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129자) · 배소현 · 7월 15일(목)
실종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15일 0900, 대만 서해안 어느 읍내의 초등학교 강당에 포 소리가 세 번 들어왔다.
린위팅은 칠판 앞에 서 있었다. 강당 창문은 전부 합판으로 막혀 있었고, 합판 틈으로 들어온 빛이 마룻바닥에 가는 금을 몇 줄 그었다. 바닥에는 매트가 깔려 있고, 매트 위에 교실에서 들고 나온 책상 서랍 스무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랍마다 아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서랍을 베개 삼아 누워 있다가 첫 번째 포 소리에 일어나 앉았다.
두 번째는 가까웠다. 강당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흔들리다 멎었다. 세 번째에 합판 한 장이 창틀에서 조금 밀렸고, 그 틈으로 먼지와 함께 탄내가 들어왔다. 해안 쪽이었다. 교두보에서 20킬로미터라고 했다. 상륙군이 해안에서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한 지 보름이 넘었다. 그 대신 해안의 포가 매일 아침 이 시간쯤 세 번씩 울었다.
“선생님, 오늘은 세 번이에요.”
맨 앞의 남자아이가 손가락 셋을 들었다. 린위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다섯 번이었다. 그저께는 일곱 번이었다. 줄고 있었다. 탄약이 모자란다는 말을 읍사무소 방송이 전했는데, 누구의 탄약이 모자란다는 것인지는 방송이 말하지 않았다.
강당 입구 옆 벽에는 한광 훈련 때 붙인 방공호 표지판이 그대로 있었다. 고슴도치 그림 아래 화살표 하나가 지하 계단을 가리켰다. 작년 훈련 때 아이들은 그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포 소리가 멎자 린위팅은 칠판으로 돌아섰다. 칠판 오른쪽 위에 아이들이 매일 쓰는 칸이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반장이 분필로 그날 날짜에 가위표를 쳤다. 오늘 날짜는 아직 비어 있었다. 반장이 분필을 들고 일어섰다가, 린위팅을 돌아봤다.
“저녁에 칠까요, 지금 칠까요?”
“저녁에. 하루가 다 지나면.”
반장이 분필을 내려놓았다. 강당 뒤쪽에서 어느 집 아버지가 합판 문을 밀고 들어왔다. 어민이었고, 배를 묶어 둔 지 두 달째라고 했다. 출어가 금지된 뒤로 그는 매일 아침 포 소리가 끝나면 강당에 와서 아이 얼굴을 한 번 보고 갔다. 오늘도 딸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린위팅에게 고개를 숙이고, 도로 나갔다. 그의 장화에서 갯벌 냄새가 났다. 린위팅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인터넷은 한 달째 거의 끊겨 있었고, 읍내 편의점 앞에 설치된 위성 단말기에서만 문자가 나갔다. 편의점은 문을 닫지 않았다. 전기가 끊겨도, 포 소리가 들려도 닫지 않았다. 점원이 앞치마에 손전등을 꽂고 서 있었다. 린위팅은 아이들을 반장에게 맡기고 편의점까지 걸었다. 5분 거리였다. 거리의 신호등은 꺼져 있었고, 교차로마다 민방위 조끼를 입은 노인이 손으로 차를 세웠다. 차는 거의 없었다. 편의점 앞에는 줄이 서 있었다. 위성 단말기 하나에 한 사람씩, 한 사람에 3분이었다. 줄 선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전화 화면에 보낼 말을 미리 적어 두고 있었다. 린위팅 앞의 할머니는 대만 동쪽에 사는 딸에게 보낼 말을 적어 두었는데, 화면을 들여다보니 한 줄이었다. 살아 있다. 할머니는 그 한 줄을 보내고 나서 3분 가운데 2분 넘게 남은 시간을 린위팅에게 넘겨주었다.
린위팅은 칠판을 찍고 강당을 찍고 편의점 앞의 줄을 찍었다. 그리고 서울의 기자에게 보냈다. 지난달 바르샤바에서 한 번 전화를 걸어왔던, 한국 통신사의 기자였다.
*
같은 날 1000, 서울 국방부 기자실. 배소현은 창가 자리 노트북 앞에서 그 사진들을 받았다.
바르샤바에서 돌아온 지 보름이었다. 폴란드 쪽은 후배가 넘겨받았다. 회사는 서울이 더 급하다고 했고, 서울에서 소현이 맡은 것은 대만 해협이었다. 바르샤바에서 마지막으로 쓴 기사는 철수 명령을 받고도 전선에 남은 한국인 정비관 이야기였다. 이름은 쓰지 않았다. 해협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해협 밖에서 해협을 썼다. 외신과 해운 회사 공시와 보험사 통보와, 편의점 위성 단말기로 들어오는 문자로 썼다.
세 번째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 칠판이었다. 오른쪽 위에 날짜들이 적혀 있었고, 그 위에 분필 가위표가 줄지어 쳐져 있었다. 5월 23일부터였다. 가위표는 아이 손으로 친 것이라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칸을 넘어 옆 날짜까지 걸쳐 있었다. 마지막 가위표는 7월 14일이었다. 7월 15일은 비어 있었다.
소현은 그 사진을 오래 확대해 봤다. 그러고 나서 노트북 옆에 펼쳐 둔 수첩을 봤다. 수첩에는 날짜 넷이 적혀 있었다. 6월 5일, 6월 17일, 6월 30일, 7월 9일. 대만 서해안으로 가던 대형 수송선이 연락이 끊긴 날짜였다. 외신과 해운 보험사 통보에서 하나씩 모았다. 날짜 옆에 대략의 해역이 적혀 있었다. 해협 북부, 해협 중부, 해협 중부, 해협 남부.
그리고 날짜 넷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우리 군 관계자, 해당 실종들을 한 묶음으로 봄. 오늘 아침 국방부 복도에서 들은 말이었다. 누가 한 말인지는 적지 않았다.
소현은 해운 보험사의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날짜 넷을 불러 주자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 넷 가운데 셋이 같은 재보험 풀에 들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전쟁 위험 할증료가 지난 한 달 사이 여섯 배가 됐다고, 그래서 이제 그 항로에는 민간 보험이 붙지 않는다고 했다. 징발된 배들은 보험 없이 나간다고 했다.
“선원들은 알아요?”
“알겠죠. 모르고 탈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녀는 기사를 썼다. 제목은 서해안 보급선 잇단 실종. 대만 서해안 상륙군으로 가던 수송선들이 6월 이후 잇달아 연락이 끊기고 있다. 그 날짜와 해역. 그리고 칠판 사진 한 장.
*
1500에 검열관이 그녀를 불렀다. 기자실 옆 작은 회의실이었다. 전시 보도 지침이 내려온 뒤로 군사 관련 기사는 이 방을 거쳐 나갔다. 검열관은 대령 계급장을 단 공보 쪽 사람이었다. 나이는 쉰쯤이었고, 안경을 이마에 걸쳐 올린 채 소현의 초고를 읽었다.
검열관은 끝까지 읽고 나서 초고를 뒤집어 놓았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그는 그 빈 면에 손바닥을 얹은 채 말했다.
“해역을 지우세요.”
“해역은 외신에 이미 나왔습니다. 보험사 통보에도 있습니다.”
“외신은 넷을 한 줄에 묶지 않았습니다. 기자님은 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 관계자라는 말을 달았습니다. 이 기사를 읽은 사람은 이 넷이 한 일이고, 그 한 일을 우리가 안다고 읽습니다.”
“그게 사실이면요?”
검열관은 안경을 코 위로 내렸다.
“이 한 줄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습니다.”
소현은 그 말의 뜻을 알았다.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 한 줄이 없으면 대만 해안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모릅니다. 아니, 누가 뭘 하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매일 아침 포 소리를 세고 있습니다. 어제는 다섯 번, 오늘은 세 번이었답니다. 줄어드는 게 누구 덕인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검열관은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밀어 놓았다. 합참 정세 분석의 요약본이었고, 대외비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부분만 오려 붙인 것이었다. 한 줄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상륙군 해상 보급 잔량 추정 16일.
“16일입니다. 예상입니다. 이 숫자가 0에 닿으면 저쪽 해안의 포가 멎습니다. 그런데 기자님 기사가 나가서 누군가 그 해역을 알아내면, 이 숫자는 다시 늘어납니다.”
소현은 그 종이를 집어 들지 않았다. 손을 대면 읽은 것이 되었다. 읽은 것은 쓰고 싶어졌다.
“그 누군가가 제 기사 한 줄로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모른다면, 저쪽은 이미 진 겁니다.”
“저쪽은 모르지 않습니다. 확인을 못 할 뿐입니다. 기자님이 확인해 주는 겁니다.”
소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국방부 앞 도로의 차들이 퇴근길 줄을 서기 시작했다.
검열관은 종이를 서류철에 도로 넣었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으로 닦았다. 한참을 닦았다. 닦으면서 그는 기자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지방지에서 3년 일했다고 했다. 그때 쓴 기사 한 줄로 공장 하나가 문을 닫았고, 그 공장 사람들이 그 뒤 어떻게 됐는지는 끝내 쓰지 않았다고 했다.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지 쓴 것을 후회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해역을 지우시면 날짜는 두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겁니다.”
*
1830에 소현은 해역을 지웠다. 커서를 넉 줄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누르지 않았다. 기자실의 다른 자리에서 누군가 라면 물을 붓는 소리가 났고, 텔레비전에서는 연평도 국지전 속보가 소리 없이 지나갔다. 그녀는 지웠다.
해협 북부, 해협 중부, 해협 중부, 해협 남부. 넉 줄을 지우고 날짜만 남겼다. 우리 군 관계자라는 말도 지웠다. 대신 복수의 해운 소식통이라고 적었다. 사실이었다. 보험사 통보는 해운 소식통이었다.
검열관은 고친 초고를 받아 한 줄씩 읽었다. 날짜 넷 앞에서 손가락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날짜는 됩니다. 날짜는 외신에도 다 있습니다.”
“다 따로 있죠. 한 줄에는 없습니다.”
검열관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고 나서 그는 인주 뚜껑을 닫지 않은 채 한동안 그 날짜 넷을 내려다봤다. 날짜만 남은 기사는 처음보다 짧았고, 짧아서 더 눈에 띄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소현도 알았다. 둘 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2300에 기사가 나갔다. 서울통신 배소현. 칠판 사진은 기사 맨 아래에 붙었다. 사진 설명은 한 줄이었다. 대만 서해안 어느 읍내의 초등학교 강당, 아이들이 개전 이후 날짜를 하루씩 지우고 있다. 기사는 1분 만에 외신 번역 목록에 올라갔다. 해협 건너편에도 한국어를 읽는 사람은 있었다.
소현은 노트북을 덮었다. 기자실에는 그녀 말고 둘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엎드려 자고 있었고, 하나는 이어폰을 끼고 연평도 영상을 되감아 보고 있었다. 창밖의 국방부 청사는 절반쯤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 켜진 창 가운데 어느 방에서 누군가 그녀의 기사를 읽고 있을 것이었다. 소현은 휴대전화를 봤다. 5월 이후 한 번도 오지 않은 번호가 하나 있었다. 그 번호의 사람은 어느 바다에 있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물속에 들어가면 몇 주씩 연락이 끊긴다는 것만 알았다. 말하면 안 되는 일을 한다고만 했다. 소현은 그 번호를 열었다가 아무것도 적지 않고 닫았다.
린위팅에게서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사진 한 장이었다. 칠판의 7월 15일 칸에 가위표가 쳐져 있었다. 반장이 저녁에 친 것이었다.
분필 가위표 끝이 칸을 조금 넘어 16일 칸에 걸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