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41자)

엉덩이 하트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아침 일곱 시⁠, 셔터를 올리자 곰이 맨 앞에 서 있었다⁠. 눈이 벌겋고 아랫눈꺼풀이 부어 있었다⁠.

세나는 밤새 생각한 말을 꺼냈다⁠. 불이 났다면 누가 다쳤는지⁠, 누가 냈는지⁠, 이 국밥집 여자는 누구인지⁠. 다섯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 말을 들었다⁠. 대답한 것은 망치였다⁠.

“⁠다친 사람이 살아 있소⁠.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열기 전에⁠, 우리 입으로 그 사람 얘기는 안 하요⁠.⁠”

“⁠그럼 저는 어떻게 알아요⁠? 제 다방이에요⁠.⁠”

“⁠사장님 다방이오⁠. 그래도 그 얘기는 사장님 것이 아니오⁠.⁠”

뱀장어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망치의 눈을 보고 그만두었다⁠. 세나는 행주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국밥집 여자는 이 사람들한테 물으라 했고⁠, 이 사람들은 다친 사람이 먼저 말해야 한다고 했다⁠. 두 문이 서로를 가리키며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남은 날이 마흔아홉 날이었다⁠.

“⁠알았어요⁠. 대신 오늘부터 다들 일하세요⁠. 앉아만 있지 말고요⁠.⁠”

*

곰은 일하는 쪽을 골랐다⁠. 정확히는 우유 쪽이었다⁠.

곰은 새벽 다섯 시에 다방 앞에 와서 셔터가 올라가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이날부터 곰은 우유 값으로 날마다 만 원을 냈고⁠, 세나는 이 돈으로 우유 다섯 통을 더 샀다⁠. 스팀 꼭지는 우유 표면에서 손톱 한 마디 밑에⁠, 피처는 비스듬히⁠, 손바닥으로 온도를 재다가 뜨거워서 못 쥐겠으면 끝⁠. 세나가 그렇게 가르치자 곰은 피처를 쥔 손바닥에 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는 그럭저럭 섰다⁠. 문제는 잔 위에서였다⁠. 곰이 피처를 흔들어 하트를 그리면 하트의 위쪽 두 둥근 데가 너무 크고 아래 꼭지가 없었다⁠. 잔 한가운데에 둥근 것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랑께⁠, 이게 하트요⁠?⁠”

“⁠아니요⁠.⁠”

뱀장어가 잔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막았다⁠. 면도날이 아따를 길게 늘였다⁠. 백구가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곰은 이 잔을 제가 마셨다⁠. 그리고 다시 그렸다⁠. 열 잔째도 엉덩이였다⁠.

열한 시쯤 이십 대 여자 둘이 다방에 들어왔다⁠. 둘은 문 앞에서 핸드폰 지도를 확인하며 잠깐 망설였는데⁠, 다방이라는 간판 글씨가 낯설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섯이 앉은 채로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그래도 소리는 작지 않았다⁠.

“⁠어서 오십쇼⁠.⁠”

여자들은 라테 두 잔을 시켰다⁠. 세나가 에스프레소를 뽑는 사이에 곰이 피처를 들고 옆에 섰다⁠. 세나는 곰을 보았다⁠. 곰은 세나를 보지 않았다⁠. 피처를 든 손이 떨리지 않았다⁠. 세나는 잔 하나를 곰에게 밀었다⁠.

곰은 엉덩이를 그렸다⁠.

뱀장어가 쟁반에 잔을 받쳐 들고 갔다⁠. 탁자 앞에서 허리를 반쯤 꺾었다⁠.

“⁠주문하신 엉덩이⁠, 아니 라테 나왔습니다⁠, 형님⁠.⁠”

두 여자가 잔을 내려다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한 사람은 잔을 들고 사진을 찍었고⁠, 한 사람은 계산대 쪽의 곰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곰은 피처를 가슴에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었다⁠. 큰 얼굴이 다 구겨졌다⁠.

이 사진이 이날 밤 퍼졌다⁠. 「⁠목포 원도심 다방⁠, 곰 같은 할아버지가 그려 주는 엉덩이 하트⁠」 사진 밑에는 다섯이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는 짧은 영상이 붙어 있었고⁠, 누가 거기에 글을 달았다⁠. 이 할아버지들 진짜 옛날 선창 주먹들이래요⁠. 이 아래로 웃는 얼굴이 수백 개 달렸다⁠.

이튿날 다방에 손님이 서른일곱 명 왔다⁠.

세나는 이 숫자를 저녁에 계산대 서랍을 닫으며 셌다⁠. 대부분이 라테를 시켰고 대부분이 곰을 찍었다⁠. 몇은 망치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고⁠, 망치는 거절했다⁠. 뱀장어는 거절하지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옛날 수금하던 말투로 주문을 받았다⁠. 쓴 보리차 두 잔 들어갑니다⁠, 형님⁠. 손님들은 이 말을 듣고 웃었다⁠. 하루 매출은 십오만 원이었다⁠. 하루 팔십만 원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어제의 다섯 배였다⁠.

서랍을 닫다 말고 세나는 핸드폰 화면을 다시 보았다⁠. 사진 밑에 붙은 이름표가 있었다⁠. 「⁠#목포조폭다방⁠」 손님 서른일곱 명 가운데 몇이 이 이름표를 타고 왔는지 세나는 알았다⁠. 알면서 서랍을 닫았다⁠.

*

이날 점심⁠, 공서랑은 국밥 열두 그릇을 팔았다⁠. 평소의 두 배였다⁠.

다방에 줄을 섰다가 배가 고파진 사람들이 골목을 건너왔다⁠. 서랑은 오른손으로 국자를 들고 뚝배기마다 사골 국물을 부었다⁠. 왼손은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이 손은 국자를 들 수는 있었지만 손가락 셋이 끝까지 펴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오래 보았다⁠. 서른 해 동안 손님 앞에서 왼손을 꺼내지 않았다⁠.

창가 탁자의 젊은 남자 둘이 핸드폰을 서로에게 내밀며 웃었다⁠. 화면에 곰이 있었다⁠. 피처를 가슴에 안고 큰 얼굴을 구기며 웃는 곰⁠. 남자 하나가 국물을 더 달라며 서랑을 불렀다⁠.

“⁠사장님⁠, 저 앞 다방 할아버지들 진짜 조폭이었어요⁠? 사장님은 아시겠네⁠.⁠”

서랑은 국물을 부었다⁠. 국자가 뚝배기 가장자리에 부딪혀 쨍 하고 울렸다⁠.

“⁠옛날 일이오⁠.⁠”

“⁠와⁠, 근데 귀엽지 않아요⁠? 저 곰 할아버지⁠. 사람 패던 손으로 하트 그리는 거⁠.⁠”

서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국자를 솥에 걸어 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가스 불 앞에 서서 한참 있었다⁠. 사골 끓는 소리가 났다⁠. 서랑의 목에 감긴 스카프 밑이 땀으로 젖었다⁠. 부엌 쪽창으로 다방 유리문이 보였다⁠. 줄이 골목 중간까지 서 있었다⁠. 웃음소리가 길을 건너왔다⁠. 서른 해 동안 저 문에서 그런 소리가 난 적은 없었다⁠.

서랑은 쪽창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리고 오후 장사를 하지 않았다⁠. 셔터가 반만 내려갔다⁠.

*

단속반이 말한 사흘째 아침 열 시⁠, 평상을 치우는 날이었다⁠.

추진위 조끼를 입은 젊은 남자 셋이 골목에 들어왔다⁠. 하나는 쇠지렛대를⁠, 하나는 망치를 들었고⁠, 세 번째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대신 핸드폰을 가슴 높이로 들고 있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앞장선 사람이 스스로를 반장이라고 했다⁠. 서른 중반⁠, 팔뚝에 문신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구청에서 대신 치워 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평상에는 망치가 앉아 있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반장이 평상 다리를 구두 끝으로 툭 찼다⁠. 평상이 한 뼘 밀리면서 망치의 발등을 찍었다⁠.

“⁠아⁠, 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망치시구나⁠. 옛날엔 쇠파이프 드셨다면서요⁠. 이것도 한번 들어 보시제⁠.⁠”

반장이 망치를 거꾸로 쥐고 손잡이를 망치 쪽으로 내밀었다⁠. 망치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이 되었다⁠. 반장 뒤의 핸드폰이 망치의 얼굴 쪽으로 한 뼘 다가왔다⁠. 세나는 이 핸드폰을 보았다⁠. 사흘 동안 평상은 그대로 있었고 구청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오늘 온 것은 구청이 아니라 촬영이었다⁠.

세나는 반장의 손에서 쇠지렛대를 낚아챘다⁠.

“⁠제 평상이에요⁠. 제가 뜯어요⁠.⁠”

세나는 지렛대 끝을 평상 상판과 다리 사이 틈에 박고 몸무게를 실었다⁠. 못이 비명을 지르며 빠졌다⁠. 한 번에 다 빠지지 않았고⁠, 세나는 두 번 세 번 다시 박았다⁠. 땀이 눈으로 흘렀다⁠. 다섯 번째에 망치가 일어나 세나의 손 위로 지렛대를 같이 잡았다⁠. 망치의 손바닥은 거칠고 뜨거웠다⁠. 상판이 한 장 떨어져 나왔다⁠.

다음은 금방이었다⁠. 곰이 다리 두 개를 한꺼번에 뽑아 어깨에 메고 들어갔고⁠, 백구가 판자를 한 장씩 날랐다⁠. 면도날은 떨어진 못을 주웠는데⁠, 손이 떨려서 줍는 것보다 흘리는 것이 더 많았다⁠. 뱀장어는 반장 옆에 서서 감독을 했다⁠.

“⁠요새 용역은 허리가 약하구만⁠. 우리 때는 평상 같은 건 혼자 들었어⁠.⁠”

반장의 얼굴이 굳었다⁠. 반장은 뱀장어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할아버지들 때는 평상 말고 사람을 들어 날랐다면서요⁠.⁠”

뱀장어의 입이 닫혔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망치가 마지막 판자를 들고 다방 안으로 들어가다가 문턱에서 멈춰 섰다⁠. 돌아보지 않았다⁠. 핸드폰을 든 사람이 화면을 껐다⁠. 찍을 것이 없었다⁠.

*

점심 무렵 순찰차가 골목 앞에 섰다⁠. 첫날의 경위였다⁠. 평상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 경위는 혀를 찼고⁠, 다방 안에 들어와 판자가 쌓인 구석을 보고 한 번 더 찼다⁠. 곰이 쌍화차를 내밀었다⁠. 경위는 사천 원을 냈다⁠.

세나는 이 옆에 앉아 물었다⁠. 건너편 국밥집 사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느냐고⁠. 경위는 잔을 들다 말고 세나를 보았다⁠.

“⁠공서랑 씨요⁠. 공 위원장 누님이지라⁠.⁠”

세나의 손에서 행주가 떨어졌다⁠. 경위는 이것을 주워 탁자에 올려놓고⁠, 쌍화차를 한 번에 다 마셨다⁠.

“⁠그 남매가 솔섬골에서 컸소⁠. 거기서 국밥집 하던 집이오⁠. 나는 그때 파출소 막내 순경이었고⁠. 그 일은 주민이 실수로 낸 불로 끝났소⁠. 서류상으로는 그렇소⁠. 서류상으로는⁠.⁠”

“⁠그때 잡혀간 사람은 있어요⁠?⁠”

“⁠없소⁠. 용역 회사는 시공사가 불렀고⁠, 시공사는 시청이 허가를 내줬고⁠, 불은 주민이 냈다고 했으니께⁠. 잡아갈 사람이 하나도 안 남았지라⁠.⁠”

“⁠경위님은 왜 아직도 저분들한테 형님이라고 하세요⁠?⁠”

경위는 빈 잔을 내려다보았다⁠. 잔 바닥에 대추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막내 때 버릇이오⁠. 그때는 파출소보다 선창이 더 셌소⁠. 형님 소리 안 하면 순찰차 바퀴가 아침마다 바람이 빠져 있었어⁠. 서른 해가 지나도 입이 안 고쳐지요⁠.⁠”

“⁠서류상 말고는요⁠?⁠”

경위는 모자를 썼다⁠. 다섯 노인 쪽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반쯤 돌린 채였다⁠.

“⁠그건 나한테 묻지 마시오⁠, 사장님⁠. 나도 그날 골목 입구에 서 있었소⁠.⁠”

*

오후 세 시⁠, 다방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평상이 빠진 자리에 손님 넷이 줄을 섰고⁠, 소파마다 둘셋씩 끼어 앉았다⁠. 곰 앞에는 라테 잔이 다섯 개 대기하고 있었다⁠. 다섯 잔 모두 엉덩이가 될 잔이었다⁠. 손님들은 이걸 받을 때마다 박수를 쳤다⁠. 뱀장어는 쟁반을 들고 소파 사이를 미끄러지듯 다녔다⁠. 세나는 에스프레소를 뽑고 또 뽑았다⁠. 원두 가는 소리⁠, 스팀 소리⁠, 웃음소리가 겹쳐 다방 안이 처음으로 시끄러웠다⁠. 볶은 원두 냄새가 계피 냄새를 덮었다⁠.

종이 울렸다⁠. 지팡이 끝이 바닥을 두 번 쳤다⁠.

공치범은 줄 맨 끝에 섰다⁠. 조끼를 벗고 흰 셔츠만 입은 차림이었다⁠.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칠 분을 기다렸고⁠, 그동안 한 번도 다섯 쪽을 보지 않았다⁠. 계산대 앞에 서서 사천오백 원을 내밀었다⁠.

“⁠라테 하나⁠. 저 곰 같은 분이 하트 그려 주는 걸로⁠.⁠”

세나는 돈을 받지 않았다⁠. 공치범은 지폐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 곰이 피처를 들었다⁠. 손님들이 핸드폰을 들었다⁠. 곰의 큰 손이 피처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가 다시 쥐었다⁠. 우유가 잔 위로 흘렀다⁠. 하트도 엉덩이도 아니었다⁠. 갈색 위에 흰 우유가 아무렇게나 번져서 꺼졌다⁠.

공치범은 이 잔을 들고 다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오른쪽 다리를 둥글게 돌려 디딜 때마다 지팡이가 바닥을 쳤다⁠. 소파 사이에 서서 잔을 들어 올렸다⁠. 손님들의 핸드폰이 공치범을 따라 돌았다⁠. 구석 소파에서 망치가 일어나려 했고⁠, 뱀장어가 이 팔을 붙들었다⁠. 곰은 빈 피처를 쥔 채 계산대 뒤에 서 있었는데⁠, 우유가 곰의 손등을 타고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는 것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세나는 원두 가루가 묻은 포터필터를 손에 든 채로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

“⁠여러분⁠, 맛있게들 드시오⁠. 그런디 하나만 물읍시다⁠. 이분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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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린독자2026.10.26· 3화

    엉덩이 하트가 무슨 뜻인지 3화 제목만 보고는 상상이 안 돼요?

    • 나경훈작가2026.10.26

      칠십 대 전직 조폭이 하는 엉덩이 하트를 떠올리시면 그게 맞습니다. 쓰면서 제가 제일 많이 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