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95자)
부리 쪼기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단학은 밤이 깊도록 학봉 샘가에 서 있었다. 웅덩이 위에 별이 떠 있었다. 삼백 년 전 봄에도 같은 자리에 별이 떴다.
봄이 깊을 무렵 샘가로 젊은 사내 하나가 기어 올라왔다. 북쪽 싸움에서 도망친 병사였다. 오른쪽 정강이에 화살촉이 박혀 있었고, 사내는 샘물을 마시려다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았다. 단학은 짝과 함께 갈대 사이에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내는 사흘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나흘째 아침 사내는 성한 왼다리 하나로 일어나려 했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려 했고, 다시 넘어졌다.
단학은 사내 곁으로 걸어가 한 다리로 섰다. 왜 그랬는지 단학은 지금도 다 말할 수 없었다. 넘어지는 것이 보기 싫었을 수도 있었다. 사내는 단학을 보며 따라 섰다. 오른 다리를 쓸 수 없는 사내에게 한 다리 서기는 고른 자세가 아니었다. 다른 길이 없는 자세였다. 봄이 다 갈 무렵 사내는 숨을 발바닥까지 내렸고, 단학의 말을 들은 첫 사람이 되었다.
단학은 날개를 접어 보이고, 목을 감추어 보이고, 물을 건너 보였다. 사내는 샘가의 진흙에 나뭇가지로 그렸다. 비가 오면 그림이 지워졌고, 사내는 다시 그렸다. 다시 그릴 때마다 선이 하나씩 줄었다. 사내는 두루미의 목을 한 줄로 그리는 법을 찾을 때까지 진흙을 고르고 또 골랐다. 단학은 사내가 그리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어 주었다. 짝은 지루해서 갈대 속으로 미꾸라지를 찾으러 갔다. 여름이 되자 사내는 다친 다리를 딛고 걸었다. 걸음이 두루미처럼 높았다.
매가 온 것은 새끼가 갈대숲에서 처음 걸음을 뗀 아침이었다. 단학은 한 번에 끝냈다. 끝내고 돌아보니 사내가 갈대숲에서 보고 있었다. 단학은 한 다리로 서서 말했다. 가르치지 마라. 사내는 숨을 내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에 사내는 산 아래로 내려가 제자를 받았고, 학봉 아래에 처음으로 현판을 걸었다. 비석에 약조 둘을 새겼다. 열 번째는 그리기만 하고 봉했다. 단학은 그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지 말라고 했어야 했다.
*
위소청은 자정이 넘어 샘가로 올라왔다. 등잔도 없이 별빛으로 비탈을 올랐다. 샘가에 닿자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왼발을 들었다. 숨이 거칠어 처음 몇 숨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도 지킬 것 앞에서는 꺾었소.”
위소청은 단학의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말했다.
“새끼 하나를 지키려고 매의 목을 꺾었소. 저는 마을 셋을 지키려고 산적의 목을 꺾었소. 무엇이 다르오?”
“한 번이었다. 꺾고 나서 다시는 꺾지 않았다. 너는 꺾는 손을 가르쳤다. 가르친 손을 은을 받고 팔았다.”
“판 은으로 흉년을 넘겼소. 숯막골 청년의 집이 올겨울 먹을 쌀도 그 은에서 나오오.”
“알고 있다.”
단학은 샘물을 내려다보았다. 위소청은 기다렸다. 단학이 다시 말할 때 목소리가 낮았다. 위소청은 숨을 더 깊이 내려야 했다.
“지난겨울 학포 개펄에서 짝이 죽었다. 네 맏제자가 사병 삼백 앞에서 짝의 목을 꺾어 보였다. 감추었다 펴는 힘으로 쥐고, 디딘 다리 위에서 반 바퀴 돌렸다. 짝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나는 갈대 속에 있었다. 날개를 다친 채로.”
위소청의 숨이 흔들렸다. 낱말이 울음으로 돌아갔다. 위소청은 숨을 붙잡으려다 놓쳤다. 다시 내렸다. 단학의 말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학을…”
위소청은 한마디만 했다. 강남의 사병이 개펄에서 갈대 베는 사람들을 내쫓는다는 것은 알았다. 대사형의 편지에 쓰여 있었다. 편지에는 사람의 수와 도랑의 길이가 있었다. 학은 없었다. 위소청은 학이 없는 편지를 몇 해 동안 읽었다. 학이 왜 없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사형의 소맷부리에 달린 깃.”
“짝의 깃이다. 마당에서 되찾았다.”
위소청은 발을 내렸다. 내린 발이 샘물에 젖었다. 위소청은 젖은 발을 거두지 않고 오래 서 있었다.
*
석로는 이튿날 아침 주방 뒷마당에서 갈대골 노파와 주방 어멈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노파가 제 손으로 갈대골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한 바구니 이고 올라왔다. 어멈은 산 위에 미꾸라지가 넘쳐 난다며 받지 않겠다고 했다.
“주방에 넣으라는 게 아니야. 새 주라는 거야.”
“새 밥은 집사 어른이 나르세요. 어른 무릎으로는 반은 계곡에 흘리시고요.”
석로는 뒷마당으로 나가 헛기침을 했다. 노파가 석로를 보자마자 이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 옆구리에 끼고 왼발을 들었다. 노파의 몸은 한 번 흔들리고 멎었다.
“늪에서 계집애들은 다 이렇게 서서 미꾸라지를 잡았어. 두 발로 들어가면 진흙에 빠져. 한 발로 서야 물이 안 흐려져.”
노파는 한 다리로 서서 말했다. 서른 숨이 지나도 넘어지지 않았다. 석로는 지기 싫어서 노파 옆에 나란히 서서 왼발을 들었다. 열 숨 만에 무릎이 소리를 냈고, 열한 숨째에 석로는 어멈의 장독대에 손을 짚었다. 어멈이 장독 뚜껑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노파는 아직도 서 있었다.
“어른은 마보만 했어?”
“나는 열두 살에 섰어. 예순 해 전에.”
“나는 일곱 살에 섰어.”
노파는 발을 내리고 바구니를 석로 손에 쥐여 주었다. 바구니는 무거웠다. 노파는 숨을 고르고 나서 낮게 말했다.
“어제 그 그림 보고 밤새 못 잤어. 마주 서 있는 거. 늪에서 봤어. 우리 아버지가 그 늪을 메우는 데 지게를 졌어. 장문인 사부가 품삯을 줬어. 쌀로. 우리는 그 쌀로 살았어.”
“압니다.”
“아는데, 늪이 늪이었던 것도 알아. 둘 다 알아.”
노파는 손자를 찾으러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석로는 바구니를 들고 학봉으로 가는 비탈을 올려다보았다. 석로는 바구니를 각운에게 맡기지 않았다. 비탈 중간에서 바구니 뚜껑을 새끼줄로 두 번 묶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도 먼저 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
단학은 한낮에 마당 한가운데로 내려갔다. 현판 아래에 각운이 서 있었다. 각운은 백 명 앞에서 왼발을 들었다.
“저는 문규로 묶이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 걸음을 배울게요. 봉한 장을 봤어도요.”
둘째 사형이 각운 옆으로 걸어 나와 왼발을 들었다. 계곡에 따라갔다가 어제 탁자에서 물러났던 젊은 제자 둘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나왔다. 뒤이어 여덟이 더 나왔다. 여덟 가운데 넷은 숯막골 싸움에 갔던 살수 제자였다. 마당 한가운데에 사람 열둘이 한 다리로 섰다. 열둘의 몸이 저마다 다른 박자로 흔들렸다.
전공 장로가 계단 위에서 소리를 쳤다. 셋째 사형이 장로 곁을 떠나 마당으로 내려왔다. 셋째 사형은 열둘을 지나쳐 단학 앞에 섰다.
“문규로 하자. 현판 아래다.”
셋째 사형은 계곡에서처럼 발로 오지 않았다. 학취수가 곧장 목으로 왔다. 빠르고 곧았다. 단학은 목을 감추지 않았다. 손끝 다섯이 목에 닿기 직전 부리를 내리쳤다. 부리 끝이 셋째 사형의 손목, 엄지 아래 뼈가 맞물리는 마디를 쪼았다. 쪼고 바로 거두었다. 셋째 사형의 손가락 다섯이 저절로 펴졌다. 펴진 손이 단학의 목 깃을 쓸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쥐지 못했다.
셋째 사형은 손목을 움켜쥐고 섰다. 부러지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이 한동안 모이지 않았다. 셋째 사형은 펴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스무 해 가까이 허수아비 목을 쥐던 손바닥이 처음 보는 물건처럼 낯설었다. 전공 장로가 계단 위에서 셋째를 불렀지만, 셋째는 한동안 마당 한가운데에서 제 손만 보고 있었다.
“목이 아니다. 마디다. 쥐려는 손은 마디가 열리면 쥐지 못한다.”
열둘 가운데 넷이 들었다. 각운이 들었고, 둘째 사형이 들었고, 숯막골에서 살수를 쓰던 둘이 들었다. 넷이 다른 여덟에게 말을 옮겼다. 옮기는 동안 몇은 넘어졌다. 아홉 가운데 여섯이었다.
*
위소청은 오후에 전공 장로를 장문인 방에서 맞았다. 장로는 문을 닫기도 전에 말을 쏟았다.
“열둘입니다. 열둘이 한 다리로 서서 새 말을 옮깁니다. 셋째는 손가락이 안 모인다고 숟가락도 못 쥡니다. 장문인, 새를 산 위로 쫓으시고 열둘은 마보부터 다시 시키십시오. 아니면 마당에 칼 쥘 손이 쉰도 안 남습니다.”
“열둘 가운데 문규로 묶인 자는 둘째 하나요. 나머지 열하나는 제 발로 섰소.”
“그러니까 쫓으라는 겁니다. 제 발로 선 자는 제 발로 돌아옵니다.”
위소청은 창밖을 보았다. 마당에서 열둘이 아직 한 다리로 서 있었다. 각운이 넘어졌고, 숯막골에서 산적의 목을 꺾었던 제자 하나가 각운을 일으켜 세웠다. 일으켜 세운 손이 펴져 있었다.
“장로, 흑풍채가 다시 오면 저 열둘은 어떻게 싸우겠소?”
“넘어뜨리고 쫓겠지요. 쫓긴 놈은 숯막골처럼 돌아오고요.”
“그렇겠지.”
위소청은 장로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장로가 숨을 고르는 사이 위소청은 덧붙였다.
“그래도 쫓지 않겠소. 쫓으면 내가 살수를 판 자리만 남소.”
장로는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갔다. 위소청은 닫힌 문을 보며 샘물에 젖었던 발을 내려다보았다. 아침에 갈아 신은 버선이 아직 축축했다.
*
위소청은 저녁에 객사 툇마루에서 막료가 펼친 편지를 보았다. 역참 말이 학포에서 가져온 대사형의 편지였다. 막료는 편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툇마루 아래에서 석로가 미꾸라지 바구니를 든 채 걸음을 멈추었다.
“「동지 새벽, 물이 가장 낮게 빠지는 때에 학포 개펄을 비웁니다. 갈대 베는 자들의 움막을 걷고 도랑을 마저 팝니다. 개펄의 학 떼는 둔전의 곡식 도둑이니 사병들이 맨손으로 잡습니다. 다만 사병들 손이 아직 느립니다. 정본을 급히 보내 주십시오.」”
막료는 편지를 접었다.
“회수를 건넌 금나라 군사 때문에 안무사께서 올겨울 군량을 또 늘리셨소. 학포 둔전에서 내년 봄에 쌀이 나와야 하오. 장문인, 동지까지 스무 날이오.”
위소청은 편지 속의 맨손이라는 말을 보았다. 맨손으로 학을 잡는 손을 누가 가르쳤는지 위소청은 알았다. 위소청이 가르쳤다.
“내가 가겠소. 비급을 들고 강남으로 가겠소. 막부에 직접 건네겠소.”
막료의 얼굴이 밝아졌다. 위소청은 툇마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른이 함께 가시오. 비급은 집사가 건네니.”
석로가 바구니를 고쳐 들었다.
“제 무릎으로요?”
“어른 무릎으로.”
*
단학은 밤에 학봉 바위에 올라 왼쪽 날개를 폈다. 대사형이 비튼 뿌리는 아직 뜨거웠다. 뜨거워도 펴졌다. 단학은 바위를 박차고 날았다. 학권문 지붕 위를 한 바퀴 돌았다. 왼쪽으로 기울 때마다 오른쪽 날개를 덜 저었다. 착지할 때 바위 위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각운이 바위 아래에 서 있었다. 한 다리였다.
“저도 같이 가요.”
“사람은 배를 타라. 나는 날아간다.”
“학포까지 날 수 있어요?”
단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쪽 하늘에 기러기 떼가 줄을 지어 지나갔다. 단학은 기러기 떼의 줄이 꺾이는 자리를 보았다. 줄은 바람이 꺾이는 데서 꺾였다.
“석로를 데려가라. 무릎이 시원찮다고 업으려 들지 말고, 붙잡고 걷게 해라.”
“어르신이 붙잡게 두실까요?”
“붙잡는 줄 모르게 해라.”
각운이 웃었다. 웃다가 숨이 흔들려 들었던 발을 내렸다. 단학은 바위 위에서 날개를 접었다. 남쪽으로 가는 길은 한수를 따라 장강까지, 장강을 따라 바다까지였다. 삼백 번 날아 본 길이었다. 올해는 왼쪽 날개 하나가 길을 다르게 만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