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69자)

그물 깁는 사람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알아보요⁠.⁠”

면도날의 목소리는 셰이커를 쥔 손과 달리 떨리지 않았다⁠. 면도날은 셰이커를 탁자에 내려놓으려 했고⁠, 내려놓다가 쓰러뜨렸다⁠. 흔들 냉커피가 탁자 위로 쏟아져 노인의 무릎 쪽으로 흘렀다⁠. 노인은 피하지 않았다⁠. 바지가 젖었다⁠.

세나는 행주를 들고 다가가다 멈췄다⁠. 망치가 손을 들어 세나를 막았다⁠. 다방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항의 산소 기포 소리만 났다⁠.

“⁠1984년 섣달이었네⁠. 선창 둘째 부두⁠, 얼음 창고 뒤⁠.⁠”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바닷바람에 오래 쓸린 목소리였다⁠.

“⁠갈치 배 타던 나가 노름빚 육십만 원을 졌지⁠. 일수 쪽에서 받으러 왔어⁠. 둘이 왔는디 하나는 뒤에 서 있고⁠, 하나가 내 앞에 섰어⁠. 젊었지⁠. 손이 빨랐어⁠.⁠”

노인의 손가락이 제 귀밑의 흉을 따라 입꼬리까지 내려왔다⁠.

“⁠나는 그해 겨울에 배를 못 탔네⁠. 상처가 곪아서 석 달을 누웠어⁠. 갈치 철을 통째로 놓쳤지⁠. 마누라가 통조림 공장에 나갔고⁠, 큰딸은 중학교를 그만두고 그물 공장에 들어갔어⁠. 그 딸이 지금 쉰여섯이네⁠. 나보다 손이 더 굳었어⁠.⁠”

면도날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떨었다⁠. 면도날은 이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넣지 않았다⁠.

“⁠내가 그었소⁠. 이 손으로⁠.⁠”

“⁠그 말 들으러 온 거 아니네⁠.⁠”

노인은 탁자 위로 손을 뻗었다⁠. 그물 실이 감겨 굳은 손가락이 면도날의 오른손을 잡았다⁠. 이 손을 제 앞으로 끌어와 손바닥을 위로 뒤집었다⁠. 손이 노인의 손 안에서 떨었다⁠. 노인은 이것을 오래 보았다⁠.

“⁠떨리는구만⁠.⁠”

“⁠서른 해 넘게 떨리오⁠.⁠”

“⁠나는 이 얼굴로 마흔두 해를 살았네⁠. 장가간 사위가 처음 인사 오던 날 나를 보고 눈을 못 들더만⁠.⁠”

노인은 면도날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일어났다⁠. 젖은 바지에서 냉커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방 안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곰⁠, 백구⁠, 뱀장어⁠, 망치⁠. 그리고 계산대 뒤의 세나⁠.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여기 가 보라 하더만⁠. 나는 그 사람 시키는 대로 온 거 아니네⁠. 이 손 한번 보고 싶어서 내 발로 왔어⁠. 봤으니 됐네⁠.⁠”

“⁠돈을 드리면⁠…⁠…⁠.⁠”

뱀장어가 말을 꺼내다가 망치의 눈을 보고 삼켰다⁠. 노인은 이 말을 들었다⁠.

“⁠돈은 마흔두 해 전에 내가 저 사람한테 줬어야 했던 거고⁠. 이제 와서 거꾸로 받으면 셈이 이상해지제⁠.⁠”

종이 울리고 문이 닫혔다⁠. 유리문 너머 골목에 추진위 조끼를 입은 남자 하나가 핸드폰을 내리고 돌아서는 것이 보였다⁠.

*

영상은 이날 밤 추진위 단체방에 올라갔고⁠, 이튿날 아침에는 동네 밖으로 퍼져 있었다⁠. 「⁠선창 조폭 출신 다방 단골⁠, 마흔두 해 만에 피해자 앞에서⁠」 유리문 밖에서 찍은 것이라 소리는 없었다⁠. 노인이 면도날의 손을 뒤집어 보는 장면이 느리게 돌아갔다⁠. 이 위에 자막이 붙었다⁠. 「⁠이 손으로 그었습니다⁠」

이날 손님은 아홉이었다⁠. 셋은 영상을 보고 면도날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커피를 시키고 면도날 쪽을 힐끔거리다 나갔다⁠. 면도날은 이날 셰이커를 쥐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창가에 앉아 현수막을 보았다⁠.

*

점심때 세나는 현수막 아래에서 공치범을 기다렸다⁠. 공치범은 열두 시 반에 부동산 이층에서 내려왔다⁠.

“⁠그분 데려오신 거죠⁠. 찍으려고⁠.⁠”

“⁠그 영감님 주소를 알려 드린 건 맞소⁠. 오시라고 한 건 아니오⁠. 그분 발로 오셨지⁠.⁠”

“⁠밖에서 찍었잖아요⁠. 그분한테 물어보셨어요⁠? 그 얼굴 찍어서 퍼뜨려도 되느냐고⁠.⁠”

공치범은 지팡이에 두 손을 얹었다⁠. 안경 너머 눈이 처음으로 웃지 않고 곧게 세나를 보았다⁠.

“⁠그 영감님 얼굴은 내가 찍은 게 아니오⁠. 저 양반이 그은 거지⁠. 마흔두 해 동안 그 얼굴로 시장을 다니셨소⁠. 아무도 그 얼굴이 왜 그런지 묻지 않았고⁠, 저 양반은 그 사이에 다방에서 쌍화차를 마셨소⁠. 오늘 처음으로 사람들이 그 얼굴이 왜 그런지 알게 됐소⁠.⁠”

“⁠그분을 소품으로 쓰시는 거잖아요⁠.⁠”

“⁠아가씨는 곰 영감 하트로 장사하지 않았소⁠? 사람 패던 손이 하트 그리는 거 귀엽다고 사진 찍어 가는 손님들한테 라테 팔았지 않소⁠. 누가 누구를 소품으로 썼는지는 아가씨가 셈해 보시오⁠. 셈은 잘하시니께⁠.⁠”

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공치범은 세나를 지나쳐 골목을 걸어갔다⁠. 오른쪽 다리가 둥글게 돌았다⁠. 지팡이가 돌바닥을 두 번씩 쳤다⁠. 세나는 현수막 그늘에 선 채로 핸드폰을 꺼내 엉덩이 하트 사진을 열었다⁠. 좋아요 숫자가 이 순간에도 올라가고 있었다⁠.

*

오후 세 시⁠, 손님이 하나도 없는 시간에 세나는 다섯을 소파에 앉혔다⁠.

“⁠오늘부터 손님 오시면 아무도 인사하지 마세요⁠. 앉아서도요⁠. 형님 소리 하지 마시고⁠, 주문받을 때 옛날 말투 쓰지 마세요⁠. 사진 같이 찍자고 하면 거절하세요⁠.⁠”

뱀장어가 손을 들었다⁠.

“⁠사장님⁠, 그라믄 손님 다 끊겨⁠. 지금 오는 손님도 우리 보러 오는 거여⁠.⁠”

“⁠알아요⁠. 그래서 그만하는 거예요⁠.⁠”

세나는 핸드폰을 꺼내 다방 이름으로 만든 계정을 열었다⁠. 곰의 엉덩이 하트 사진⁠, 다섯이 고개를 숙이는 영상⁠, 「⁠#목포조폭다방⁠」 이름표를 달고 가게를 알리던 글⁠. 세나는 이것들을 하나씩 지웠다⁠. 마지막 하나를 지우기 전에 손가락이 멈췄다⁠. 이 사진 밑에 좋아요가 사천 개 붙어 있었다⁠. 사천 개가 손님 서른일곱 명이 되었고⁠, 서른일곱 명이 하루 십오만 원이 되었다⁠. 세나는 지웠다⁠.

그리고 문 옆의 작은 칠판을 닦고 분필로 썼다⁠. 「⁠이 다방의 단골 다섯 어르신은 1991년 솔섬골 철거 때 용역으로 일했습니다⁠. 동백다방은 그분들을 웃음거리로 팔지 않겠습니다⁠. 커피를 팝니다⁠.⁠」

곰이 칠판 앞에 서서 이 글을 소리 내지 않고 따라 읽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다 읽고 나서 세나를 돌아보았다⁠.

“⁠그랑께⁠, 하트는요⁠?⁠”

“⁠하트는 그리세요⁠. 엉덩이 말고 하트로⁠.⁠”

곰은 이날 오후 내내 연습했다⁠. 하트를 그리려다 백조를 그리려 했고⁠, 백조는 오리가 되었다⁠. 뱀장어가 오리라고 했고⁠, 곰은 오리도 새라고 했다⁠. 백구가 이 오리를 마셨다⁠. 이 오후 다방에서 난 웃음은 손님이 없는 웃음이었다⁠.

해 질 무렵 골목 건너편 국밥집 셔터가 올라갔다⁠. 공서랑이 나왔다⁠. 골목 한가운데까지 걸어와 섰다⁠. 서른 해 동안 이 선을 넘어온 것을 다섯은 본 적이 없었다⁠. 다방 안이 조용해졌다⁠. 곰이 피처를 내려놓았다⁠.

서랑은 문 옆 칠판 앞에 섰다⁠.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나와 마주 보는 자리였다⁠. 분필 글씨를 끝까지 읽었다⁠. 긴소매 끝의 왼손이 앞치마 주머니 안에서 움직였다⁠.

세나가 문을 열었다⁠. 서랑은 들어오지 않았다⁠.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1991년 솔섬골⁠. 철거 때 용역⁠.⁠”

“⁠네⁠.⁠”

“⁠그것만 쓸 것은 아닐 텐데⁠.⁠”

서랑은 돌아서서 골목을 건너갔다⁠. 셔터가 내려갔다⁠. 세나는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쥐고 한참 있었다⁠. 무엇을 더 써야 하는지 몰랐다⁠. 아는 사람들은 다방 안 소파에 앉아 아무도 세나를 보지 않았다⁠.

이날 매출은 삼만 육천 원이었다⁠. 세나는 계산대 서랍 밑에 둔 봉투에 돈을 넣었다⁠. 이레 동안 모은 돈이 오십육만 원⁠. 남은 날은 마흔다섯 날⁠, 갚아야 할 돈은 삼천구백사십사만 원이었다⁠.

*

새벽 다섯 시⁠, 세나는 셔터 소리에 깼다⁠. 다방 셔터가 아니었다⁠. 이층 창밖으로 골목을 내려다보니 면도날이 걸어가고 있었다⁠. 선창 쪽이었다⁠.

세나는 슬리퍼를 신고 따라갔다⁠. 해가 뜨기 전 선창은 파랗고 축축했다⁠. 경유 냄새와 생선 비늘 냄새가 바닥에서 올라왔다⁠. 두 번째 부두 끝⁠, 녹슨 컨테이너 옆에 그물 작업장이 있었다⁠. 그물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고⁠, 이 앞 플라스틱 의자에 흉 긴 노인이 앉아 바늘을 놀리고 있었다⁠.

면도날은 노인에게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한참 그대로 있다가 그물 더미 쪽으로 가서 한 뭉치를 들어 올리려 했다⁠. 손이 떨렸다⁠. 그물이 반쯤 들리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놔두게⁠.⁠”

노인은 바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니 손으로 내 그물 만지지 말어⁠.⁠”

면도날은 그물에서 손을 뗐다⁠. 열 걸음 뒤로 물러나 거기 서 있었다⁠. 노인은 바늘을 놀렸다⁠. 해가 떴다⁠. 갈매기가 컨테이너 지붕에 내려앉았다⁠. 일곱 시가 가까워지자 면도날은 노인에게 허리를 숙이고 다방 쪽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면도날이 작업장 입구를 나설 때 고무장화를 신은 여자가 들어왔다⁠. 쉰 남짓⁠,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맸고 손등이 그물 실에 쓸려 붉었다⁠. 여자는 면도날과 엇갈리며 면도날의 얼굴을 보았고⁠, 걸음을 멈췄다⁠. 영상을 본 얼굴이었다⁠. 이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면도날의 발치 바로 앞 바닥에 침을 뱉었다⁠. 면도날은 이 자리에 서서 침이 젖은 시멘트에 스미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피해 돌아가지 않고 이 위를 밟지도 않고⁠,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 걸어갔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가서 바늘을 받아 들었다⁠. 노인이 딸에게 무어라 말했고⁠, 딸은 고개를 저었다⁠.

세나는 컨테이너 뒤에서 이것을 다 보았다⁠. 다방으로 돌아온 면도날은 세나가 거기 있었던 것을 모르는 얼굴로 쌍화차를 시켰고⁠, 사천 원을 동전으로 냈다⁠. 다음 날 새벽에도⁠, 다음 날 새벽에도 셔터 소리가 났다⁠.

*

곰의 방은 선창 뒤 골목의 단칸방이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 화장실은 바깥에 있었다⁠. 밤 아홉 시⁠, 곰은 부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손녀가 남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손녀는 스물이었고⁠, 올봄 광주의 대학에 붙었다⁠. 냉장고 문에 붙은 종이 한 장이 형광등 아래에서 하얗게 빛났다⁠. 이 학기 등록금 납부 마감⁠, 팔월 십오일⁠. 사백십만 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지팡이 소리였다⁠.

공치범은 신발을 벗지 않고 문지방에 걸터앉았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손녀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이 옆에 곰이 다방에서 그린 하트를 손녀가 찍어 뽑아 붙여 놓은 사진⁠. 엉덩이였다⁠.

“⁠우 형님⁠, 형님은 그날 그 집 안에 계셨지라⁠.⁠”

곰은 고무장갑을 낀 채로 부엌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 놓인 곰의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화면이 켜졌다⁠. 손녀였다⁠. 「⁠할아버지 오늘은 하트 성공⁠? 엉덩이 말고⁠」 공치범의 눈이 이 화면에 잠깐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내가 문밖에서 무릎이 깨져 누워 있는 동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못 봤소⁠. 누님은 한 번도 말을 안 해 줬고⁠. 그란디 다들 그럽디다⁠. 그날 망치가 안에 들어갔다고⁠. 난로가 그때 넘어갔다고⁠.⁠”

공치범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문지방에 올려놓았다⁠. 두꺼웠다⁠.

“⁠사백십만 원이오⁠. 다음 주 수요일 동 주민센터에서 주민 설명회를 하요⁠. 형님이 단상에 서서 그날 본 것만 말해 주시오⁠. 망치 형님이 난로를 찼다고⁠. 그 한마디면 되요⁠. 손녀 학교는 다녀야지라⁠.⁠”

곰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곰의 큰 손이 떨리지 않았다⁠. 무릎으로 기어 문지방까지 와서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가 곰의 손바닥 위에서 작았다⁠.

“⁠그랑께⁠, 위원장님⁠.⁠”

“⁠말씀하시오⁠.⁠”

곰은 봉투를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등 뒤 냉장고 문에서 등록금 종이가 형광등 빛을 받고 있었다⁠. 봉투를 벽에 걸린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수요일 몇 시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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