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82자)

문턱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서랑은 점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이건 니 거 아니다⁠.⁠”

공치범은 문턱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지팡이를 짚은 손등에 핏줄이 섰다⁠.

“⁠누님⁠, 이거 하나면 끝나요⁠. 공청회에서 이거 하나 들어 보이면 시청이 원도심을 밀어요⁠. 그 다방도 밀리고 그 양반들도 갈 데가 없어져요⁠. 누님은 이 골목에서 나오시고⁠. 다 끝나는 거요⁠.⁠”

“⁠뭐가 끝나⁠? 니 무릎이 끝나⁠? 내 팔이 끝나⁠?⁠”

서랑은 점퍼를 개지 않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탄 구멍이 서랑의 가슴 앞에서 흔들렸다⁠. 계산대를 돌아 나왔다⁠. 동생 앞을 지나갔다⁠. 공치범이 비켜서지 않았고⁠, 서랑은 공치범의 어깨를 스치며 문을 나갔다⁠. 공치범은 국밥집 안에 남았다⁠. 가스 불 위에서 사골이 끓어 넘치는 소리가 났다⁠. 한참 뒤에 이 불을 껐다⁠.

골목 한가운데에 다섯이 서 있었다⁠. 굴착기가 멈춘 골목에서 먼지가 아직 햇빛 속에 떠다녔다⁠. 서랑은 이들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열 걸음을 걸어 동백다방 문 앞에 섰다⁠.

세나는 서랑의 손이 문손잡이를 잡는 것을 보았다⁠. 오른손이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잠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

“⁠들어와⁠. 다섯 다⁠.⁠”

서랑은 어항 옆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가 앉던 자리였다⁠. 다섯은 문 앞에서 서로를 보았다⁠. 망치가 먼저 들어왔다⁠. 다음 곰⁠, 백구⁠, 면도날⁠, 뱀장어⁠. 다섯은 서랑의 맞은편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소파 둘에 다섯이 끼어 앉으니 어깨가 서로 붙었다⁠. 곰은 엉덩이를 반만 걸쳤다⁠.

세나는 계산대 뒤에 섰다⁠. 나가 있으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서랑은 점퍼를 등판이 위로 오게 탁자 위에 펼쳤다⁠.

“⁠1991년 십이월 열이레⁠. 오후 두 시였어⁠. 우리 집은 국밥을 팔았어⁠. 아버지가 방문 문고리를 잡고 안 놨지⁠. 이 사람이 아버지 허리를 안고 끌었고⁠.⁠”

서랑은 곰을 보았다⁠. 곰은 고개를 들었다⁠. 내리지 않았다⁠.

“⁠난로가 넘어갔어⁠. 장판에 불이 붙고⁠, 이불에 붙고⁠. 이 사람이 나갔어⁠. 나는 아버지 팔을 잡고 끌었어⁠. 내 소매에 불이 붙은 건 나중에 알았어⁠. 문밖에 나와서 눈 위에 팔을 묻었는데⁠, 눈이 다 녹았어⁠.⁠”

다방 안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항의 기포 소리와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났다⁠.

“⁠피부 이식을 열한 번 했어⁠. 허벅지 살을 떼어서 팔에 붙였어⁠. 처음 붙인 해 여름에는 살이 당겨서 팔이 머리까지 안 올라갔어⁠. 스물넷인데 머리를 혼자 못 빗었어⁠. 어머니가 빗겨 줬어⁠. 손가락 셋은 그때 굽은 거야⁠. 아버지는 그해 겨울부터 기침을 했어⁠. 연기를 많이 마셨지⁠. 두 해를 기침하다 돌아가셨어⁠. 국밥집 문은 솔섬골에서 닫았고⁠. 치범이는 무릎에 쇠를 박고 석 달을 누웠어⁠.⁠”

서랑은 말을 멈췄다⁠. 왼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 셋이 점퍼의 탄 소매 옆에 나란히 놓였다⁠.

뱀장어가 입을 열었다⁠. 미안⁠, 하고 첫 소리가 나왔다⁠. 서랑이 뱀장어를 보았다⁠. 뱀장어는 입을 닫았다⁠.

“⁠그 말은 하지 마⁠. 나는 그 말 받을 생각이 없어⁠. 받으면 내가 뭘 해 줘야 하잖아⁠.⁠”

*

“⁠계춘 언니가 처음 봉투를 들고 왔을 때 나는 그 돈을 안 받으려고 했어⁠. 그런데 언니가 이 한마디를 써 왔어⁠. 내가 숨겼다⁠. 그 한 줄 때문에 이 자리에 가게를 냈어⁠. 숨긴 사람이 날마다 날 보라고⁠. 숨은 사람들이 날마다 날 보라고⁠.⁠”

서랑은 망치를 보았다⁠.

“⁠그런데 니들은 서른 해 동안 의자를 벽 쪽으로 돌려 앉았지⁠. 계춘 언니가 날마다 니들을 붙들어 놨는데⁠, 니들은 날마다 고개를 돌렸어⁠.⁠”

망치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첫날 공치범이 들어오기 전⁠, 국밥집 셔터가 올라갈 때 의자를 벽 쪽으로 돌려 앉던 것을 세나는 기억했다⁠.

“⁠세 가지야⁠.⁠”

서랑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지 않았다⁠. 펴지지 않는 손이었다⁠. 말로만 셌다⁠.

“⁠하나⁠, 다방은 열어 둬⁠. 니 빚은 니 사정이지만⁠, 문은 닫지 마⁠. 이 사람들 갈 데 없게 만들어서 내가 얻을 게 없어⁠. 둘⁠, 니들은 날마다 일곱 시에 와⁠. 저 창가 자리에 앉아⁠. 의자를 내 가게 쪽으로 돌려⁠. 쌍화차를 마시든 쓴 보리차를 마시든 웃든 울든⁠, 내 가게 쪽을 보고 해⁠.⁠”

다섯이 서랑을 보았다⁠. 곰이 코를 훌쩍였다⁠.

“⁠셋⁠. 치범이가 공청회를 열 거야⁠. 거기 나와⁠. 니들 입으로⁠, 니들 이름으로 말해⁠. 솔섬골에서 뭘 했는지⁠. 용서해 달라는 말은 빼고⁠.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들을 거야⁠.⁠”

“⁠그 자리에서 우리가 말하면⁠, 위원장이 그걸로 이 동네를 밀 거요⁠.⁠”

망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서랑은 망치를 오래 보았다⁠.

“⁠그건 니들이 지고 갈 셈이야⁠. 나는 서른다섯 해를 졌어⁠.⁠”

서랑은 일어섰다⁠. 점퍼를 들었다⁠. 이번에는 접어서 팔에 걸었다⁠. 문 앞에서 세나를 돌아보았다⁠.

“⁠이건 내가 가져간다⁠. 니 할머니가 서른다섯 해 맡아 준 거니까⁠, 이제 내가 맡을게⁠.⁠”

*

이날 오후⁠, 다섯은 의자를 돌렸다⁠.

창가 소파 둘을 들어 방향을 바꾸는 데 곰과 백구가 붙었다⁠. 소파가 국밥집을 정면으로 보게 되자 오후 햇빛이 유리문으로 곧장 들어와 다섯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뱀장어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아따⁠, 서쪽 해가 정면이네⁠. 눈이 부셔서 저 집이 안 보여⁠.⁠”

백구가 이층 할머니 방에서 대나무 발을 들고 내려왔다⁠. 이것을 유리문 위쪽 절반에 걸었다⁠. 아래 절반은 그대로 두었다⁠. 앉은 눈높이에서 골목 건너편 국밥집 계산대가 정확히 보이는 높이였다⁠. 뱀장어가 발을 올려다보고 백구를 보고 말했다⁠. 니는 서른 해 동안 입 대신 눈으로 셈을 했구나⁠. 백구는 대답 대신 발 끈을 한 번 더 묶었다⁠.

곰이 라테를 내렸다⁠. 피처를 잔 위로 가져갔다가⁠, 하트를 그리지 않고 우유를 그냥 부었다⁠. 흰 우유가 갈색 위에 둥글게 번졌다⁠. 세나가 이것을 보았다⁠. 곰은 이 잔을 창가 탁자에 놓았다⁠.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국밥집 쪽을 향한 잔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다섯은 창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국밥집 쪽을 향해 있었다⁠. 국밥집 셔터는 내려가 있었다⁠.

일곱 시 십 분⁠, 셔터가 올라갔다⁠. 서랑이 가마솥 뚜껑을 열기 전에 골목 건너편을 보았다⁠. 다섯이 서랑을 보았다⁠. 서른 해 만에 처음으로 두 문이 서로를 마주 본 채 열려 있었다⁠.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숙이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숙이면 안 된다는 것은 다섯 다 알았다⁠. 곰이 먼저 눈을 피하려 했다⁠. 망치가 곰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곰은 다시 앞을 보았다⁠. 곰의 눈에서 물이 흘러 턱 끝에 맺혔다⁠. 이것을 닦지 않았다⁠. 면도날의 손이 쌍화차 잔 옆에서 떨렸다⁠. 뱀장어는 단추를 만지지 않았다⁠. 백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깜박이지 않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서랑은 오래 보았다⁠. 그리고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 김이 올라와 서랑의 얼굴을 가렸다⁠. 김이 걷히고 나서도 국자를 든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세나는 계산대 뒤에서 이 아침을 보았다⁠. 쌍화차 다섯 잔이 식어 가는 동안 다방 안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곱 시 반이 되어서야 뱀장어가 말했다⁠. 노른자가 식으면 비린내가 난다고⁠. 이 말에 곰이 울다 말고 웃었다⁠.

*

수산시장 갈치 이모가 다방에 온 것은 이날 오전이었다⁠. 고무장화를 신은 채 들어와 쌍화차를 시키고⁠, 의자가 돌아가 있는 것을 보고⁠, 창가의 다섯을 보고⁠, 맞은편 국밥집을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뱀장어가 계산대에 기대 세나에게 빚 얘기를 했다⁠. 사천만 원⁠, 팔월 삼십일일⁠, 하루 몇 잔⁠. 세나가 말리기 전에 다 해 버렸다⁠.

“⁠옛날엔 다방에 외상 달고 마셨제⁠.⁠”

갈치 이모가 쌍화차를 다 마시고 말했다⁠.

“⁠거꾸로 해⁠. 미리 내고 마시게⁠. 내가 십만 원 내믄 몇 잔이여⁠?⁠”

“⁠쌍화차면 스물다섯 잔⁠, 커피면 서른 잔이요⁠.⁠”

“⁠그라믄 서른 잔⁠. 대신 내 잔은 따로 하나 둬⁠. 남들이 쓰던 잔 말고⁠. 내가 와서 마실 때마다 그 잔에⁠.⁠”

이모는 고무장갑을 벗고 만 원짜리 열 장을 계산대에 놓았다⁠. 생선 비늘이 한 조각 붙어 있었다⁠.

이날 오후 세나는 시장 그릇 가게에서 흰 머그 마흔 개를 샀다⁠. 망치가 다방 안쪽 벽에 못을 박았다⁠. 할머니가 걸어 둔 달력 옆⁠, 공중전화 자국 밑⁠. 망치의 손에 들린 것은 진짜 쇠망치였다⁠. 손잡이가 닳아 반들거렸다⁠. 망치가 못 하나를 박을 때마다 벽이 울렸다⁠.

“⁠형님이 망치를 드니께 그림이 되네⁠.⁠”

뱀장어가 말했다⁠. 망치는 손을 멈추고 뱀장어를 보았다⁠. 뱀장어가 헛기침을 했다⁠. 망치는 다음 못을 박았다⁠. 첫 머그에 갈치 이모의 이름 대신 갈치 한 마리가 그려졌다⁠. 곰이 유성펜으로 그린 갈치였는데⁠, 아무리 봐도 장어였다⁠.

이틀 사이에 머그 서른네 개가 걸렸다⁠. 게스트하우스 사장 셋⁠, 갈치 이모가 데려온 시장 사람들⁠, 경위⁠. 경위는 머그에 아무것도 그리지 말라고 했다⁠. 자기 잔이 어느 것인지는 자기가 안다고⁠, 맨 끝에 걸어 달라고 했다⁠. 서른네 개면 삼백사십만 원이었다⁠. 세나는 이날 밤 처음으로 갚아야 할 돈을 크게 줄여 셌다⁠. 삼천오백오십만 원⁠.

*

공치범은 저녁 일곱 시에 국밥집 앞에서 누님을 기다렸다⁠. 세나는 다방 유리문 너머로 이것을 보았다⁠. 대나무 발 아래 절반으로⁠.

“⁠누님이 그 사람들 편을 드는 거요⁠?⁠”

“⁠나는 내 편이야⁠.⁠”

“⁠그 사람들을 날마다 저기 앉혀 놓고 누님은 뭘 하요⁠? 서른다섯 해를 또 그러고 사실라고⁠?⁠”

“⁠그건 내가 정해⁠.⁠”

“⁠누님은 맨날 그렇게 혼자 정하요⁠. 나는 누님 대신 아파하면 안 되요⁠? 나도 거기 있었소⁠.⁠”

서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생의 오른쪽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입술이 한 번 움직였는데⁠, 나오려던 말이 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셔터를 내렸다⁠. 공치범은 내려간 셔터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러다 골목 건너 다방을 보았다⁠. 대나무 발 아래로 창가에 앉은 다섯의 무릎이 보였다⁠.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셔터를 올리자 다방 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구청 건축과 직원이었다⁠. 하나는 안전모를 들고 있었고⁠, 하나는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가 박힌 표지 한 장과 테이프를 들고 있었다⁠. 「⁠사용 중지 — 위험 건축물⁠」

“⁠지난주 옆 건물 철거 중에 이 건물 뒤쪽 구조물이 무너졌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목조 건물이고 오래돼서⁠, 정밀 안전진단 전까지 사람이 드나들면 안 됩니다⁠.⁠”

“⁠누가 신고했는데요⁠?⁠”

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표지를 유리문에 대려고 테이프를 뜯었다⁠. 이때 망치가 문 앞으로 걸어왔다⁠. 일곱 시에 맞춰 와 있었다⁠. 다른 넷도 골목에 서 있었다⁠. 망치는 유리문과 직원 사이에 섰다⁠. 문짝처럼 넓은 어깨가 유리문을 가렸다⁠.

세나는 셔터 손잡이를 쥔 채 숫자부터 셌다⁠. 정밀 안전진단이 몇 주 걸리면 그동안 매출은 없다⁠. 남은 날은 서른이틀⁠, 갚아야 할 돈은 삼천오백오십만 원⁠. 벽에 걸린 머그 서른네 개가 문 닫힌 다방 안에 매달려 있을 것이었다⁠.

“⁠그 종이는 못 붙이요⁠.⁠”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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