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5,126자) · 강윤재 · 7월 24일(토)
절반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22일 밤, 우군 해역 안쪽에서 군수지원함을 만났다. 사세보에서 온 배였다.
받는 순서는 늘 같았다. 산소와 수소가 먼저, 그다음이 식량, 마지막이 어뢰였다. 이번에는 마지막 순서가 없었다. 보급관 문 대위가 무선으로 짧게 알렸다. 탄약은 서류가 안 나와서 부두에 두고 왔습니다. 대신 무인 잠수정 하나를 실어 왔습니다. 윤재는 그 말을 함장에게 옮겼다. 함장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산소 호스 연결부를 직접 보러 갑판으로 올라갔다.
제하는 새 무인정이 어뢰실 걸이에 걸리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비어 있던 두 걸이 가운데 하나가 찼다. 걸이에 붙은 옛 일련번호 이름표 옆에 새 이름표가 하나 더 붙었다. 제하는 옛 이름표를 떼지 않았다.
식량 팔레트를 풀던 오 하사가 참기름 한 상자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상자 옆면에 일본어로 적힌 쪽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누구도 읽지 못했다. 오 하사는 그것을 떼어 조리실 벽에 붙였다.
문 대위의 무선은 한 줄이 더 있었다. 부두 하역 반장이 탄약 상자에 방수포를 덮어 두었습니다. 윤재는 그 말을 함장에게 옮기지 않았다. 옮길 까닭이 없는 말이었는데, 윤재는 그 말을 한동안 머릿속에서 굴렸다. 누가 누구를 위해 방수포를 덮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뢰 잔량은 둘이었다. 전지는 다시 찼다. 전지가 차는 동안 발령소 벽의 잔량 표시가 한 칸씩 올라갔고, 조타장이 그것을 손가락으로 따라 세다가 여덟에서 멈췄다. 열이틀이었다.
*
7월 24일 0200, 여섯 번째 선단이 해협 중부로 들어왔다.
“수송선 하나, 호위 둘입니다. 수송선은 크고 느립니다. 호위 둘 가운데 하나는 앞에 서고, 하나는 뒤에 섭니다.”
지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늦었다. 윤재는 그것을 알아챘지만 말하지 않았다. 지완은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누른 채 뒤쪽 호위의 소리를 오래 들었다.
“뒤엣것이 이상합니다. 앞엣것처럼 가다가, 가끔 섭니다. 서면 기관을 끄기 직전에 발전기가 한 번 떱니다.”
함장이 해도 앞으로 왔다. 이제는 발령소의 모두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쥐는 소리가 났다. 가죽이 손바닥에 눌리는 작은 소리였다.
“어뢰 둘이야. 몇 발 쓸 건가?”
“한 발입니다.”
윤재가 대답했다. 함장이 윤재를 봤다.
“지난번엔 두 발씩 넣자고 했지.”
“지난번엔 넷이 있었습니다. 지금 둘을 다 쓰면 다음이 없습니다. 한 발로 수송선을 맞히고, 한 발은 남겨야 합니다. 저 뒤엣것이 우리를 따라오면, 남긴 한 발이 있어야 합니다.”
“저 배를 쏘려고 남기는 건가?”
“쏘지 않으려고 남깁니다. 한 발도 없으면 도망만 쳐야 합니다. 한 발이 있으면 저쪽이 우리를 쫓을 때 한 번 더 생각합니다.”
함장은 한동안 해도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발.”
*
표적의 침로를 푸는 데 19분이 걸렸다. 수송선은 곧게 갔다. 곧게 가는 배는 서두르는 배였고, 서두르는 수송선 뒤에 서두르지 않는 호위가 있었다. 0241에 1번 관에 물을 채웠다. 채우는 동안 지완이 손가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뒤쪽 호위가 움직이는 동안만 채웠다. 호위가 서면 지완이 주먹을 쥐었고, 채우던 물을 멈췄다. 세 번 멈췄다. 관 하나를 채우는 데 11분이 걸렸다.
0253에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채우는 소리보다 컸다. 그 소리가 끝나는 순간 뒤쪽 호위가 다시 섰다. 지완이 주먹을 쥐었다. 발령소가 얼어붙었다. 20초가 지났다. 호위가 다시 움직였다. 지완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0254에 한 발이 나갔다.
배가 사람 팔 하나만큼 흔들렸다. 유선이 풀려 나가는 소리가 가늘게 이어졌다. 윤재는 초시계 대신 지완의 뒷모습을 봤다. 헤드폰 줄이 어깨에서 조금 떨렸다.
14분이 지났다. 그 14분 동안 조타장은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함장은 식은 커피잔을 들고 있었는데, 잔 속 표면이 배의 미세한 떨림을 따라 잘게 흔들렸다. 0308에 지완이 말했다.
“명중입니다.”
낮고 긴 소리였다. 수송선은 기울지 않고 선미부터 가라앉았다. 기관실에 맞은 것이었다. 가라앉는 소리는 12분 동안 이어졌다. 지완은 이번에도 그 방위를 듣지 않았다. 대신 뒤쪽 호위를 들었다.
“뒤엣것이 섰습니다.”
앞쪽 호위는 가라앉는 수송선 쪽으로 가속했다. 구조였다. 뒤쪽 호위는 그 자리에서 기관을 내렸다. 발전기가 한 번 떨었다가 가라앉았다. 지완이 서른 척 어선 속에서 골라냈던 그 떨림이었다.
“부장님, 그 배입니다.”
윤재는 그 말을 입속으로 한 번 되뇌었다. 여섯 주 동안 멈춰서 듣던 배였다. 사흘 동안 머리 위에 있던 배였다. 어선 뒤에 숨어 있던 배였다. 이름도 번호도 몰랐다. 모르는 채로 윤재가 말했다.
“그 배가 듣고 있어. 우리가 한 발 쏜 자리를.”
발령소의 누구도 되묻지 않았다. 그 배라고만 해도 다들 알았다. 조타장이 입속으로 그 두 글자를 한 번 따라 했다.
*
0314에 그 배가 쐈다.
“물에 들어온 것 둘입니다. 대잠 어뢰입니다. 그 배에서 나왔습니다.”
“기만기 하나. 심도 240, 우현으로 천천히. 속력 올리지 마.”
올리면 소리가 났다. 그 배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만기가 나가 이 배의 소리를 흉내 내며 동쪽으로 갔다. 어뢰 하나가 그쪽으로 틀었다. 다른 하나는 틀지 않았다. 곧게 이쪽 방위로 왔다.
“하나는 기만기에 안 속습니다. 그대로 옵니다.”
윤재는 해도를 봤다. 층이 있었다. 층 아래로 들어가면 위에서 오는 소리가 꺾였다.
“심도 300.”
배가 아래로 기울었다. 벽에서 쇠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지난달 들었던 소리였다. 발령소 사람들은 그 소리를 이제 알았고, 알아서 더 오래 들렸다. 0317에 어뢰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높은 소리였다가 낮아졌다. 지나간 어뢰는 돌아오지 않았다. 층 위에서 이쪽을 잃고 한참을 돌다가 0325에 연료가 다해 멎었다.
기만기 쪽으로 간 어뢰는 0319에 동쪽에서 터졌다. 배가 한 번 밀렸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피해 보고가 차례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전기실도 기관실도 늦지 않았다. 최민석의 목소리가 제시간에 이상 없다고 했다. 윤재는 그 목소리의 끝이 조금 높아진 것을 들었다.
*
0340에 윤재가 음탐실 문턱에 섰을 때 지완이 헤드폰을 벗고 있었다.
“뒤엣것이 안 옵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앞엣것이 구조를 끝내고 그쪽으로 붙었습니다. 둘 다 섰습니다.”
“따라오지 않는다고?”
“예. 쏘고 나서 한 번도 안 움직였습니다.”
지완은 헤드폰을 무릎 위에 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지완은 그 손을 윤재 쪽으로 조금 내밀었다가 도로 거뒀다.
“부장님, 손이 차갑습니다.”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령소 온도는 19도였다. 지완의 손끝이 하얬다. 지완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가 무릎 사이에 끼웠다. 그렇게 한참 앉아 있었다. 윤재는 문턱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았다. 한참 뒤에 지완이 손을 빼서 헤드폰을 다시 썼다.
*
0600에 윤재는 항해일지에 적었다. 0254 어뢰 1발 발사, 0308 수송선 1척 명중, 0314 피뢰 2, 기만 1, 회피 1, 0340 이탈. 그 아래에 만재 톤수를 더했다. 지금까지 일곱 척, 합계 9만 1천 톤. 어뢰 잔량 하나.
받은 요약은 보급 때 받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D-15. 그 며칠 사이에 해협 남쪽으로 다른 선단 하나가 닿았다는 소식이 거기 있었다. 끊은 것과 닿은 것이 비겼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윤재는 D-15라는 숫자를 일지 여백에 다시 옮겨 적었다. 일주일 전에도 15였다. 이 배가 한 척을 끊는 동안 저쪽은 한 척을 들여보냈다. 어뢰는 하나 남았고, 저쪽 조선소는 쉬지 않았다. 이 셈이 계속되면 어느 쪽이 먼저 바닥나는지는 계산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적으려던 것은 그 배였다. 멈춰서 듣는 배, 쏘고 나서 따라오지 않는 배. 칸이 없는 자리에 적을 것이었다. 윤재는 펜을 놓았다. 그 배에 대해 적을 수 있는 것이 아직 없었다. 이름도 번호도 몰랐다.
함장이 뒤에서 일지를 봤다.
“한 발 남았네.”
“예.”
“그 한 발로 뭘 할 건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쏘지 마. 쏠 자리를 알 때까지.”
함장은 그 말을 하고 해도대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짚었다가 발령소를 나갔다. 복도에서 오 하사와 마주쳐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단 이야기였다. 흰죽이 있느냐고 묻는 목소리였다.
*
0900, 052D의 함교 아래 후갑판에는 구조된 수송선 선원들이 담요를 두르고 줄지어 앉아 있었다. 열넷이었다. 몇은 기름을 뒤집어써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고, 한 사람은 손목에 감은 시계를 계속 귀에 대 보고 있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시계였다. 리 첸은 난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함교로 올라갔다. 저우 소령이 보고를 읽었다. 수송선 한 척 침몰, 선원 스물둘 가운데 열넷 구조, 대잠 어뢰 둘 발사, 하나 기만기에 폭발, 하나 연료 소진.
“추적하시겠습니까? 방위는 남서쪽입니다. 아직 멀리 못 갔습니다.”
리 첸은 고개를 저었다.
“쫓으면 우리가 시끄러워. 그 배는 시끄러운 걸 따라오지 않아. 조용한 데로 가.”
“그럼 어떻게 합니까?”
“기다린다. 그 배는 짐배를 쏜다. 짐배는 매주 온다. 우리는 짐배 곁에 서서 기다린다.”
“전대는 추적 전담이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건 추적이 아닙니다.”
“오늘 그 배는 한 발만 쐈어. 전엔 두 발씩 쐈지. 어뢰가 모자라는 거야. 모자라는 배는 아무 데나 안 쏴. 제일 큰 것만 쏴. 제일 큰 게 올 때까지 우리는 그 곁에 있으면 돼.”
저우는 받아 적었다. 받아 적고 나서 물었다. 제일 큰 것이 무엇이냐고. 리 첸은 해도대 서랍에서 호위 명단을 꺼내 맨 뒷장을 폈다. 맨 아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3제대.
지난주 천다하이가 탄 민간선은 9노트로 해협을 건너 무사히 닿았다. 그 배는 그날 그 선단을 쏘지 않았다. 리 첸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 배의 기관실에서 전대 비상 주파수로 부른 일은 없었다.
그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궈원의 이름 아래, 보고 2라고 적힌 줄 밑에 그는 아무것도 더 적지 않았다. 대신 편대 배치 칸의 화살표 하나를 지웠다. 쫓는다는 뜻의 화살표였다. 그 자리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마커 끝이 말라 가서 동그라미는 한쪽이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