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3자)
날개 펴기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위소청은 배 이물에 서서 한수가 장강으로 들어가는 물목을 보았다. 누런 물과 푸른 물이 한동안 섞이지 않고 나란히 흘렀다. 학권문을 떠난 지 엿새째였다. 문파는 전공 장로에게 맡겼다. 장로는 살수 제자 쉰과 함께 마을 셋을 돌기로 했고, 한 다리로 서는 열둘 가운데 열은 우물가에 남았다. 각운과 둘째 사형이 석로를 따라 배에 올랐다.
장강에 들어서자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배가 늘었다. 군량선이 줄을 이었고, 사이사이 병사를 실은 배가 끼어 있었다. 병사들은 뱃전에 기대 남쪽 하류를 돌아보았다. 대부분 위소청의 제자들보다 어렸다.
막료가 위소청 곁에 와 섰다. 부채 대신 손난로를 들고 있었다.
“저 배 한 척에 쌀이 오백 섬이오. 북쪽 병사 십만이 저 쌀을 먹소. 장문인은 학 몇 마리를 걱정하시는데, 학 몇 마리와 병사 십만을 같은 저울에 올리실 수 있겠소?”
“학 몇 마리가 아니오. 개펄 하나요. 갈대 베는 사람들의 움막도 거기 있소.”
“개펄 하나면 쌀이 삼천 섬이오. 움막에 사는 사람은 쉰 집이고. 쉰 집은 옮겨 살 수 있소. 병사 십만은 옮겨 먹을 데가 없소.”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막료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군량선이 지나가며 일으킨 물결이 뱃전을 쳤다. 위소청은 물결이 지나갈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었다.
“삼천 섬 가운데 몇 섬이 북쪽으로 가오?”
막료는 손난로를 다른 손으로 옮겨 쥐었다.
“다 가오. 가는 길에 조금씩 줄 뿐이지.”
*
석로는 배에 오른 첫날부터 뱃전을 붙잡고 살았다. 강물은 고요해 보였지만 배는 쉬지 않고 기울었다. 석로의 무릎이 기울기를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어르신, 누워 계세요.”
“누우면 진다.”
“누구한테요?”
“배한테.”
석로는 오동나무 함을 무명 띠로 배에 동여매고 다녔다. 밤에도 풀지 않았다. 둘째 사형이 대신 들겠다고 하자 석로는 함을 더 꽉 끌어안았다. 사흘째 아침 석로는 각운과 둘째 사형이 뱃전에서 한 다리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배가 기울어도 둘은 넘어지지 않았다. 석로는 함을 끌어안은 채 일어나 둘 사이에 끼어 왼발을 들었다.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석로의 몸도 오른쪽으로 갔다. 넘어지려는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가 석로의 허리띠를 가볍게 잡았다. 석로는 넘어지지 않았다. 석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 각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각운이 붙잡는 줄 모르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도 알았다. 석로는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봐라. 배도 이 늙은이는 못 넘긴다.”
“네, 어르신.”
각운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석로는 들은 척하지 않았다. 대신 함을 동여맨 띠를 한 번 더 조였다. 비급이 무릎보다 덜 흔들렸다.
*
위소청은 배 위의 넷째 밤에 고물 쪽 선실에서 등잔을 켜고 대사형의 편지 묶음을 풀었다. 다섯 해 동안 학포에서 올라온 편지였다. 편지마다 사병의 수와 도랑의 길이, 걷어 낸 움막의 수가 있었다. 사병은 해마다 늘었고, 도랑은 해마다 길어졌다. 위소청은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학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곡식 도둑이라는 말이 지난겨울 편지에 한 번 있었다. 위소청은 곡식 도둑이라는 말을 읽고 넘겼던 밤을 기억했다. 넘기면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묻지 않았다.
선실 문이 열리고 막료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장문인도 잠이 없으시구려. 대사형 편지요? 대사형은 글을 잘 쓰오. 숫자가 늘 맞소. 막부에서도 칭찬이 자자하오.”
“숫자만 맞소.”
“숫자가 맞으면 다 맞는 거요. 장문인, 대사형은 장문인보다 스무 해 젊소. 학권문이 막부의 교두청이 되면 교두청을 이끌 사람도 있어야 하오. 장문인께서 오래 하시면 좋겠지만.”
막료는 웃으며 문을 닫았다. 위소청은 편지를 다시 묶었다. 묶은 끈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져 한 번 더 묶어야 했다. 등잔 심지가 탔다. 위소청은 등잔을 끄고 어둠 속에서 왼발을 들었다. 배가 기울었다. 위소청은 기울기를 따라 몸을 눕혔다가 일으켰다. 숯막골 가마 앞에서 단학이 보이던 갈대의 몸을 위소청의 몸이 제멋대로 따라 했다. 넘어지지 않았다.
*
단학은 장강 가운데 모래톱에서 이틀째 날개를 쉬었다. 한수를 따라 내려오는 동안 단학은 하루에 다른 해의 반밖에 날지 못했다. 왼쪽 날개가 바람을 놓칠 때마다 강물 쪽으로 미끄러졌고, 미끄러질 때마다 모래톱을 찾아 내려앉았다. 모래는 발바닥에 기울기를 알려 주지 않았다. 모래는 디딘 만큼 꺼졌다.
해 질 녘 북쪽에서 두루미 다섯이 내려왔다. 단학이 아는 무리였다. 맨 앞의 늙은 수컷은 단학의 짝과 같은 봄에 알을 깨고 나온 새였다. 다섯은 단학 둘레에 한 다리씩 디디고 섰다. 두루미끼리는 한 다리가 없어도 말이 통했다.
“학포에 간다고?”
“간다.”
“개펄에 말뚝이 박혔다. 도랑이 세 줄 더 났다. 지난겨울 셋이 잡혔다. 너도 보았지.”
“보았다.”
“올해는 내려앉을 데가 반도 안 남았다. 남쪽 소금밭 너머로 가는 무리도 있다. 너도 거기로 가라. 날개가 그 꼴로는 학포에서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단학은 늙은 수컷의 정수리를 보았다. 짝의 정수리보다 덜 붉었다.
“학포에 간다.”
다섯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다섯이 먼저 떠올랐고, 단학이 뒤따랐다. 다섯은 날갯짓을 늦추어 단학이 뒤처지지 않게 했다. 단학은 앞의 날개들이 갈라 놓은 바람을 타고 날았다. 바다 냄새가 났다.
*
위소청은 학포 둑 위에 서서 개펄을 내려다보았다. 썰물이었다.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군데군데 반듯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잘린 자리마다 도랑이 파였고, 도랑 가에 말뚝이 줄지어 박혀 있었다. 동쪽 끝에 소금밭의 흰 둑이 보였다. 서쪽 갈대숲 가장자리에 움막 쉰 채가 엎드려 있었다. 갈대를 엮어 지붕을 얹은 움막이었다.
둑 아래 넓게 다진 자리가 사병 진영이었다. 사병 삼백이 마보로 앉아 있었다. 손에 창 대신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사병들 앞에는 짚으로 엮은 두루미가 줄지어 서 있었다. 짚 두루미마다 목에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 사병들은 구령에 맞춰 손끝을 모아 짚 두루미의 목을 쥐고 손목을 반 바퀴 돌렸다. 짚이 꺾이는 소리가 개펄 위로 번졌다.
위소청은 사병들의 얼굴을 보았다. 볼이 패고 손등이 텄다. 겨울을 굶어 본 농사꾼의 얼굴이었다. 구령을 붙이던 교두 하나가 위소청을 알아보고 구령을 멈추었다. 학권문 제자였다. 위소청이 다섯 해 전 학포로 보낸 아이였다. 교두가 무릎을 꿇었고, 사병 삼백이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일어섰다.
진영 한가운데 깃대에 흰 깃 한 묶음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자 깃 끝의 검은 자리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위소청은 깃대를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지 않아도 셀 수 있었다. 깃은 한 묶음이 아니었다. 셋이었다.
대사형이 막사에서 나왔다. 턱에 단학의 정수리에 받힌 멍이 아직 누렇게 남아 있었다.
“장문인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
석로는 둑 아래 움막촌에 내려가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가 땅을 믿지 않아 비틀거렸고, 비틀거리다 움막 앞에 주저앉았다. 움막에서 늙은 사내 하나가 나와 석로를 내려다보았다. 갈대 베는 사람이었다. 오른팔을 나무 막대 두 개에 묶어 목에 걸고 있었다.
“팔은 왜 그러오?”
“사병들이 움막을 걷으러 왔길래 막았소. 하나가 내 팔을 날개처럼 품더니 돌렸소. 학 모양으로 손을 꺾더이다.”
석로는 사내의 팔을 보았다. 막대 두 개가 엉뚱한 자리에 묶여 있었다. 뼈가 어긋난 채로 굳어 가고 있었다. 석로는 무릎을 꿇고 사내의 팔을 받쳤다.
“이건 내가 좀 안다. 학권문에서 예순 해 동안 부러진 팔은 다 내가 맞췄다. 부러뜨린 놈들이 우리 아이들이었으니.”
석로는 막대를 풀고 팔을 더듬었다. 어긋난 자리를 찾자 사내에게 갈대 줄기 하나를 물게 했다. 석로가 팔을 당겨 맞추는 순간 사내가 갈대를 씹어 끊었다. 각운이 막대를 새로 대고 묶었다. 사내는 땀을 흘리며 석로를 노려보았다.
“학권문 사람이오?”
“학권문 집사요.”
“그럼 내 팔을 꺾은 손도, 맞춘 손도 다 학권문 손이구려.”
석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의 팔에 감은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움막에서 사내의 아내가 나와 석로에게 질그릇 하나를 내밀었다. 갈대 뿌리를 찧어 쑨 죽이었다. 석로는 한 숟가락 떠먹고 이가 시린 얼굴을 했다. 아내는 개펄을 가리켰다. 동지 무렵이면 개펄이 하얗게 덮일 만큼 두루미가 내려앉았는데, 해마다 흰 자리가 줄었다고 했다. 올해는 아직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
위소청은 사병 진영 한가운데에서 대사형과 마주 섰다. 둑 위에서 막료가 내려다보았다. 둘째 사형과 교두 열아홉이 둘레를 에워쌌다.
“오늘부터 짚 두루미를 치우게. 산 것에 손대는 것도 멈추게. 움막도 학도.”
“장문인께서 가르치신 대로입니다. 목을 쥐고 반 바퀴. 사병들은 짚으로는 늘지 않습니다. 산 것을 쥐어 봐야 손이 압니다. 학권문은 은을 받았습니다. 받은 은만큼 가르쳐야지요.”
대사형의 말에 교두 몇이 고개를 숙였다. 위소청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데가 없었다. 위소청이 가르친 손이었고, 위소청이 받은 은이었다.
말이 끝나기 전에 하늘에서 그림자가 내려왔다. 위소청은 고개를 들었다. 단학이었다. 단학은 진영 위를 반 바퀴 돌다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었고, 사병들 대열 한가운데로 떨어지듯 내려앉았다. 사병 삼백이 짚 두루미와 산 두루미를 번갈아 보았다.
단학은 한 다리로 서서 날개를 폈다. 칼깃 두 개가 빠진 왼쪽 날개까지 끝까지 폈다. 펴진 날개가 사람 키를 넘었다. 정수리의 붉은 살이 부풀었다. 목을 하늘로 뻗고 길게 울었다. 울음이 개펄을 건너 소금밭 둑에 부딪혀 돌아왔다.
사병 대열의 앞줄이 뒤로 밀렸다. 한 사람이 밀리자 뒤의 사람이 밀렸다. 마보로 다진 다리들이 펴진 날개 하나에 뒷걸음질 쳤다. 사병들은 맨손이었다. 맨손으로는 짚을 꺾었지, 날개를 편 짐승 앞에 서 본 적이 없었다.
대사형이 소리쳤다.
“활!”
둑 위의 궁수 셋이 활을 들었다. 위소청은 걸어서 단학 앞으로 갔다. 단학과 활 사이에 섰다. 활시위가 당겨진 채 멈췄다. 막료가 둑 위에서 손을 들어 궁수들을 말렸다.
*
단학은 위소청의 등을 보았다. 장문인의 등이었다. 등 너머 둑 위에서 막료가 비단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막료는 둑을 내려와 위소청 앞에 종이를 펼쳐 들었다. 붉은 관인이 찍혀 있었다. 막료가 읽었다. 사람의 말은 한 다리가 없어도 단학의 귀에 들어왔다.
“「동지까지 학권 비급 정본이 막부에 들어오지 않으면 무당산 학권문을 산적을 기르는 소굴로 조정에 올린다. 학포의 사병은 무당산으로 간다.」 안무사께서 학포로 내려오는 배 위에서 쓰신 명이오. 장문인, 동지까지 열사흘이오.”
위소청은 종이를 보았다. 단학은 위소청의 어깨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단학은 날개를 접지 않았다. 사병 삼백이 펴진 날개를 보고 있었고, 교두 열아홉이 장문인의 어깨를 보고 있었다. 깃대의 깃 세 묶음이 바람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