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95자)

봉투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이튿날 아침 일곱 시⁠, 곰은 셔터 앞에 서 있었다⁠. 우유 열 통을 두 팔에 안고 있었다⁠.

다섯이 다 모인 것은 사흘 만이었다⁠. 곰은 아무도 보지 않고 계산대 끝으로 가서 우유를 냉장고에 한 통씩 넣었다⁠. 다 넣고 나서 피처 다섯 개를 크기대로 다시 엎었다⁠. 그리고 그제야 망치를 보았다⁠.

“⁠그랑께 형님⁠, 하트 연습이 밀렸소⁠.⁠”

망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곰의 양복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 번 털었다⁠. 어젯밤 이 양복을 입은 채로 잔 모양이었다⁠. 어깨에 먼지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뱀장어가 쌍화차를 다섯 잔 따랐고⁠, 오늘은 노른자를 아무도 빼지 않았다⁠.

곰은 손녀 등록금 얘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 밤부터 수산시장 얼음 창고에서 얼음을 나른다고 했다⁠. 밤 열한 시부터 새벽 네 시까지⁠. 칠십한 살에 얼음 나르는 사람을 쓰겠느냐고 면도날이 묻자⁠, 곰은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 주었다⁠. 다들 이 팔뚝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얼음 창고 일당은 팔만 원이었다⁠. 등록금 마감까지 스무사흘⁠, 하루도 빠지지 않으면 백팔십사만 원이라고 곰이 손가락으로 셌다⁠. 모자라는 돈은 아무도 세지 않았다⁠.

오후에 영상이 돌았다⁠. 추진위 단체방에서 시작해 지역 뉴스 사이트 댓글까지 내려갔다⁠. 「⁠솔섬골 철거 용역 출신 다방 단골⁠, 삼십오 년 만에 방화 자백⁠」 곰이 단상에서 말하는 장면이었다⁠. 난로가 넘어가고 장판에 불이 붙었다는 대목⁠, 나는 도망쳤다는 대목이 나왔다⁠. 망치가 곰을 도로 끌고 들어갔다는 대목은 없었다⁠. 이 집 딸이 아버지를 끌고 나왔다는 대목도 없었다⁠. 곰이 봉투를 돌려놓는 장면도 없었다⁠.

“⁠잘랐네⁠.⁠”

세나가 화면을 다섯에게 보여 주자 뱀장어가 말했다⁠. 곰은 이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자기 얼굴이 우는 장면에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잘린 데 다시 붙여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주민센터에 녹화본이 있을 거예요⁠.⁠”

“⁠그랑께⁠, 사장님⁠.⁠”

곰은 입에서 손을 뗐다⁠.

“⁠나가 도망친 거는 맞소⁠. 형님이 나를 끌고 들어간 거는 형님 몫이고⁠, 그 딸이 아버지를 끌고 나온 거는 그 딸 몫이오⁠. 내 몫은 저기 잘린 데까지요⁠. 거기까지만 내 얼굴로 돌아다니면 되요⁠.⁠”

이날 게스트하우스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손님들이 영상을 보고 이 다방 커피는 안 마시겠다고 한다고⁠. 아침 스무 잔이 빠졌다⁠. 다방에 들어온 손님은 넷이었다⁠. 둘은 칠판을 찍었고⁠, 둘은 곰을 찍으려 했다⁠. 백구가 손바닥을 펴서 두 번 막았다⁠.

해 질 녘에 경위가 왔다⁠. 쌍화차를 시키고 사천 원을 냈다⁠. 곰이 잔을 내려놓자 경위는 이 잔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영상 때문에 서에 전화가 몇 통 왔다고⁠. 삼십오 년 전 불은 이제 처벌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나 수사할 것이 없다고⁠. 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그날 나는 골목 입구에 서 있었소⁠. 주민들이 집 안에 짐 꺼내러 들어간다고 하는 걸 막았소⁠. 위에서 그렇게 하라 했소⁠. 불이 나고 나서도 한참을 막고 서 있었소⁠. 소방차가 언덕을 못 올라와서 호스를 끌고 올라오는 동안에도⁠.⁠”

다섯은 아무도 경위를 보지 않았다⁠. 경위는 남은 쌍화차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서서 고개를 숙였다⁠. 형님들⁠, 하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어르신들⁠, 잘 마셨습니다⁠.⁠”

서른 해 만에 경위가 바꾼 말이었다⁠.

*

스무닷새 아침⁠, 망치가 계산대 아래 선반에서 깡통 하나를 꺼냈다⁠.

분유 깡통이었다⁠. 상표가 다 바래서 알아볼 수 없었고⁠, 뚜껑 가운데에 동전 넣는 구멍이 칼로 뚫려 있었다⁠. 망치는 이것을 탁자 한가운데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 만 원짜리가 접힌 채 열 장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앓아누운 오월과 유월에도 다섯은 돈을 넣었다⁠. 망치가 뚜껑을 도로 닫았다⁠. 다섯이 둘러앉았다⁠. 다섯은 차례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를 한 장씩 접어 구멍에 넣었다⁠. 면도날은 손이 떨려 세 번 만에 넣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서른 해 동안 해 온 사람들의 손이었다⁠.

“⁠오늘이 스무닷새요⁠.⁠”

망치가 말했다⁠. 1996년 봄⁠, 다섯이 선창 일을 그만두고 이 다방에 앉기 시작했을 때 계춘 누님이 이 깡통을 내놓았다고 했다⁠. 달마다 스무닷새에 하나씩⁠. 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 누님은 처음엔 말하지 않았다고⁠. 서너 달 뒤 망치가 뒤를 밟았는데⁠, 누님은 깡통에서 꺼낸 돈을 흰 봉투에 넣어 골목 건너 국밥집 셔터 밑에 밀어 넣고 돌아왔다고⁠.

“⁠누님이 우리한테 하나만 정했소⁠. 그 집 문턱에 너희 발은 대지 말라고⁠. 그 집 사람이 그걸 바란다고⁠.⁠”

“⁠그분이 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누님은 그렇게만 말했소⁠.⁠”

망치는 깡통을 세나 쪽으로 밀었다⁠. 낚싯줄에 꿴 열쇠를 처음 세나 쪽으로 밀던 날과 같은 손이었다⁠.

“⁠누님이 이제 없소⁠.⁠”

세나는 깡통을 내려다보았다⁠. 바랜 상표 아래로 세월에 녹이 슬어 둥근 자국이 나 있었다⁠. 서른 해 동안 같은 자리에 놓였다 들렸다 한 자국이었다⁠. 깡통을 열어 오늘 넣은 오만 원까지 십오만 원을 꺼냈다⁠. 할머니 방 서랍에서 흰 봉투를 찾았다⁠. 봉투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랬을 것 같았다⁠.

*

골목의 폭은 열 걸음이었다⁠. 세나가 다방 문을 나서자 등 뒤에서 소파 끄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다섯이 일어나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가 서른 해 동안 건넌 열 걸음을 이들은 서른 해 동안 거기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국밥집 셔터는 반쯤 올라가 있었다⁠. 세나는 봉투를 셔터 밑에 밀어 넣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랑은 가스 불 앞에 있었다⁠. 사골 냄새 사이로 대파 써는 냄새가 났다⁠. 서랑은 칼을 내려놓고 세나를 보았다⁠. 세나의 손에 들린 흰 봉투를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뚝배기 하나에 국을 퍼서 탁자에 놓았다⁠. 밥 한 공기⁠, 깍두기 한 접시⁠.

“⁠먹고 얘기해⁠.⁠”

세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이 뜨거워서 입천장이 벗겨졌고⁠, 그래도 다 먹었다⁠. 서랑은 그동안 맞은편에 앉지 않고 계산대 뒤에 서서 기다렸다⁠. 세나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움직였다⁠. 칼을 행주로 닦고⁠, 칼집에 꽂고⁠,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리고 계산대 밑으로 몸을 숙였다⁠.

세나가 꺼낸 것은 양은 쌀통이었다⁠. 스무 되들이⁠, 뚜껑이 찌그러진 것⁠. 서랑은 이것을 탁자 위에 올리고 뚜껑을 열었다⁠.

흰 봉투가 가득했다⁠. 세로로 꽂힌 봉투들이 쌀통 끝까지 빽빽했다⁠. 맨 앞의 것은 아직 희었고⁠, 뒤로 갈수록 누렇게 바랬다⁠. 맨 뒤의 것들은 습기를 먹고 서로 붙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봉투는 하나도 뜯겨 있지 않았다⁠.

“⁠삼백예순 개⁠.⁠”

서랑이 말했다⁠.

“⁠1996년 오월부터 올해 사월까지⁠. 니 할머니가 셔터 밑에 넣고 갔지⁠. 한 번도 안 들어왔어⁠. 스무닷새마다⁠.⁠”

“⁠왜 안 뜯으셨어요⁠?⁠”

“⁠첫 봉투는 뜯었어⁠.⁠”

서랑은 쌀통 맨 뒤에서 봉투 하나를 뽑았다⁠. 이것만 끝이 찢겨 있었다⁠. 안에서 오만 원 대신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볼펜 글씨가 번져 있었다⁠. 이것을 세나에게 보여 주지 않고 도로 넣었다⁠.

“⁠니 할머니가 그 봉투에만 한 줄 썼어⁠. 그날 밤 내가 우리 다방에 한 놈을 숨겼다고⁠. 경찰한테는 밤새 화투 쳤다고 했다고⁠.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어⁠.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어⁠.⁠”

세나는 쌀통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가 쉰여덟 살 때 쓴 한 줄이었다⁠. 세나가 아는 할머니는 명절마다 목포 바닷바람 냄새가 나는 손으로 세나의 볼을 비비던 사람이었다⁠. 이 손이 서른 해 동안 스무닷새마다 이 골목을 건너면서 한 번도 이 국밥집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알았어⁠. 그날 연기 속에서 등만 봤어⁠. 아버지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등⁠. 그렇게 큰 등은 그 사람들 중에 하나밖에 없었어⁠. 난로가 넘어간 건 그 사람 발밑이었고⁠.⁠”

“⁠그럼 왜 아무한테도⁠…⁠…⁠.⁠”

“⁠치범이가 알았으면 그 사람을 죽였을 거야⁠. 그때 치범이는 스물셋이었고 무릎이 부서져서 병원에 누워 있었어⁠. 일어나면 칼 들고 선창에 갈 애였어⁠.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애한테도⁠, 경찰한테도⁠.⁠”

*

부엌 뒷문이 열렸다⁠. 지팡이가 시멘트 바닥을 두 번 쳤다⁠.

공치범은 세나를 보았고⁠, 탁자 위의 쌀통을 보았다⁠. 공치범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쌀통 안의 봉투들을 처음 보는 사람의 눈으로 보았다⁠.

“⁠누님⁠, 이게 뭐요⁠?⁠”

“⁠부엌으로 와⁠.⁠”

서랑은 공치범을 부엌으로 데려갔다⁠. 문을 닫지 않았다⁠. 세나는 탁자 앞에 서서 이 목소리를 다 들었다⁠.

“⁠누님⁠, 그날 강당에서 왜 그랬소⁠? 나는 누님 대신 말한 거요⁠.⁠”

“⁠니가 나 대신 말하는 거 서른다섯 해 들었어⁠. 병원에서도⁠, 경찰서에서도⁠, 그날 강당에서도⁠. 이제 그만해⁠.⁠”

“⁠그 다방 하나만 밀면 누님 이 골목 떠날 수 있소⁠. 강 건너 새 아파트 하나 사 드린다니께⁠. 누님이 왜 서른 해 동안 저 다방 문만 보고 국밥을 퍼요⁠? 그 사람들 쌍화차 마시는 거 보면서⁠.⁠”

“⁠내가 왜 이 자리에 가게를 냈는지 니는 몰라⁠.⁠”

“⁠알아요⁠. 그 다방 보려고 낸 거⁠. 그러니께 밀자는 거요⁠. 누님 그만 보시라고⁠.⁠”

부엌에서 국자가 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서랑의 목소리가 낮게 났다⁠.

“⁠그 사람들 얼굴 보는 게 내 일이야⁠. 니가 그 일을 밀어 버리면⁠, 나는 서른다섯 해 동안 뭘 한 거냐⁠?⁠”

공치범은 부엌에서 나왔다⁠. 세나 앞을 지나며 쌀통을 다시 보았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팡이가 문턱에 걸려 한 번 미끄러졌다⁠. 문밖에서 돌아서서 세나를 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고 골목을 걸어갔다⁠. 다방 앞을 지날 때 유리문 안을 보았다⁠. 유리문 앞에 서 있던 다섯이 한꺼번에 뒤로 물러났다⁠. 공치범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절룩이는 오른쪽 다리가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

서랑이 부엌에서 나왔을 때 서랑의 왼손은 앞치마 주머니 밖에 있었다⁠. 손가락 셋이 반쯤 굽은 채로⁠.

서랑은 쌀통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세나가 들고 온 봉투를 받아 들었다⁠. 뜯지 않고 쌀통 맨 앞에 꽂았다⁠. 삼백예순한 개째였다⁠.

“⁠이건 받을게⁠. 니 할머니 대신 왔으니까⁠.⁠”

“⁠그 돈⁠, 쓰셔도 되는 돈이에요⁠.⁠”

“⁠그 돈이 뭔지 니는 아직 몰라⁠.⁠”

서랑은 쌀통을 계산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허리를 펴고 유리문 너머 골목 건너편을 보았다⁠. 동백다방의 유리문 안으로 소파 다섯 자리가 보였다⁠. 다섯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이쪽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린 채였다⁠.

“⁠니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문이 열려 있어도 괜찮았어⁠. 할머니가 서른 해 동안 날마다 그 사람들을 붙들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 얼굴을 내가 날마다 볼 수 있게⁠.⁠”

서랑은 세나를 보았다⁠. 서른 해 동안 다방 문을 보던 눈이었다⁠.

“⁠그 다방 문 닫아⁠. 니가 빚을 갚든 못 갚든⁠, 그건 니 사정이야⁠. 니 할머니는 이제 없고⁠, 그 사람들은 니 손님이 됐어⁠. 웃음거리로 안 판다고 칠판에 써 붙였지⁠. 손님은 손님이야⁠. 그 문이 열려 있는 한 나는 날마다 그 사람들이 니 커피 마시는 걸 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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