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154자) · 강윤재 · 7월 18일(일)

부표 그물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17일 2300, 052D 함교의 해도대 위에 한국어 기사 한 장이 번역문과 함께 놓여 있었다. 전대 정보참모부가 오후에 보내온 것이었다. 번역문 맨 위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참고.

리 첸은 번역문보다 원문을 먼저 봤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 사이에 아라비아 숫자만 읽혔다. 6월 5일, 6월 17일, 6월 30일, 7월 9일. 그리고 맨 아래에 사진 한 장. 칠판이었고, 분필 가위표가 날짜 칸마다 쳐져 있었다.

그는 날짜 넷을 해도 옆 여백에 옮겨 적었다. 전대의 손실표에는 같은 기간에 잃은 배가 더 있었다. 6월 23일의 보급선과 피격된 호위함, 표류 기뢰로 분류된 한 척, 원인 미상으로 남은 두 척. 전대는 그것들을 모두 한 잠수함에 몰아 붙이기도 하고, 따로 떼어 놓기도 했다. 그래서 원이 넓었다. 이 기사는 넷을 골라 한 줄에 묶었다. 해운 소식통이라고 적었지만, 넷을 한 줄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은 넷이 한 배의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뿐이었다.

저우 소령이 번역문을 넘겨 읽고 나서 말했다.

“기자가 쓴 겁니다. 소식통이라는 건 아무나 될 수 있습니다. 이걸로 원을 줄였다가 틀리면 지난번처럼 또 보고가 틀립니다.”

“검열을 거친 기사야. 한국은 지금 전시 검열을 해. 검열관이 해역은 지웠어. 날짜는 남겼고. 지운 게 있다는 건 지울 게 있었다는 거야.”

“해역이 지워졌다는 건 어떻게 아십니까?”

“날짜만 있는 기사는 없어. 기자는 늘 어디서를 써. 이 기사에는 어디서가 없어.”

저우는 번역문을 다시 봤다. 리 첸은 원문 사진 속 칠판의 가위표를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해협 건너편 아이들의 날짜를 셌다. 그 날짜가 이 배의 날짜와 겹쳤다.

“이 넷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워.”

저우 소령이 손실표에서 네 칸을 남기고 나머지에 줄을 그었다. 리 첸은 네 척이 가라앉은 자리를 해도에 찍고, 그 사이의 날수로 거리를 나눴다. 조용히 가는 잠수함은 하루에 150킬로미터를 넘지 못했다. 그리고 7월 4일 민병 어선이 본 검은 물체, 7월 2일의 송신 자리, 7월 11일 어선단 속의 빈자리를 더했다. 점이 일곱이 되었다. 일곱 점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남쪽 보급 해역과 북쪽 차단 해역 사이를 오가는 배였다.

그는 컴퍼스를 폈다. 지금까지 그리던 원의 반지름을 절반으로 줄였다.

“여기에 부표를 깐다. 마흔 개. 초계기 둘을 불러.”

“마흔이면 재고 전부입니다.”

“그 배를 잡는 데 쓰라고 준 재고야.”

*

7월 18일 0100, 신채호함 심도 180에서 지완이 헤드폰을 눌렀다.

“위에 프로펠러 소리입니다. 쌍발입니다. 높지 않습니다.”

프로펠러 소리는 물속에서 잘 들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낮게 날 때만, 그것도 바로 위를 지날 때만 수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물속으로 새어 들어왔다. 0104에 첫 번째 부이가 물에 떨어졌다. 작은 것이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청음기를 아래로 풀어 내리는 가는 소리였다. 0106에 두 번째, 0107에 세 번째였다. 떨어질 때마다 발령소의 누군가가 어깨를 움츠렸다. 물속까지 들리는 소리는 작았지만, 그 작은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들 알았다. 누군가 우리 머리 위에 귀를 하나씩 내려놓고 있었다.

“간격이 일정합니다. 줄을 긋고 있습니다. 넓게 먼저 깝니다.”

윤재는 해도를 봤다. 지완이 부르는 방위를 따라 연필로 점을 찍었다. 점들이 신채호함의 동쪽과 서쪽에 한 줄씩, 평행하게 늘어섰다. 두 줄 사이가 이 배가 있는 자리였다.

0130까지 스물이 떨어졌다. 0150까지 마흔이 떨어졌다. 두 줄이 네 줄이 되고, 네 줄의 끝이 서로 이어져 사각형이 됐다. 함장이 해도 위의 사각형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우리를 가운데 두고 깔았어. 어떻게 알았을까?”

윤재는 대답하기 전에 해도 위의 점들을 다시 셌다. 마흔이었다. 이 해역에 마흔을 한 번에 까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저쪽은 넷을 던지고 열하나를 던졌다. 이번에는 재지도 찾지도 않고 가뒀다.

“우리가 갈 만한 자리를 좁혔을 겁니다. 이 해역은 우리가 어뢰 받으러 남쪽을 오가는 길목입니다. 누가 그걸 셌습니다.”

*

0210에 지완이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부이 깊이가 다릅니다. 절반은 얕고 절반은 깊습니다. 층 위에 스물, 층 아래에 스물입니다.”

윤재는 그 말을 오래 붙들었다. 층 위에만 청음기를 넣으면 층 아래의 배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잠수함은 층 아래로 숨었다. 그런데 저쪽은 절반을 층 아래로 넣었다. 우리 초계기도 그렇게 깐다고 윤재는 들은 적이 있었다. 저쪽도 같은 교범을 읽었다. 아니면 같은 실수를 했다가 같은 방식으로 고쳤다.

“층 아래로 내려가도 들립니다. 위로 올라가도 들립니다.”

“그럼 어디로 가나?”

“부이와 부이 사이입니다. 간격이 4킬로미터쯤 됩니다. 한가운데로 가면 양쪽 끝에 겨우 걸립니다. 겨우 걸리면 소리를 아주 작게 내면 됩니다.”

“얼마나 작게?”

“3노트 밑으로요. 2노트 반이면 됩니다.”

함장이 윤재를 봤다. 윤재가 조타장에게 말했다.

“2노트 반. 부이 줄 사이 가운데로, 북쪽으로.”

부이는 8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가라앉았다. 저쪽은 8시간마다 새로 깔 것이었다. 2노트 반으로 이 사각형을 빠져나가는 데 12시간이 걸렸다.

*

0400에 기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전지실 온도가 오르고 있었다.

연료전지는 조용했지만 느리게 오래 돌리면 열이 쌓였다. 환풍을 세게 돌리면 열이 빠졌지만 환풍기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부이에 걸릴 수 있었다. 기관장 백 소령은 환풍을 최저로 두고 온도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계까지 8도가 남아 있었다.

윤재가 전지실로 내려갔을 때 최민석이 전지실 문 앞 바닥에 앉아 있었다. 등을 벽에 대고 다리를 모은 채였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더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민석은 오른손을 문틈 안쪽 전지 함체 옆면에 대고 있었다. 손바닥을 펴서 쇠에 붙이고 있었다.

“뭐 하나?”

“온도 봅니다.”

벽에 온도계가 있었다. 디지털 숫자가 초록색으로 떠 있었고, 0.1도 단위까지 나왔다. 전지실 안에도 센서가 여섯 개 있었고, 그 값은 기관실 화면에 모였다.

“계기가 있잖나.”

“계기는 한 군데만 잽니다. 이 함체는 열이 한쪽으로 몰립니다. 몰리는 자리는 손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계기보다 먼저 뜨거워집니다.”

민석은 손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여섯 바늘 꿰맨 왼손등의 실밥은 이제 뽑혀 있었고, 오른손바닥에는 지난달 배관을 쥐었던 자리가 아직 조금 붉었다. 그는 그 손으로 쇠를 짚고 있었다.

“얼마나 앉아 있을 건가?”

“부이 빠져나갈 때까지입니다.”

기관장 백 소령이 기관실 쪽에서 와서 민석을 내려다봤다. 마흔 중반의 사람이었고, 말수가 적었다.

“최 하사, 들어가서 자. 계기가 다 본다.”

“계기는 한 군데만 봅니다, 기관장님.”

“알아. 그래도 사람은 자야 돼. 내일 네 손이 필요할 수 있어.”

“내일 필요하면 내일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백 소령은 한참 민석을 내려다보다가, 기관실로 돌아가서 모포 한 장을 가져와 민석의 무릎에 던져 놓았다. 민석은 모포를 덮지 않고 엉덩이 밑에 깔았다. 철판 바닥이 찼다.

윤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올라가다가 계단에서 한 번 돌아봤다. 민석이 손바닥을 한 뼘 옆으로 옮겨 다시 붙이고 있었다.

*

0730에 부이 한 줄이 새로 깔렸다. 두 번째 그물이었다. 신채호함은 그때까지 사각형의 절반을 빠져나와 있었다. 새 그물은 빠져나온 쪽을 덮었다. 저쪽이 이쪽의 방향을 짐작한 것이었다.

“앞에 새 줄입니다. 간격이 좁습니다. 3킬로미터입니다. 가운데로 가도 양쪽에 다 걸립니다.”

2노트 반으로도 안 되는 간격이었다. 뒤로 돌면 옛 그물이 아직 살아 있었다. 공기는 무거워지고 있었다. 환풍을 줄인 지 6시간이 넘었고, 발령소 사람들은 말없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윤재는 멈추라고 했다. 배가 섰다. 서 있으면 조금씩 가라앉았고, 가라앉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윤재는 해도 위의 새 줄을 봤다. 돌아갈 길은 옛 그물이었다. 앞은 새 그물이었다.

0840에 지완이 손을 들었다.

“앞줄 가운데 부이 하나가 이상합니다. 소리가 작아집니다.”

“고장인가?”

“전지입니다. 부이는 전지로 청음기를 돌리는데, 이 부이는 먼저 떨어진 줄에서 옮겨 깐 겁니다. 새 부이가 모자랐을 겁니다. 전지가 거의 다 됐습니다. 소리가 늘어집니다.”

지완은 헤드폰을 누른 채 그 부이의 소리를 들었다. 청음기가 스스로 내는 아주 작은 전기 잡음이 조금씩 낮아지고 느려졌다. 그러다 0852에 뚝 끊겼다.

“죽었습니다. 앞줄에 구멍이 났습니다. 폭은 6킬로미터입니다.”

“간다. 2노트 반, 그 구멍 가운데로.”

배가 다시 움직였다. 발령소에서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양쪽 부이의 청음기가 이 배의 소리 끝자락에 닿을까 말까 한 거리였다. 지완은 양쪽 부이의 소리를 번갈아 들었다. 어느 쪽에서도 이쪽을 향해 무언가가 켜지는 기척은 없었다.

구멍을 지나는 데 1시간 40분이 걸렸다. 그동안 조타장은 속력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한 번은 손바닥의 땀을 바지에 닦으려다가 옷 스치는 소리가 날까 봐 그만두었다. 1040에 신채호함은 두 번째 그물을 빠져나왔다. 1110에 지완이 헤드폰을 벗었다. 더는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없었다.

*

1130에 부상했다. 18분이었다. 전자 지원 화면은 비어 있었다. 초계기들은 그물 쪽에 있었다.

받은 정세 요약은 여느 때처럼 길었다. 윤재는 마지막 줄부터 읽었다. 이 해역 우군 잠수함 없음. 그 위에 사령부 판단 한 줄이 있었다. 상륙군 보급 잔량 D-15. 그 위에 외신과 국내 통신 기사 요약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한 줄이 이것이었다.

대만 서해안 보급선 잇단 실종, 6월 5일·17일·30일, 7월 9일. 서울통신 배소현.

윤재는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첫 번째는 날짜를 읽었다. 두 번째는 이름을 읽었다. 날짜 넷은 이 배의 항해일지에 적힌 날짜와 같았다.

1200에 기관실에서 전지실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윤재는 전지실로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요약지를 네 번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윤재는 해도대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오늘 새벽 저쪽이 깐 사각형의 한가운데와, 기사에 적힌 날짜 넷이 해도 위에서 한 장의 그림처럼 겹쳐 보였다. 그것을 누가 겹쳤는지 윤재는 알 수 없었다.

주머니에는 6월에 넣어 둔 요약지가 이미 한 장 있어서, 단추가 잘 채워지지 않았다.

1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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