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71자)

난로를 찬 사람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아침 일곱 시에 셔터 앞에 선 사람은 넷이었다⁠.

세나는 셔터를 올리다 말고 이 넷을 세었다⁠. 망치⁠, 면도날⁠, 뱀장어⁠, 백구⁠. 곰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비지 않은 자리라고 뱀장어가 말했다⁠. 곰은 장모님 상 때도 일곱 시에 와서 쌍화차를 마시고 상가에 갔다고⁠. 망치가 핸드폰을 꺼내 곰에게 걸었다⁠. 신호가 열 번 갔다⁠. 받지 않았다⁠.

망치는 쌍화차를 마시지 않고 나갔다⁠. 한 시간 뒤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문을 안 여요⁠. 아프다고만 하요⁠.⁠”

“⁠어디가 아프신데요⁠?⁠”

망치는 대답 대신 계산대 끝을 보았다⁠. 곰이 날마다 서 있던 자리였다⁠. 스팀 꼭지가 깨끗했다⁠. 피처 다섯 개가 크기대로 엎어져 있었다⁠. 이 옆에 우유 다섯 통이 따지 않은 채 줄지어 서 있었다⁠. 곰이 어제 저녁 내일 쓸 거라며 사다 놓은 것이었다⁠.

이날 라테를 시킨 손님에게는 뱀장어가 하트를 그렸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피처를 잡았다⁠. 우유가 잔 위에서 미끄러져 갈색 바다 한가운데 흰 섬 하나로 떴다⁠.

“⁠이건 뭐요⁠?⁠”

손님이 물었다⁠. 뱀장어가 잔을 들여다보고 대답했다⁠.

“⁠삼학도요⁠.⁠”

손님은 웃었고⁠, 뱀장어는 웃지 않았다⁠. 피처를 엎어 놓고 소매를 내렸다⁠. 곰의 우유 다섯 통은 이날 하나도 따지지 않았다⁠.

*

저녁에 세나는 우유 한 통과 보온병에 담은 쌍화차를 들고 선창 뒤 골목을 찾아갔다⁠. 곰의 방은 슬레이트 지붕 밑 단칸방이었고⁠, 창문에 비닐이 덧대어져 있었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꺼졌다⁠.

“⁠우대포 씨⁠. 오세나예요⁠. 우유 가져왔어요⁠.⁠”

한참 뒤에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났다⁠. 목이 잠긴 소리였다⁠.

“⁠그랑께⁠, 사장님⁠. 문 앞에 두고 가시오⁠.⁠”

“⁠어디 아프세요⁠?⁠”

대답이 없었다⁠. 세나가 보온병을 문 앞에 내려놓는데 골목 입구에서 배낭을 멘 젊은 여자가 뛰어왔다⁠. 스물쯤⁠, 곰을 닮아 어깨가 넓었다⁠. 세나를 보고 멈춰 섰다가 보온병의 다방 이름을 보고 알아보았다⁠.

“⁠동백다방 사장님이세요⁠? 할아버지가 어제 누가 다녀간 뒤로 밥을 안 드세요⁠. 등록금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저 학자금 대출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요⁠. 할아버지가 그건 안 된대요⁠. 빚은 대물림하는 거 아니라고⁠.⁠”

세나는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서 있었다⁠. 빚이 대물림되어 지금 이 골목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방 안에서 손녀를 부르는 곰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녀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세나는 냉장고 문에 붙은 하얀 종이 한 장을 보았다⁠.

*

세나는 칠판 사진을 찍어 들고 근대 건물 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처음 시음 컵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았던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 다방은 우리가 좀 곤란하다고 했잖아요⁠.⁠”

“⁠알아요⁠. 이거 한번 보세요⁠.⁠”

남자는 젖은 손을 바지에 닦고 핸드폰을 받았다⁠. 분필 글씨를 오래 읽었다⁠. 핸드폰을 돌려주며 물었다⁠. 이거 언제 썼느냐고⁠, 이거 쓰고 손님이 얼마나 줄었느냐고⁠. 세나는 숫자로 대답했다⁠. 서른일곱에서 아홉⁠.

“⁠그걸 알고 쓰셨어요⁠?⁠”

“⁠쓰고 알았어요⁠.⁠”

남자는 빨래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자기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손님 절반은 외국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목포에 오면 오래된 건물을 보러 오는데⁠, 오래된 건물에는 늘 좋은 이야기만 붙어 있다고⁠. 이 사람은 칠판 글씨가 거기 붙어 있는 다른 이야기와 다르다고 했다⁠.

“⁠아침마다 스무 잔⁠. 이천 원에 맞춰 주면 근처 두 집도 같이 받을게요⁠.⁠”

세 집⁠, 예순 잔⁠. 한 잔에 이천 원이면 하루 십이만 원이었다⁠. 이윤은 반도 안 남았다⁠. 세나는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이 손을 잡았는데⁠, 손바닥에 빨래 비누 냄새가 났다⁠.

이튿날 새벽 여섯 시 반부터 철가방 배달이 시작되었다⁠. 백구가 철가방을 들고 뱀장어가 길을 안내했다⁠. 게스트하우스 마당 평상에 앉아 있던 금발의 젊은 여자가 철가방을 신기한 듯 보았다⁠. 뱀장어가 셔츠 단추를 채우고 허리를 반쯤 숙였다가⁠, 세나의 말이 생각난 듯 도로 폈다⁠.

“⁠굿모닝⁠. 쓴 보리차⁠.⁠”

여자가 이 말을 따라 했다⁠. 쓴 보리차⁠. 여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엄지를 들었다⁠. 뱀장어는 돌아오는 길 내내 이 말을 중얼거렸다⁠. 굿모닝⁠, 쓴 보리차⁠. 백구가 한 번⁠, 소리 내어 웃었다⁠.

*

설명회 공고는 추진위 단체방에 사흘 전부터 올라와 있었다⁠. 「⁠원도심 2구역 주민 설명회 — 솔섬골의 진실⁠, 그날의 증인이 직접 말합니다⁠」 장소는 동 주민센터 이층 강당⁠, 수요일 저녁 일곱 시⁠.

세나는 이 공고를 다섯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망치가 먼저 보여 주었다⁠. 핸드폰 화면을 세나 앞에 내려놓고 한마디만 했다⁠.

“⁠곰이오⁠.⁠”

“⁠곰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실지 아세요⁠?⁠”

“⁠알 것 같소⁠.⁠”

망치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래 생각하는 사람처럼 천장을 보았다⁠.

“⁠공치범이는 나를 원하요⁠. 그날 문을 부순 것도 나고⁠, 저 사람 무릎을 친 것도 나니께⁠. 곰이 단상에서 망치가 난로를 찼다고 하면 그냥 두시오⁠. 나는 맞다고 하겠소⁠.⁠”

“⁠거짓말이잖아요⁠.⁠”

세나의 목소리가 커졌다⁠. 면도날이 셰이커를 내려놓았다⁠.

“⁠제가 들은 거랑 다르잖아요⁠. 할아버지가 안 하신 일을 하셨다고 하면⁠, 그 국밥집 분은요⁠? 그분은 누가 그랬는지 모르고 평생 사시는 거예요⁠?⁠”

“⁠서른다섯 해 한 거짓말에 하나 더 얹는 거요⁠. 곰이 손녀 학교 보내고⁠, 공치범이 바라던 사람 하나 얻고⁠. 나는 이제 칠십넷이오⁠. 무거울 게 없소⁠.⁠”

“⁠그건 할아버지가 정할 게 아니에요⁠.⁠”

망치가 천장에서 눈을 내려 세나를 보았다⁠. 처음으로 먼저 눈을 피했다⁠.

*

수요일 저녁 여섯 시 반⁠, 강당에는 접이식 의자가 백 개 넘게 깔려 있었다⁠. 앞쪽 벽에 조감도가 크게 띄워져 있었고⁠, 단상 옆에 생수병이 상자째 쌓여 있었다⁠. 의자의 절반이 이미 찼다⁠. 시장 상인회장⁠, 솔섬 아파트 주민들⁠, 원도심 골목의 집주인들⁠. 세나는 망치와 함께 뒷문으로 들어갔다⁠.

단상 바로 아래 맨 앞 의자에 곰이 앉아 있었다⁠.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어깨가 터질 듯 끼는 회색 양복이었다⁠. 이 옆에 공치범이 앉아 곰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망치가 통로를 걸어 내려갔다⁠. 공치범이 일어나 망치를 맞았다⁠. 둘은 단상 아래 계단 앞에서 마주 섰다⁠. 망치가 반 뼘 컸다⁠.

“⁠곰은 왜 건드렸소⁠? 나를 원하면 나한테 오시오⁠.⁠”

“⁠형님한테는 서른다섯 해를 기다렸소⁠. 형님은 한 번도 안 오셨지라⁠. 우리 누님 국밥집 앞을 서른 해 동안 날마다 지나가면서⁠.⁠”

망치의 입이 닫혔다⁠. 공치범은 지팡이를 고쳐 짚었다⁠.

“⁠앉으시오⁠, 형님⁠. 오늘은 형님 차례가 아니오⁠.⁠”

곰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양복 소매가 짧아서 손목이 한 뼘이나 나와 있었고⁠, 셔츠 깃에서 좀약 냄새가 났다⁠. 망치가 곰의 이름을 불렀다⁠. 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세나는 곰의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을 보았다⁠. 오른손이 양복 안주머니 쪽을 누르고 있었다⁠.

*

일곱 시 십 분⁠, 공치범이 조감도 설명을 끝냈다⁠. 상가 몇 층⁠, 아파트 몇 세대⁠, 분양가 얼마⁠.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했다⁠.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오늘 이 자리에 그날 솔섬골에 계셨던 분을 모셨습니다⁠. 원도심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 이 동네 골목 구석구석에 무엇이 앉아 있는지 직접 들으시오⁠.⁠”

곰이 단상에 올랐다⁠. 계단 세 개를 오르는 데 한참 걸렸다⁠. 마이크 앞에 서자 곰의 덩치가 조감도를 반쯤 가렸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었다⁠.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랑께⁠, 동백다방에서 라테 하는 우대포요⁠.⁠”

강당 몇 군데서 웃음이 터졌다⁠. 곰의 엉덩이 하트를 본 사람들이었다⁠. 곰은 웃지 않았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두꺼운 봉투였다⁠. 이것을 단상 위에⁠, 마이크 받침 옆에 올려놓았다⁠.

“⁠이건 위원장님이 우리 손녀 등록금 하라고 주신 거요⁠. 돌려드리요⁠.⁠”

공치범의 얼굴이 굳었다⁠. 맨 앞줄에서 곰이 반쯤 일어났다⁠. 곰은 공치범을 보지 않았다⁠.

“⁠위원장님은 그날 망치 형님이 난로를 찼다고 말해 달라고 하셨소⁠. 그 말은 못 하요⁠. 그날 그 집 안에 들어간 건 나요⁠. 그 집 아저씨가 방문 문고리를 잡고 안 놓았소⁠. 나가 그 아저씨 허리를 안고 끌었소⁠. 끌다가 내 발에 연탄난로가 걸렸소⁠. 난로가 넘어가고 장판에 불이 붙었소⁠.⁠”

강당이 조용해졌다⁠. 생수병 하나가 의자 밑으로 굴러갔다⁠.

“⁠나는 도망쳤소⁠. 그 아저씨를 놓고 문밖으로 뛰었소⁠. 문밖에서 망치 형님이 위원장님 무릎을 치고 서 있다가 나를 봤소⁠. 형님이 나를 도로 끌고 들어갔소⁠. 그 집 딸이 벌써 아버지를 끌고 나오고 있었소⁠. 그 딸 팔에 불이 붙어 있었소⁠.⁠”

곰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겼다⁠. 큰 어깨가 들썩였다⁠. 곰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동백다방 연탄 창고에 숨었소⁠. 경찰이 왔는디 망치 형님이 우리는 다방에서 밤새 화투 쳤다고 했소⁠. 서른다섯 해 동안 형님은 그 말을 한 번도 안 바꿨소⁠. 난로를 찬 놈은 나요⁠. 우대포요⁠.⁠”

*

곰이 단상을 내려오기 전에 공치범이 계단을 올라갔다⁠. 봉투를 집어 양복 주머니에 넣고 곰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곰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들으셨습니까⁠. 들으셨지요⁠.⁠”

느린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경찰은 그 불을 주민이 냈다고 했습니다⁠. 시공사도 용역 회사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삼십오 년 동안 그 불을 낸 사람은 이 원도심 골목에서 쌍화차를 마셨고⁠, 그 사람을 숨겨 준 다방은 지금도 문을 엽니다⁠. 이 골목이 이대로 있어야 합니까⁠?⁠”

몇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상인회장이 박수를 쳤다⁠. 강당 중간에서 건어물 가게 노인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고⁠, 이 옆자리 사람들이 따라 끄덕였다⁠. 세나는 앞 의자 등받이를 쥐었다⁠. 곰은 단상 옆 계단에 주저앉아 있었다⁠. 망치가 통로를 내려가 이 옆에 앉았다⁠. 둘이 나란히 앉은 계단 위로 공치범의 목소리가 지나갔다⁠. 공치범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 불에 우리 누님이 팔과 목을 데었습니다⁠. 스물넷이었습니다⁠. 피부 이식을 열한 번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여름에 긴소매를 입으십니다⁠. 왼손 손가락 셋이 안 펴집니다⁠. 여러분⁠, 우리 누님은⁠…⁠…⁠.⁠”

세나는 이 순간 강당 맨 뒷줄에서 의자 끄는 소리를 들었다⁠.

공서랑이 서 있었다⁠. 회색 긴소매 블라우스⁠, 목에 감은 얇은 스카프⁠. 맨 뒷줄 가운데에 서서 단상을 보았다⁠. 강당의 고개가 하나씩 서랑 쪽으로 돌아갔다⁠. 앞줄에서 뒷줄까지 백 개의 얼굴이 서랑을 보았다⁠. 서른 해 동안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왼손을⁠, 지금 이 백 개의 눈이 찾고 있었다⁠.

공치범의 입이 마이크 앞에서 멈췄다⁠.

“⁠누님⁠.⁠”

서랑은 앞치마도 국자도 없는 빈손이었다⁠. 왼손을 치마 주머니에서 꺼냈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 셋이 강당의 형광등 아래 그대로 드러났다⁠. 이 손을 내리지 않았다⁠.

“⁠치범아⁠. 내 팔을 니 연설에 쓰지 마라⁠.⁠”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