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3자)

안전모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직원의 손에서 테이프가 늘어졌다⁠.

“⁠어르신⁠, 이거 막으시면 공무집행방해예요⁠. 경찰 부르게 하지 마세요⁠.⁠”

망치는 비키지 않았다⁠. 골목의 넷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 곰의 어깨가 올라갔고⁠, 백구가 소매를 걷었다⁠. 직원 둘이 서로를 보았다⁠. 안전모를 든 사람이 한 걸음 물러섰다⁠. 세나는 이 장면을 알아보았다⁠. 첫날 공치범이 계약서를 꺼냈을 때⁠, 평상 앞에 반장이 망치를 거꾸로 내밀었을 때⁠, 굴착기가 이발소 벽을 찍을 때⁠. 다섯의 몸은 서른다섯 해 전에 배운 대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비키세요⁠, 할아버지⁠.⁠”

망치가 고개를 돌렸다⁠.

“⁠문은 제가 다시 열어요⁠. 몸으로 막는 거 말고 다른 걸로요⁠. 비켜 주세요⁠.⁠”

망치는 세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이 한 걸음이 일흔넷의 다리에 무거워 보였다⁠. 넷이 망치를 따라 물러섰다⁠. 직원이 표지를 유리문에 붙였다⁠. 노란 종이가 대나무 발 아래 절반을 가렸다⁠. 창가 소파와 국밥집 사이에 「⁠사용 중지⁠」가 끼어들었다⁠.

건너편 국밥집에서 서랑이 이것을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마솥 뚜껑을 닫았다⁠.

*

다방이 닫힌 이튿날 아침 일곱 시⁠, 다섯은 다방 돌계단에 앉으려다 멈췄다⁠. 국밥집 셔터가 먼저 올라가 있었다⁠. 서랑이 문 앞에 서서 이들을 보고 있었다⁠.

“⁠거기 말고 이리 와⁠.⁠”

서랑은 가게 앞에 빈 맥주 상자 다섯 개를 엎어 놓았다⁠. 국밥집 문 앞⁠, 다방을 마주 보는 자리였다⁠. 다섯은 골목을 건너왔다⁠. 서른 해 동안 넘지 않던 열 걸음이었다⁠. 서랑의 문턱에는 발을 대지 않고⁠, 이 앞 상자에 앉았다⁠.

“⁠다방이 닫혔다고 일곱 시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 여기 앉아서 저 문 봐⁠. 니들이 숨던 데를⁠.⁠”

다섯은 다방 유리문에 붙은 노란 표지를 보았다⁠. 뒤로 비어 있는 창가 소파가 보였다⁠. 서른 해 동안 서랑이 이 자리에서 본 풍경이 거기 있었다⁠.

곰이 상자에 앉자 플라스틱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상자가 주저앉았고 곰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뱀장어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서랑은 웃지 않았다⁠. 가게 안에서 상자 하나를 더 가져와 곰 앞에 놓았다⁠. 이번에는 두 개를 겹쳐서⁠. 곰은 거기 조심스럽게 앉았다⁠. 이날부터 다방이 다시 열리는 날까지⁠, 다섯은 아침 일곱 시마다 국밥집 앞 맥주 상자에 앉아 삼십 분씩 동백다방을 보았다⁠. 서랑은 이 등 뒤에서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

*

정밀 안전진단 결과는 사흘 뒤에 나왔다⁠. 뒤쪽 창고 벽과 맞닿은 일층 기둥 둘이 기울었고⁠, 무너진 벽 자리를 막고 기둥을 보강해야 재점검을 받을 수 있었다⁠. 세나가 부른 업체는 견적서에 육백만 원을 적었다⁠. 공사 기간은 삼 주⁠.

“⁠삼 주면 팔월 하순이에요⁠. 그 사이에 한 푼도 못 벌어요⁠. 육백만 원이면 지금까지 모은 돈보다 많아요⁠.⁠”

세나는 견적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다섯은 문 앞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다방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백구가 견적서를 집어 들었다⁠. 이것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세나가 들은 백구의 두 번째 긴 말이었다⁠.

“⁠기둥 둘이면 나가 하요⁠. 선창 들어가기 전에 대목 밑에서 여섯 해 있었소⁠. 나무는 내가 고르고⁠, 철물은 뱀장어가 아는 집이 있고⁠, 무거운 건 곰이 들고⁠.⁠”

“⁠벽 허무는 거는 우리가 잘하요⁠.⁠”

뱀장어가 말했다가 망치의 눈치를 보았다⁠. 망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서 있는지도 아요⁠. 서 있는 걸 넘어뜨리려면 어디가 버티는지부터 알아야 하니께⁠.⁠”

문제는 서명이었다⁠. 구청은 자격 있는 건축사가 설계하고⁠, 공사가 도면대로 되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감리까지 맡은 보강만 받아 주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한 사람을 데려왔다⁠. 원도심 적산가옥을 고쳐 온 서른 후반의 건축사였다⁠. 이 사람은 무너진 창고를 둘러보고⁠, 기울어진 기둥에 손바닥을 대 보고⁠, 노인 다섯을 한 사람씩 보았다⁠.

“⁠설계는 제가 해 드릴게요⁠. 감리도요⁠. 대신 제가 그린 대로만 하셔야 돼요⁠. 한 군데라도 어르신들 식으로 하시면 서명 안 해요⁠.⁠”

다섯이 한꺼번에 일어나 허리를 꺾었다⁠.

“⁠예⁠, 실장님 형님⁠!⁠”

건축사가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세나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덮었다⁠.

*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다방은 손수레가 되었다⁠.

세나는 목포역 앞 광장 그늘에 손수레를 세웠다⁠. 수레 위에 그라인더와 드리퍼⁠, 주전자⁠, 얼음 상자⁠, 그리고 면도날의 셰이커⁠. 수레 옆에 할머니의 칠판을 세웠다⁠. 분필 글씨는 그대로 두고⁠, 한 줄을 더 썼다⁠. 「⁠동백다방은 공사 중입니다⁠. 머그를 미리 사 주시면 다시 열 때 벽에 걸어 둡니다⁠」

면도날은 공사판 대신 손수레 옆에 서서 셰이커를 쥐었다⁠. 역 광장의 땡볕 아래에서 흔들 냉커피가 제일 먼저 동났다⁠. 첫날 머그는 셋 팔렸다⁠. 이틀째에 열둘⁠. 사흘째 아침에는 원도심 2구역 다른 골목 사람들이 수레 앞에 줄을 섰다⁠. 사진관을 하는 노인⁠, 철물점 부부⁠, 낡은 여관의 주인⁠. 이들은 머그를 사면서 세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추진위가 동의서를 받으러 집집마다 온다고⁠. 동의를 안 하면 우리 골목도 저 다방처럼 될 거라는 말을 하고 간다고⁠.

“⁠그 집이 남아야 우리도 남지⁠.⁠”

철물점 아주머니가 말했다⁠. 세나는 머그 두 개를 샀다⁠. 하나는 남편 것이었다⁠.

세나는 이 말이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머그 하나가 커피 서른 잔이 아니라 한 집의 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바란 것은 빚을 갚는 것이었는데⁠, 손수레 앞의 줄은 공치범과 맞서는 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머그를 사는 사람들 가운데 솔섬골이 어디였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다방 뒤꼍은 아침 여섯 시부터 시끄러웠다⁠.

다섯은 건축사가 나눠 준 하얀 안전모를 썼다⁠. 곰의 머리에는 안전모가 작아서 정수리에 얹혀 있었다⁠. 백구가 대패로 나무를 밀었다⁠. 송진 냄새가 연탄재 냄새를 밀어냈다⁠. 면도날은 못을 들지 않고 줄자를 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잡은 줄자 끝을 백구가 손등으로 눌러 주었다⁠. 뱀장어는 철물점에서 받아 온 보강 철물을 하나씩 내밀며 이름을 외쳤다⁠. 이게 앵글⁠, 이게 볼트⁠, 이게 와셔⁠. 와셔를 와샤라고 했고⁠, 건축사가 이때마다 고쳤다⁠.

망치는 무너진 판자와 벽돌을 날랐다⁠. 벽돌을 한 장도 던지지 않았다⁠. 한 장씩 들어서 쌓았다⁠. 건축사가 이것을 보다가 세나에게 물었다⁠.

“⁠저 어르신은 원래 무슨 일 하셨어요⁠? 벽돌 다루는 손이 남달라요⁠.⁠”

세나는 대답하기 전에 망치를 보았다⁠. 망치는 들은 체하지 않고 다음 벽돌을 들었다⁠.

“⁠집 부수는 일이요⁠.⁠”

건축사가 고개를 돌려 세나를 보았다⁠. 세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건축사는 다시 망치 쪽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면을 펼쳤다⁠.

여드레째 저녁⁠, 곰이 기울어진 기둥 옆에 새 기둥을 세웠다⁠. 백구가 쐐기를 박고 망치가 이것을 쇠망치로 세 번 쳤다⁠. 새 기둥이 옛 기둥 옆에서 곧게 섰다⁠. 다섯이 안전모를 벗었다⁠. 곰의 정수리에 안전모 자국이 붉게 패어 있었다⁠.

*

손녀가 손수레를 찾아온 것은 팔월 열흘이었다⁠.

손녀는 배낭을 내려놓고 지갑에서 십만 원을 꺼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라고 했다⁠. 세나는 머그를 받아 들고 유성펜을 빌렸다⁠. 펜을 쥐고 한참 생각하다가 머그에 하트를 그렸다⁠. 위쪽 둥근 데가 너무 컸고 아래 꼭지가 없었다⁠.

“⁠할아버지 잔 옆에 걸어 주세요⁠.⁠”

“⁠등록금은 어떻게 됐어요⁠?⁠”

“⁠냈어요⁠. 할아버지가 얼음 나른 돈 백삼십만 원이랑⁠, 나머지는 제가 학자금 대출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처음엔 안 된다고 했는데요⁠. 제가 그랬어요⁠. 이건 할아버지 빚이 대물림되는 게 아니고 제 거라고⁠. 제 이름으로 제가 갚는 거라고⁠.⁠”

세나는 머그를 받아 들었다⁠. 엉덩이 하트가 세나의 손바닥 위에서 웃기게 생겼다⁠. 곰의 손녀다운 하트였다⁠.

이날 저녁 세나는 머그를 셌다⁠. 백구십 개⁠. 천구백만 원⁠. 다방 문을 닫은 열하루 동안 손수레로 번 돈보다 동네 사람들이 미리 낸 돈이 훨씬 많았다⁠. 보강 재료와 건축사 수고비로 백오십만 원이 나갔다⁠. 갚아야 할 돈은 이천백사십만 원이 남아 있었다⁠.

*

재점검은 팔월 열하루 오후에 끝났다⁠. 구청 직원이 새 기둥에 손바닥을 대 보고⁠, 건축사의 서명을 확인하고⁠, 유리문의 노란 표지를 뗐다⁠. 테이프 자국이 대나무 발 아래 남았다⁠. 다섯은 이 자리에서 쌍화차를 끓였다⁠. 열이틀 만이었다⁠.

이날 저녁⁠, 망치의 핸드폰이 울렸다⁠. 망치는 전화를 받고 아무 말 없이 다방을 나갔다⁠.

솔섬 아파트 옥상은 열다섯 층 위에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바람이 거기서 방향을 꺾었다⁠. 공치범은 난간 앞에 서 있었다⁠. 지팡이를 난간에 걸쳐 놓고 두 손으로 철제 난간을 잡고 있었다⁠. 망치가 옥상 문을 열고 나오자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저기가 우리 집 자리요⁠. 놀이터 미끄럼틀 있는 데⁠.⁠”

망치가 난간 앞으로 와서 섰다⁠. 아래로 놀이터가 보였다⁠. 붉은 미끄럼틀⁠, 모래밭⁠, 그네 둘⁠. 저녁 먹을 시간이라 아이들은 없었다⁠.

“⁠형님⁠, 거래 하나 합시다⁠.⁠”

공치범이 처음으로 망치를 보았다⁠.

“⁠형님이 목포를 떠나시오⁠. 서울이든 어디든⁠. 다시는 안 오시면 그 다방 빚 날짜를 내년 팔월까지 미뤄 드리겠소⁠. 한 해면 그 아가씨가 갚을 거요⁠. 다방도 살고⁠.⁠”

“⁠왜 나요⁠?⁠”

“⁠누님이 그럽디다⁠. 형님들 얼굴 보는 게 누님 일이라고⁠. 날마다 일곱 시에 그 창가에 형님들을 앉혀 놓고 누님은 그 일을 또 서른 해 할 거요⁠. 나는 그걸 못 보겠소⁠. 다른 넷은 형님 없으면 흩어지요⁠. 형님이 그 다섯을 서른 해 붙들어 놨으니께⁠.⁠”

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공치범의 오른쪽 무릎이 바지 속에서 한 번 꺾였다가 펴졌다⁠.

“⁠형님이 내 무릎 친 날⁠, 나는 스물셋이었소⁠. 형님은 그때 마흔아홉이었고⁠. 형님한테 하나만 받고 싶소⁠. 누님 눈앞에서 사라져 주시오⁠.⁠”

“⁠그게 누님이 바라는 거요⁠?⁠”

“⁠누님이 뭘 바라는지는 나도 모르요⁠. 서른다섯 해를 몰랐소⁠. 그러니 내가 바라는 걸 하요⁠.⁠”

망치는 놀이터를 내려다보았다⁠. 미끄럼틀 자리에 서른다섯 해 전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고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한 번 멈췄다⁠.

“⁠생각해 보겠소⁠.⁠”

*

새벽 네 시 반⁠, 세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곰이었다⁠. 얼음 창고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랑께⁠, 사장님⁠. 형님이 역으로 가요⁠. 가방 들고⁠. 나가 불러도 안 돌아봐요⁠.⁠”

세나는 셔츠를 걸치고 뛰었다⁠. 원도심 골목에서 목포역까지 오 분이었다⁠. 돌길에 슬리퍼가 미끄러졌다⁠. 역 광장의 손수레 자리를 지나 대합실 유리문을 밀었다⁠.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대여섯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고⁠, 대합실 안에 바닷바람 대신 소독약 냄새가 돌았다⁠.

망치는 맨 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낡은 여행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퍼 손잡이에 계춘 할머니 장례식장의 리본 끈이 아직 감겨 있었다⁠. 오른손에 기차표 한 장을 쥐고 있었다⁠. 서울행⁠, 다섯 시 십 분⁠.

세나는 숨을 몰아쉬며 망치의 앞에 섰다⁠. 망치가 고개를 들었다⁠. 놀라지 않았다⁠.

“⁠공치범 씨가 뭐라고 했어요⁠?⁠”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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