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189자) · 강윤재 · 7월 13~14일
격침 추정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11일 0901, 바다가 비어 있었다.
서른 척의 기관이 멎은 자리에는 파도 소리와 새우 소리만 남았다. 그 가운데 신채호함의 발전기 소리가 낮게 서 있었다. 지완은 볼륨 다이얼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그 소리를 들었다. 자기 배의 소리를 이렇게 또렷하게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발전기 내려. 연료전지 출력 최저로.”
윤재가 말했다.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입술로만 말했는데, 기관 쪽 하사가 알아들었다. 발전기 소리가 한 단계 낮아졌다. 완전히 끌 수는 없었다. 끄면 배 안의 모든 것이 멎었다.
052D는 쏘지 않았다. 지완이 그것을 들었다. 저쪽도 멈춰 있었다. 어선들이 기관을 끈 바다에서는 저쪽의 발전기 소리도 드러났다. 두 배가 서로의 소리를 처음으로 맨귀로 듣고 있었다.
052D의 발전기는 이 배의 것보다 높고 굵었다. 수상함은 전기를 많이 먹었다. 레이더와 무장과 수백 명의 사람이 먹었다. 지완은 그 소리의 결을 외웠다. 기관을 끄기 직전에 한 번 떠는 버릇, 멈춘 뒤에도 가라앉지 않는 낮은 울림. 다음에 이 소리를 들으면 서른 척 속에서도 골라낼 수 있을 것이었다.
조타장이 윤재를 봤다. 쏘자는 눈이었다. 3킬로미터 안쪽, 멈춰 선 구축함이었다. 남은 어뢰는 둘이었다.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저 배를 쏘면 이 해역의 모든 초계기와 헬기가 이리로 왔다. 그리고 저 배가 없어도 다음 선단은 왔다. 이 배가 끊어야 하는 것은 짐배였다.
0940에 어선 한 척이 기관을 다시 걸었다. 지시를 기다리다 못한 선장이었을 것이다. 한 척이 걸자 두 척이 따라 걸었고, 10분 뒤에는 절반이 털털거렸다. 윤재는 그 소리가 다시 벽이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3노트를 걸었다. 신채호함은 남쪽 어선들의 기관 소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 2시간을 그 밑에서 갔다. 1200에 지완이 말했다. 052D가 안 들립니다. 저쪽이 우리를 잃었는지, 우리가 저쪽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이틀 뒤인 7월 13일 2200, 전지 잔량이 부상을 요구했다.
보급을 받은 지 아흐레였다. 연료전지는 조용했지만 넉넉하지 않았고, 통신을 하려면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지 않으면 사령부는 이 배를 모른 채로 다음 선단 정보를 쥐고 있을 것이었다. 함장이 발령소 해도 앞에서 그 셈을 윤재와 함께 했다.
“지난번 부상 뒤에 저쪽이 우리 송신을 잡았을 수 있습니다. 그 배가 우리를 어선단까지 따라온 건, 어디서 우리를 다시 주웠기 때문입니다.”
“알아. 그래서 이번에는 짧게 하고, 떠 있는 동안 위를 봐.”
“18분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줄일 수 없으면 18분 동안 제대로 봐야지.”
7월 14일 0148에 신채호함은 심도 20으로 올라갔다. 전자 지원 화면이 켜졌다. 머리 위 하늘에 전파를 내는 것이 있는지 보는 화면이었다. 처음 3분은 비어 있었다. 조타장은 손목시계를 보며 입속으로 초를 셌고, 지완은 헤드폰을 벗고 전자 지원 화면 옆에 붙어 섰다. 부상 중에는 귀보다 눈이 먼저였다. 화면은 초록색 선 하나가 가로로 누운 채 가끔 잔물결처럼 떨렸다.
0151에 화면 한쪽에 짧은 줄이 섰다가 사라졌다.
“레이더 아닙니다. 수신만 하는 겁니다. 아니, 방금 한 번 켰다가 껐습니다. 비행기입니다. 높습니다.”
전자정찰기였다. 쏘지 않고 듣기만 하는 비행기. 부상한 잠수함이 안테나를 올리고 전문을 쏘는 그 몇 분을 기다리는 눈이었다. 이쪽이 쏘기 시작하면 저쪽은 그 전파가 어디서 나오는지 잡았다.
“송신 중지. 수신만 해.”
윤재가 말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을 건 받고, 보낼 건 다음에 보내.”
*
0152에 함장이 잠망경을 올렸다. 밤이었다. 달이 구름 뒤에 있어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했다. 함장은 한 바퀴를 천천히 돌려 수평선을 훑고, 하늘 쪽으로 각을 올려 한 번 더 돌렸다. 그리고 손잡이에서 한 손을 떼어 윤재 쪽으로 돌렸다.
“하늘 보게.”
잠망경을 넘겨받는 것은 부장의 몫이었다. 떠 있는 18분 동안 위를 보는 눈이 둘이면 하나보다 나았다. 그러나 함장이 말한 것은 그 뜻만이 아니었다. 보급을 받던 날 윤재는 12초 동안 하늘을 봤다. 그 뒤로 열흘 동안 이 배에서 하늘을 본 사람은 함장뿐이었다.
윤재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눈을 대지 않고 옆으로 한 발 비켜섰다.
“최 하사.”
음탐실 문턱에서 지완이 돌아봤다. 부상 중에는 음탐이 할 일이 줄었다. 머리 위 소리는 파도가 다 덮었다.
“이리 와. 1분만 봐.”
지완은 헤드폰을 목에 건 채 와서 잠망경에 눈을 댔다. 윤재는 손잡이를 지완의 손에 넘겨주고 한 발 물러났다. 함장은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완은 1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잠망경 속의 하늘은 동그랗게 잘려 있었고, 그 동그라미 안에서 구름 사이로 별 몇 개가 보였다가 가려졌다. 그 1분 동안 발령소 사람들은 지완의 뒷모습을 봤다. 헤드폰 줄이 목에서 흔들렸다.
“됐습니다.”
지완이 손잡이를 윤재에게 돌려주었다. 눈가에 잠망경 고무 자국이 둥글게 남아 있었다. 지완은 그 자국을 손등으로 한 번 문지르고 음탐실로 돌아가 헤드폰을 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재는 그제야 눈을 댔다. 동쪽 하늘 높이, 아주 작은 불빛 하나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
0159에 그 불빛이 선회를 멈추고 이쪽으로 곧게 왔다.
“잠항. 긴급 잠항.”
안테나가 내려갔다. 배가 아래로 기울었다. 0202에 지완이 헤드폰을 쓰자마자 소리쳤다. 소리치면 안 되는 배에서 소리쳤다.
“물에 들어온 것 있습니다. 머리 위, 어뢰입니다.”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대잠 어뢰였다. 어뢰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나선을 그리며 제 소나를 켰다. 지완의 헤드폰에 그 소리가 들어왔다. 높고 날카로운, 규칙적인 소리였다.
“기만기 사출. 심도 150, 좌현 전타, 속력 올려.”
기만기가 나갔다. 신채호함의 소리를 흉내 내는 통이었다. 배가 기울며 속력을 올리자 18분 동안 참았던 소리가 한꺼번에 선체를 흔들었다. 해도대 위의 연필이 굴러 떨어졌고 누군가의 커피잔이 쓰러져 계기판 아래로 갈색 물이 흘렀다. 아무도 닦지 않았다. 어뢰의 소리는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점점 좁혀 왔다. 0204에 어뢰가 방향을 틀어 기만기 쪽으로 갔다. 0205에 뒤쪽에서 폭발음이 왔다. 배가 한 번 밀렸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피해 보고.”
전 구획 이상 없음. 윤재는 그 보고를 두 번 들었다. 두 번째에 기관실이 한 박자 늦었다. 최민석의 목소리였다. 이상 없습니다.
신채호함은 심도 240으로 내려가 북서쪽으로 3노트로 갔다. 머리 위에서 부이가 몇 개 더 떨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층 위였다.
0300에 윤재는 항해일지에 적었다. 0148 부상, 송신 불가, 수신만 함. 0202 항공 투하 어뢰 1, 기만기로 회피. 받은 전문 끝에는 사령부 판단 한 줄이 있었다. 상륙군 보급 잔량 D-17. 윤재는 그 숫자를 일지 여백에 옮겨 적었다. 닷새 동안 끊은 것이 없는데 둘이 줄어 있었다. 이 배가 아니어도 무언가가 그 숫자를 줄이고 있었다. 대만 해안에서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
0310, 리 첸의 함교에 초계기의 보고가 들어왔다. 부상 잠수함 탐지, 어뢰 투하, 수중 폭발 1회, 이후 음향 접촉 소실.
“격침 추정으로 올리겠습니다. 폭발이 있었고, 그 뒤로 아무 소리도 없습니다.”
저우 소령이 말했다. 리 첸은 창밖을 봤다.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폭발이 한 번이야. 어뢰 한 발에 폭발 한 번. 잠수함이 맞았으면 두 번째 소리가 나. 선체가 부서지는 소리.”
“초계기가 들은 건 한 번뿐입니다. 초계기의 부이는 멀리 있었습니다.”
리 첸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전대는 지난번 오보를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초계기의 보고였고, 이 배의 판단이 아니었다. 그리고 전대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려. 초계기 보고 그대로. 판단 칸에 격침 추정, 확인 필요.”
저우가 서식을 들고 나갔다. 리 첸은 해도 위 폭발 지점에 연필로 가위표를 쳤다. 그리고 그 옆에 물음표를 하나 더 그렸다. 가위표보다 물음표를 더 진하게 눌렀다.
함교 화이트보드 구석에는 궈원의 이름이 그대로 있었다. 그 위에 오늘 날짜로 한 줄이 더 적혔다. 보고 2, 확인 필요. 리 첸은 그 줄을 자기 손으로 적었다. 지난번 줄은 격침 추정이었고 그 뒤에 틀렸다는 표시는 없었다. 이번 줄 뒤에도 아직은 없었다.
*
같은 날 0610, 도쿄 총리 관저 5층 회의실에 각료들이 둘러앉았다.
아침 햇빛이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와 탁자 위에 가는 줄을 여러 개 그었다. 각료들 앞에는 물잔과 서류철이 하나씩 놓여 있었고, 아무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벽의 화면에는 사세보 항의 실시간 영상이 소리 없이 켜져 있었다. 부두에 선 크레인 하나가 팔을 반쯤 든 채 멈춰 있었다. 탁자 가운데에 성명 초안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초안의 둘째 문단에 한 구절이 있었다. 현 사태는 우리나라의 존립이 위협받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에 해당할 수 있음.
방위상이 그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문장을 넣으면 사세보 하역을 품목별로 나눌 까닭이 없어집니다. 한국 보급함에 탄약을 바로 싣고, 우리 호위함이 오스미 해협까지 붙어 줄 수 있습니다.”
외무상이 받았다.
“이 문장을 넣으면 우리는 당사자입니다. 오키나와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습니다. 사키시마 주민 대피 계획은 아직 종이에만 있습니다.”
“지금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문장을 넣지 않는다고 저쪽이 우리를 빼 주지 않습니다.”
“문장을 넣으면 저쪽이 우리를 넣을 명분이 생깁니다. 누가 이기는지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총리는 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비서관이 그 곁에 허리를 굽혔다가 일어나 결정을 옮겼다. 품목별 허가 유지.
관방장관은 초안의 둘째 문단에 두 줄을 그었다. 볼펜 잉크가 한 번 끊겨서 두 번째 줄은 중간이 비어 있었다.
*
0700, 진해 작전처 상황실의 텔레비전에서 중국 관영 매체의 화면이 흘렀다. 자막이 붙어 있었다. 대만 해협에서 미상 잠수함 격침. 그 아래 서울 국방부의 짧은 입장이 이어졌다. 해당 보도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있는 사항이 없음.
부인도 확인도 아니었다. 차민경 대위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해도로 갔다. 085 자석과 그 옆의 흰 자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민경은 둘 다 옮기지 않았다. 옆자리 중위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민경을 돌아봤다. 민경은 그 눈을 받지 않고 상황일지를 폈다. 085 칸의 다음 예정 통신란에 오늘 2100을 적었다.
085 자석의 칠이 모서리부터 조금 벗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