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36자)

철가방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공치범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다방 안이 조용해서 크게 들렸다⁠.

“⁠삼십오 년 전 겨울⁠, 유달산 밑에 솔섬골이라는 동네가 있었소⁠. 지금 솔섬 아파트 자리요⁠. 시공사가 그 동네를 밀려고 용역을 샀는디⁠, 맨 앞에 선 사람들이 저기 저 양반들이오⁠.⁠”

공치범은 지팡이로 소파 쪽을 가리키지 않았다⁠. 고개만 돌렸다⁠. 손님들의 눈과 핸드폰이 이 고개를 따라갔다⁠. 망치는 뱀장어에게 팔을 잡힌 채 앉아 있었다⁠. 곰은 계산대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문짝을 부수고⁠, 사람을 끌어내고⁠. 그날 한 집에 불이 났소⁠. 그 집 사람이 지금도 이 골목에 살아요⁠. 커피 맛있게 드시오⁠. 나는 그 얘기만 하러 왔소⁠.⁠”

“⁠주문하셨으면 드시고⁠, 연설은 밖에서 하세요⁠.⁠”

세나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높게 나갔다⁠. 손에 든 포터필터에서 원두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치범은 세나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가장 가까운 탁자에 펴 놓았다⁠.

옛날 지방 신문 사진을 복사한 종이였다⁠. 흑백⁠, 거칠게 번진 점들⁠. 판잣집 문 앞에 서른 몇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고⁠, 맨 앞에 선 남자가 오른손에 쇠망치를 들고 있었다⁠. 어깨가 문짝처럼 넓었다⁠. 사진 밑에 한 줄이 있었다⁠. 「⁠솔섬골 철거 현장⁠, 용역 직원들이 주민 가옥 진입⁠」

“⁠잘 마셨소⁠.⁠”

공치범이 나가자 다방 안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졌다⁠. 처음 일어난 것은 창가의 연인이었다⁠. 다음 넷이 함께 일어났다⁠. 줄 서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짓을 하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십 분이 지나자 다방에는 세 사람이 남았다⁠.

계산대 앞에 마지막으로 온 손님은 이십 대 여자였다⁠. 곰의 엉덩이 하트를 처음 찍었던 둘 중 하나였다⁠. 여자는 계산대 너머의 곰을 보았다⁠.

“⁠진짜예요⁠? 그 사진⁠.⁠”

곰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였다⁠. 여자는 라테 값을 계산대에 놓았다⁠. 잔은 탁자에 그대로 두고 나갔다⁠. 엉덩이 하트가 우유 위에서 천천히 퍼지며 가라앉았다⁠.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셔터를 올리자 현수막이 먼저 보였다⁠.

골목 건너편 부동산 건물 이층 창문에서 전봇대까지⁠, 다방 문을 정면으로 가로지르는 자리였다⁠. 흰 바탕에 붉은 글씨였다⁠. 「⁠조폭 소굴 동백다방 — 솔섬골 철거 용역들이 모이는 곳⁠」 글씨 옆에 어제 이 신문 사진이 크게 뽑혀 있었다⁠. 쇠망치를 든 남자의 얼굴이 아침 햇빛에 정면으로 걸렸다⁠.

다섯은 현수막 아래 서 있었다⁠. 망치가 고개를 들어 제 얼굴을 보았다⁠. 서른다섯 해 전의 얼굴이었다⁠. 오래 보았고⁠, 아무 말 없이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속 이름표도 뒤집혀 있었다⁠. 어제까지 웃는 얼굴이 달려 있던 사진 밑에 새 글이 줄줄이 붙었다⁠. 사람 패던 손으로 하트를 그리면 귀엽냐고⁠. 피해자가 바로 앞에 사는데 이걸 장사로 쓰냐고⁠. 다방 사장도 똑같다고⁠. 세나는 이 글들을 끝까지 읽었다⁠. 틀린 말을 찾으려고 읽었는데 하나도 찾지 못했다⁠.

이날 손님은 셋이었다⁠. 경위 하나⁠, 길을 잃은 등산객 하나⁠, 그리고 현수막을 찍으러 온 유튜버 하나⁠.

유튜버는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셀카봉 끝의 핸드폰을 곰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곰이 피처를 든 채 뒤로 물러서자 핸드폰이 따라왔다⁠.

“⁠할아버지⁠, 사람 때려 보셨어요⁠? 그 손으로⁠? 몇 명이나요⁠?⁠”

곰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이때 문 옆에 서 있던 백구가 두 걸음에 계산대 앞까지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펴서 핸드폰 화면을 덮었을 뿐이었다⁠. 크고 마른 손이었다⁠. 유튜버가 셀카봉을 잡아당겼지만 핸드폰은 백구의 손바닥 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유튜버가 폭행이라고 소리쳤다⁠. 백구는 손을 떼고 문을 열어 주었다⁠. 유튜버는 나가면서 이것도 다 찍혔다고 했다⁠. 화면에는 손바닥 하나만 찍혀 있었을 것이다⁠.

세나는 오후에 파출소로 경위를 찾아갔다⁠. 현수막을 내릴 수 없느냐고 물었다⁠. 경위는 부동산 건물이 추진위 총무 소유라 거기에 뭘 거는 건 건물 주인 마음이라고 했다⁠. 명예훼손이면 고소는 할 수 있는데⁠, 사진이 진짜고 글이 사실이면 이것도 어렵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고소하면 그 양반들이 법정에서 그날 얘기를 해야 하요⁠. 그걸 바라시오⁠?⁠”

*

저녁에 다방은 시끄러웠다⁠. 손님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하면 되는 거여⁠.⁠”

뱀장어가 소파 등받이를 손바닥으로 쳤다⁠. 셔츠 맨 위 단추를 풀었다⁠. 세나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사진은 진짜여도 그날 우리가 뭘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회사가 시켰고⁠, 우리는 일당 받았고⁠, 불은 주민이 냈다고 경찰이 다 정리했어⁠. 우리가 나서서 아니라고 하면 저 현수막은 공치범이 혼자 우기는 거여⁠.⁠”

“⁠안 하요⁠.⁠”

망치는 소파에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한 일을 안 했다고는 안 하요⁠.⁠”

“⁠형님⁠, 그라믄 이 다방 망해⁠. 사장님 빚은 누가 갚어⁠?⁠”

“⁠그것도 우리가 한 일이 갚을 일이오⁠.⁠”

뱀장어가 입을 다물었다⁠. 백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 옆에 서 있었다⁠. 곰은 계산대 끝에서 피처를 닦고 있었는데⁠, 닦은 피처를 또 닦았다⁠. 면도날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창밖 현수막을 보았다⁠.

세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남은 날 마흔일곱 날⁠, 오늘 매출 만이천 원⁠. 계산기를 엎어 놓았다⁠.

“⁠손님이 안 오면 우리가 가요⁠.⁠”

다섯이 세나를 보았다⁠.

“⁠할머니가 옛날에 시장에 커피 배달하셨다면서요⁠. 그거 지금도 할 수 있어요⁠?⁠”

뱀장어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누님은 다방 커피만 날랐다고⁠. 다른 다방들처럼 아가씨를 붙여 시간으로 파는 장사는 한 번도 안 했다고⁠. 그건 누님이 이 골목에서 지킨 몇 안 되는 것이었다고⁠. 세나는 이 말을 다 듣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방 다락에 이것이 있었다⁠. 은색 철가방 둘⁠. 모서리가 찌그러졌고 뚜껑 안쪽에 커피 얼룩이 마른 강줄기처럼 굳어 있었다⁠.

*

배달을 하려면 냉커피가 필요했다⁠. 칠월 한복판의 수산시장은 생선 비린내와 얼음 녹는 물로 바닥이 늘 젖어 있었고⁠, 거기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사람은 없었다⁠.

세나는 칵테일 셰이커를 하나 샀다⁠. 에스프레소에 연유와 얼음을 넣고 흔들면 거품이 크림처럼 올라온다⁠. 문제는 흔드는 것이었다⁠. 백 잔을 흔들면 손목이 나간다⁠. 셰이커를 흔들다 손목을 털고 있을 때⁠, 면도날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아따⁠, 그거 흔드는 거요⁠?⁠”

면도날은 셰이커를 받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셰이커가 면도날의 손 안에서 저 혼자 덜덜덜 흔들렸다⁠. 면도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셰이커를 쥐고만 있었다⁠. 삼십 초⁠. 뚜껑을 열자 커피 위로 연한 갈색 거품이 손가락 두 마디 높이로 차올라 있었다⁠. 세나가 흔든 것보다 고왔다⁠.

뱀장어가 숟가락으로 거품을 떠먹고 눈을 감았다⁠. 곰은 셰이커를 들여다보았다⁠. 백구까지 한 모금 마셨다⁠.

면도날이 웃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이었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한참 보다가 말했다⁠.

“⁠이 손이 쓸 데가 있네⁠.⁠”

이날 밤 세나는 메뉴판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붙였다⁠. 「⁠흔들 냉커피⁠」

*

다음 날 오전 열 시⁠, 세나와 망치와 면도날은 철가방 둘을 들고 수산시장 입구에 섰다⁠.

비린내가 젖은 바닥에서 올라왔다⁠. 얼음 깨는 소리⁠, 갈치 내리치는 칼 소리⁠, 고무 앞치마에 물 뿌리는 소리⁠. 세나는 첫 가게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동백다방에서 왔다고⁠, 냉커피 한 잔 이천오백 원이라고⁠.

갈치를 손질하던 육십 대 여자가 고무장갑을 낀 손을 허리에 짚었다⁠. 여자는 세나를 보지 않고 뒤의 망치를 보았다⁠.

“⁠탁 씨⁠, 아직 안 죽었는가⁠?⁠”

“⁠안 죽었소⁠.⁠”

“⁠계춘 언니 다방 커피 배달 다시 하는가⁠?⁠”

“⁠하요⁠.⁠”

“⁠그라믄 넉 잔⁠.⁠”

시장 이모는 손님을 셋 더 불러 왔다⁠. 면도날이 철가방에서 셰이커를 꺼내 흔들었다⁠. 아니⁠, 쥐고 있었다⁠. 거품이 올라오자 이모들이 손뼉을 쳤다⁠. 아따 저 사람 손 떠는 거 이럴 때 쓰는구만⁠. 면도날은 이 말을 듣고도 웃었다⁠.

열한 번째 가게는 건어물 가게였다⁠. 셔터가 반쯤 올라가 있었고⁠, 안에서 칠십 대 노인이 멸치를 고르고 있었다⁠. 세나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인이 일어나 셔터 줄을 잡아당겼다⁠. 셔터가 쇳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셔터가 다 닫히기 직전 노인의 목소리가 이 밑으로 새어 나왔다⁠.

“⁠니들한테 일수 찍던 거 나는 아직 안 잊었다⁠.⁠”

면도날의 손이 철가방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망치가 이 철가방을 받아 들었다⁠. 셋은 다음 가게로 갔다⁠. 다음 가게도 셔터를 내렸다⁠.

*

시장 한가운데 통로⁠, 얼음 실은 손수레가 지나가는 자리에 접이식 탁자가 펴져 있었다⁠.

공치범이 거기 앉아 있었다⁠. 옆에는 상인회장이라는 사람이 서 있었고⁠, 탁자 위에 서류철과 볼펜 몇 자루와 투명한 사탕 통이 놓여 있었다⁠. 상인 몇이 이 앞에 줄을 섰다⁠. 공치범은 사람마다 손을 잡고 말했다⁠. 새 상가가 들어서면 지금 시장 사람들에게 먼저 분양한다고⁠. 바닥이 마르고 에어컨이 나오는 가게라고⁠.

세나는 철가방을 내려놓았다⁠. 공치범이 세나를 알아보았다⁠.

“⁠아이고⁠, 오 사장님⁠. 커피 배달 오셨소⁠? 여기도 한 잔 주시오⁠.⁠”

“⁠지하주차장 입구 얘기도 하셨어요⁠?⁠”

통로가 조용해졌다⁠. 줄 선 상인들이 세나를 보았다⁠.

“⁠조감도 보니까 저희 다방 자리가 지하주차장 입구던데요⁠. 여기 시장 자리는 뭐예요⁠? 상가예요⁠, 주차장이에요⁠? 바닥 마르는 가게가 한 평에 얼마예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이 그 값 낼 수 있어요⁠?⁠”

공치범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공치범의 목소리는 여전히 느렸다⁠.

“⁠다 설명회에서 말씀드릴 거요⁠. 아가씨는 장사 걱정이나 하시오⁠. 아⁠, 그라고 아가씨가 옛날 선창 수금하던 분들 데리고 시장 돌아다니는 거⁠, 상인들이 반가워하겠소⁠? 저 건어물 집 영감님한테는 물어보셨소⁠?⁠”

세나의 뒤에서 망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면도날이 망치의 소매를 잡았다⁠.

“⁠형님⁠, 그러지 마시오⁠. 여기 사람 많소⁠.⁠”

공치범은 망치를 올려다보았다⁠. 지팡이를 탁자에 기대 놓은 채였다⁠. 웃지 않았다⁠.

“⁠탁 형님⁠, 사람 많은 데서는 안 하시는 거⁠, 그건 서른다섯 해 전에도 그러셨지라⁠.⁠”

*

이날 배달은 서른한 잔이었다⁠. 세나가 철가방을 씻어 엎어 놓을 때 해가 유달산 뒤로 넘어갔다⁠. 현수막의 붉은 글씨가 저녁 빛에 검게 보였다⁠.

종이 울렸다⁠. 다섯은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들어온 사람은 일흔 후반쯤의 마른 노인이었다⁠. 등이 조금 굽었고 손가락 끝에 그물 실이 감겨 굳은 굳은살이 있었다⁠. 비린내와 소금기가 노인을 따라 들어왔다⁠. 노인은 고개를 들었다⁠. 왼쪽 귀밑에서 입꼬리까지 긴 흉이 있었다⁠. 오래된 흉이었다⁠. 살이 하얗게 당겨 붙어 그쪽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노인은 다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고⁠, 이 눈이 면도날에게서 멈췄다⁠.

면도날은 셰이커를 쥐고 있었다⁠. 셰이커가 면도날의 손 안에서 떨렸다⁠. 그리고 떨림이 멈췄다⁠. 손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노인은 지팡이도 없이 천천히 걸어와 면도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주문을 하지 않았다⁠.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면도날을 보았다⁠.

“⁠피춘식이⁠, 나 알아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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