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129자) · 최지완과 리 첸 · 7월 11일(일)

같은 물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11일 0300, 지완의 헤드폰 속 바다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낡은 디젤 기관이 털털거리는 소리, 축이 하나고 날개가 셋인 작은 배였다. 5분 뒤에 둘이 되고 넷이 되더니, 0320 무렵에는 셀 수 없을 만큼 겹쳤다. 화면의 폭포수가 위에서 아래까지 온통 세로줄로 뒤덮였다. 줄 하나하나가 기관 하나였다.

“어선입니다. 많습니다. 스물이 넘습니다. 서른쯤 됩니다.”

“이 시간에 조업을 하나?”

“조업 소리가 아닙니다. 그물을 끄는 배는 속력이 일정한데, 이 배들은 줄을 맞춰 서서 같은 속력으로 옵니다. 전부 우리 쪽입니다.”

함장이 발령소로 들어와 해도를 봤다. 어선단이 오는 방향은 신채호함이 지난 이틀 동안 머물던 해역을 넓게 가로지르는 선이었다.

“민병이야. 어선 옷을 입은 배들이지. 해역을 막고, 떠 있기만 해도 일이 돼.”

“뭘 합니까?”

“시끄럽게 하는 거야. 이 정도 소리 속에서는 우리도 못 듣고 저쪽도 못 들어. 그런데 저쪽은 누가 그 속에 있는지 알아.”

윤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소리의 벽을 세우고, 그 벽 뒤에 귀 하나를 숨겨 둔 것이었다.

어선들은 군함이 아니었다. 쏘면 전쟁 범죄가 되고, 안 쏘면 해역을 내줘야 했다. 해협을 건너는 보급선들 앞에서는 길을 트는 배였고, 보급선을 노리는 쪽 앞에서는 막아서는 배였다. 선원들 가운데는 진짜 어부도 있을 것이었다. 그물 대신 무전기를 싣고 나온 어부였다.

*

같은 시각, 052D의 소나실은 에어컨을 끈 지 한 시간이 넘어 공기가 끈적했다. 리 첸은 음탐장 뒤에 서서 모니터를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신채호함의 화면과 똑같은 세로줄들이 빽빽했다. 서른 척이었다. 전대가 해상 민병 지휘부에 요청해서 끌어낸 배들이었고, 한 척 한 척이 제 기관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052D는 그 가운데 한 척, 녹슨 선체에 번호가 반쯤 지워진 트롤 어선의 바로 뒤, 500미터 거리에 붙어 있었다. 기관은 최저로 내렸다. 어선의 털털거리는 기관 소리가 이쪽의 소리를 덮어 주었다.

“함장님, 이 속에서는 아무것도 못 찾습니다. 잡음이 너무 큽니다.”

“잡음을 들으라는 게 아니야. 서른 척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 하나씩 외워. 그다음에 서른 개가 아닌 걸 찾아.”

“서른 개가 아닌 거라니요?”

“빈 소리. 어선 두 척 사이에 소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조용하면, 거기 누가 있어.”

음탐장은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누르고 첫 번째 어선부터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젊은 음탐병이 앉아 받아 적었다.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헤드폰에 들어갈까 봐, 음탐병은 종이 아래에 수건을 깔았다. 그는 번호 대신 소리에 이름을 붙였다. 기침하는 것, 휘파람 부는 것, 절룩이는 것. 리 첸이 가르친 방식이었다. 번호는 잊어도 별명은 안 잊는다고 했다.

*

0410에 윤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어선단은 느리게 다가왔고, 그 한가운데에 신채호함이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빠지는 게 낫습니다. 남쪽으로 빠지면 이 벽에서 벗어납니다.”

조타장이 말했다.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빠지려면 속력을 올려야 해. 속력을 올리면 우리 소리가 이 벽 위로 튀어나와. 벽 뒤에 있는 귀가 제일 먼저 그걸 들어.”

“그러면 그냥 있습니까?”

“아니. 벽 속으로 들어간다.”

윤재는 지완에게 물었다. 어선 가운데 이 배와 추진기 회전수가 가장 가까운 배가 어느 것인지. 지완은 한참을 듣고 나서 방위 하나를 불렀다. 축 하나, 날개 셋, 분당 회전수가 이 배의 저속 회전수와 거의 같았다.

“그 배 밑으로 붙는다. 그 배가 빨라지면 빨라지고 느려지면 느려진다. 그 배 소리 속에 우리 소리를 넣는다.”

함장이 윤재를 봤다.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조타장에게 손을 넣으라고 했다. 조타장이 속력 손잡이에 손바닥을 얹었다. 이제부터 이 배의 속력은 머리 위 어선의 기관이 정했다.

0428에 신채호함은 어선의 30미터 아래, 200미터 뒤에 붙었다. 어선의 기관이 털털거릴 때마다 조타장의 손이 따라 움직였다. 한 번 더 털털거리면 반 노트를 올리고, 기관이 헐떡이면 반 노트를 내렸다. 조타장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발령소 온도는 19도였다.

*

0445, 052D 소나실에서 음탐장이 서른 척 가운데 스물여섯 척에 이름을 붙였다. 나머지 다섯은 서로 소리가 비슷해서 갈리지 않았다.

리 첸은 모니터 옆에 해도 복사본을 펴 두고 어선들의 자리를 연필로 찍었다. 찍은 점들 사이에 빈자리가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하나는 동쪽 끝이었고, 하나는 한가운데였다.

“한가운데 어선 두 척 사이가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원래 비어 있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줄이 흐트러졌을 수도 있습니다.”

“맞아. 그래서 기다려. 비어 있는 자리가 움직이는지 봐. 빈자리가 어선을 따라 움직이면, 빈자리가 아니야.”

그는 자기가 붙어 있는 어선의 선장에게 무전으로 짧게 일렀다. 기관을 끄지 말고, 속력을 바꾸지 말고,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대로. 선장은 알아들었다고 했고, 그 목소리 뒤로 어선 조타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사랑 노래였다. 리 첸은 라디오를 끄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노래도 어선의 소리였다. 어선이 늘 내던 소리를 빼면 그 빈자리가 오히려 들렸다.

*

0510에 지완이 이상한 것을 들었다.

어선 하나의 기관이 멎었다가 다시 돌았다. 멎은 것은 5초쯤이었다. 낡은 기관은 가끔 그렇게 헐떡였다. 그런데 지완이 들은 것은 그 5초 동안의 다른 소리였다. 기관이 멎은 그 짧은 틈에, 그 배 뒤쪽에서 아주 낮은 발전기 소리 하나가 드러났다가, 기관이 다시 돌자 그 속에 묻혔다.

지완은 그 어선의 기관이 다시 헐떡이기를 기다렸다. 7분 뒤에 또 멎었다. 이번에도 5초였고, 이번에도 그 뒤에서 같은 소리가 드러났다. 발전기가 한 번 떨었다가 가라앉는 소리였다. 열흘 전 사흘 동안 머리 위에서 멈췄다가 돌던 그 배가, 기관을 끄기 직전에 내던 떨림이었다.

지완은 헤드폰을 벗지 않고 윤재를 돌아봤다.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여기서는 말도 소리였다. 머리 위 어선의 기관 소리가 아무리 커도, 사람의 목소리는 다른 주파수에 섰다.

지완은 윤재의 손목을 잡아 손바닥을 위로 뒤집었다. 그리고 검지로 그 손바닥에 천천히 글자를 썼다. 받침까지 또박또박, 두 글자였다. 멈춰.

윤재는 손바닥을 쥐지 않았다. 지완의 손가락이 떠난 자리가 한동안 서늘했다. 그는 조타장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조타장이 속력 손잡이를 끝까지 내렸다. 머리 위의 어선은 계속 갔다. 신채호함은 그 자리에 섰다. 30미터 위를 어선이 지나가고, 이쪽은 그 어선의 소리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지완이 해도 위에 연필로 방위 하나를 적었다. 그 옆에 적었다. 헐떡이는 어선 뒤 500. 글씨가 작고 삐뚤었다. 지완은 연필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한 번 감쌌다가 놓았다.

*

0600, 052D 소나실에서 음탐장이 고개를 들었다.

“함장님, 한가운데 빈자리가 어선 하나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30분 동안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방금 따라가던 그 어선에서 떨어졌습니다. 빈자리가 멈췄습니다.”

리 첸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멈췄다. 그 배도 멈춰서 들을 줄 아는 배였다.

“우리가 들렸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선 뒤에서 기관을 최저로 두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 어선 기관이 몇 번 헐떡였습니다. 그때 우리 발전기가 잠깐 드러났을 수 있습니다.”

리 첸은 한동안 모니터를 봤다. 화면 한가운데, 서른 개의 세로줄 사이에 가느다란 빈 틈이 하나 서 있었다. 그 틈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쪽도 이쪽의 틈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먼저 소리 내는 쪽이 진다.”

교관 시절 그는 생도들에게 두 잠수함이 서로를 찾는 훈련을 시켰다. 가장 오래 버틴 조가 이겼다. 대부분 한 시간을 못 넘겼다. 누군가 발을 옮기거나, 펌프를 켜거나, 참지 못하고 능동으로 쐈다. 수상함이 잠수함과 그 놀이를 하는 것은 교범에 없었다. 수상함은 늘 먼저 쏘는 쪽이었다.

*

0600부터 0820까지 두 배는 서로의 틈을 사이에 두고 멈춰 있었다.

신채호함 발령소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배가 서 있으면 조금씩 가라앉거나 떴고, 그것을 맞추려면 물을 넣고 빼야 했다. 펌프가 소리를 냈다. 조타장은 펌프를 켜지 않고 배가 가라앉는 것을 두고 봤다. 2시간 동안 배는 19미터를 내려갔다. 윤재는 그 19미터를 연필로 해도 옆에 한 칸씩 적었다. 사람들이 숨을 쉬는 소리마저 낮아졌다. 누군가 기침을 참느라 소매를 입에 댔다. 지완은 한 번도 헤드폰을 벗지 않았다. 헤드폰 쿠션 아래로 땀이 고여 턱선을 따라 흘러내렸고, 지완은 그것을 닦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면 옷깃이 스쳤다. 윤재는 지완 뒤에 서서 그 땀방울이 턱 끝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것을 세 번 봤다.

052D 소나실에서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 첸은 문턱에 선 채였다. 다리가 저렸지만 앉지 않았다. 음탐장의 목덜미로 땀이 흘러 칼라를 적셨다.

0715에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연필 끝을 종이에 대고 아주 천천히 적었다. 사각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게 눌렀다. 0510 음탐 하사 최지완, 부장 손바닥에 멈춤 신호, 따랐음. 052D 추정 1척, 어선 뒤에 있음.

칸이 없는 자리에 적은 것은 다섯 번째였다.

*

0850에 리 첸은 함교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는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난간을 잡고 몸무게를 팔에 실었다. 함교에서 그는 해상 민병 지휘 주파수의 수화기를 들었다. 서른 척이 모두 듣는 주파수였다.

저우 소령이 그를 봤다.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벽을 치운다.”

“그러면 우리도 드러납니다. 어선 뒤에 숨은 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아. 그래도 저쪽은 멈춰 있고, 우리는 수상함이야. 드러나도 우리는 떠 있고, 저쪽은 드러나면 끝이야.”

저우는 더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리 첸이 이미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리 첸은 수화기에 대고 한마디를 했다. 짧고 분명했다.

“전 선박, 기관 정지.”

0900에 서른 척의 기관이 한꺼번에 멎었다.

신채호함 음탐실에서, 지완의 헤드폰을 가득 채우고 있던 털털거리는 소리들이 칼로 자른 듯 사라졌다. 그 뒤에 남은 것은 넓고 텅 빈 바다였다. 그리고 그 텅 빈 바다 한가운데, 이 배의 발전기가 내는 낮은 소리 하나였다.

지완이 헤드폰 볼륨 다이얼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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