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20자)

쓴 보리차

시골 다방 단골이 전부 칠십 대 조폭 · 나경훈

목포역에서 원도심 골목까지 캐리어 바퀴가 돌길에 세 번 걸렸고⁠, 세 번째에 오세나는 냄새를 먼저 맡았다⁠.

계피였다⁠. 대추를 오래 달인 단내가 이 밑에 깔려 있었고⁠, 맨 아래에는 선창에서 올라온 갯내가 칠월 아침의 습기에 눌려 낮게 엎드려 있었다⁠. 아침 일곱 시⁠, 골목 어귀의 이층 목조 건물 동백다방은 셔터가 반쯤 올라가 있었다⁠. 사십구재가 끝난 지 하루였다⁠. 열쇠는 세나의 주머니에 하나뿐이어야 했다⁠.

유리문을 밀자 종이 울렸고⁠, 붉은 비닐 소파에 앉아 있던 노인 다섯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다섯 개의 정수리가 나란히 세나를 향했는데⁠, 흰머리 셋⁠, 대머리 하나⁠, 염색이 반쯤 빠진 갈색 하나였다⁠. 세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놓쳤다⁠. 캐리어가 문턱에서 뒤로 넘어가 골목에 큰 소리를 냈다⁠.

“⁠고개 드세요⁠. 누구세요⁠?⁠”

맨 앞의 노인이 먼저 허리를 폈다⁠. 키는 세나와 비슷했지만 어깨가 문짝처럼 넓었고⁠, 오른손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거북 등처럼 올라 있었다⁠.

“⁠탁호철이오⁠. 다들 망치라 부르요⁠. 계춘 누님 손녀 되시지라⁠?⁠”

이 옆에서 대머리가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끼어들었다⁠. 대머리는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채웠고 말이 빨랐다⁠. 뱀장어라고 했다⁠. 갈색 머리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면도날⁠」이라고만 했고⁠, 문 옆에 선 마른 노인은 고개만 한 번 숙였다⁠. 백구라고 뱀장어가 대신 말했다⁠. 마지막 하나는 소파 둘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덩치였다⁠. 일어서자 천장의 형광등이 덩치의 머리에 가렸다⁠.

“⁠우대포요⁠. 곰이라고들 하요⁠. 그랑께⁠, 쌍화차 한 잔 하실라요⁠?⁠”

가스레인지 위에서 할머니의 놋쇠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

세나는 캐리어를 끌어다 계산대 옆에 세우고 말했다⁠. 다방을 팔러 왔다고⁠, 오늘 오전에 사겠다는 사람이 온다고⁠. 다섯은 대답하지 않았다⁠. 뱀장어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셌다⁠.

“⁠사십구재 끝난 지 하루요⁠, 사장님⁠. 하루⁠.⁠”

“⁠그러니까 지금 왔죠⁠. 열쇠는 어디서 나셨어요⁠?⁠”

망치가 바지 주머니에서 놋쇠 열쇠를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손때로 반들반들했고 끈은 낚싯줄이었다⁠. 열쇠를 세나 쪽으로 밀지 않고 제 손바닥 밑에 두었다⁠.

“⁠누님이 서른 해 전에 준 거요⁠.⁠”

세나는 대꾸 대신 가방을 열었다⁠. 서울에서 잘릴 때 챙겨 온 것은 드리퍼 하나⁠, 주둥이가 학 목처럼 가는 주전자 하나⁠, 손으로 돌리는 그라인더 하나⁠, 그리고 원두 한 봉지였다⁠. 성수동 카페 사장은 자동 추출기를 들이던 날 세나에게 말했다⁠. 세나 씨 손맛은 기계가 백 잔 중에 아흔 잔은 따라간다고⁠. 나머지 열 잔을 알아주는 손님이 없다고⁠.

물을 구십이 도까지 식혔다⁠. 원두를 갈자 다방 안의 계피 냄새가 처음으로 밀렸다⁠. 불을 갓 지난 견과 냄새⁠, 뒤이어 덜 익은 자두 같은 신 냄새⁠. 세나는 가는 물줄기를 원두 가루 한가운데에 떨어뜨리고 삼십 초를 기다렸다⁠. 가루가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곰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계산대 앞에 와 섰다⁠. 숨을 참고 있었다⁠. 물줄기가 원을 그리며 바깥으로 나갔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곰의 큰 머리가 같은 원을 따라 돌았다⁠.

“⁠그거⁠, 나도 해 봐도 되오⁠?⁠”

“⁠안 돼요⁠.⁠”

다섯 잔을 내렸다⁠. 망치가 먼저 마셨고⁠, 얼굴이 굳었다⁠. 뱀장어는 한 모금에 혀를 내밀었다⁠.

“⁠아따⁠, 이거 보리차를 태워 부렀네⁠. 쓴 보리차⁠.⁠”

“⁠핸드드립이에요⁠. 아메리카노 같은 거요⁠.⁠”

“⁠그랑께 쓴 보리차⁠.⁠”

면도날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잔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잔이 입에 닿기도 전에 반이 받침으로 쏟아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받침에 고인 커피를 마셨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들 이것을 처음 보는 일이 아니었다⁠.

골목 건너편에서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다방 문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국밥집이었다⁠. 여자 하나가 셔터를 끝까지 올리고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 한여름인데 긴소매를 입었고⁠, 목에 얇은 스카프를 둘렀다⁠. 김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 이 순간 다방 안의 말소리가 끊겼다⁠. 뱀장어는 입을 닫았고 곰은 계산대에서 물러났다⁠. 망치가 자기 의자를 들어 벽 쪽으로 돌려 앉았다⁠.

*

오전 열한 시⁠, 지팡이 끝이 다방 바닥을 두 번 쳤다⁠.

들어온 남자는 쉰 후반쯤이었고⁠, 형광 연두색 조끼 가슴에 「⁠원도심 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박혀 있었다⁠. 금테 안경⁠, 다림질한 바지⁠. 오른쪽 구두 굽이 왼쪽보다 높았다⁠. 걸을 때 오른쪽 다리를 바깥으로 둥글게 돌려 내디뎠다⁠.

“⁠공치범이오⁠. 오 사장님 맞으시지라⁠?⁠”

공치범은 소파에 앉기 전에 노인들을 한 사람씩 보았고⁠, 망치에게서 눈을 멈췄다⁠.

“⁠탁 형님⁠, 아직도 일곱 시에 나오시오⁠?⁠”

망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치범은 서류 봉투에서 계약서와 수표 한 장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계약금 천만 원⁠. 매매 대금 구천만 원⁠. 그리고 서류 한 장을 더 올렸다⁠.

“⁠말씀드릴 게 하나 있소⁠. 할머님이 이 건물을 잡히고 은행에서 사천을 빌리셨는디⁠, 그 채권을 내가 어제 은행에서 샀소⁠. 만기는 팔월 삼십일일이오⁠. 오늘 팔면 구천 받아서 사천 갚고 오천 남소⁠. 안 팔면 팔월 말에 경매로 넘어가고⁠, 그때는 내가 더 싸게 사요⁠.⁠”

세나는 숫자를 머릿속에 늘어놓았다⁠. 사천을 갚고 오천⁠. 서울 빚 이천팔백을 갚고 이천이백⁠. 그거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펜을 집으려는데⁠, 망치가 의자를 돌려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계약서 위에 오른손을 펴서 얹었다⁠. 굳은살 박인 손가락 다섯이 서명란을 덮었다⁠.

“⁠이 집은 안 파요⁠.⁠”

“⁠형님은 말할 자리가 없소⁠. 이 집 주인은 이 아가씨요⁠.⁠”

“⁠누님이 다방 문 닫지 말라 했소⁠.⁠”

공치범은 지팡이를 들어 제 오른쪽 무릎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탁⁠, 탁⁠. 소리가 둔했다⁠.

“⁠탁 형님⁠, 이 무릎은 지금도 비 오기 전날이면 소리를 내오⁠. 손 치우시오⁠.⁠”

망치의 손등에 핏줄이 섰다⁠. 다방 안의 누구도 숨을 쉬지 않았다⁠. 세나는 망치의 손가락이 아주 조금 오므라드는 것을 보았다⁠. 종이가 구겨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손이 탁자에서 떨어졌다⁠. 망치는 이 손을 제 무릎에 내려놓고 다시 펴지 않았다⁠.

면도날이 쓴 보리차를 들고 일어섰다⁠. 손이 떨렸고⁠, 커피가 계약서 위로 고스란히 쏟아졌다⁠. 갈색 얼룩이 매매 대금 위에서 번졌다⁠. 면도날이 고개를 숙였다⁠.

“⁠아따⁠, 손이 이래서⁠.⁠”

공치범은 젖은 계약서를 집어 들고 한참 보다가 웃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봉투에 넣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추진위 사무실로 오시오⁠. 역 앞 부동산 이층이오⁠. 그 사이에 이 양반들이 삼십오 년 전에 뭘 했는지 궁금하면⁠, 건너편 국밥집에 물어보쇼⁠.⁠”

*

오후 두 시⁠, 세나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순찰차에서 내린 경위는 쉰 중반이었고⁠, 문을 열자마자 다섯에게 허리를 숙였다⁠.

“⁠형님들⁠, 또 왜 이러신다요⁠?⁠”

경위는 그러고 나서 세나를 보았고⁠,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했다⁠. 어르신들⁠. 망치 옆에 앉아 곰이 내민 쌍화차를 받았다⁠. 노른자가 동동 뜬 잔이었다⁠. 세나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동안 경위는 잔을 반이나 비웠다⁠.

“⁠경위님⁠, 주거 침입이에요⁠. 남의 건물에 열쇠로 들어와 있어요⁠.⁠”

“⁠아이고⁠, 사장님 말씀이 맞지라⁠. 맞는디⁠…⁠…⁠.⁠”

경위는 잔을 내려놓고 망치를 보았다⁠. 망치가 일어났다⁠. 낚싯줄에 꿴 열쇠를 계산대에 놓고⁠, 이번에는 세나 쪽으로 밀었다⁠.

“⁠드리겄소⁠. 대신 내일 아침 일곱 시에 문은 열어 주시오⁠.⁠”

다섯은 줄지어 나갔다⁠. 문을 나서면서 다섯이 차례로 세나에게 허리를 꺾었고⁠, 마지막의 곰은 문틀에 머리를 박았다⁠. 경위가 남은 쌍화차를 다 마시고 따라 나갔다⁠.

세나는 혼자 남은 다방을 한 바퀴 돌았다⁠. 금붕어 한 마리가 남은 어항⁠, 벽에서 떼어 낸 공중전화 자리에 남은 네모난 자국⁠, 소파마다 엉덩이 모양으로 꺼진 비닐⁠. 주방 뒷문을 열자 뒤꼍이었다⁠. 시멘트 담 아래 낮은 판잣집 같은 창고가 붙어 있었고⁠, 문에 녹슨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자물쇠 구멍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망치의 놋쇠 열쇠를 넣어 보았다⁠. 들어가지 않았다⁠. 할머니 방 서랍의 열쇠 꾸러미 일곱 개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 창고는 열지 마시오⁠.⁠”

뒷담 너머에서 뱀장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자를 두고 갔다며 손을 내밀었는데⁠, 눈은 모자가 아니라 자물쇠에 가 있었다⁠.

“⁠뭐가 들었는데요⁠?⁠”

“⁠연탄재요⁠. 누님이 겨울마다 거기다 쌓았소⁠.⁠”

“⁠할머니는 기름보일러 쓰셨는데요⁠. 이층에 보일러 있던데⁠.⁠”

뱀장어는 모자를 받아 머리에 얹고⁠, 대답 없이 담 밑으로 사라졌다⁠.

*

저녁 여덟 시⁠, 골목에서 불이 켜진 곳은 국밥집 하나였다⁠.

세나는 이층 할머니 방에서 짐을 풀다 말고 내려왔다⁠. 배가 고팠고⁠, 물어볼 것이 있었다⁠. 국밥집 안은 탁자 넷이 전부였다⁠. 사골 끓는 냄새가 무겁게 깔렸고⁠, 이 위로 다진 마늘과 대파 냄새가 얹혀 있었다⁠. 주인 여자는 오른손으로 국자를 들고 국을 떴다⁠. 왼손은 내내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동백다방 팔아요⁠?⁠”

여자가 먼저 물었다⁠. 세나는 숟가락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뚝배기를 내려놓고 행주로 탁자를 훔쳤다⁠. 긴소매 끝에서 손목 피부가 살짝 보였는데⁠, 거기만 결이 달랐다⁠. 녹은 초가 다시 굳은 것처럼 반들거렸다⁠.

“⁠잘 생각했네⁠. 그 집 커피 냄새를 서른 해 맡았어요⁠.⁠”

“⁠저기⁠, 오늘 어떤 분이 그러던데요⁠. 그분들이 옛날에 뭘 했는지 여기 물어보라고⁠.⁠”

여자는 행주를 접었다⁠. 네 번⁠, 반듯하게⁠.

“⁠그 사람들한테 물어봐요⁠. 나한테 묻지 말고⁠.⁠”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세나는 이층 창가에 서 있었다⁠.

셔터는 내려가 있었다⁠. 이 앞 골목에 노인 다섯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무도 셔터를 두드리지 않았다⁠. 곰이 한 번 이층을 올려다보았다가 망치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일곱 시 반이 되자 다섯은 셔터 앞 돌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건너편 국밥집 셔터는 아직 내려가 있었다⁠.

세나는 뒷문으로 나가 역 쪽으로 걸었다⁠.

추진위 사무실은 부동산 이층이었고 에어컨이 너무 셌다⁠. 벽에 커다란 조감도가 붙어 있었다⁠. 유리 외벽의 아파트 세 동⁠, 이 아래로 상가 거리⁠. 세나는 다방이 있던 골목 어귀를 찾았다⁠. 거기에는 아래로 꺾여 들어가는 비탈길이 그려져 있었다⁠. 「⁠지하주차장 입구⁠」

공치범은 새 계약서를 내밀었다⁠. 매매 대금 칠천만 원⁠.

“⁠어제는 구천이라고 하셨잖아요⁠.⁠”

“⁠어제는 경찰이 안 왔지라⁠. 조폭 낀 건물은 값이 떨어지요⁠. 동네에 소문 다 났소⁠.⁠”

세나는 도장을 꺼내 손에 쥐었다⁠. 칠천에서 사천을 갚으면 삼천⁠. 서울 빚 이천팔백을 갚으면 이백⁠. 서른한 살에 이백만 원과 드리퍼 하나⁠. 조감도의 비탈길을 다시 보았다⁠. 할머니가 마흔여덟 해 동안 아침마다 셔터를 올리던 자리로 차들이 내려갈 것이었다⁠.

“⁠건너편 국밥집도 사세요⁠?⁠”

공치범의 눈이 안경 너머에서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집은 따로 셈이 있소⁠. 아가씨가 걱정할 집이 아니오⁠.⁠”

세나는 도장을 가방에 도로 넣었다⁠.

“⁠안 팔아요⁠. 팔월 삼십일일에 사천 갚을게요⁠.⁠”

공치범은 웃지 않았다⁠.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 번 쳤다⁠.

“⁠커피 팔아서⁠? 한 잔에 얼마요⁠? 하루에 몇 잔 팔면 오십 일 안에 사천이 되는지 셈은 해 봤소⁠?⁠”

“⁠지금부터 해요⁠.⁠”

“⁠그라믄 나도 지금부터 하요⁠. 그 양반들이 솔섬골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오늘부터 이 동네 사람들이 하나씩 알게 될 거요⁠. 아가씨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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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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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산없음2026.10.26· 1화

    다방에서 첫 잔으로 커피 말고 보리차를 내요?

    • 나경훈작가2026.10.27

      첫 잔 보리차가 그 다방의 오래된 버릇이에요. 단골들은 맛이 조금만 달라도 알아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