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71자)

갈대 흔들기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단학은 횃불 마흔 개를 앞세운 사람들 틈에서 걸어서 숯막골로 내려갔다⁠. 날개는 아직 몸에 반쯤만 붙어 있었다⁠. 위소청이 살수를 익힌 제자 마흔을 이끌었고⁠, 단학 곁에는 각운과 둘째 사형⁠, 해가 지고 나서 몰래 다시 따라온 젊은 제자 둘이 있었다⁠. 횃불 아래에서 다섯의 그림자는 단학의 그림자보다 짧았다⁠.

숯막골은 산비탈에 숯가마가 층층이 박힌 마을이었다⁠. 가마 입구마다 흙으로 바른 둥근 문이 있었고⁠, 문틈으로 붉은빛이 새었다⁠. 고갯마루 쪽 집 한 채가 지붕까지 타고 있었다⁠. 타는 냄새에 숯 냄새가 섞여 단학의 콧구멍이 따가웠다⁠. 산적은 서른쯤이었다⁠. 쌀자루와 숯 짐을 지고 고갯마루로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단학은 비탈의 기울기를 발바닥으로 읽었다⁠. 숯막골 땅은 동쪽으로 기울었고⁠, 가마 앞마다 평평하게 다진 자리가 하나씩 있었다⁠. 단학은 평평한 자리를 셌다⁠. 싸움은 평평한 자리에서 난다⁠. 기운 자리에서는 사람이 먼저 넘어진다⁠.

위소청이 손을 들었다⁠. 마흔이 횃불을 땅에 꽂고 마보로 앉았다가 일어났다⁠. 산적들이 고함을 질렀다⁠. 단학은 고함 소리 사이로 들어갔다⁠.

*

위소청은 산적 우두머리를 첫 번째 가마 앞에서 만났다⁠. 우두머리는 팔뚝이 위소청의 허벅지만 했고⁠, 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다⁠. 도끼가 내려왔다⁠. 위소청은 반 걸음 들어가 도끼 자루 안쪽으로 몸을 넣었다⁠. 학취수가 목으로 갔다⁠. 손끝 다섯이 목울대를 쥐었고⁠, 위소청은 손목을 반 바퀴 돌렸다⁠. 우두머리의 무게가 위소청의 팔에 잠깐 실렸다가 땅으로 내려갔다⁠.

서른 해 동안 가르친 손이었다⁠.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위소청의 제자 마흔도 망설이지 않았다⁠. 산적 둘이 더 쓰러졌고⁠, 둘 다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나머지 산적들이 짐을 버리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마 사이 좁은 자리에서 위소청은 단학을 보았다⁠. 산적 셋이 창으로 단학을 에워쌌다⁠. 창끝 셋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단학은 디딘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몸통만 바람 맞은 갈대처럼 옆으로 누웠다가 일어났다⁠. 첫 창이 깃을 스쳤고⁠, 둘째 창이 겨드랑이 아래를 지나갔다⁠. 셋째 창은 단학이 일어나는 쪽으로 왔다⁠. 단학은 일어나다 말고 반대쪽으로 다시 누웠다⁠. 창끝이 가마 흙벽에 박혔다⁠. 흙이 부서지며 안의 불이 쏟아졌다⁠. 창을 쥔 산적이 불을 피해 뒤로 넘어졌다⁠.

위소청은 숨을 고를 틈이 없어 단학의 말을 듣지 못했다⁠. 다만 누웠다 일어나는 몸을 보았다⁠. 사부가 마지막 날 쓰던 몸놀림이었다⁠.

각운이 젊은 산적 하나를 쫓아갔다⁠. 산적은 각운보다 어렸고⁠, 칼을 쥔 손이 떨렸다⁠. 각운은 발을 걸어 오는 다리를 무릎을 들어 넘었다⁠. 넘은 발을 내리며 손바닥을 펴 산적의 손등을 쳤다⁠. 칼이 떨어졌다⁠. 산적은 무릎을 꿇고 손을 비볐다⁠. 각운은 칼을 발로 차서 어둠 속으로 보내고 산적에게 고갯마루를 가리켰다⁠.

“⁠가⁠.⁠”

산적은 뛰었다⁠. 위소청은 산적의 등을 보았다⁠. 등이 가마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

석로는 싸움이 끝나 갈 무렵에야 셋째 사형의 등에 업혀 숯막골에 닿았다⁠. 셋째 사형은 계곡에서 물에 빠진 벌로 전공 장로에게서 집사 어른을 업고 가라는 명을 받았다⁠. 석로는 업혀 오는 내내 길을 가르쳤다⁠.

“⁠왼쪽⁠. 아니⁠, 네 왼쪽 말고 내 왼쪽⁠.⁠”

“⁠어르신⁠, 업혀 계시면 어르신 왼쪽이 제 왼쪽입니다⁠.⁠”

“⁠그러니까 내 왼쪽으로 가라고⁠.⁠”

셋째 사형은 숯막골 어귀에서 석로를 내려놓자마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석로는 약상자를 들고 불탄 집 앞으로 갔다⁠. 산적 셋이 땅에 누워 있었다⁠. 석로는 누운 몸들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위소청의 오른손에 묻은 것을 보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비명이 났다⁠. 석로는 소리 난 데로 몸을 돌렸다⁠. 가마 뒤편⁠, 쌀자루를 쌓아 둔 자리였다⁠. 각운이 놓아준 젊은 산적이 가마 모퉁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와 있었다⁠. 버린 칼 대신 숯 쑤시는 쇠꼬챙이를 쥐고 있었다⁠. 쇠꼬챙이가 숯막골 청년의 옆구리에 들어가 있었다⁠. 잔칫날 마당에서 진짜 숯이 될 뻔했다고 농을 던지던 사내의 아들이었다⁠. 산적은 쌀자루 하나를 끌어안고 고갯마루로 뛰었다⁠.

위소청이 산적보다 빨랐다⁠. 비탈 중간에서 위소청의 손이 산적의 목에 닿았고⁠, 산적은 쌀자루를 안은 채로 비탈을 굴렀다⁠. 굴러간 몸은 멈췄다⁠.

석로는 청년 옆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석로는 손바닥으로 옆구리를 눌렀다⁠. 따뜻한 것이 손가락 사이로 올라왔다⁠. 각운이 뛰어와 석로 옆에 섰다⁠. 얼굴이 하얬다⁠.

“⁠제가⁠… 제가 보냈어요⁠.⁠”

“⁠누르기나 해라⁠. 여기⁠, 여기를⁠.⁠”

석로는 각운의 손을 끌어다 제 손 위에 얹었다⁠. 각운의 손이 떨렸고⁠, 떨리는 손 아래에서 청년은 숨을 쉬었다⁠.

*

위소청은 불길이 잦아든 첫 번째 가마 앞에서 한 다리로 섰다⁠. 단학이 무너진 흙벽 옆에 서 있었다⁠. 숨이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손등의 피가 말라 당겼다⁠. 위소청은 숨을 세 번 고쳐 내렸다⁠.

“⁠보시오⁠. 놓아준 자가 돌아와 찔렀소⁠. 서른 해 전 사부를 찌른 놈과 같소⁠. 넘어뜨린 놈은 일어나고⁠, 일어난 놈은 다시 오오⁠. 춤으로는 끝이 안 나오⁠.⁠”

“⁠사실이다⁠.⁠”

단학은 부정하지 않았다⁠. 위소청은 단학이 부정하기를 기다렸다⁠. 부정하면 이길 수 있었다⁠.

“⁠사실이니⁠, 오늘 밤 꺾은 목들은 옳았소⁠.⁠”

“⁠오늘 밤 꺾은 목은 숯막골을 털러 온 목이다⁠. 네 살수가 강남에서는 누구의 목을 꺾느냐⁠?⁠”

“⁠강남은 강남이오⁠. 여기는 숯막골이오⁠.⁠”

“⁠학권은 하나다⁠. 숯막골에서 배운 손이 강남에서도 같은 손이다⁠.⁠”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대답하면 강남에서 무엇이 꺾이는지를 묻게 될 것이었다⁠. 위소청은 발을 내렸다⁠. 단학의 다음 말은 울음으로 왔다⁠. 위소청은 울음을 뒤로 하고 제자들에게 산적의 몸을 거두라고 일렀다⁠.

*

석로는 새벽에 숯막골 청년의 옆구리를 꿰맸다⁠. 정확히는 꿰매려고 했다⁠. 바늘을 쥔 손이 떨렸다⁠. 숯막골 어멈 하나가 다가와 석로 손에서 바늘을 가져갔다⁠.

“⁠어르신 손은 숯 집게보다 더 떨려요⁠.⁠”

“⁠숯 집게는 안 떨리지⁠.⁠”

“⁠그러니까요⁠.⁠”

어멈은 열두 바늘을 꿰맸다⁠. 석로는 등잔을 들고 바늘이 들어갈 자리를 비추었다⁠. 청년은 살았다⁠. 다만 어멈은 바늘을 거두며 겨울 동안 숯 짐은 못 질 거라고 했다⁠. 숯막골 사내들은 겨울 숯으로 한 해 쌀을 샀다⁠.

해가 오르자 아랫마을 촌장과 갈대골 노파가 손자를 앞세우고 숯막골로 올라왔다⁠. 촌장은 불탄 집과 누운 산적들을 보고⁠, 위소청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노파는 단학을 보았다⁠.

“⁠새는 산으로 가⁠. 우리는 살수가 있어야 살아⁠.⁠”

노파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각운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둘째 사형은 각운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거두었다⁠. 숯막골 사람들이 노파 뒤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단학은 한 다리로 서서 노파를 보았다⁠. 노파는 단학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석로는 노파의 손이 손자의 어깨를 두 번 꽉 쥐는 것을 보았다⁠.

*

석로는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셋째 사형의 등을 사양했다⁠. 셋째 사형은 사양하는 석로를 기어이 업으려다 석로의 지팡이에 정강이를 맞았다⁠. 결국 석로는 각운의 팔을 붙잡고 걸었다⁠. 붙잡은 것은 각운의 팔이었지만 기대는 사람은 각운이었다⁠. 각운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숯막골을 뒤돌아보았다⁠.

“⁠서른 해 전에도 이 길을 올라갔다⁠.⁠”

석로는 앞만 보고 말했다⁠.

“⁠장문인 사부를 업고 올라갔지⁠. 등에서 식어 갔어⁠. 장문인은 그때 지금 네 나이였다⁠. 사부를 조사당에 눕혀 놓고 밤새 옆에 서 있었다⁠. 한 다리로⁠.⁠”

“⁠한 다리로요⁠?⁠”

“⁠한 다리로⁠. 이튿날 아침에 내려와서 제자들한테 허수아비를 묶게 했다⁠. 목에 붉은 끈을 감은 게 그날부터다⁠.⁠”

각운이 걸음을 멈추었다⁠. 석로는 붙잡은 팔을 놓지 않았다⁠.

“⁠장문인을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려면 다 알고 미워해라⁠. 너는 아직 반도 모른다⁠.⁠”

“⁠어르신은 다 아세요⁠?⁠”

“⁠나는 비급 열쇠만 안다⁠. 열쇠는 알아도 안은 모른다⁠.⁠”

석로는 허리춤의 열쇠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해가 산마루를 넘어왔다⁠. 각운의 그림자가 석로의 그림자를 길게 덮었고⁠, 석로는 그림자에 밀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한 걸음을 더 크게 디뎠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

위소청은 학권문으로 돌아온 날 오후 계곡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에 나무 문을 달게 했다⁠. 목수들은 막료의 새장을 짜던 대나무 남은 것으로 문을 엮었다⁠. 막료가 툇마루에서 대나무 문을 보고 웃었다⁠.

“⁠문규로 묶인 자만 계곡에 내려간다⁠. 둘째는 가도 좋다⁠. 나머지는 마당에 남는다⁠.⁠”

위소청은 마당에 모인 제자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각운은 문규로 묶여 있지 않았다⁠. 각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째 사형이 손을 들었다⁠.

“⁠장문인⁠, 제가 계곡에서 배운 것을 우물가에서 연습해도 됩니까⁠? 혼자서요⁠.⁠”

“⁠혼자서라면⁠.⁠”

둘째 사형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물러나며 각운을 한 번 보았다⁠. 각운은 둘째 사형의 눈을 알아들었다⁠.

*

위소청은 저녁에 객사로 불려 갔다⁠. 막료가 벼루를 펴 놓고 붓을 들고 있었다⁠.

“⁠숯막골 일은 들었소⁠. 장문인 손이 아니었으면 마을 하나가 또 숯이 될 뻔했소⁠. 안무사께 글을 올려 숯막골 복구에 쓸 은을 따로 청하겠소⁠. 다친 청년의 집에도 겨울 쌀을 대 주시오⁠.⁠”

“⁠은은 무엇과 바꾸자는 거요⁠?⁠”

“⁠바꾸자니⁠. 관부가 백성을 돌보는 것이오⁠. 다만 글에는 학권의 살수가 산적을 막았다고 쓰겠소⁠. 새가 아니라⁠.⁠”

위소청은 붓끝을 보았다⁠. 먹이 붓끝에 맺혀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숯막골 청년은 겨울 숯 짐을 못 진다⁠. 청년의 집은 겨울 쌀이 없다⁠. 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료의 붓이 종이에 내려앉았다⁠. 글자 하나가 쓰일 때마다 학권문이 관부에 지는 빚이 한 줄씩 늘었다⁠. 위소청은 다 쓰일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단학은 자정이 넘어 우물가에서 각운을 기다렸다⁠. 각운은 왔다⁠. 둘째 사형이 먼저 와서 우물 건너편에 한 다리로 서 있었다⁠. 혼자서라는 말을 둘째 사형은 우물 하나를 두고 둘이 혼자씩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각운은 눈이 부어 있었다⁠.

“⁠놓아준 것이 잘못이 아니다⁠. 놓아주고 등을 보인 것이 잘못이다⁠.⁠”

각운이 들었다⁠. 들고 나서 울었다⁠. 우는데 넘어지지 않았다⁠. 단학은 몸을 옆으로 눕혔다가 일으켰다⁠.

“⁠바람을 이기지 마라⁠. 바람보다 먼저 눕지도 마라⁠. 미는 만큼 눕고⁠, 미는 힘이 빠지면 일어난다⁠. 일어날 때 등을 보이지 않는다⁠. 갈대는 쓰러진 쪽을 보며 일어난다⁠.⁠”

각운이 따라 했다⁠. 둘째 사형이 우물 건너편에서 따라 했다⁠. 둘의 몸이 밤바람 속에서 같은 박자로 누웠다가 일어났다⁠. 아홉 가운데 다섯이었다⁠.

단학은 둘을 보며 따져 보았다⁠. 제자 하나가 걸음을 바꿀 때마다 마당에서 살수를 쓰는 손 하나가 빈다⁠. 빈 손만큼 산 아래 마을이 맨몸이 된다⁠. 조사에게서 받을 빚 하나를 받으면⁠, 숯막골에 줄 빚 하나가 새로 생겼다⁠. 오늘 밤 숯막골 청년의 옆구리에 생긴 빚이 첫 번째였다⁠.

비각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단학은 고개를 돌렸다⁠. 등잔 하나가 비각 문간을 밝혔고⁠, 석로와 위소청이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었다⁠. 단학은 우물가에서 위소청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말은 한 다리가 없어도 잘 들렸다⁠.

“⁠어른⁠, 내일 아침 마당에서 비급을 펼치시오⁠. 어느 것이 학권인지 백 명이 다 보게 하시오⁠. 봉한 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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