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131자) · 모리타 · 7월 20일(화)

사세보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20일 0600, 사세보 항 제3부두의 크레인 운전석에서 모리타 겐지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랐다.

쉰여덟 살이었고, 이 부두에서 하역 반장으로 스물여섯 해를 일했다. 운전석 유리창 너머로 회색 군수지원함 한 척이 부두에 붙어 있었다. 선체 옆구리에 한글이 적혀 있었다. 모리타는 한글을 읽지 못했지만, 이 배가 나흘째 이 부두에 있다는 것은 알았다. 나흘 전 들어올 때 이 배는 선체 여기저기 녹이 흘러내린 자국이 있었고, 오스미 해협 밖에서 하루를 떠 있다 왔다고 했다.

부두 바닥에는 그 배에 실을 짐이 품목별로 나뉘어 놓여 있었다. 산소 실린더 묶음, 수소 저장 용기, 식량 팔레트 열여섯, 그리고 방수포 없이 햇볕에 드러난 긴 나무 상자 넷. 상자마다 빨간 글씨로 위험물 표시가 찍혀 있었다.

아침 부두에는 기름과 바닷물과 녹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갈매기 몇 마리가 식량 팔레트 위를 맴돌다가 인부가 손을 휘젓자 흩어졌다. 항만 건너편 미군 기지 쪽에서는 헬기 한 대가 낮게 떠올라 남쪽으로 갔다. 전쟁이 난 뒤로 이 항구의 아침은 늘 그 헬기 소리로 시작했다. 모리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서류철을 폈다. 품목별 하역 허가서였다. 산소, 허가. 수소, 허가. 식량, 허가. 무인 수중 장비 1기, 허가. 탄약 4, 칸이 비어 있었다. 도장이 찍혀야 할 자리였다. 그 빈칸만 종이 결이 매끈했다. 다른 칸들은 인주가 스며 조금씩 부풀어 있었다.

*

0700에 한국 배의 보급관이 크레인 밑으로 왔다. 문 대위라고 했다. 서른 초반으로 보였고, 나흘 동안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그는 일본어를 조금 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일본어였다.

“반장님, 오늘 어뢰를 실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서류가 없습니다.”

“서류는 오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오늘 나온다고 했습니다. 먼저 실어 주시면 서류가 오는 대로 맞추겠습니다.”

모리타는 서류철의 빈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칸에 도장이 없으면 크레인이 저 상자를 들 수 없습니다. 제 크레인이 아니라 법이 못 들게 합니다.”

“반장님, 저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모르는 게 제 일입니다.”

문 대위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부두 끝의 나무 상자 넷을 돌아봤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모리타를 봤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 상자를 기다리는 배가 있습니다. 거기 쉰세 명이 타고 있습니다. 어뢰가 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둘로는 한 번밖에 못 싸웁니다.”

모리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쉰세 명이라는 숫자를 그는 처음 들었다. 이 배가 누구에게 무엇을 나르는지 모르는 것이 그의 일이었는데, 지금 그것을 들어 버렸다.

“산소하고 수소하고 식량부터 싣겠습니다. 그건 서류가 있습니다.”

“어뢰는요?”

“서류가 오면.”

문 대위가 한 걸음 다가섰다.

“반장님이 저 상자를 드시고, 서류가 오늘 오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안 오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 이름을 적어 드리겠습니다.”

“대위님 이름은 여기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제 이름도 못 합니다. 저 상자를 드는 순간 이 부두는 싸우는 쪽의 부두가 됩니다. 그러면 여기도 표적입니다. 제 인부들이 여기서 일합니다.”

문 대위는 한참 말이 없었다. 모리타는 그 얼굴에서 반박할 말을 찾는 기색을 봤다.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고 나서 삼키는 얼굴이었다. 모리타의 아들은 오키나와에 있었다. 이 부두가 표적이 되는 것과 오키나와가 표적이 되는 것이 다른 일인지 같은 일인지, 모리타는 그 아침에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0800에 크레인이 움직였다. 산소 실린더 묶음이 먼저 올라갔다. 모리타는 레버를 잡은 손목에 힘을 빼고 실린더가 흔들리지 않게 천천히 들었다. 가스 용기는 부딪히면 안 되었다. 그다음이 수소였고, 그다음이 식량 팔레트였다. 쌀 포대와 통조림과 라면 상자가 비닐로 감겨 있었다. 한 팔레트는 전부 참기름이었다. 모리타는 그것을 보고 잠깐 레버를 멈췄다. 잠수함에서 참기름을 이렇게 많이 쓰는지는 몰랐다.

1010에 부두 정문 쪽이 시끄러워졌다. 확성기 소리가 두 방향에서 들렸다. 모리타는 크레인 운전석에서 정문을 내려다봤다.

정문 왼쪽에 한 무리가 있었다. 현수막에 휘말리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노인이 많았고, 아이를 업은 여자도 있었다. 오른쪽에 다른 무리가 있었다. 현수막에 동맹을 지켜라고 적혀 있었다. 이쪽은 젊은 남자가 많았고 일장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두 무리 사이에 경찰이 한 줄로 서 있었다. 두 확성기가 서로의 말을 덮었다. 모리타는 어느 쪽 말도 끝까지 알아듣지 못했다. 왼쪽의 한 노인이 손팻말을 높이 들었다. 손팻말에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지난달보다 세 배였다. 오른쪽의 한 젊은이가 그 노인을 향해 무어라 소리쳤고, 노인은 손팻말을 내리지 않았다. 경찰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한 걸음 옮겨 섰다.

그의 아내는 지난주 왼쪽 무리에 있었다. 아들은 자위대에 있었다. 오키나와였다. 저녁 식탁에서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1140에 휴대전화들이 한꺼번에 울었다. 부두 전체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겹쳐 올라왔다. 모리타의 휴대전화 화면에 붉은 글자가 떴다. 미사일 발사 정보, 즉시 건물 안이나 지하로 피난하십시오.

부두의 작업자들이 뛰기 시작했다. 정문 앞의 두 무리도 흩어졌다. 현수막이 바닥에 떨어져 사람들 발에 밟혔다. 문 대위가 크레인 밑에서 모리타를 올려다보며 손짓했다.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모리타의 휴대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오키나와에서 온 문자였다. 아들이 보낸 것이었고, 한 줄이었다. 여기도 울림, 괜찮음. 모리타는 화면을 끄고 레버를 잡았다. 내려가지 않았다. 크레인에 산소 실린더 마지막 묶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을 공중에 둔 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는 레버를 천천히 당겨 묶음을 갑판 위에 내려놓았다. 흔들리지 않게 내려놓는 데 40초가 걸렸다.

그 40초 동안 하늘 높은 곳에서 무언가가 번쩍였다. 두 번이었다. 한참 뒤에 소리가 왔다. 둔하고 먼 소리였다. 항구 밖에 떠 있던 호위함에서 쏜 요격탄이 무언가를 맞힌 것이었다. 잠시 뒤 항구 바깥 바다에 작은 물기둥 몇 개가 올랐다. 떨어지는 파편이었다.

모리타는 운전석에서 그 물기둥을 봤다. 그리고 부두에 남은 나무 상자 넷을 봤다. 햇볕 아래 위험물 표시가 빨갛게 드러나 있었다.

1220에 경보가 풀렸다. 사람들이 돌아왔다. 작업자들은 말없이 제자리로 돌아가 장갑을 다시 꼈다. 누구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정문 앞에는 밟힌 현수막 두 장이 겹쳐 있었다. 어느 쪽이 위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1400에 부두 사무실의 텔레비전에서 국회 중계가 흘렀다. 방위성 사람이 안보 3문서와 반격 능력을 말하고 있었다. 장거리 미사일을 도입하면 쏘기 전에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야당 의원이 그러면 우리가 먼저 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사무실의 하역 인부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그것을 봤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오전에 하늘에서 번쩍인 것을 다들 봤다.

문 대위가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반장님, 도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류가 오늘 안 나온답니다. 관저에서 품목별 허가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답니다.”

모리타는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반쯤 남은 밥 위에 매실 장아찌 하나가 그대로 있었다.

“그러면 오늘은 안 됩니다.”

“배는 오늘 나가야 합니다. 더 기다리면 저쪽 배의 산소가 모자랍니다. 산소를 먼저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면 산소를 가져가십시오.”

“어뢰 없이요?”

“서류 없이는 안 됩니다.”

문 대위는 한동안 사무실 문틀을 잡고 서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그러고는 손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모리타에게 숙인 것인지, 바닥을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인 수중 장비는 실어 주십시오. 그건 서류가 있습니다.”

“그건 싣겠습니다.”

*

1600에 모리타는 무인 잠수정을 실었다. 길이 3미터쯤 되는 원통이었고, 운반 거치대에 묶여 있었다. 탄약이 아니었다. 폭약이 없는 기계였다. 갑판 위에서 한국 수병 둘이 거치대 모서리를 붙잡고 기다렸다. 모리타는 그것을 산소보다 더 천천히 들었다. 거치대가 갑판에 닿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았다.

1800에 적재가 끝났다. 해가 기울어 크레인 그림자가 부두를 가로질러 바다까지 길게 누웠다. 인부들이 장갑을 벗어 허리춤에 꽂았다. 부두에 남은 것은 나무 상자 넷이었다. 모리타는 창고에서 방수포를 가져왔다. 혼자 들기에는 무거운 방수포였다. 인부 둘이 따라와 모서리를 잡았다. 셋이 상자 넷을 덮고, 모서리를 밧줄로 부두 고리에 묶었다. 밤에 비가 온다고 했다.

묶고 나서 모리타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분필 토막을 꺼냈다. 부두 바닥에 컨테이너 번호를 적을 때 쓰는 노란 분필이었다. 그는 방수포 위, 맨 앞 상자가 있는 자리에 몸을 숙여 적었다. 明日書類が来れば. 내일 서류가 오면.

인부 하나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내일 오면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고. 모리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분필 토막을 주머니에 도로 넣고, 방수포 모서리의 밧줄 매듭을 한 번 더 당겨 봤다.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물여섯 해 동안 이 부두에서 오지 않는 서류를 많이 봤다.

*

2000에 모리타는 사무실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늦는다고 했다. 아내는 오전의 경보 때 어디 있었느냐고 물었다. 크레인에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오늘 정문 앞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경보가 울려서 못 갔다고. 그러고는 저녁을 차려 두겠다고 했다. 둘 다 오키나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2200에 한국 군수지원함이 부두를 떠났다. 예인선이 선수를 돌리는 동안 문 대위가 갑판 난간에 서서 부두를 봤다. 모리타는 크레인 밑에서 그것을 올려다봤다. 둘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문 대위는 난간에서 한 손을 들어 경례를 하려다가, 반쯤 올린 손을 도로 내렸다. 민간인에게 하는 경례가 아니었다. 모리타는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부두에서 스물여섯 해 동안 떠나는 배에 하던 인사였다.

배가 방파제를 지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선미의 흰 등이 점점 작아지다가 방파제 등대 불빛과 겹쳤고, 겹친 뒤로는 어느 것이 배인지 알 수 없었다. 산소와 수소와 식량과 참기름과, 무인 잠수정 하나를 싣고 갔다. 어뢰는 싣지 않았다.

서류는 그 주에 오지 않았다.

밤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방수포 위의 노란 분필 글씨가 빗방울을 맞아 가장자리부터 번졌다.

1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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