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167자) · 강윤재 · 7월 9일(금)

다섯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7월 9일 0140에 신채호함은 심도 20에서 안테나를 올렸다. 보급을 받은 지 닷새째였다. 전지는 넉넉했지만 그 넉넉함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발령소의 모두가 알았다.

부상 18분은 늘 같은 순서로 지나갔다. 처음 3분은 위성을 잡는 시간이었고, 다음 2분은 이쪽 전문을 쏘는 시간이었고, 나머지는 받는 시간이었다. 받는 동안 배는 파도에 흔들렸다. 180미터 아래에서는 없는 흔들림이라, 조리실에서 냄비 뚜껑 하나가 달그락거렸고 오 하사가 그것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지완은 머리 위 하늘을 들었다. 전파를 내는 것이 있는지, 프로펠러 소리가 있는지.

18분이 끝나 갈 무렵 조타장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남은 초를 입속으로 셌고, 안테나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발령소 몇 사람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었다. 받은 것은 작전 전문 하나와 정세 요약 하나였다. 윤재는 요약을 마지막 줄부터 읽었다. 이 해역 우군 잠수함 없음.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갔다.

“대만. 서해안 해저 케이블, 복구한 두 회선 가운데 하나 재절단, 인터넷 두절 18일째. 복구선 해역 접근 불가.”

조타장이 고개를 들었다.

“고쳐 놓은 걸 또 끊었다는 겁니까?”

“고치러 가는 배가 못 들어간대. 끊은 쪽 배들이 그 앞에 떠 있으니까.”

윤재는 다음 줄로 넘어갔다. 거기에 워게임 요약이 붙어 있었다. 어느 연구소가 돌린 워게임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상륙군 보급이 해상에서 끊기는 경우, 상륙 측 해상 손실 인원을 1만 5천 명으로 잡음.

발령소가 잠깐 조용해졌다. 1만 5천이라는 숫자는 이 좁은 방의 누구에게도 얼굴이 없었다. 윤재는 그 숫자 옆에 첫 번째 배의 스물에서 스물다섯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숫자를 더 들여다보지 않았다.

함장이 요약지를 받아 그 줄을 한 번 읽었다.

“예상이야. 연구소는 배가 가라앉는 소리를 안 들어.”

“그래도 방향은 맞을 겁니다. 우리가 끊는 만큼 그 숫자로 갑니다.”

“그러니까 예상이라는 거야. 방향이 맞는다고 숫자가 맞는 건 아니야. 우리가 덜 끊으면 저쪽 해안에서 다른 숫자가 생기고.”

함장은 요약지를 접어 윤재에게 돌려줬다. 윤재는 그것을 일지 사이에 끼웠다. 대만 해안에서 생길 다른 숫자는 이 요약지에 없었다.

작전 전문 끝에는 한 줄이 있었다. 사령부 판단, 상륙군 보급 잔량 D-19로 수정. 보급을 받던 날보다 이틀이 줄어 있었다.

“잠항.”

*

0305에 지완이 접촉을 올렸다. 다섯 번째 선단이었다. 수송선 둘에 호위 둘이었다.

“호위 소리가 다릅니다. 지난번 멈춰서 듣던 배가 아닙니다. 이번 것들은 서두릅니다. 속력을 계속 올렸다 내렸다 합니다.”

“자신 있나?”

“그 배는 멈출 때 기관을 끄는 방식이 있습니다. 끄기 직전에 발전기가 한 번 떱니다. 이 배들은 그게 없습니다.”

윤재는 함장을 봤다. 함장이 해도 위로 몸을 숙였다.

“둘 다 친다. 어뢰 넷 가운데 둘.”

“한 발씩입니까?”

“한 발씩. 20초 간격으로. 둘 다 빗나가면 오늘은 여기까지야.”

윤재는 그 결정을 되풀이했다. 한 발씩 두 표적이면 한 척이라도 빗나가면 남는 것이 없었다. 두 발씩 한 표적이면 한 척은 거의 확실했다. 윤재는 두 발을 한 척에 넣자고 한 번 말했다. 함장은 고개를 저었다.

“D-19야. 한 척으로는 그 숫자가 안 움직여.”

표적의 침로를 푸는 데 17분이 걸렸다. 두 척 다 곧게 가고 있었다. 서두르는 선단은 지그재그를 하지 않았다. 0411에 발사관 두 개에 물을 채웠다. 호위가 이쪽에 등을 보이는 순간은 지완이 알았다. 지완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을 때 채웠고, 둘을 들었을 때 문을 열었다.

관에 물이 차는 소리는 욕조에 물을 받는 소리처럼 오래 이어졌다.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발령소의 누구도 숨을 크게 쉬지 않았다. 윤재는 발사 제원 화면의 숫자들이 한 번씩 갱신될 때마다 입속으로 따라 읽었다. 거리, 방위, 표적 침로, 표적 속력.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였다. 옆에서 조타장도 같은 입 모양을 하고 있었다.

0420에 첫 발이 나갔다. 배가 사람 팔을 뻗는 만큼 흔들렸다. 20초 뒤에 두 번째가 나갔다. 윤재는 초시계를 보지 않았다. 지완의 손가락을 봤다.

11분이 지났다. 0431에 첫 번째가 맞았다. 낮고 긴 소리였다. 0432에 두 번째가 맞았다. 두 소리가 겹쳤다가 갈라졌다. 쇠가 휘는 소리가 두 방향에서 동시에 들렸다. 두 배는 모두 기울었고, 하나는 8분 만에, 하나는 20분 만에 소리가 멎었다. 20분짜리 배에서는 끝나기 직전에 쇠사슬이 한꺼번에 풀려 나가는 소리가 났다. 닻이었다. 기운 배에서 누군가 닻을 내렸는지, 닻이 제 무게로 풀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완은 이번에도 그쪽 방위를 듣지 않았다. 윤재는 그것을 봤고, 이번에는 일지에 적지 않았다.

호위 둘이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한 척은 가라앉는 배 쪽으로 가고 한 척은 속력을 올려 이쪽 방위를 훑었다. 서두르는 배였다. 28노트로 달리면서 쏘는 탐신음은 제 소리에 묻혀 멀리 가지 못했다. 지완은 그 소리가 선체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세 번 확인하고 나서 손을 내렸다.

발령소에서 누구도 어깨를 풀지 않았다. 조타장이 손잡이에서 한 손을 떼어 이마를 한 번 문질렀다. 그게 다였다.

*

0447에 지완이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눌렀다.

“위에서 옵니다. 헬기입니다.”

“어떻게 아나?”

“소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물에 청음기를 담갔습니다. 배는 옆에서 오는데, 이건 머리 위에서 떨어집니다.”

대잠 헬기는 공중에 떠 있다가 줄에 매단 소나를 물에 담갔다. 담그고 듣고, 걷어 올리고, 옮겨 가서 다시 담갔다. 헬기 자체는 물속에서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물에 담긴 청음기가 쏘는 소리와, 줄이 물을 끌며 내는 아주 가는 소리뿐이었다. 그 가는 소리를 지완은 머리 위에서 들었다.

“어디 담갔나?”

“동쪽으로 3킬로미터입니다. 다음은 우리 쪽입니다. 옮겨 가는 방향이 이쪽입니다.”

윤재는 남은 어뢰 둘을 생각했다. 헬기는 어뢰로 잡을 수 없었다. 이 배가 가진 것 가운데 하늘에 닿는 것은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도 240. 3노트, 서쪽으로.”

배가 아래로 기울었다. 0452에 헬기가 쏘는 소리가 처음으로 선체에 닿았다. 짧고 높았다. 두 번째는 닿지 않았다. 층 아래로 들어간 뒤였다. 헬기는 그 자리에서 청음기를 두 번 더 담갔다가 걷어 올렸다. 0510에 대잠 어뢰 한 발이 물에 들어갔다.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헬기는 제 소리가 닿았던 자리가 아니라 조금 전 수송선이 가라앉은 자리 근처에 떨어뜨렸다.

“우리 쪽이 아닙니다. 가라앉는 배 소리에 쐈습니다.”

어뢰는 그 자리를 두 바퀴 돌다가 연료가 다해 멎었다. 가라앉는 배 안의 무엇이 마지막으로 소리를 냈고, 어뢰가 그 소리를 물었다가 놓았다.

0620에 헬기가 돌아갔다. 연료 때문일 것이었다. 헬기는 오래 못 떠 있었고, 떠 있는 동안에만 무서웠다. 호위 둘은 남은 것이 없는 자리를 한 시간 더 돌다가 동쪽으로 갔다. 서두르는 배들이었다.

*

0710에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0420 어뢰 2발 발사, 0431 수송선 1척 명중, 0432 수송선 1척 명중, 0452 대잠 헬기 청음 접촉, 0620 이탈. 그 아래에 만재 톤수를 더했다. 지금까지 여섯 척, 합계 만재 8만 3천 톤. 어뢰 잔량 둘.

그는 합계를 두 번 더했다. 두 번 다 같았다. 더하는 것은 쉬웠다. 윤재는 연필을 내려놓고, 사람 수를 적는 줄은 이번에는 만들지 않았다. 몇 명이 탔는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것을 적는 줄은 지난주에 이미 한 번 썼다.

함장이 뒤에서 일지를 넘겨다봤다.

“두 발로 두 척이야. 운이 좋았어.”

“운이 아니면 뭐였습니까?”

“서두른 거지. 저쪽이. 서두르는 배는 곧게 가.”

*

1100에 윤재는 식당 앞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췄다. 배식구 옆 벽에 오 하사가 손으로 쓴 식단표가 붙어 있었다. 지난번 차단 뒤로 그 식단표 맨 아래에는 늘 한 줄이 따로 적혀 있었다. 흰죽 넷.

오늘은 그 줄이 지워져 있었다. 볼펜으로 두 줄을 긋고 그 아래에 새로 적어 놓았다. 흰죽 먹고 싶은 사람.

오 하사가 배식구 안에서 냄비를 저으며 윤재를 봤다.

“넷이라고 적어 놓으니까, 넷에 안 들어가는 사람이 못 먹겠다고 해서요. 누가 그 넷인지 다들 아니까, 넷 말고는 손을 못 든답니다.”

“그럼 몇 그릇 만들었나?”

“모릅니다. 다 떨어질 때까지 끓입니다.”

“쌀은 괜찮나?”

“지난번 보급 때 쌀은 넉넉히 받았습니다. 어뢰는 넷밖에 안 왔는데 쌀은 달라는 대로 왔습니다.”

오 하사는 그 말을 하고 냄비 뚜껑을 덮었다. 웃자고 한 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점심 배식이 시작되자 식당 앞에 줄이 섰다. 카레를 받고 나서 흰죽 냄비 앞에 한 번 더 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관실 쪽 병사 둘이 그랬고, 제하가 그랬고, 조타장이 그랬다. 조타장은 흰죽을 받으면서 오 하사에게 참기름을 한 방울 더 달라고 했다. 오 하사가 두 방울을 떨어뜨렸다. 조타장은 그릇을 받쳐 들고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속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원래 좋아해서라고 말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그랬다. 식탁 몇 군데서 웃음이 샜다.

윤재는 그 식단표 앞에 조금 더 서 있었다. 종이 귀퉁이에 테이프가 두 겹으로 붙어 있었는데, 한 겹은 지난번 것이고 한 겹은 오늘 것이었다.

*

1130에 지완이 발령소로 왔다. 헤드폰을 목에 건 채였다.

“부장님, 오늘 호위 둘 말입니다. 이번 호위는 서두릅니다.”

“그래서 맞았지.”

“예. 그런데 서두르지 않는 배가 따로 있습니다. 지난번 사흘 동안 우리 위에서 멈춰 서 듣던 배입니다. 그 배는 오늘 이 해역에 없었습니다.”

“어디 있을 것 같나?”

“모릅니다. 그런데 멈추는 배가 안 보이면, 멈춰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도 위에 오늘 찍은 점들이 있었다. 두 척이 가라앉은 자리와 헬기가 청음기를 담근 자리와 어뢰가 멎은 자리였다. 그 점들 어디에도 멈추는 배는 없었다.

지완이 헤드폰을 머리에 다시 쓰고 음탐실로 돌아갔다. 윤재는 해도대 서랍에서 지우개를 꺼내 오늘 새벽 찍은 점들 가운데 헬기 자리를 지웠다. 헬기는 떠났다. 남기는 것은 배들이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해도 북쪽 가장자리, 지난주 사흘 동안 갇혀 있던 자리에 연필로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그 배가 마지막으로 멈춰 섰던 자리였다.

지우개 가루가 해도 위 동그라미 옆에 한 줌 모여 있었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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