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98자)

베틀 열두 대

쫓겨난 왕비가 왕실 금고를 쥐었다 · 진새온

왕도에 돌아오는 데 사흘이 걸렸고⁠, 브리다가 쌓아 둔 소식을 다 듣는 데 반나절이 갔다⁠. 브리다는 부엌 식탁에 손가락을 짚어 가며 하나씩 내려놓았다⁠.

“⁠간택에 이름을 올린 집이 일곱이에요⁠. 그중에 칼데나 비단 공방집 딸이 제일 앞이래요⁠. 아버지가 재상 집무실 문턱을 하도 넘어서 문턱이 닳았대요⁠.⁠”

“⁠문턱은 돌이야⁠.⁠”

“⁠그러니까 얼마나 넘었겠어요⁠?⁠” 브리다는 손가락을 하나 더 짚었다⁠. “⁠폐하는 수염 물감을 그만두셨어요⁠. 대신 페넬라에서 깃털 모자를 들이셨대요⁠. 공작 깃털이요⁠. 어제 회랑에서 모자를 쓰고 돌아서다가 깃털로 시종 눈을 찔렀대요⁠.⁠”

“⁠시종은⁠?⁠”

“⁠한쪽 눈으로 일해요⁠. 그리고 재상 각하가 마마를 기다리세요⁠. 오늘 오후 회의실에서 결혼식 예산을 본대요⁠. 감독관도 들어오래요⁠.⁠” 브리다는 마지막 손가락을 짚고 목소리를 낮췄다⁠. “⁠재상 각하가 소금 이야기 듣고 화로를 엎으셨대요⁠. 엎은 건 아니고 발로 밀었대요⁠. 밀었는데 엎어졌대요⁠.⁠”

이델라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일어났다⁠. 아침에 벨라크 상단에서 전갈이 와 있었다⁠. 수레 마흔 대가 투르발 고개를 넘었다고 했다⁠. 가르딘의 병사들이 수레마다 둘씩 붙어 바퀴를 밀었다고 했다⁠. 전갈 끝에 하르벤의 글씨로 한 줄이 덧붙어 있었다⁠. 「⁠병사들이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 운반비 다시 이야기하자⁠.⁠」

*

같은 날 아침⁠, 투르발 고개의 눈은 무릎까지 찼다⁠. 가르딘은 맨 앞 수레의 바퀴에 어깨를 대고 밀었다⁠. 바퀴가 얼음에 미끄러질 때마다 수레꾼이 고삐를 당기며 욕을 했고⁠, 병사 둘이 뒤에서 같이 밀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수염에 얼어붙었다⁠. 고개 마루까지는 아직 반나절이 남아 있었다⁠.

“⁠사령관님⁠, 소금이 무거워요⁠, 금화가 무거워요⁠?⁠” 젊은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지금은 소금이 무겁다⁠.⁠”

“⁠내려갈 땐요⁠?⁠”

“⁠내려갈 땐 금화가 무거울 거다⁠. 무거워야 한다⁠.⁠”

벨라크 상단의 늙은 수레꾼이 고삐를 쥔 채 뒤를 돌아보았다⁠. 수레꾼은 고개를 서른 번 넘었다고 했다⁠. 병사들이 끼니마다 보리빵을 두 덩이씩 먹는 것을 보고⁠, 수레꾼은 상단주에게 전갈을 보내 운반비를 다시 따져야겠다고 했다⁠. 가르딘은 수레꾼의 빵을 제 빵에서 반 덜어 주었다⁠. 수레꾼은 빵을 받고 전갈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고개 마루에서 바람이 방향을 틀었다⁠. 가르딘은 수레에 덮은 방수포를 다시 묶으며 남쪽을 돌아보았다⁠. 구름 아래로 아르셀의 강줄기가 가늘게 빛났다⁠. 강줄기 끝 어딘가의 회의실에 감독관이 앉아 있을 것이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열쇠 꾸러미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가르딘은 방수포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손끝이 얼어서 매듭이 잘 지어지지 않았다⁠.

*

본궁 회의실 탁자는 길었다⁠. 한쪽 끝에 카스텐이 화로를 끼고 앉아 있었고⁠, 반대쪽 끝에 오스벨이 공작 깃털 모자를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다⁠. 깃털이 너무 길어서 머리에 쓰면 회의실 천장 등에 닿았다⁠. 그사이에 예식관과 왕실 서기 셋⁠, 페넬라 상관에서 온 푸른 조끼 서기 하나가 끼어 앉았다⁠. 이델라는 왕과 재상의 한가운데 빈자리에 앉았다⁠. 열다섯 해 동안 앉던 자리는 왕의 오른편이었다⁠. 이혼한 감독관의 자리는 탁자의 허리였다⁠.

카스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독관⁠, 베냐 소금 마흔 수레가 벨라크 상단 수레에 실려 산을 넘었소⁠. 운반비가 얼마요⁠?⁠”

“⁠열둘에 하나예요⁠.⁠”

“⁠열둘에 하나가 감독관의 오빠 주머니로 들어갔소⁠.⁠”

“⁠열에 하나가 페넬라 배로 들어가던 걸 열둘에 하나로 깎았어요⁠. 나머지는 금화가 되어 와요⁠. 투르발에서 오는 금화는 남부 수비대 밀린 봉급으로 먼저 나가요⁠. 사령관이 수레 곁에 붙어 있고요⁠.⁠”

카스텐은 대답하지 않고 페넬라 서기를 보았다⁠. 서기가 종이 한 장을 펼쳐 읽었다⁠. 「⁠몬테가 은행은 아르셀 왕실이 소금 약조의 뜻을 저버린 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뜻이라는 말에 이델라는 손끝으로 탁자를 한 번 두드렸다⁠.

“⁠약조에는 문장이 있지 뜻은 없어요⁠. 뜻은 문장 쓸 때 넣었어야죠⁠.⁠”

오스벨이 깃털 모자를 고쳐 쥐었다⁠. 서기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카스텐이 화로 위에서 손을 비볐다⁠.

“⁠소금은 나중에 따지겠소⁠. 오늘은 혼례요⁠.⁠” 카스텐은 예식관에게 손짓했다⁠. 예식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페넬라 남쪽 섬 비단 백 필을 더 들인다⁠, 사흘 잔치의 포도주는 페넬라에서 배로 들인다⁠, 새 왕비의 관은 페넬라의 금세공 장인이 맡는다⁠. 전부 대금은 봄 첫날⁠, 몬테가 은행⁠.

“⁠새 왕비의 관은 언제 주문했어요⁠?⁠” 이델라가 물었다⁠.

“⁠간택이 끝나면 치수를 재오⁠.⁠” 예식관이 대답했다⁠.

“⁠치수도 안 쟀는데 장인이 정해졌네요⁠.⁠”

예식관이 카스텐을 보았다⁠. 카스텐은 화로만 보았다⁠.

“⁠비단 이야기를 할게요⁠.⁠” 이델라가 말했다⁠. “⁠페넬라 비단 백 필을 외상으로 들이면 봄 첫날에 금화가 바다를 건너가요⁠. 칼데나에서 짜면 금화가 동쪽 골짜기로 가고⁠, 칼데나 직공들이 그 금화로 왕도에서 빵을 사요⁠. 같은 금화가 아르셀 안에서 한 번 더 돌아요⁠.⁠”

“⁠칼데나 비단은 거칠소⁠. 혼례에 칼데나 비단을 두르면 귀족들이 웃소⁠. 귀족들이 웃으면 예물이 가벼워지오⁠.⁠”

“⁠거친지 안 거친지 손으로 보시죠⁠.⁠”

“⁠무슨 손으로 말이오⁠?⁠”

이델라가 대답하기 전에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간택 후보 솔베가 치수를 재라고 불려 왔는데 치수 재는 방이 어딘지 몰라서 세 번 잘못 들어갔고 첫 번째는 부엌이었고 두 번째는 시종들 방이었는데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시종이 있어서 괜찮냐고 물었더니 공작 깃털에 찔렸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여기는 치수 재는 방이 아닌가 봐요⁠?⁠”

문간에 선 여자는 스물예닐곱쯤 되어 보였다⁠. 고운 털망토를 걸쳤는데 망토 안쪽 소매에서 실 꾸러미 두 개가 삐져나와 있었다⁠. 숨을 쉬지 않고 말했고⁠, 다 말하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오스벨이 무릎의 깃털 모자를 탁자 밑으로 슬그머니 내렸다⁠.

“⁠여기는 예산 회의요⁠.⁠” 카스텐이 말했다⁠.

“⁠아⁠, 예산이요⁠? 그럼 비단 이야기도 하세요⁠? 방금 문밖에서 칼데나 비단이 거칠다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저희 집이 칼데나에서 베틀 열두 대를 돌리거든요⁠, 거칠다니요⁠, 날실을 얼마나 가늘게 뽑는데요⁠.⁠”

솔베는 허락도 없이 탁자로 걸어와 예식관 앞에 놓인 페넬라 비단 견본을 손끝으로 쓸었다⁠. 그러고는 제 소매 안쪽에서 남색 비단 자락을 꺼내 견본 옆에 펼쳤다⁠.

“⁠이건 저희 집 베틀에서 지난주에 내린 거예요⁠. 만져 보세요⁠. 아⁠, 감독관님이시죠⁠? 전 왕비 마마⁠. 소문 들었어요⁠, 손끝으로 금화 무게를 맞힌다고⁠. 이것도 맞혀 보세요⁠.⁠”

이델라는 두 비단을 번갈아 손끝으로 쓸었다⁠. 페넬라 비단은 미끄러웠고⁠, 칼데나 비단은 손끝에 아주 조금 더 머물렀다⁠. 날실이 같은 굵기였다⁠. 다른 것은 씨실이었다⁠. 칼데나는 씨실을 한 번 더 꼬았다⁠.

“⁠칼데나가 더 질겨요⁠. 페넬라는 빛이 좀 더 나고요⁠. 성당 계단에서 바람 맞으면 페넬라 비단은 사흘 만에 올이 빠져요⁠. 칼데나는 열 해 가요⁠.⁠”

“⁠맞아요⁠, 맞아요⁠, 그거예요⁠!⁠” 솔베가 손뼉을 쳤다⁠. “⁠씨실을 두 번 꼬는 건 저희 할머니가 시작한 거예요⁠. 페넬라 상인들이 와서 보고 따라 하려다가 못 했어요⁠. 베틀 발판을 두 번 밟아야 하거든요⁠, 페넬라 직공들은 발판을 한 번만 밟는 데 길들어서요⁠.⁠”

“⁠비단 값은요⁠?⁠” 이델라가 물었다⁠.

“⁠페넬라 것의 반이요⁠. 외상이면 칠 할이고요⁠.⁠”

“⁠외상은 소금 금화로 갚아요⁠.⁠”

“⁠그럼 반이요⁠.⁠”

카스텐이 화로에서 손을 뗐다⁠.

“⁠후보 아가씨⁠, 아가씨는 혼례를 올릴 사람이오⁠. 혼례 비단 값을 깎는 사람이 아니오⁠.⁠”

“⁠어머⁠, 깎는 게 아니라 제값을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재상 각하⁠,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솔베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회의실의 모두가 따라 숨을 들이켰다⁠. “⁠저는 왕비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왔어요⁠. 저는 베틀 열두 대가 갖고 싶어요⁠. 제 베틀이요⁠. 아버지 거 말고요⁠.⁠”

오스벨이 눈을 끔뻑였다⁠. 예식관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왕실 서기 셋이 동시에 펜을 멈췄다⁠. 이델라는 솔베를 오래 보았다⁠. 열다섯 해 전⁠, 스물셋의 이델라도 같은 회랑을 걸어 들어왔었다⁠. 스물셋의 이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 카스텐이 오스벨을 불렀다⁠. “⁠혼례 비단은 페넬라 것으로 하오⁠. 정해진 일이오⁠.⁠”

“⁠음⁠.⁠” 오스벨이 수염을 만졌다⁠. 물감을 그만둔 수염은 이제 희끗했다⁠. “⁠그런데 재상⁠, 사흘 만에 올이 빠지면 곤란하지 않소⁠? 내가 첫 춤을 출 때 왕비 소매에서 올이 빠지면 말이오⁠. 춤 선생 발도 밟는데⁠.⁠”

“⁠폐하⁠.⁠”

“⁠칼데나로 합시다⁠.⁠” 오스벨이 말했다⁠. 솔베가 마지막으로 말한 사람이었다⁠. “⁠반값이면 반값이고⁠. 재상⁠, 혼례는 그대로 하오⁠. 비단만 바꿉시다⁠.⁠”

페넬라 서기가 종이를 접어 품에 넣고 일어섰다⁠. 카스텐은 오래 화로를 보다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비단만이오⁠.⁠”

카스텐은 회의실을 나가다 이델라 곁에서 걸음을 늦췄다⁠. 화로를 든 서기가 덩달아 멈췄다⁠.

“⁠감독관⁠, 비단은 혼례 비용의 작은 귀퉁이요⁠. 귀퉁이를 이기고 판을 이겼다고 여기지 마시오⁠. 판은 봄 첫날 성당 계단에 있소⁠.⁠”

“⁠귀퉁이부터 갉아야 판이 기울죠⁠.⁠”

“⁠쥐가 하는 말 같소⁠.⁠”

“⁠쥐는 곳간이 비기 전에 제일 먼저 알아요⁠.⁠”

카스텐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었는지 이델라는 알 수 없었다⁠. 서기가 화로를 들고 재상을 따라 회랑 끝으로 사라졌다⁠.

*

회의가 끝나고 회랑으로 나오자 솔베가 기둥 뒤에서 튀어나왔다⁠. 털망토 소매의 실 꾸러미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솔베는 실 꾸러미를 쫓아가 주워 오며 말을 시작했다⁠.

“⁠감독관님⁠, 고맙습니다⁠, 아니 고맙다고 하면 안 되나요⁠? 감독관님이 저 편을 들어서 칼데나 비단이 된 건 아니잖아요⁠, 감독관님은 금화가 안에서 돌게 하려고 그런 거고⁠, 저는 제 베틀 때문에 그런 거고⁠, 그래도 고마워요⁠.⁠”

“⁠솔베 아가씨⁠, 숨 쉬어요⁠.⁠”

“⁠네⁠.⁠” 솔베가 숨을 쉬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목소리로는 말이 느려졌다⁠. “⁠아버지 베틀 열두 대가 전부 몬테가 은행에 잡혀 있어요⁠. 페넬라 비단이랑 값으로 싸우다가 빚을 졌거든요⁠. 아버지가 저를 간택에 넣으면 몬테가가 빚을 반으로 깎아 준다고 했대요⁠. 저는 그 반값이에요⁠.⁠”

이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솔베가 실 꾸러미를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그리고 하나 더요⁠. 오늘 예식관이 치수는 간택 끝나고 잰다고 했잖아요⁠. 근데 아버지가 지난주에 술 마시고 그랬어요⁠. 새 왕비 관은 페넬라 장인이 벌써 만들어 놨다고⁠. 치수는 옛날 관 치수로 했다고⁠. 지난가을부터 만들었대요⁠.⁠”

“⁠가을부터요⁠?⁠”

“⁠네⁠, 가을이요⁠. 아버지가 몬테가 사람한테 들었대요⁠. 근데 이상하잖아요⁠. 간택 공고는 겨울에 붙었는데요⁠.⁠” 솔베가 실 꾸러미를 꽉 쥐었다⁠. “⁠가을이면 감독관님이 아직 왕비였을 때예요⁠.⁠”

회랑 창으로 강 나루가 내려다보였다⁠. 페넬라 상관 지붕 위에 저울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이델라는 허리의 열쇠 꾸러미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열쇠들이 서로 부딪혀 짧게 울었다⁠.

“⁠솔베 아가씨⁠, 아버지가 술 마시는 날 다시 알려 줘요⁠.⁠”

“⁠매일 마셔요⁠.⁠”

“⁠그럼 매일 알려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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