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81자)

연탄 창고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아침 일곱 시⁠, 셔터 앞에 아무도 없었다⁠.

세나는 셔터를 올리고 가스 불을 켰다⁠. 놋쇠 주전자에 물을 붓고 대추와 계피를 넣었다⁠. 노른자 다섯 개를 깨서 그릇에 담았다⁠. 다 담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소파 다섯 자리가 비어 있었다⁠. 쌍화차 끓는 냄새가 빈 다방 안에 가득 찼다⁠.

어젯밤 망치가 전화를 걸어 왔었다⁠. 짧은 전화였다⁠. 내일부터 다섯은 다방에 안 간다고⁠. 이 집 사람이 우리를 안 보게 하는 길은 이것 하나라고⁠. 사장님은 문을 닫지 말고 장사를 하라고⁠. 세나가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끊었다⁠.

노른자 다섯 개는 이날 아무 데도 쓰이지 않았다⁠.

*

선창 방파제 끝⁠, 등대로 가는 길목에 시멘트 의자가 있었다⁠. 아침 일곱 시⁠, 노인 다섯이 거기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닷바람이 짰고⁠, 갈매기가 방파제 위를 낮게 돌았다⁠.

뱀장어가 자판기에서 종이컵 커피 다섯 잔을 뽑아 왔다⁠.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을 기계가 알아서 탄 맛이었다⁠.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다⁠.

“⁠아따⁠, 이게 다방 커피여⁠? 계춘 누님은 프림을 이렇게 안 탔어⁠.⁠”

“⁠그랑께⁠, 거품이 없소⁠.⁠”

곰은 종이컵을 들여다보았다⁠. 표면에 뜬 갈색 거품을 손가락으로 저어 하트를 그리려 했다⁠. 손가락이 뜨거워서 컵을 놓쳤다⁠. 커피가 시멘트 의자 위로 쏟아졌다⁠. 백구가 말없이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면도날은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떨리는 손을 붙들었다⁠. 망치만 커피에 손을 대지 않고 바다를 보고 있었다⁠.

“⁠형님⁠, 언제까지 여기 앉어 있어⁠?⁠”

“⁠그 집 사람이 됐다 할 때까지⁠.⁠”

“⁠그 집 사람이 언제 됐다 하는디⁠?⁠”

망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은 일곱 시 반까지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갈 데가 없어서 다시 앉았다⁠. 여덟 시가 되었다⁠.

*

이날 다방 손님은 여섯이었다⁠. 게스트하우스 두 곳에서 아침 마흔 잔이 나갔고⁠, 철가방은 세나가 혼자 들었다⁠. 두 손에 하나씩 들고 근대 건물 거리를 두 번 왕복하자 팔뚝이 떨렸다⁠. 면도날의 손이 아니면 냉커피 거품은 세나의 손목에서 나와야 했다⁠.

두 번째 배달에서 돌아오는 길⁠, 국밥집 셔터가 올라가 있었다⁠. 서랑이 문 앞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바가지를 든 채로 골목 건너편 다방 유리문 안을 보고 있었다⁠. 소파 다섯 자리가 비어 있었다⁠. 바가지의 물이 서랑의 신발 앞에서 다 흘러 버렸는데도 바가지를 기울인 채 서 있었다⁠.

세나가 철가방을 들고 이 앞을 지나가자 서랑이 바가지를 내렸다⁠.

“⁠그 사람들 어디 갔어⁠?⁠”

“⁠안 온대요⁠. 사장님이 안 보시게요⁠.⁠”

서랑은 빈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바가지 바닥에 남은 물이 햇빛에 흔들렸다⁠.

“⁠누가 그러래⁠?⁠”

“⁠자기들이 정했대요⁠.⁠”

“⁠서른 해 동안 그 사람들이 자기들 맘대로 정한 게 그거 하나네⁠.⁠”

서랑은 안으로 들어갔다⁠. 셔터는 올라간 채였다⁠. 부엌 쪽창의 블라인드가 반쯤 열려 있었고⁠, 이 틈으로 다방의 빈 소파가 보였다⁠. 세나는 철가방을 고쳐 들었다⁠. 서랑이 무엇을 바라는지 이번에도 알지 못했다⁠. 다섯이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홉 시 정각⁠, 다방 옆집에서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옆집은 서른 해 전에 문을 닫은 이발소였다⁠. 이 옆은 일제 때 일본인이 짓고 떠난 목조 이층집⁠, 이 동네 사람들이 적산가옥이라 부르는 집이었고⁠,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다⁠. 둘 다 빈집이었는데⁠, 세나는 사흘 전 이 문에 「⁠원도심 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매입⁠」 딱지가 붙은 것을 보았다⁠. 오늘 아침 이 앞에 노란 굴착기 한 대가 서 있었다⁠. 이 옆에 추진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맨 앞에 팔뚝 문신이 반쯤 지워진 반장이 서 있었다⁠.

“⁠빈집 철거요⁠. 구청 허가 났어요⁠.⁠”

반장은 세나가 묻기도 전에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굴착기가 시동을 걸었다⁠. 경유 냄새와 검은 연기가 골목에 깔렸다⁠. 굴착기 팔이 이발소 지붕을 찍었다⁠. 슬레이트가 깨지면서 하얀 먼지가 구름처럼 올라왔다⁠. 먼지가 다방 유리문을 덮었다⁠. 다방 안의 손님 둘이 기침을 하며 나갔다⁠.

“⁠이 집 벽이 우리 창고랑 붙어 있어요⁠. 뒤꼍 연탄 창고요⁠.⁠”

“⁠허가 받았다니까요⁠. 벽은 우리 쪽 벽이에요⁠.⁠”

“⁠벽 하나를 두 집이 같이 쓰는 거예요⁠. 그걸 기계로 찍으면 우리 쪽도 무너져요⁠.⁠”

반장은 굴착기 기사에게 손을 들어 계속하라고 했다⁠. 굴착기 팔이 이발소 벽을 긁었다⁠. 벽돌이 떨어졌다⁠. 세나는 뒤꼍으로 뛰었다⁠. 연탄 창고 판자벽이 안쪽으로 휘어 있었다⁠. 녹슨 자물쇠가 문짝에 매달려 덜렁거렸다⁠.

*

방파제의 다섯이 굴착기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이십 분 뒤였다⁠. 뱀장어의 핸드폰으로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다방 옆에 굴착기가 들어왔다고⁠, 사장님 혼자 거기 서 있다고⁠.

망치가 먼저 일어났다⁠. 걷다가 뛰었다⁠. 일흔넷의 다리였다⁠. 곰이 뒤를 따랐고 백구가 따랐다⁠. 면도날이 종이컵을 버리고 뛰었고⁠, 뱀장어가 아따를 외치며 맨 뒤에서 뛰었다⁠.

다섯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 굴착기 팔은 이발소 뒷벽을 향해 올라가 있었다⁠. 이 벽 너머가 다방 연탄 창고였다⁠. 망치는 굴착기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굴착기 팔이 멈췄다⁠. 기사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반장이 망치 앞을 막았다⁠.

“⁠할아버지⁠, 비키세요⁠. 다쳐요⁠.⁠”

“⁠그 벽 손으로 뜯으시오⁠.⁠”

망치의 목소리는 굴착기 엔진 소리보다 낮았는데 골목 끝까지 들렸다⁠.

“⁠그 벽은 옆집하고 하나요⁠. 기계로 찍으면 옆집 창고가 같이 무너지요⁠. 위에서부터 벽돌을 한 장씩 빼야 하요⁠. 지붕부터 걷고⁠, 들보 빼고⁠, 벽은 맨 나중에⁠.⁠”

반장이 웃었다⁠. 뒤에 선 조끼들을 돌아보며 웃었다⁠.

“⁠할아버지가 철거를 가르치세요⁠? 솔섬골에서 하던 대로요⁠?⁠”

“⁠솔섬골에서 하던 대로 하지 말라는 거요⁠.⁠”

골목이 조용해졌다⁠. 굴착기 엔진만 돌았다⁠. 반장의 웃음이 얼굴에서 천천히 빠졌다⁠. 반장은 망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굴착기 기사에게 손을 내렸다⁠.

굴착기 팔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기사가 반장의 손을 계속하라는 신호로 읽었다⁠. 버킷이 이발소 뒷벽을 밀었다⁠. 벽돌이 무너지는 소리 뒤에 판자 꺾이는 소리가 났다⁠. 다방 뒤꼍에서 먼지가 솟았다⁠. 망치가 몸을 돌려 뒤꼍 쪽에 서 있던 세나의 팔을 잡아당겼다⁠. 세나가 넘어지면서 망치 위로 쓰러졌고⁠, 이 자리에 판자 지붕 한 장이 떨어졌다⁠.

*

먼지가 가라앉는 데 오 분이 걸렸다⁠.

반장이 먼저 달려왔다⁠. 판자를 걷어 내고 망치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망치의 이마에서 피가 한 줄 흘렀다⁠. 반장의 손이 떨렸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괜찮으시죠⁠?⁠”

망치는 반장의 손을 떼어 내고 일어섰다⁠. 이마의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나는 괜찮소⁠. 이 아가씨가 다쳤으면 니가 그걸 평생 지고 다녔을 거요⁠. 나처럼⁠.⁠”

반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굴착기 쪽으로 돌아서서 엔진을 끄라고 소리쳤다⁠. 골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연탄 창고는 이발소 쪽 벽과 지붕을 잃고 반쯤 열려 있었다⁠. 서른다섯 해 잠겨 있던 안이 칠월 햇빛에 그대로 드러났다⁠. 무너진 판자 사이로 연탄재가 회색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1991년 겨울에 쌓인 높이 그대로였다⁠. 할머니가 겨울마다 거기에 연탄재를 쌓았다는 뱀장어의 말은 첫날 뱀장어가 둘러댄 거짓말이었다⁠. 이 겨울 뒤로 창고 문을 연 사람은 없었다⁠.

세나는 무너진 판자를 넘어 들어갔다⁠. 코가 먼저 알았다⁠. 연탄재 냄새 밑에⁠, 젖은 나무 냄새 밑에⁠, 아주 오래된 연기 냄새가 있었다⁠. 불이 꺼지고 나서 옷에 남는 냄새⁠. 세탁을 몇 번 해도 빠지지 않는 냄새가 서른다섯 해 묵어서 겨우 남아 있었다⁠.

창고 맨 안쪽 구석⁠, 연탄재 언덕 뒤에 비닐 보따리 하나가 있었다⁠. 누런 비료 포대로 싸서 노끈으로 묶어 두었다⁠. 노끈의 매듭은 할머니가 김장 봉지를 묶던 매듭이었다⁠. 세나는 이것을 들고 나왔다⁠.

포대를 풀자 군청색 작업 점퍼가 나왔다⁠. 어깨가 넓었다⁠. 아주 넓었다⁠. 등판 한가운데와 오른쪽 소매가 타서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 가장자리가 녹아 굳어 딱딱했다⁠. 가슴 주머니에 실로 박은 글씨가 반쯤 남아 있었다⁠. 용역 회사 이름이었다⁠.

곰이 무너진 판자 앞에 서 있었다⁠. 점퍼를 보고 한 걸음도 다가오지 못했다⁠.

“⁠내 거요⁠.⁠”

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날 밤 누님이 벗으라 해서 벗었소⁠. 누님이 태웠다 했소⁠. 나는 서른다섯 해 동안 누님이 태운 줄 알았소⁠.⁠”

망치가 점퍼를 내려다보았다⁠. 망치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른 셋도 그랬다⁠. 할머니가 창고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이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는 이 열쇠를 다방 열쇠 꾸러미에 끼우지 않았다⁠.

*

지팡이 소리가 났다⁠. 두 번⁠.

공치범은 무너진 이발소 터를 건너 뒤꼍으로 왔다⁠. 굴착기 기사와 반장에게 무어라 짧게 말했고⁠, 둘은 고개를 숙였다⁠. 다음 세나 손에 들린 점퍼를 보았다⁠. 공치범의 얼굴이 처음 보는 빛으로 굳었다⁠.

“⁠그게 뭐요⁠?⁠”

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곰이 대답했다⁠.

“⁠그날 내가 입었던 거요⁠.⁠”

공치범은 점퍼 등판의 구멍을 오래 보았다⁠.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지팡이를 짚고 반 걸음 다가왔다⁠. 목소리가 낮았다⁠.

“⁠아가씨⁠, 그 점퍼 나한테 주시오⁠. 구월 초에 시청에서 원도심 정비 공청회를 열 거요⁠. 불을 낸 사람을 서른다섯 해 숨겨 준 다방⁠, 그 다방이 서른다섯 해 동안 감춰 둔 옷⁠. 그거 하나면 시청이 조합 인가를 내줄 거요⁠.⁠”

“⁠이걸 그런 데 쓰시려고요⁠?⁠”

“⁠대신 빚 날짜를 보름 미뤄 주겠소⁠. 구월 보름까지⁠. 오늘 같은 일 미안하게 됐소⁠. 기사가 손을 잘못 봤소⁠. 창고 고치는 값도 내가 내겠소⁠.⁠”

보름⁠. 세나의 머릿속에서 숫자가 먼저 돌았다⁠. 남은 날 서른엿새가 쉰하루가 되었다⁠. 지금까지 모은 돈이 백십만 원이었다⁠. 보름이면 게스트하우스 커피로 백만 원 남짓을 더 벌었다⁠. 그래도 모자랐지만⁠, 보름은 보름이었다⁠. 세나는 점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연기 냄새가 손바닥으로 옮아왔다⁠.

“⁠이건 위원장님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구 거요⁠? 곰 영감 거요⁠? 아가씨 할머니 거요⁠?⁠”

“⁠그 불에 덴 사람 거요⁠.⁠”

공치범의 입이 닫혔다⁠. 안경 너머 눈이 한 번 깜박였다⁠. 세나는 공치범을 지나쳐 골목으로 나갔다⁠. 다섯이 뒤에 섰다가⁠, 골목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다섯은 거기서 더 오지 않았다⁠.

*

국밥집 셔터는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굴착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서랑은 가스 불 앞이 아니라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지 않았다⁠.

세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점퍼를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다⁠. 군청색 천이 계산대 위에 펼쳐졌다⁠. 등판의 구멍이 위로 향했다⁠. 연기 냄새가 사골 냄새 사이로 퍼졌다⁠.

“⁠할머니 창고에 있었어요⁠. 서른다섯 해 동안요⁠. 곰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태운 줄 알았대요⁠.⁠”

서랑은 점퍼를 내려다보았다⁠. 서랑의 오른손이 계산대 가장자리를 잡았다⁠. 왼손이 앞치마 없는 허리춤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 셋이 점퍼 소매의 탄 구멍 위에 닿았다⁠. 구멍 가장자리의 녹아 굳은 천이 서랑의 손끝 아래에서 바스락거렸다⁠.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지팡이가 문턱을 두 번 쳤다⁠.

“⁠누님⁠, 그거 나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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