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26자)

리허설

출연자와 사랑에 빠진 연애 예능 막내 작가 · 소하린

“⁠또 타소⁠.⁠”

선장은 이번에 두 글자 대신 세 글자를 말했다⁠. 화요일 새벽 다섯 시⁠, 미륵도 작은 항구였다⁠.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조타실 뒤 의자에 앉았다⁠. 생선 상자 대신 아이스박스 열 개가 실려 있었다⁠. 내일 생방송에 올 손님들 먹일 전복이라고 선장이 말했다⁠. 다섯 글자가 넘는 말을 선장에게서 처음 들었다⁠.

“⁠배 이름 나왔데예⁠. 6회에⁠.⁠”

“⁠봤소⁠.⁠” 선장이 껌을 딱 터뜨렸다⁠. “⁠엄마가 그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어가 섬사람들한테 다 돌렸소⁠. 열한 번⁠.⁠”

배가 달비섬 앞바다에 들어서자 선착장에 현수막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밤새 만든 것이었다⁠. 하얀 천에 빨간 매직으로 크게 써 있었다⁠. 「⁠제3달비호 실물 영접 환영⁠」 선장은 현수막을 보더니 조타실 창을 닦는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귀가 빨갰다⁠.

*

곽판순 할머니는 갯바위 위에서 나를 기다렸다⁠. 장화에 몸뻬⁠, 이번에는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내가 배에서 내리자 할머니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내 등을 철썩 때렸다⁠.

“⁠두 번 안 나간다 캤는데 두 번 나갔제⁠.⁠”

“⁠세 번 들어왔잖아요⁠.⁠”

“⁠말은 잘한다⁠.⁠” 할머니가 다시 때렸다⁠. 이번에는 덜 아팠다⁠. “⁠오늘 여객선 회사 높은 사람 들어온다⁠. 이장은 아침부터 대합실 유리 닦고 있다⁠. 니 숨어 있으래이⁠. 높은 사람 눈에 띄면 또 말 나온다⁠.⁠”

열 시 첫 여객선이 들어왔다⁠. 정장 차림 남자 셋이 내렸다⁠. 여객선 회사 본부장과 직원들이었다⁠. 이장이 손을 내밀었고⁠, 마을 사람들이 현수막 아래 줄지어 섰다⁠. 본부장은 숙소가 있는 언덕을 올려다보았다⁠. 이장이 언덕을 가리키며 무언가 오래 말했다⁠. 저기 우리 집 지붕도 나온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여객선 대합실 유리문의 공고는 그대로였다⁠. 「⁠이용객 변동에 따라 다시 검토합니다⁠」 내일 밤이 변동이었다⁠.

*

모니터실에 들어가자 막내 작가 둘이 동시에 일어났다가 동시에 앉았다⁠. 재웅 선배는 의자째 뒤로 미끄러져 와서 내 어깨를 잡았다⁠.

“⁠아니 근데 진짜 왔네⁠. 단톡방에 너 다시 넣었어⁠. 이름은 「⁠작가(⁠익명⁠)⁠」으로⁠.⁠”

“⁠그게 더 눈에 띄어요⁠, 선배⁠.⁠”

“⁠그래서 프로필 사진은 갈매기로 했어⁠.⁠”

화면 마흔두 개가 다시 내 앞에 있었다⁠. 18도 에어컨 바람이 반팔 팔뚝에 닿았다⁠. 나는 캐리어에서 맨투맨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재웅 선배가 내민 스태프 바람막이를 입었다⁠. 남색이었다⁠.

혜란이 큐시트를 내밀었다⁠. 생방송 팔십 분의 순서가 한 장에 적혀 있었다⁠. 오프닝⁠, 출연자 열 명 소감⁠, 지난 스무여드레 돌아보기⁠, 「⁠제작진 사과⁠」⁠, 마지막 밀물 선택⁠, 최종 선택⁠. 「⁠제작진 사과⁠」 옆에 괄호가 붙어 있었다⁠. 「⁠(⁠실루엣⁠)⁠」 최종 선택 칸에는 「⁠최종 커플 남4·여2 — 협찬 광고 연결⁠」

“⁠실루엣이 저예요⁠?⁠”

“⁠너야⁠. 역광으로 등만⁠. 목소리는 변조 안 해⁠.⁠” 혜란이 볼펜으로 실루엣 칸을 톡 쳤다⁠. “⁠사람들은 제작진이 숨는다고 욕해⁠. 숨지 않는 그림이 필요해⁠. 근데 얼굴까지 나오면 너 다시 검색어 돼⁠. 등만 나오면 딱 좋아⁠.⁠”

“⁠사과는 할게요⁠. 시즌 1 일도⁠, 서약 어긴 일도⁠. 그런데 등은 싫어요⁠.⁠” 나는 큐시트를 내려놓았다⁠. “⁠얼굴로 하든지⁠, 안 하든지요⁠.⁠”

“⁠얼굴 나오면 남은 인생 내내 검색어야⁠.⁠”

“⁠등만 나오면 남은 인생 내내 등이에요⁠.⁠”

혜란이 오이를 씹다 멈췄다⁠. 재웅 선배가 노트북 뒤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최종 선택은 제 질문이에요⁠. 마지막 질문 하나는 못 고치신다고 하셨어요⁠.⁠”

“⁠질문은 안 고쳐⁠. 대답이 문제지⁠.⁠” 혜란이 최종 선택 칸을 손톱으로 긁었다⁠. “⁠남4가 여2 안 고르면 광고 위약이야⁠. 협찬사는 손잡는 그림을 샀어⁠. 은새야⁠, 질문 뭐야⁠? 보여 줘⁠.⁠”

“⁠생방송에서 보세요⁠.⁠”

“⁠나 피디야⁠.⁠”

“⁠알아요⁠. 그래서 안 보여 드려요⁠. 피디님은 보면 고치고 싶어지니까요⁠.⁠”

혜란은 한참 나를 보다가 오이 꼭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들어가지 않았다⁠. 혜란은 꼭지를 주우러 가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꼭지는 쓰레기통 옆 바닥에서 혼자 말라 갔다⁠.

*

오후 네 시⁠, 등대 계단 예순 번째 칸에 강욱이 먼저 와 있었다⁠. 나는 공구 가방을 들고 올라갔다⁠. 안에는 드라이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설아가 진행 피디를 시켜 오늘 네 시 등대라고 전해 왔다⁠. 설아는 그림 짜는 일을 정말 잘했다⁠.

강욱은 창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남색 티셔츠 대신 흰 티셔츠를 입었다⁠. 엿새 만이었다⁠. 화면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강욱은 엿새 전보다 볼이 패어 있었다⁠.

“⁠밥은 묵었습니꺼⁠?⁠”

“⁠제가 물어야 할 말이에요⁠.⁠”

“⁠저는 오늘 아침에 묵었습니더⁠. 할머니가 전복죽 끓여 줬어예⁠. 작가님 온다꼬⁠.⁠” 강욱이 웃지 않았다⁠. “⁠설아 씨한테 다 들었습니더⁠. 피디님 영상⁠.⁠”

계단 아래에서 바람이 올라와 쇠 난간을 울렸다⁠.

“⁠내일 다 말하겠습니더⁠. 생방송에서⁠. 작가님 입장문 거짓말이라꼬⁠. 영상은 피디님이 올렸다꼬⁠.⁠”

“⁠그건 말하지 마요⁠.⁠”

“⁠와예⁠?⁠”

“⁠스무 명이 같이 무너져요⁠. 섬 배도요⁠. 설아 씨 위약금도 터지고요⁠.⁠” 나는 공구 가방을 계단에 내려놓았다⁠. “⁠징계위에서 강욱 씨가 제 거짓말 하나 지워 줬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그라믄 작가님만 무너지는 거는 괜찮습니꺼⁠?⁠”

강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나선 계단 위아래로 소리가 울렸다⁠. 백열두 칸 전부가 강욱의 목소리를 한 번씩 되받았다⁠. 위쪽 서른두 칸 어딘가의 카메라가 소리를 주웠을지도 몰랐다⁠. 강욱은 개의치 않았다⁠.

“⁠삼 년 전에 보름이가 제 앞에 섰습니더⁠. 저는 문자 한 줄로 도망갔습니더⁠. 이번에 작가님이 제 앞에 섰고⁠, 저는 위원회에서 한 줄 말한 게 다입니더⁠. 또 앞에 세워 놓고 저는 뒤에 있으라꼬예⁠?⁠”

“⁠앞에 서는 게 아니에요⁠.⁠” 나는 강욱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김치 냉장고 앞에서는 따뜻했던 손이었다⁠. “⁠나란히 서는 거예요⁠. 저는 제 몫만 무너질게요⁠. 시즌 1 자막도⁠, 서약도⁠, 제 얼룩이니까 제가 묻혀요⁠. 남의 얼룩까지는 안 묻혀요⁠. 엄마가 그러라고 했어요⁠.⁠”

강욱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숨을 고르다가 길게 내쉬었다⁠.

“⁠그라믄 저는 뭘 합니꺼⁠?⁠”

“⁠제 마지막 질문에 대답만 하세요⁠. 질문지에 든 대답 말고⁠, 강욱 씨 대답⁠.⁠”

“⁠질문이 뭔데예⁠?⁠”

“⁠생방송에서요⁠.⁠”

강욱이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계단이 웃음소리를 되받았다⁠.

“⁠피디님한테도 안 보여 줬지예⁠?⁠”

“⁠어떻게 알았어요⁠?⁠”

“⁠작가님 손가락 안 누르고 있어예⁠.⁠”

나는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빨래집게를 꺼냈다⁠. 국화 꽃잎을 집었던 집게였다⁠. 강욱의 티셔츠 깃에 집게를 집어 주었다⁠. 강욱이 깃을 내려다보았다⁠.

“⁠이거는 마이크 자리인데예⁠.⁠”

“⁠내일은 마이크 옆에 다세요⁠.⁠”

*

다섯 시 반⁠, 숙소 마당에서 최종 선택 리허설이 있었다⁠. 출연자들은 대역 없이 직접 섰다⁠. 진행 피디가 순서를 불렀고⁠, 설아가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대본을 읽었다⁠. 대본은 메인 작가 선배가 서울에서 보낸 것이었다⁠. 「⁠이 섬에서 저는 처음으로⁠, 노를 같이 저어 주는 사람을 만났어요⁠」 설아는 대본을 또박또박 읽었다⁠. 각도는 정확히 십 도였다⁠. 다 읽고 나서 설아는 대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접는 손이 유난히 빨랐다⁠.

리허설이 끝나고 설아가 모니터실 계단 밑에서 나를 불렀다⁠. 설아는 마이크 팩을 손에 감고 있었다⁠.

“⁠작가님⁠, 저 내일 어떻게 할지 정했어요⁠.⁠”

“⁠어떻게 할 거예요⁠?⁠”

“⁠안 알려 줄래요⁠.⁠” 설아가 생긋 웃었다⁠. “⁠작가님도 저한테 마지막 질문 안 알려 줬잖아요⁠. 공평하게 해요⁠.⁠”

“⁠설아 씨⁠.⁠”

“⁠걱정 마세요⁠. 저 지는 그림은 안 해요⁠.⁠” 설아는 돌아서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피디님이 제 전화기 다시 찾았어요⁠. 오늘 아침에⁠. 김치통 밑⁠. 할머니가 김치 꺼내다가 발견하셨대요⁠. 열무 좀 꺼내려고 했는데 휴대전화가 나왔다고⁠, 마을회관에 가져다주셨어요⁠.⁠”

설아는 웃으며 숙소로 올라갔다⁠. 웃음 끝이 비뚤어져 있었다⁠.

*

저녁 여덟 시⁠, 곽판순 할머니 민박 안방에서 여객선 회사 본부장 일행이 저녁을 먹었다⁠. 나는 작가 방에 숨어 있다가 물을 가지러 부엌에 나갔고⁠, 하필 본부장과 부엌 문턱에서 마주쳤다⁠. 본부장은 내 얼굴을 한 번⁠, 남색 바람막이를 한 번 보았다⁠. 할머니가 국자를 든 채 끼어들었다⁠.

“⁠우리 손녀다⁠. 서울서 왔다⁠.⁠”

“⁠아⁠, 손녀분⁠.⁠”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님 닮으셨네요⁠. 눈매가⁠.⁠”

“⁠닮기는⁠. 내 손녀는 내보다 못생겼다⁠.⁠”

본부장이 웃었다⁠. 할머니는 나를 부엌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본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후 배는 정에 매여 정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정한다고⁠. 내일 밤 몇 명이 섬을 보는지⁠, 그다음 달에 몇 명이 표를 끊는지⁠. 이장이 「⁠숫자는 내일 나옵니다⁠」 하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전복을 한 접시 더 내갔다⁠. 섬 사람들은 내일 밤에 섬의 다음 해를 걸고 있었다⁠.

나는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아 클립보드를 무릎에 올렸다⁠. 마지막 질문을 다시 썼다⁠. 열여드레 동안 쓴 질문지 묶음은 캐리어 밑에 있었고⁠, 맨 아래 장마다 묻지 않은 질문이 하나씩 있었다⁠. 이번에는 묻는 질문을 써야 했다⁠.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줄을 그었다⁠. 혜란의 질문이었다⁠.

「⁠이 섬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줄을 그었다⁠. 대답이 하나로 정해진 질문이었다⁠. 정해진 대답이 나오게 하는 질문은 내가 삼 년 동안 써 온 질문이었다⁠.

세 번째 줄을 쓰고 나서 나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소리 내어 읽었다⁠. 걸리지 않았다⁠. 대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이었다⁠. 강욱이 무슨 대답을 해도 맞는 질문이었고⁠, 무슨 대답을 해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종이를 네 번 접어 바람막이 안주머니에 넣었다⁠. 부엌 문 너머에서 할머니가 장구를 한 번 쳤다⁠. 손님 앞에서 흥이 오른 모양이었다⁠.

*

밤 열 시⁠, 7회가 나갔다⁠. 생방송 전날의 마지막 녹화 방송이었다⁠. 혜란은 방송을 다 보고 나서 모니터실 사람들을 내보냈다⁠. 재웅 선배가 나가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입 모양으로 「⁠아니 근데⁠」라고 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모니터실에 혜란과 나만 남았다⁠. 화면 마흔두 개 속의 숙소는 잠들어 있었다⁠. 혜란은 내 옆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휴대전화 하나를 올려놓았다⁠. 비닐이 반쯤 벗겨진⁠, 김치 국물 얼룩이 말라붙은 휴대전화였다⁠.

“⁠여2 거⁠. 보낸 기록 봤어⁠. 엿새 전 자정 무렵⁠. 받는 사람 번호 끝자리가 네 번호더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혜란은 휴대전화를 손가락으로 밀어 내 앞으로 보냈다⁠.

“⁠여2 위약금은 안 물릴 거야⁠. 내가 물리면 이 전화기 얘기가 나오니까⁠. 너도 알지⁠.⁠”

“⁠네⁠.⁠”

“⁠그러니까 이제 너하고 나야⁠.⁠” 혜란이 화면 마흔두 개를 올려다보았다⁠. “⁠내일 송출 버튼은 내가 쥐어⁠. 근데 생방송 마당에 큰 화면 하나 세워⁠. 출연자들 추억 영상 트는 화면⁠. 거기 들어갈 파일은 작가가 넘겨⁠. 너야⁠.⁠”

혜란은 오이를 꺼내지 않았다⁠. 빈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틀 거면 틀어⁠. 같이 끝나자⁠.⁠”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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