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717자)

가지치기

곁가지는 친다 · 윤서각

3월 8일 수요일 오후 두 시⁠, 오혜림은 보통강 강둑길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발을 멈췄다⁠. 인부 여섯이 사다리 셋을 나무에 기대 놓고 가지를 치고 있었다⁠. 위에서 톱이 움직일 때마다 가는 가지가 한 다발씩 떨어졌다⁠. 길가에 쳐낸 가지가 허리 높이로 쌓였다⁠. 버드나무의 도읍이라는 뜻으로 평양을 부르던 옛 이름 류경이 강둑을 따라 한 그루씩 짧아지고 있었다⁠.

인철은 혜림 뒤에서 빈 찬합을 들고 걸었다⁠. 원로가 보낸 감자로 숙소 부엌에서 빚은 크네들리키가 들어 있던 찬합이었다⁠. 할아버지 댁 방문 허락은 하루 늦게 났다⁠. 김평일은 손자가 들고 온 크네들리키 두 개를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프라하 맛이 아니고 평양 감자 맛이로구나⁠. 인철이 웃었고 할아버지도 웃었다⁠. 혜림은 할아버지의 말을 공책에 적다가⁠, 적을 필요가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도 끝까지 적었다⁠.

사다리 위에서 인부 하나가 소리쳤다⁠.

“⁠아래 비키오⁠! 큰 놈 내려가오⁠!⁠”

굵은 가지 하나가 길 위로 떨어졌다⁠. 인철이 찬합을 품에 안고 두 걸음 물러났다⁠.

“⁠왜 자르오⁠? 아직 잎도 안 났는데⁠.⁠”

“⁠봄마다 칩니다⁠. 곁가지를 쳐야 줄기가 곧게 올라갑니다⁠.⁠”

혜림이 말했다⁠. 인철은 쌓인 가지 더미에서 손가락 굵기의 가지 하나를 뽑았다⁠. 껍질이 푸르스름했고⁠, 끝에 은빛 솜털 눈이 서너 개 붙어 있었다⁠. 버들개지였다⁠.

“⁠오늘이 3월 8일이오⁠.⁠”

“⁠국제부녀절입니다⁠.⁠”

“⁠체코에서도 옛날에는 크게 했소⁠. 지금도 할머니들은 카네이션 한 송이를 기다리오⁠. 나는 카네이션이 없소⁠.⁠”

인철이 버들가지를 혜림에게 내밀었다⁠.

“⁠받으시오⁠. 곁가지요⁠.⁠”

“⁠안내원은 손님에게서 물건을 받지 않습니다⁠.⁠”

“⁠물건이 아니오⁠. 인민의 가로수에서 떨어진 쓰레기요⁠. 쓰레기는 주워도 되오⁠?⁠”

사다리 위의 인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톱을 떨어뜨릴 뻔했고⁠, 아래 인부가 욕을 했다⁠. 혜림은 입술을 안으로 물었다⁠. 그러고는 가지를 받아 외투 주머니에 꽂았다⁠. 버섯 칼이 든 비닐봉지 곁으로 가지가 비스듬히 들어갔고⁠, 주머니 입구로 버들개지 세 개가 삐죽 나왔다⁠.

강둑길 끝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속도를 줄였다⁠. 차는 두 사람 곁에 바퀴를 맞춰 멈췄다⁠. 뒷문이 열리고 김덕수 중좌가 내렸다⁠.

“⁠김인철 동무⁠, 부위원장 동지께서 초대소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 하시오⁠.⁠”

“⁠점심은 먹었소⁠. 크네들리키 세 개⁠.⁠”

“⁠그럼 차를 마시면 되오⁠.⁠”

혜림이 인철 앞으로 나왔다⁠.

“⁠보위성 허가 없이 손님을 다른 곳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김덕수가 외투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혜림에게 건넸다⁠. 국가보위성 외국인 출입 허가서였다⁠. 날짜는 오늘⁠, 장소는 「⁠중앙군사위원회 초대소⁠」⁠, 맨 아래에 대좌 장명길의 서명이 있었다⁠. 혜림이 매일 아침 보고서를 올리는 책상 위의 서명이었다⁠. 서명의 마지막 획이 왼편으로 꺾여 있었다⁠. 장명길의 버릇이었다⁠.

“⁠대좌 동지께서 오늘 아침에 해 주셨소⁠. 대위 동무한테는 아직 말씀이 없으셨던 모양이오⁠.⁠”

“⁠안내원은 손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대위 동무는 초대소 정문까지요⁠. 정문 안은 군 구역이오⁠.⁠”

인철이 찬합을 혜림에게 맡기고 뒷자리에 올랐다⁠. 혜림은 앞자리에 앉았다⁠. 차가 강둑길을 빠져나가는 동안 혜림은 옆 거울로 버드나무를 보았다⁠. 사다리 위의 인부가 다음 가지에 톱을 댔다⁠. 외투 주머니에서 버들개지가 차 안 난방에 흔들렸다⁠.

*

같은 날 오후 세 시⁠, 김인철은 중앙군사위원회 초대소 응접실의 등받이 높은 나무 의자에 앉아 구두 속 발가락을 움직였다⁠. 슬리퍼는 외투 주머니에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응접실 벽에 큰 산수화가 있었고⁠, 탁자 위에서 인삼차 두 잔이 김을 올렸다⁠. 혜림은 정문 초소 앞 차 안에 남았다⁠.

박정천이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김덕수는 문간에 남았다⁠.

“⁠크네들리키는 할아버지가 잡수셨소⁠?⁠”

“⁠두 개 잡수셨소⁠. 평양 감자 맛이라 하셨소⁠.⁠”

“⁠대홍단 감자요⁠. 양강도 감자가 공화국에서 제일이오⁠.⁠”

박정천은 찻잔을 들지 않았다⁠.

“⁠어제 들은 말이 있소⁠. 총무부가 다음 회의에 낼 결정문에 부록을 붙인다 하오⁠. 보위성 보고서 사본이오⁠. 동무 안내원이 쓴 보고서요⁠. 부록에는 동무 할아버지가 손자 앞에서 이제 내가 앞에 서겠다고 했다고 적혀 있다 하오⁠. 내 부관이 할아버지 이름을 다음 회의에 올리겠다고 했다고도⁠.⁠”

“⁠할아버지는 그런 말 안 했소⁠. 김 중좌도 안 했소⁠. 나는 둘 다 들었소⁠.⁠”

“⁠알고 있소⁠. 그러니 원본이 필요하오⁠. 대위가 처음 쓴 보고서⁠. 그걸 가져오시오⁠. 그러면 다음 회의에서 초안을 통째로 내리겠소⁠.⁠”

“⁠가져오면 대위 동무는 어떻게 되오⁠?⁠”

“⁠대위는 보위성 사람이오⁠. 보위성 사람은 보위성이 지키오⁠.⁠”

“⁠보위성은 오늘 아침 부위원장 동지께 허가서를 써 줬소⁠. 대위 동무 모르게⁠.⁠”

문간에서 김덕수가 기침을 했다⁠. 기침 소리가 그친 뒤에야 박정천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동무 할아버지 이름이 결정문에 오르면 동무 집안만 끝나는 게 아니오⁠. 1970년대에는 사진 한 장 같이 찍은 사람까지 쳤소⁠. 이번에는 만경대 사진이 있소⁠. 사진 속 장령 둘⁠, 사진사⁠, 내 부관⁠, 그리고 나⁠. 다 곁가지 편이 되오⁠.⁠”

“⁠사진은 부위원장 동지가 찍자고 하셨소⁠.⁠”

“⁠그래서 내가 내리겠다는 거요⁠.⁠”

인철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인삼 조각 하나가 잔 바닥에서 천천히 돌았다⁠.

“⁠할아버지는 말을 아끼는 분이오⁠. 나는 전차를 모는 사람이라 정류장마다 말을 하오⁠. 우콘체테 프로심 비스투프 아 나스투프⁠, 드베르제 세 자비라이⁠. 내리고 타는 걸 마치시오⁠, 문이 닫히오⁠. 하루에 이백 번 하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문 닫기 전에는 꼭 한 번 말한다는 뜻이오⁠. 대위 동무한테 먼저 말하겠소⁠. 가져올지 말지는 그다음이오⁠.⁠”

박정천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 받침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인철은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주머니 속 슬리퍼가 옆구리에 닿았다⁠. 끝내 꺼내지 않은 슬리퍼였다⁠.

*

같은 날 오후 다섯 시⁠, 윤설향은 철사 옷걸이 다발을 어깨에 멘 채 혜산역 앞 광장 가장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광장 한가운데에 털깃 단 검은 가죽코트 여섯 벌이 있었다⁠. 맨 앞이 성민이었다⁠.

여섯 벌은 설향의 매대에 남은 마지막 코트였다⁠. 경희와 약속한 오백 벌은 아직 강 건너 장백 창고에 있었다⁠. 3월 첫 주에 건너기로 한 날⁠, 압록강 얼음 가장자리가 녹기 시작했다⁠. 국경을 맡은 군단장 자리가 석 달째 비어 있었고⁠, 강가 초소장 얼굴이 사흘마다 바뀌었다⁠. 경희는 4월에 다시 날을 잡자고 했다⁠. 설향은 남은 여섯 벌을 비닐에 싸서 매대 밑 궤짝에 넣어 두었다⁠. 점심때 궤짝이 비어 있었다⁠.

성민이 뒷짐을 지고 턱을 들고 천천히 걸었다⁠. 다섯이 뒤에서 손바닥에 무엇을 받아 적는 시늉을 하며 따라갔다⁠. 성민이 역 앞 국숫집 매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국수는 왜 이렇게 가늘게 뽑았소⁠? 인민이 배곯지 않게 굵게 뽑으라⁠.⁠”

뒤의 다섯이 손바닥에 고개를 박고 받아 적었다⁠. 국숫집 아주머니가 국자를 들고 맞받았다⁠.

“⁠굵게 뽑으면 동무가 국수 값을 곱으로 내라⁠!⁠”

광장에 웃음이 터졌다⁠.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 짐을 진 장사꾼들⁠, 역 앞에서 담배를 팔던 노인까지 웃었다⁠. 설향은 옷걸이 다발을 내려놓고 광장 한가운데로 뛰어갔다⁠.

“⁠성민아⁠! 당장 벗으라⁠!⁠”

“⁠누나⁠, 내 말 들어 보오⁠. 이게 광고요⁠. 누나 코트 광고⁠.⁠”

“⁠광고는 거울 앞에서 하라⁠. 광장에서 하면 조사실 광고 된다⁠.⁠”

“⁠거울 앞에서 했다가 손전화에 찍혔지 않소⁠. 기래서 이번에는 다 보는 데서 하는 거요⁠. 다 보면 아무도 못 찍소⁠.⁠”

“⁠다 보면 다 찍는다⁠, 이 간나야⁠!⁠”

광장 건너편에서 단속원 최광수가 뛰어왔다⁠. 1월에 설향의 매대에서 가져간 털깃 코트를 입고 있었다⁠.

“⁠누가 여기서 흉내를 내라 했소⁠! 다 벗으라⁠!⁠”

성민이 뒷짐을 풀지 않고 최광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도원 동지도 같은 코트 아니오⁠? 지도원 동지가 벗으시면 우리도 벗갔소⁠.⁠”

웃음이 한 번 더 터졌다⁠. 최광수가 자기 코트를 내려다보았다⁠. 털깃을 손으로 눌러 접었다가⁠, 접은 털깃이 도로 일어나자 단추를 목까지 잠갔다⁠. 설향은 성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성민의 코트는 커서 소매가 손가락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1월에 평양으로 올라간 사진 속 소매와 같은 소매였다⁠.

역사 계단 위에서 셔터 소리가 연달아 났다⁠. 회색 솜옷을 입은 남자가 사진기를 눈에서 떼었다⁠. 혜산 사람 차림이 아니었다⁠. 구두가 반짝였고 바짓단에 흙이 없었다⁠. 남자는 사진기를 가방에 넣고 계단을 내려가 역 앞에 대 둔 승용차에 올랐다⁠. 평양 번호판이었다⁠. 차가 떠나는 동안 최광수는 잠근 단추를 다시 풀지 못하고 손만 단추 위에 얹고 있었다⁠.

설향은 성민의 코트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여섯 벌 가운데 성민의 것이 맨 마지막으로 벗겨졌다⁠. 성민이 코트를 넘겨주며 말했다⁠.

“⁠누나⁠, 사진 잘 나왔을 거요⁠. 내가 손가락까지 다 폈으니까⁠.⁠”

설향은 코트를 팔에 걸고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웃고 있었다⁠. 스무 살이었다⁠.

*

3월 9일 목요일 오전 열 시⁠, 오혜림은 국가보위성 청사 지하 2층 문서고 창구 앞에 서 있었다⁠. 2월치 보고서 철을 맡기러 온 길이었다⁠. 창구 안의 문서원은 예순이 넘은 여자로⁠, 철마다 붉은 끈을 두 번 감아 매듭을 지었다⁠. 어제 받은 버들가지는 숙소 안내원 방 책상의 물병에 꽂아 두고 나왔다⁠.

“⁠오혜림 대위⁠? 마침 잘 왔소⁠. 총무부에서 돌려보낸 철이 하나 있소⁠. 작성자 확인을 받아 오라오⁠.⁠”

문서원이 창구 밑에서 얇은 철 하나를 꺼냈다⁠. 겉장에 타자로 「⁠전원회의 결정문 부록 — 보위성 자료 사본⁠」이라고 쳐 있었다⁠. 철 안에 보고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맨 위 장의 날짜는 1월 13일⁠, 작성자는 「⁠국가보위성 대위 오혜림⁠」이었다⁠.

글씨가 반듯했다⁠. 혜림의 글씨와 닮았다⁠. 첫 줄은 혜림이 쓴 그대로였다⁠.

「⁠18시 07분 김평일 숙소 도착⁠. 김평일은 손자의 슬리퍼를 먼저 봄⁠」

두 번째 줄부터 달랐다⁠.

「⁠김평일은 손자에게 “⁠전보는 내가 보냈다⁠. 이제 내가 앞에 서겠다⁠. 너는 내 뒤에 서라⁠”고 말함⁠. 손자는 “⁠알았소⁠”라고 대답함⁠」

혜림은 두 번째 줄을 세 번 읽었다⁠. 1월 13일 밤 안내원 방 책상에서 볼펜을 꾹꾹 눌러 쓴 줄은 이것이 아니었다⁠. 「⁠김평일은 전보를 자기가 보내지 않았다고 말함⁠」⁠. 「⁠가거라⁠」⁠. 혜림이 쓴 줄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김평일이 앞에 서겠다고 했고⁠, 인철이 알았다고 했다⁠. 인철은 할아버지에게 알았다고 대답한 적이 없었다⁠. 혜림이 부엌 의자에서 들은 손자의 말은 「⁠할아버지⁠, 프라하로 가요⁠」였다⁠.

혜림은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이 매끈했다⁠. 볼펜 자국이 배어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도 혜림의 이름이었다⁠. 두 번째 장은 1월 23일 조사실 보고서였다⁠. 「⁠김인철은 원로들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왔다고 진술함⁠」⁠. 인철이 쓴 문장은 「⁠나는 전보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왔다⁠」였다⁠. 세 번째 장은 날짜가 2월 26일이었다⁠. 「⁠김덕수 중좌가 손자에게 다음 회의 때 할아버지 이름을 올리겠다고 말함⁠」⁠.

“⁠확인 도장 찍으시오⁠. 총무부가 오늘 안으로 돌려 달라오⁠.⁠”

문서원이 붉은 인주 통을 창구 위로 밀었다⁠. 혜림은 철을 덮었다⁠. 손이 외투 안주머니로 갔다⁠. 먹지 다섯 장이 손바닥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작성자가 다시 읽어 보고 찍겠습니다⁠. 오후에 오겠습니다⁠.⁠”

“⁠총무부는 오늘 안이라 했소⁠.⁠”

“⁠오늘 안에 오겠습니다⁠.⁠”

혜림은 철을 겨드랑이에 끼고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 2층에서 1층까지 계단이 서른두 개였다⁠. 혜림은 계단을 하나씩 세며 올라갔다⁠. 1층 복도 창으로 청사 마당이 보였다⁠. 마당 가장자리 버드나무도 어제 가지를 쳤는지⁠, 줄기만 남은 나무 밑동에 잘린 가지가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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