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63자)

하루 이백 잔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오전 열 시⁠, 세나가 골목으로 돌아왔을 때 노인 다섯은 여전히 셔터 앞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다섯은 세나를 보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허리를 꺾으려는 것을 세나가 손바닥으로 막았다⁠. 셔터를 올리지 않고 이 앞에 서서 말했다⁠. 계약은 안 했다고⁠. 팔월 삼십일일까지 사천만 원을 갚아야 한다고⁠. 오늘부터 남은 날이 쉰 날이라고⁠.

“⁠사천을 쉰으로 나누면 하루 팔십만 원이에요⁠. 커피 한 잔을 사천 원에 팔면 하루 이백 잔⁠. 재료비 빼면 그보다 더 팔아야 하고요⁠.⁠”

뱀장어가 손가락을 접어 가며 따라 셌고⁠, 다 접은 다음에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곰은 이백이라는 말에 입을 벌렸다⁠. 망치만 아무 표정이 없었다⁠.

“⁠어제 이 다방에 손님이 몇 명 왔는지 아세요⁠?⁠”

“⁠우리 다섯⁠.⁠”

“⁠그리고 천 원씩 내셨죠⁠.⁠”

세나는 셔터를 올렸다⁠. 계산대 뒤 벽에 걸린 메뉴판은 할머니 글씨였다⁠. 쌍화차 천 원⁠, 커피 천 원⁠, 냉커피 천오백 원⁠. 이 아래 테이프로 새 종이를 붙였다⁠. 쌍화차 사천 원⁠, 아메리카노 삼천오백 원⁠, 라테 사천오백 원⁠. 단골 할인 없음⁠.

뱀장어가 먼저 계산대로 왔다⁠. 셔츠 맨 위 단추를 한 번 만지고⁠, 몸을 반쯤 기울여 목소리를 낮췄다⁠.

“⁠사장님⁠, 우리가 이 집에 서른 해를 갖다 바친 돈이 얼만지 아시오⁠? 그걸 셈하면 우리가 이 집 지분이 있어⁠. 그라니까 이렇게 합시다⁠. 사천은 무리고⁠, 이천에 쌍화차⁠, 대신 노른자는 빼고⁠.⁠”

“⁠노른자 빼면 사천 원이에요⁠. 넣으면 사천오백⁠.⁠”

“⁠아따⁠, 노른자를 받어⁠? 옛날에 우리가 수금 다닐 때도 이렇게는 안 받었어⁠.⁠”

“⁠그때 얼마씩 받으셨는데요⁠?⁠”

뱀장어의 입이 닫혔다⁠. 망치가 이 옆으로 와서 지갑을 열었다⁠. 지갑은 가죽이 갈라져 있었고⁠, 안에는 천 원짜리가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넉 장을 세서 계산대에 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백구가 넉 장을 놓았고⁠, 곰이 오천 원을 놓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면도날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한 움큼 꺼냈다⁠. 손이 떨려서 오백 원짜리 하나가 계산대 밑으로 굴러갔다⁠. 세나가 이것을 주우러 몸을 숙이자⁠, 면도날이 위에서 말했다⁠.

“⁠아따⁠, 줍지 마시오⁠. 그건 팁이오⁠.⁠”

마지막으로 뱀장어가 사천 원을 놓았다⁠. 노른자를 넣으라고 했다⁠.

*

열한 시에 첫 손님이 왔다⁠. 정확히는 택배 기사였다⁠.

세나가 하당의 문 닫은 카페에서 팔십만 원에 사들인 중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상자 두 개에 나뉘어 왔다⁠. 기사는 수레에 상자를 싣고 다방 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다섯이 이 소리에 반사처럼 일어났다⁠.

“⁠어서 오십쇼⁠, 형님⁠!⁠”

다섯 개의 허리가 한꺼번에 꺾였다⁠. 문 바로 옆에 서 있던 백구는 꺾은 허리를 펴면서 반걸음 앞으로 나왔는데⁠, 이게 하필 기사의 앞길을 막는 자리였다⁠. 백구는 키가 크고 말랐고 눈이 움푹했다⁠. 기사는 백구와 다섯의 정수리를 번갈아 보고⁠, 수레 손잡이를 놓고⁠, 뒷걸음으로 문을 나갔다⁠.

“⁠저기⁠, 상자는 앞에 두고 갈게요⁠! 사인은 됐어요⁠!⁠”

오토바이 소리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세나는 문밖에 남은 상자 두 개를 보다가 다섯을 돌아보았다⁠.

“⁠방금 그게 뭐예요⁠?⁠”

“⁠인사요⁠.⁠”

망치가 대답했다⁠. 뱀장어가 덧붙였다⁠. 옛날에 형님 손님 오시면 그렇게 했다고⁠. 손님 대접이라고⁠. 세나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말했다⁠. 앞으로 손님이 오면 아무도 일어나지 말라고⁠. 인사는 앉아서⁠, 고개만 조금⁠, 소리는 작게⁠.

이 말이 끝나기 전에 곰이 상자를 들어 안으로 날랐다⁠. 둘 중 무거운 쪽⁠, 머신 본체가 든 상자였다⁠. 기사가 수레로 끌던 것을 한 팔로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정오가 지나 젊은 연인 한 쌍이 문 앞에서 다방 간판을 사진으로 찍었다⁠. 여자가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섯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다섯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앉은 채로⁠, 말없이⁠, 같은 각도로⁠. 연인은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

머신에 물을 채우고 보일러가 데워지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 그동안 곰은 계산대 끝에 턱을 괴고 스팀 꼭지를 보았다⁠.

세나가 피처에 우유를 붓고 스팀 꼭지를 우유 표면 바로 밑에 넣었다⁠. 쉬익⁠, 하는 소리가 종이 찢는 소리로 바뀌었다⁠. 우유가 돌기 시작했다⁠. 데워지는 우유에서 단내가 났고⁠, 이 단내가 다방에 밴 계피 냄새를 처음으로 이겼다⁠. 세나는 피처를 기울여 잔 위에서 손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흰 거품이 갈색 위에 잎사귀를 그렸다⁠.

곰이 숨을 내쉬었는데 이 소리가 스팀보다 컸다⁠.

“⁠그랑께⁠, 그거 한 번만⁠.⁠”

“⁠우유 값 내세요⁠.⁠”

곰은 천 원짜리 다섯 장을 꺼냈다⁠. 세나는 피처를 곰에게 건넸다⁠. 스팀 꼭지를 우유 바닥까지 깊이 박았고⁠,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다⁠. 우유가 끓어올라 피처 밖으로 솟구쳤다⁠. 흰 거품이 곰의 얼굴과 계산대와 천장의 형광등까지 튀었다⁠. 곰은 눈을 감은 채로 피처를 놓지 않았다⁠.

“⁠손잡이 잠그세요⁠! 잠그라고요⁠!⁠”

뱀장어가 배를 잡고 소파에 누웠다⁠. 면도날이 아따를 세 번 했다⁠. 망치도 웃었다⁠. 세나가 이날 처음 본 망치의 웃음이었는데⁠, 이가 하나 빠진 자리가 보였다⁠.

*

오후 두 시⁠, 구청 단속반이 왔다⁠. 둘이었고⁠, 하나는 줄자를 들고 있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다방 앞 골목에 놓인 나무 평상이었다⁠. 할머니가 여름이면 거기 앉아 부채질을 하던 평상이고⁠, 여름 저녁이면 다섯이 둘러앉아 장기를 두던 평상이었다⁠. 다리 하나는 벽돌을 괴어 높이를 맞춰 놓았다⁠. 줄자를 든 사람이 평상이 골목 폭의 삼분의 일을 막는다고 말했다⁠. 도로를 함부로 쓰는 것이니 사흘 안에 치우라고⁠. 안 치우면 구청이 뜯고 비용을 물린다고⁠.

“⁠마흔 해 넘게 놓여 있었는데요⁠. 왜 지금이에요⁠?⁠”

“⁠신고가 들어와서요⁠.⁠”

“⁠누가 했는데요⁠?⁠”

단속반 직원은 서류철을 넘기다 말고 덮었다⁠. 직원의 눈이 잠깐 골목 끝 부동산 쪽으로 갔다⁠. 사흘이라고 한 번 더 말하고 갔다⁠.

*

손님이 오지 않으면 손님 있는 데로 가야 했다⁠. 세나는 종이컵 서른 개에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씩 따라 쟁반에 얹고⁠, 다섯에게 다방을 지키라고 한 뒤 근대 건물 거리로 나갔다⁠. 붉은 벽돌 건물과 일본식 이층집이 늘어선 길에 양산을 든 관광객이 띄엄띄엄 걸었다⁠. 햇볕이 돌바닥에서 튀어 올라 종아리가 뜨거웠다⁠.

“⁠동백다방 커피예요⁠. 한번 드셔 보세요⁠.⁠”

첫 컵은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보리차를 너무 오래 끓였다고 했다⁠. 세나는 이 동네에서 아메리카노가 무엇으로 불리는지 다시 확인했다⁠.

열한 번째 컵을 받은 사람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마흔쯤 된 남자였다⁠. 남자는 컵을 코에 대고 한참 냄새를 맡았고⁠, 혀 위에서 굴렸다⁠. 자기는 근처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한다고⁠, 아침마다 손님들에게 내줄 커피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거 괜찮네⁠. 어디라고요⁠?⁠”

“⁠동백다방이요⁠. 저 골목 어귀⁠.⁠”

남자의 손이 컵을 든 채로 멈췄다⁠.

“⁠아⁠, 거기⁠. 오늘 아침에 상인회 단체방에 뭐가 돌던데⁠. 그 집에 옛날 선창 깡패들이 모인다고⁠. 외국 손님들 상대하는 데라서 우리는 좀⁠…⁠…⁠.⁠”

남자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컵을 쟁반에 도로 올려놓았다⁠. 빈 컵이었다⁠. 세나는 쟁반에 남은 열아홉 잔이 식어 가는 것을 보며 서 있었다⁠. 단체방에 이 말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침 아홉 시에 오늘부터 하겠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백구의 전화가 울린 것은 네 시였다⁠. 백구는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평상에 앉아 오래 있었다⁠. 들어와서는 자기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뱀장어가 옆구리를 찔렀다⁠. 백구가 입을 열었다⁠. 세나가 들은 백구의 첫 말이었다⁠.

“⁠잘렸소⁠.⁠”

백구는 열두 해 동안 솔섬 아파트에서 밤 경비를 섰다⁠. 밤 여덟 시에 다방을 나가 아파트 초소에서 아침 여섯 시까지 앉아 있다가⁠, 일곱 시에 다방으로 돌아왔다⁠. 관리단이 전과자를 경비로 둘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했다⁠. 뱀장어가 관리단장이 누구인지 말했다⁠. 세나는 앞치마를 벗었다⁠.

*

솔섬 아파트는 유달산 자락 비탈에 서 있었다⁠. 열다섯 층짜리 다섯 동이 계단처럼 층을 이뤘다⁠. 관리사무소는 정문 옆 일층이었고⁠, 공치범은 거기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들어오는 길에 세나는 정문 초소를 지났다⁠. 유리창 안에 접이식 의자 하나가 아직 펼쳐져 있었고⁠, 등받이에 누렇게 바랜 수건이 걸려 있었다⁠. 의자 밑에 놓인 은색 보온병은 뚜껑이 열려 있었는데⁠, 지나가는 세나의 코에 계피 냄새가 닿았다⁠. 백구는 밤마다 다방 쌍화차를 싸 들고 초소에 앉아 있었다⁠.

“⁠백구 할아버지 다시 쓰세요⁠. 열두 해 일한 사람이에요⁠.⁠”

“⁠백구가 누구요⁠? 아⁠, 그 양반⁠. 이름은 아쇼⁠?⁠”

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공치범은 신문을 접었다⁠.

“⁠전과 셋이오⁠. 폭행 둘⁠, 공갈 하나⁠. 주민들이 밤에 그런 사람한테 차 열쇠를 맡기겠소⁠? 관리단장으로서 할 일 한 거요⁠.⁠”

“⁠열두 해 동안 아무 일 없었잖아요⁠. 다방 망하게 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다방이 망하는 거하고 경비가 잘리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오⁠? 아가씨가 그 양반들 월급 줄 거요⁠?⁠”

세나가 숨을 몰아쉬는 동안 공치범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오른쪽 다리를 둥글게 돌려 창가로 갔다⁠. 창밖으로 아파트 다섯 동과 이 사이 놀이터와 주차장이 내려다보였다⁠.

“⁠이 아파트가 선 자리가 어딘지 아쇼⁠? 솔섬골이오⁠. 1991년 십이월까지 여기 집이 백 채 넘게 있었소⁠. 판잣집⁠, 슬레이트집⁠. 우리 집도 저기 놀이터 자리에 있었고⁠.⁠”

공치범이 지팡이 끝으로 유리창을 두 번 두드렸다⁠.

“⁠그해 겨울에 시공사가 용역을 샀소⁠. 쇠파이프 든 젊은 놈들 서른 명⁠, 그 앞에 그 양반들 다섯⁠. 탁호철이가 문짝마다 망치를 들고 들어왔소⁠. 내 무릎도 여기서 부서졌고⁠. 그때 나는 스물셋이었소⁠.⁠”

“⁠그 국밥집 분은요⁠?⁠”

공치범의 지팡이가 유리에서 떨어졌다⁠.

“⁠그건 그 양반들한테 물어보라 했지라⁠. 백구 양반 일은 미안하게 됐소⁠.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아파트 일은 아파트 일이오⁠.⁠”

*

밤 아홉 시⁠, 다방에는 불이 하나만 켜져 있었다⁠.

다섯은 집에 가지 않았다⁠. 곰은 터진 우유를 닦은 천장을 한 번 더 닦고 있었고⁠, 면도날은 컵을 엎어 말리고 있었다⁠. 세나는 계산대 앞에 서서 말했다⁠. 솔섬 아파트에 갔다고⁠. 거기가 어디였는지 들었다고⁠.

뱀장어가 먼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따⁠, 그거 회사가 시킨 일이오⁠. 시공사가 돈을 대고⁠, 용역 회사가 사람을 대고⁠, 우리는 일당 받고 간 거여⁠. 그때는 다 그렇게 했어⁠. 경찰도 옆에 서 있었고⁠.⁠”

“⁠용역 했소⁠.⁠”

망치가 뱀장어의 말을 잘랐다⁠. 소파에 앉은 채로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문 부쉈소⁠. 사람 끌어냈소⁠. 위원장 무릎도 내가 쳤소⁠. 쇠파이프로⁠.⁠”

다방 안이 조용해졌다⁠. 어항에서 금붕어가 물을 한 번 튀겼다⁠. 세나는 망치를 보았다⁠. 망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또 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뱀장어는 셔츠 단추를 만졌고⁠, 백구는 문 쪽을 보았다⁠. 망치가 고개를 돌려 유리문 너머를 보았다⁠. 골목 건너편 국밥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그날 불이 났소⁠.⁠”

곰의 손에서 스팀 피처가 미끄러졌다⁠. 쇠 피처가 타일 바닥에 떨어져 두 번 튀었고⁠, 이 소리가 다방 안에서 오래 울렸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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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0.26· 2화

    단골 다섯 명이 하루 이백 잔이면 한 사람이 마흔 잔이에요?

    • 나경훈작가2026.10.27

      계산은 맞아요. 다만 그 이백 잔이 다 다섯 분 입으로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