 줄이려고 붙인 것이었고, 여섯 주 동안 몇 사람의 손때가 타서 반창고가 누렇게 반들거렸다.

1000에 지완이 손을 들었다.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손바닥 전체였다. 멈추라는 뜻이었다.

“아래입니다.”

“아래?”

“바닥입니다. 아주 작습니다. 딸깍 하는 소리가 한 번 났습니다. 기계가 잠에서 깰 때 내는 소리입니다.”

발령소가 얼어붙었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채 속력을 줄이지도 올리지도 못하고 윤재를 봤다. 윤재는 함장을 봤다. 함장은 해도 위의 물음표를 보고 있었다. 동쪽이 아니라 바로 발밑이었다.

“하나 더 났습니다. 조금 떨어진 데서. 또 하나.”

지완은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누른 채 고개를 숙였다. 바닥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차례로 깨어나고 있었다. 이 배가 지나온 길을 따라서였다.

함장의 커피잔이 해도대 모서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고, 잔 속 식은 커피 표면에 작은 물결이 번졌다가 가라앉았다.

1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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