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2자)

진주

쫓겨난 왕비가 왕실 금고를 쥐었다 · 진새온

수레 마흔 대가 왕도 성문으로 돌아온 날은 정월 그믐이었다⁠. 성문 위 망루에서 종이 울렸고⁠, 브리다는 종소리를 듣자마자 별궁 언덕을 뛰어 내려왔다⁠. 이델라가 성문에 닿았을 때 앞마당에는 벌써 구경꾼이 모여 있었다⁠. 수레에는 소금 대신 방수포에 싼 참나무 상자 세 개가 실려 있었고⁠, 수레마다 갈색 군복의 병사 둘이 붙어 있었다⁠. 병사들의 볼은 산바람에 터서 갈라져 있었다⁠.

가르딘이 맨 앞 수레에서 내렸다⁠. 수염에 아직 고개의 서리가 남아 있었다⁠. 가르딘은 이델라 앞에 와서 경례 대신 상자를 가리켰다⁠.

“⁠세 상자요⁠. 투르발 시장에서 내 눈앞에서 셌소⁠. 고개를 넘는 동안 상자 곁에서 잤소⁠.⁠”

“⁠수레 밑에서요⁠?⁠”

“⁠수레 위에서⁠. 눈이 와서⁠.⁠”

브리다가 이델라 뒤에서 작게 말했다⁠. 수레랑 혼인한다는 소문이 진짜였네⁠. 이델라는 브리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성문 안쪽에서 화로가 먼저 나왔다⁠. 카스텐이 근위병 열을 데리고 서 있었다⁠.

“⁠감독관⁠, 금화는 금고로 가오⁠. 금고에 들어간 뒤에 어디로 나갈지는 폐하께서 정하시오⁠.⁠”

“⁠금고로 가요⁠.⁠” 이델라가 말했다⁠. “⁠금고 앞마당까지요⁠.⁠”

*

본궁 앞마당에 탁자 하나가 놓였다⁠. 이델라가 상자 하나를 금고에 들였다가 바로 끌어내 탁자 위에 열었다⁠. 금고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법도에는 어긋나지 않았다⁠. 카스텐이 화로 앞에서 탁자를 보고 있었다⁠. 막지는 않았다⁠. 앞마당 둘레에 병사 서른이 줄을 섰고⁠, 소문을 듣고 남부 수비대 병사의 아내들 몇이 남쪽에서 따라 올라와 있었다⁠.

“⁠이름을 대고 손을 내밀어요⁠.⁠”

병사들이 하나씩 탁자 앞에 섰다⁠. 이델라는 금화를 한 닢씩 손끝에 올려 테두리를 쓸고 병사의 손바닥에 놓았다⁠. 손바닥마다 굳은살이 있었다⁠. 창을 쥐는 자리⁠, 노를 젓는 자리⁠, 지난 두 달 동안 수레 바퀴를 민 자리⁠. 젊은 병사 하나가 금화를 받자마자 어금니로 깨물어 보았다⁠.

“⁠진짜야⁠.⁠”

“⁠깨물지 마⁠. 이 빠져⁠.⁠” 뒤에 선 늙은 병사가 말했다⁠. “⁠이 빠지면 빵을 못 먹어⁠. 그럼 봉급이 무슨 소용이야⁠.⁠”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번졌다⁠. 늙은 병사는 금화를 받아 들고 오래 들여다보다가 브리다에게 눈을 찡긋했다⁠. 브리다가 볼을 붉히며 앞치마로 얼굴을 가렸다⁠. 이델라는 오늘 저녁 빨래터 소식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알았다⁠.

마지막으로 가르딘이 탁자 앞에 섰다⁠. 이델라는 사령관 몫의 금화를 세어 손에 쥐었다⁠. 가르딘이 손바닥을 펼쳤다⁠. 넓고⁠, 거칠고⁠, 손가락 마디마다 오래된 흉이 있었다⁠. 이델라는 금화를 한 닢씩 가르딘의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손끝이 손바닥에 두 번 닿았다⁠. 두 번 다 가르딘의 손이 아주 조금 움츠러들었다⁠.

“⁠빵 이백 덩이요⁠.⁠” 가르딘이 말했다⁠.

“⁠칼을 다시 사요⁠.⁠”

“⁠칼은 빵보다 비싸오⁠.⁠” 가르딘은 금화를 쥐었다⁠. “⁠일곱 번째는 왔소⁠, 감독관⁠.⁠”

이델라는 대답하지 않고 빈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손끝에 아직 굳은살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이델라는 손끝을 소매에 문질러 닦았다⁠. 감촉은 닦이지 않았다⁠.

병사들의 줄이 끝나자 남쪽에서 따라 올라온 아낙들이 탁자 앞으로 몰려왔다⁠. 맨 앞에 손등이 터진 소금밭 우두머리가 있었다⁠. 우두머리는 사흘 길을 걸어 올라왔다고 했다⁠. 신발 바닥이 닳아 발가락 하나가 비쳤다⁠.

“⁠감독관님⁠, 품삯 두 배요⁠. 사령관님이 지켜보시면 믿는다고 했죠⁠. 지금 지켜보고 계세요⁠.⁠”

가르딘이 금화를 쥔 채 헛기침을 했다⁠. 이델라는 남은 금화에서 아낙들 몫을 덜었다⁠. 소금밭 품삯은 원래 은화로 나가는 일이라⁠, 하르벤이 상단 마차에서 은화 자루를 들고 왔다⁠. 금화를 은화로 바꿔 주면서 하르벤은 바꾸는 삯을 받으려다 이델라의 눈빛을 보고 그만두었다⁠.

“⁠두 배예요⁠. 다음 수레가 산을 넘으면 또 두 배는 아니고요⁠.⁠”

“⁠두 배면 돼요⁠. 두 배면 보리빵에 생선 꼬리 말고 생선 몸통을 먹어요⁠.⁠” 우두머리가 은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가르딘을 돌아보았다⁠. “⁠사령관님⁠, 그 금화로 칼 사지 말고 혼인 반지 사세요⁠. 칼은 빵보다 비싸고 반지는 칼보다 싸요⁠.⁠”

아낙들이 웃었고⁠, 병사들이 따라 웃었다⁠. 카스텐의 화로 곁에 선 근위병들까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가르딘은 금화를 허리춤 주머니에 넣으며 하늘을 보았다⁠. 하르벤이 곤란할 때 하는 것과 같은 몸짓이었다⁠.

*

해가 기울 무렵 본궁 뒷문으로 큰 통들이 굴러 들어왔다⁠. 일꾼들이 통을 굴릴 때마다 통 안에서 액체가 출렁이는 소리가 났다⁠. 통 테두리마다 나무 패가 달려 있었다⁠. 「⁠페넬라 포도주⁠, 대금은 봄 첫날⁠, 몬테가 은행⁠」

이델라는 지하 술 창고 앞에서 카스텐과 마주쳤다⁠. 카스텐은 통이 들어가는 것을 세고 있었다⁠.

“⁠잔치 사흘이면 귀족들이 마시는 포도주가 이만큼이오⁠.⁠”

“⁠이게 금화 몇 상자예요⁠?⁠”

“⁠두 상자⁠.⁠”

“⁠오늘 제가 병사들에게 한 상자를 나눠 주고⁠, 재상이 두 상자를 새로 빌렸어요⁠.⁠”

“⁠감독관이 나눠 준 한 상자는 봄 봉급에서 미리 나간 것이오⁠. 봄에 병사들이 받을 금화가 그만큼 줄었소⁠. 나는 봄 첫날 예물로 두 상자를 넘게 거둘 것이오⁠.⁠” 카스텐은 굴러가는 통을 눈으로 따라갔다⁠. “⁠감독관은 오늘 병사들의 박수를 샀소⁠. 박수는 봄까지 가지 않소⁠.⁠”

“⁠포도주는 봄까지 가요⁠?⁠”

“⁠포도주는 잔치 날 아침까지만 가면 되오⁠.⁠”

마지막 통이 문턱에 부딪혀 쿵 소리를 냈다⁠. 이델라는 통 하나의 테두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참나무가 차가웠다⁠. 금고에 금화 두 상자를 들이는 동안 술 창고에 빚 두 상자가 굴러 들어왔다⁠. 갚으면 빌리고⁠, 갚으면 또 빌렸다⁠.

*

다음 날 아침 이델라는 남은 두 상자 가운데 하나를 수레에 싣고 강 나루로 내려갔다⁠. 하르벤이 상단 마차를 몰고 따라왔다⁠. 페넬라 상관은 나루에서 가장 높은 돌집이었다⁠. 상관 앞마당에 큰 저울이 있었다⁠. 사람 키의 두 배 되는 쇠기둥에 접시 둘이 매달려 있었고⁠, 한쪽 접시에는 소금 자루를⁠, 다른 접시에는 페넬라의 쇠 추를 올렸다⁠. 아르셀 소금의 값은 지난 두 해 동안 이 저울에서 정해졌다⁠. 저울 곁에 푸른 조끼의 페넬라 사람이 둘 서 있었다⁠.

시빌라는 상관 이층의 따뜻한 방에서 이델라를 맞았다⁠. 창으로 강과 페넬라 배들의 돛대가 보였다⁠. 탁자에 작은 금 저울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감독관님⁠, 소금이 산을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금화가 돼서 돌아왔어요⁠.⁠”

“⁠제 선장은 금화 이야기도 하더군요⁠. 감독관님이 제 금화 하나가 가볍다고 하셨다고요⁠.⁠” 시빌라가 웃었다⁠. 웃음 끝이 차가웠다⁠. “⁠손끝은 저울이 아니지요⁠.⁠”

“⁠손끝이 그렇다고 했고 저울은 아니라고 했어요⁠. 저울이 이겼죠⁠.⁠”

“⁠저울은 늘 이깁니다⁠.⁠”

이델라는 상자를 탁자 옆에 내려놓게 했다⁠.

“⁠왕실 물건 세 가지를 찾으러 왔어요⁠. 왕관⁠, 대관식 홀⁠, 왕비의 진주 목걸이⁠.⁠”

시빌라가 손짓하자 서기가 안쪽 방에서 납작한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뚜껑을 열자 진주 목걸이가 검은 우단 위에 누워 있었다⁠. 알 하나하나가 엄지손톱만 했다⁠. 열다섯 해 전 대관식 날 오스벨의 어머니가 이델라의 목에 걸어 준 목걸이였다⁠. 왕비의 목걸이였고⁠, 왕비가 바뀌면 다음 왕비에게 가는 목걸이였다⁠. 두 해 전 봄 이후로 이델라는 이 목걸이를 본 적이 없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카스텐이 진주알이 느슨해져 꿰는 중이라고 했다⁠.

“⁠진주는 금화 한 상자입니다⁠.⁠”

하르벤이 이델라를 밀치고 앞으로 나왔다⁠.

“⁠한 상자요⁠? 진주알 하나가 저렇게 누렇게 떴는데요⁠. 여기⁠, 여기⁠, 이거 보세요⁠. 겨울 습기 먹은 거예요⁠. 페넬라 상관 이층은 강바람이 들이쳐서 진주 두기 나쁜 방이에요⁠. 한 상자에서 열 닢 빼요⁠.⁠”

“⁠진주가 누렇게 뜬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입니다⁠.⁠” 시빌라가 말했다⁠.

“⁠오래된 것도 뜬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요⁠. 진주는 오래되면 사람처럼 누레진다고⁠.⁠”

“⁠벨라크 상단주께서는 지금 제 은행에 배 두 척을 맡기고 계시지요⁠.⁠”

하르벤의 입이 다물렸다⁠. 숟가락을 떨어뜨릴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이델라는 오빠의 팔을 잡아 뒤로 당겼다⁠. 배 두 척이라는 말이 귀에 남았다⁠. 지금 물을 일은 아니었다⁠.

“⁠한 상자 드릴게요⁠.⁠” 이델라가 말했다⁠. “⁠목걸이는 제가 가져가요⁠. 상자를 넣는 만큼 왕실 빚이 줄죠⁠?⁠”

“⁠한 상자만큼 줄지요⁠.⁠” 시빌라가 서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기가 상자의 금화를 금 저울에 한 줌씩 덜어 달았다⁠. 이델라는 저울 바늘을 보면서 서기가 덜어 내는 금화를 손끝으로 하나씩 셌다⁠. 아르셀의 금화는 하나도 가볍지 않았다⁠.

목걸이가 이델라의 손바닥에 놓였다⁠. 진주는 무겁지 않았는데 손바닥이 아래로 당겨졌다⁠. 진주는 차가웠다가 손바닥 열에 천천히 미지근해졌다⁠.

“⁠왕관이랑 홀은요⁠?⁠”

“⁠홀은 다음에 이야기하시지요⁠. 홀은 혼례에 안 쓰입니다⁠.⁠” 시빌라는 창가로 갔다⁠. 나루에서 페넬라 배 한 척이 돛을 올리고 있었다⁠. “⁠왕관은 팔지 않습니다⁠.⁠”

“⁠담보잖아요⁠. 빚을 갚으면 돌려주는 거고요⁠.⁠”

“⁠이 왕관은 담보이면서 약속입니다⁠. 봄 첫날 성당 계단에서 새 왕비의 머리에 한 번 올라가기로 약속돼 있지요⁠. 아르셀 법도에서 왕비는 진짜 왕관을 한 번 머리에 얹어야 왕비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날 아침 제가 직접 성당까지 들고 가기로 했습니다⁠. 재상 각하와 그렇게 정했습니다⁠.⁠”

“⁠은행이 왜 남의 나라 혼례에 왕관을 들고 가요⁠?⁠”

시빌라가 돌아섰다⁠. 창으로 들어온 강물 빛이 시빌라의 반지들 위에서 반짝였다⁠.

“⁠감독관님⁠, 혼례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닙니다⁠. 아르셀 혼례 날 성당 계단에서 폐하께서 칙허 하나를 내리시지요⁠. 저는 그 칙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칙허가 내려야 제 은행의 빚 서른여섯 상자가 편히 잡니다⁠.⁠”

“⁠칙허에 뭐가 들어가는데요⁠?⁠”

“⁠재상 각하께 여쭤보시지요⁠. 각하께서 쓰셨으니까요⁠.⁠”

*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하르벤은 오래 말이 없었다⁠. 마차가 언덕길에 들어서자 하르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배 두 척은 작년 가을에 맡겼어⁠. 페넬라 소금 값하고 싸우느라 상단이 휘청했어⁠. 네가 왕비였으니까 말 안 했어⁠. 왕비 오빠가 은행에 배를 맡겼다고 하면 우스우니까⁠.⁠”

“⁠지금은 안 우스워⁠?⁠”

“⁠지금은 네가 이혼했잖아⁠.⁠” 하르벤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둘이 같이 우스우면 덜 우스워⁠.⁠”

이델라는 손바닥의 진주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진주알 사이 비단 끈이 낡아서 한 군데가 실밥처럼 풀려 있었다⁠. 이델라는 손끝으로 풀린 실밥을 꼬아 붙였다⁠. 붙지 않았다⁠.

“⁠오빠⁠, 칙허라는 말 들었지⁠?⁠”

“⁠들었어⁠.⁠”

“⁠혼례 날 성당 계단에서 왕이 내리는 칙허는 원래 죄수를 풀어 주거나 세금을 깎아 주는 거야⁠. 내 혼례 때는 남부 어부들 그물세를 깎았어⁠.⁠”

“⁠그런데⁠?⁠”

“⁠은행이 그걸 기다린대⁠.⁠”

마차가 별궁 대문 앞에 멈췄다⁠. 이델라는 목걸이를 상자에 넣지 않고 손에 쥔 채 내렸다⁠. 대문의 네모난 풀 자국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델라는 브리다를 불렀다⁠.

“⁠브리다⁠, 내일 아침에 회의실로 가⁠. 빨래터 말고⁠, 서기들 방 앞에서 빨래를 해⁠.⁠”

“⁠서기들 방 앞엔 빨래터가 없는데요⁠?⁠”

“⁠그러니까 빨래를 해⁠. 재상이 칙허를 무슨 종이에⁠, 누구 손으로 썼는지 들릴 때까지⁠.⁠”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