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27자)

별점

출연자와 사랑에 빠진 연애 예능 막내 작가 · 소하린

드론은 새벽 다섯 시에 지붕에서 사라졌다⁠. 밤새 나는 냉동 창고 처마를 올려다볼 핑계를 세 개쯤 만들었다가 하나도 쓰지 못했다⁠. 사다리를 꺼내면 누군가 왜 꺼내느냐고 물을 것이었고⁠, 섬에는 사각지대가 없었다⁠. 다섯 시 십 분⁠, 단톡방이 먼저 울렸다⁠.

「⁠[팽재웅] 갈매기 1호 귀환⁠!⁠!⁠! 냉동 창고 지붕에서 구조함ㅠㅠ⁠」

「⁠[팽재웅] 프로펠러 하나 사망⁠. 몸통은 살았음⁠」

사진 속 선배는 드론을 아기처럼 품에 안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실을 나와 편집 트럭 앞으로 뛰어갔다⁠. 선배는 트럭 계단에 앉아 부러진 프로펠러를 테이프로 감고 있었다⁠.

“⁠선배⁠, 1호 카드요⁠.⁠”

“⁠카드⁠?⁠”

“⁠메모리 카드요⁠. 어젯밤 풍어제 찍은 거⁠.⁠”

“⁠아⁠, 카드⁠.⁠” 선배는 테이프를 이로 끊었다⁠. 눈이 나를 보지 않았다⁠. “⁠아니 근데 그게⁠, 떨어질 때 충격 먹어서 깨졌을걸⁠? 아마⁠? 아직 안 봤어⁠. 백업 폴더에 넣어 놨나⁠? 기억이 잘⁠…⁠…⁠.⁠”

선배는 거짓말을 할 때 말끝을 세 번 흐렸다⁠. 지금은 네 번 흐렸다⁠. 나는 더 묻지 못했다⁠. 더 물으면 카드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 입으로 말하는 꼴이었다⁠.

“⁠풍어제 항공 그림⁠,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응⁠. 나도⁠.⁠”

선배는 프로펠러를 들어 햇볕에 비춰 보았다⁠. 테이프가 반쯤 뜬 채 바람에 팔랑였다⁠.

*

목요일 아침 고백방에서 강욱은 질문지에 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질문 하나에 대답이 길어지기도 했고 짧아지기도 했다⁠. 어젯밤 풍어제는 어땠느냐고 묻자 강욱은 할머니 장구가 생각보다 빨랐다고 말했고⁠, 불꽃놀이는 어땠느냐고 묻자 한참 생각하다가 냄새가 셌다고 했다⁠. 설아와 맺은 약속대로 나는 강욱에게 대사를 주지 않았다⁠. 대사를 주지 않자 강욱이 강욱처럼 말했다⁠. 카메라 감독은 뷰파인더 뒤에서 처음으로 지루하지 않은 얼굴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강욱이 마이크 팩을 떼며 작게 물었다⁠.

“⁠오늘 질문 몇 개 남았습니꺼⁠?⁠”

“⁠다 했어요⁠.⁠”

“⁠하나 남은 거 같은데예⁠. 작가님 클립보드 맨 밑에⁠.⁠”

클립보드 맨 아래에는 늘 나만 아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출연자에게 끝내 묻지 않는 질문⁠. 오늘의 질문은 「⁠어젯밤 창고 뒤에서⁠, 무서웠어요⁠?⁠」였다⁠. 나는 클립보드를 가슴에 붙였다⁠. 강욱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숙여 문을 나갔다⁠.

오후에는 설아의 단독 인터뷰를 길게 땄다⁠. 약속대로 나는 설아에게 노트북을 돌려 숏폼으로 나갈 장면을 고르게 했다⁠. 설아는 성게를 놓치고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장면을 골랐다⁠. 예쁜 장면이 아니었다⁠.

“⁠이게 제일 잘 퍼져요⁠. 사람들은 예쁜 거 말고 웃긴 거 퍼 날라요⁠. 예쁜 건 저장하고⁠, 웃긴 건 보내요⁠.⁠”

“⁠숏폼 오래 하셨죠⁠?⁠”

“⁠사 년이요⁠. 그래서 알아요⁠. 오늘 아침 예고편 조회수 백만 넘었죠⁠?⁠”

나는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예고편 조회수는 제작진 단톡방에만 올라왔다⁠. 설아는 내 얼굴을 보고 생긋 웃었다⁠.

“⁠감이에요⁠, 감⁠. 그리고 작가님⁠, 강욱 씨한테 대사 안 쓰셨죠⁠? 오늘 아침 인터뷰 소리가 달랐어요⁠. 벽 너머로도⁠.⁠”

설아는 고백방 벽이 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설아가 무엇을 더 아는지 몰랐다⁠. 거래를 한 사람은 둘인데⁠, 패를 다 본 사람은 하나였다⁠.

*

금요일 밤 열 시⁠, 4회가 나갔다⁠. 작가 방 텔레비전 앞에 제작진 열 명이 모여 앉았다⁠. 곽판순 할머니가 수박을 들고 들어와 화면 앞자리를 차지했다⁠. 어선의 작업등이 켜지고 보름이 선착장에 내리는 장면에서 할머니가 무릎을 쳤다⁠.

“⁠우리 아들 배다⁠! 배 이름도 나오나⁠?⁠”

“⁠모자이크 했어요⁠, 할머니⁠.⁠”

“⁠와 했노⁠! 배 이름 나와야 손님이 타러 오지⁠.⁠”

혜란은 휴대전화로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쪽배 위에서 보름이 반지를 꺼내는 순간 그래프가 위로 꺾였다⁠. 혜란은 소리 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플랫폼 화제성 순위 1위에 「⁠밀물 하우스⁠」가 올랐다⁠.

열한 시 반⁠, 시청률이 나왔다⁠.

「⁠[혜란] 4회 3⁠.3%⁠」

「⁠[혜란] 3 넘었다⁠」

단톡방에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박수 이모티콘을 누르다가 포털 기사로 넘어갔다⁠. 「⁠‘⁠밀물 하우스⁠’ 전 연인 깜짝 등장⁠… 반지 돌려준 그녀⁠, 시청률 3%대⁠」 댓글은 처음 열 개까지 강욱 이야기였다⁠. 「⁠남4 눈빛에 나 울었다⁠」 「⁠반지 녹여서 귀걸이 하래ㅠㅠ 무슨 대사냐 이게⁠」 열한 번째부터 달라졌다⁠.

「⁠근데 전여친 결혼 앞뒀다며⁠? 예비신랑은 무슨 죄⁠」

「⁠출연료 받고 전남친 앞에서 우는 거 소름⁠」

「⁠이 여자 창원 꽃집 사장이라는데ㅋㅋ 홍보하러 나온 듯⁠」

누군가 꽃집 이름을 찾아냈다⁠. 지도 앱의 「⁠보름달 꽃방⁠」 리뷰 칸이 한 시간 만에 별 하나로 뒤덮였다⁠. 「⁠꽃은 시드는데 사장 양심은 더 시듦⁠」 「⁠예비신랑 도망쳐⁠」 「⁠방송 보고 왔는데 꽃 안 삼⁠」 별점 평균이 4⁠.8에서 1⁠.9로 떨어졌다⁠. 삼 년 동안 수국과 국화와 장미로 쌓은 별이 한 시간 만에 내려앉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무릎에 엎었다⁠. 엎어 놓은 화면 아래에서 진동이 그치지 않았다⁠.

*

시즌 1 때 나는 일 년 차 막내였다⁠. 여자 출연자 하나가 밥을 먹다가 남자 출연자의 고백을 못 알아듣고 「⁠네⁠? 무슨 맛이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편집 초안에 자막을 붙였다⁠. 「⁠(⁠눈치 없음 주의⁠)⁠」 메인 작가가 웃었고⁠, 혜란도 웃었고⁠, 자막은 그대로 나갔다⁠. 사흘 뒤 출연자의 회사 게시판에 「⁠눈치 없는 직원 나오셨네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 달 뒤 출연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출연자의 마지막 메시지는 짧았다⁠. 「⁠작가님⁠, 그 자막 한 줄이 제 이름이 됐어요⁠.⁠」

시즌 1이 끝난 겨울⁠, 나는 혜란에게 공지를 띄우자고 말했다⁠. 혜란은 말했다⁠. 자막일 뿐이야⁠. 다들 금방 잊어⁠. 다들 정말 금방 잊었다⁠. 나만 못 잊었다⁠.

*

자정 무렵 편집 트럭 문을 두드렸다⁠. 혜란은 모니터 세 대 앞에서 5회 가편집본을 보고 있었다⁠. 오이 대신 각얼음을 깨물고 있었다⁠.

“⁠피디님⁠, 보름 씨 꽃집에 별점 테러가 났어요⁠. 삼백 개 넘어요⁠.⁠”

“⁠봤어⁠.⁠”

“⁠공지 띄워요⁠. 출연자와 가족⁠, 지인에 대한 악성 댓글을 멈춰 달라고⁠. 그리고 5회 앞에 보름 씨 인터뷰 하나 넣어요⁠. 보름 씨가 왜 왔는지⁠. 홍보하러 온 게 아니라고⁠.⁠”

혜란은 얼음을 와그작 깨물었다⁠.

“⁠지금 공지 띄우면 내일 기사 제목이 뭔지 알아⁠? ‘⁠밀물 하우스 출연자⁠, 악플 몸살⁠’이야⁠. 그 기사 누가 누르는지 알아⁠? 오늘 별점 단 사람들이야⁠. 불에 기름 붓는 거야⁠.⁠”

“⁠그럼 가만있어요⁠?⁠”

“⁠가만있어⁠. 사흘이면 식어⁠.⁠” 혜란은 화면을 돌려 내게 보여 주었다⁠. 5회 예고편이었다⁠. 등대 꼭대기⁠, 설아의 옆얼굴⁠, 「⁠설아 씨랑 있으면 파도 소리가 작게 들립니더⁠」 “⁠다음 주는 이거 보느라 아무도 꽃집 생각 안 해⁠.⁠”

“⁠보름 씨는 생각해요⁠. 사흘 동안 매일⁠.⁠”

“⁠보름 씨는 동의서 쓰고 왔어⁠. 출연료 받았고⁠. 자기가 고른 거야⁠.⁠”

“⁠시즌 1 때도 피디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혜란이 얼음 씹던 입을 멈췄다⁠. 모니터 불빛이 혜란의 안경알에 파랗게 떴다⁠.

“⁠시즌 1 때 그 자막⁠, 누가 썼지⁠?⁠”

트럭 안의 하드디스크 열두 개가 웅웅 돌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혜란은 내 얼굴을 한참 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낮아지는 사람이었다⁠.

“⁠은새야⁠. 나는 그때도 지금도 같은 말을 해⁠. 너만 말이 바뀌어⁠. 그때는 네 자막이었고⁠, 지금은 네 섭외라서⁠. 네가 아픈 자리에서만 공지 얘기가 나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숨이 막혔다⁠. 혜란은 다시 화면으로 몸을 돌렸다⁠.

“⁠나가⁠. 5회 붙여야 돼⁠.⁠”

*

작가 방에서는 작가 셋과 재웅 선배가 노트북을 둘러싸고 댓글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방송이 잘된 밤마다 하는 일이었다⁠. 다 같이 읽으면 나쁜 댓글도 조금 덜 아팠다⁠.

“⁠「⁠남4 수건 너는 거 ASMR로 열 시간 올려 주세요⁠」⁠”

“⁠올려 줘⁠, 올려 줘⁠. 재웅아 그거 만들어⁠.⁠”

“⁠「⁠갈매기 출연료 주세요⁠」 아니 근데 이거 누가 썼어⁠? 갈매기가 썼어⁠?⁠”

“⁠선배⁠, 다음 거⁠. 「⁠드론 왜 갈매기한테 쫓겨요ㅋㅋㅋ 조연출 힘내⁠」⁠”

재웅 선배가 노트북 뚜껑을 덮으려 했고 막내 작가 둘이 선배 팔을 붙잡았다⁠. 방 안이 웃음으로 찼다⁠. 나는 문틀에 기대어 웃는 사람들을 보았다⁠. 재웅 선배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에서 숟가락을 문 아기가 웃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웃는 이유도 시청률 3⁠.3이었다⁠. 같은 숫자 위에 보름의 별 하나 삼백 개가 얹혀 있었다⁠.

나는 마당으로 나와 보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길게 가다가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자정이 넘었는데 보름은 가게에 있었다⁠.

“⁠작가님⁠. 늦게까지 일하시네⁠.⁠”

“⁠보름 씨⁠, 리뷰⁠…⁠…⁠.⁠”

“⁠봤어요⁠. 별이 참 빨리 떨어지더라고요⁠. 떨어지는 별 보면 소원 빌라던데⁠, 소원 빌 틈도 없었어요⁠.⁠” 보름이 웃었다⁠. 웃음 끝에 숨이 한 번 끊겼다⁠. “⁠시어머니 되실 분이 전화하셨어요⁠. 괜찮다고는 하셨는데⁠, 괜찮다고 세 번 하셨어요⁠.⁠”

“⁠제가 공지 띄워 달라고 했어요⁠. 안 된대요⁠.⁠”

“⁠작가님이 미안해할 일 아니에요⁠. 제가 간 거예요⁠. 제가 가겠다고 했고⁠.⁠”

보름의 다정한 말이 혜란의 맞는 말보다 더 아팠다⁠. 나는 마당 평상에 앉았다⁠. 평상 나무 틈에 낮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보름 씨⁠, 해바라기는 아직 걸려 있어요⁠?⁠”

물어 놓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그걸 물었는지 나도 몰랐다⁠. 보름은 잠깐 조용하다가 대답했다⁠.

“⁠오늘 버렸어요⁠. 손님 하나가 리뷰에 ‘⁠창가에 죽은 꽃 걸어 둠⁠’이라고 써서⁠.⁠”

*

새벽 한 시⁠, 창고 뒤 빨래줄 끝은 비어 있었다⁠. 나는 빨래줄 끝 기둥에 등을 기대고 기다렸다⁠. 십 분쯤 지나 창고 모퉁이에서 발소리가 났다⁠. 강욱은 빈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빨래를 걷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둘 다 알았다⁠.

나는 규칙 하나를 어겼다⁠. 촬영 중인 출연자에게 바깥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출연자들이 섬에 들어올 때 휴대전화를 반납하는 까닭이었다⁠. 나는 강욱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보름달 꽃방⁠」 리뷰 칸이 떠 있었다⁠. 별 하나⁠, 별 하나⁠, 별 하나⁠.

강욱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내렸다⁠. 끝까지 내렸다⁠. 다 내리고 나서 휴대전화를 내게 돌려주었다⁠. 손이 차가웠다⁠.

“⁠제가 나가가 말하께예⁠. 보름이가 온 거⁠, 제가 불러서 온 기라꼬⁠. 그라믄 보름이 욕은 저한테 옵니더⁠.⁠”

“⁠그러면 거짓말이 하나 더 생겨요⁠.⁠”

“⁠거짓말 하나로 보름이 가게가 살믄요⁠.⁠”

“⁠안 살아요⁠. 거짓말은 들켜요⁠. 들키면 보름 씨는 두 번 욕먹어요⁠.⁠” 나는 맨투맨 소매에서 손을 꺼내 강욱의 손목을 잡았다⁠. “⁠제가 할게요⁠. 방법 찾을게요⁠. 강욱 씨는 아무것도 하지 마요⁠.⁠”

“⁠작가님은 저한테 아무것도 안 시킨다면서예⁠.⁠”

“⁠이건 부탁이에요⁠.⁠”

강욱이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빨래줄이 바람에 끼익 울었다⁠. 강욱은 대답 대신 내 손등을 엄지로 한 번 쓸었다⁠. 긴 숨이었다⁠.

모니터실로 돌아가는 길에 휴대전화가 떨었다⁠. 혜란이었다⁠. 문자는 한 줄이었다⁠.

「⁠재웅이 드론 카드 가져왔다⁠. 트럭으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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