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85자)

물 건너기 걸음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위소청은 새벽 학봉 꼭대기 바위에 올라 왼발을 들었다⁠. 서른 해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사부가 죽은 이튿날부터였다⁠. 처음 몇 해는 울면서 섰고⁠, 그다음 몇 해는 화를 내며 섰고⁠, 이후로는 그냥 섰다⁠. 바위는 북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위소청의 발바닥은 기울기를 눈보다 먼저 알았다⁠.

단학이 바위 아래 소나무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날지 않고 걸어서 올라왔다⁠. 다리에 솔잎이 붙어 있었다⁠. 왼쪽 날개가 몸에 반쯤만 붙어 있었다⁠. 위소청은 숨을 내렸다⁠. 울음이 낱말이 되었다⁠.

“⁠어제 비석을 보았다⁠. 네 조사가 새긴 약조는 둘이다⁠.⁠”

“⁠압니다⁠. 춤을 받았으니 춤으로 목숨을 거두지 않는다⁠. 학이 내려앉는 물을 메우지 않는다⁠.⁠”

“⁠둘 다 어겼다⁠.⁠”

“⁠둘 다 까닭이 있었소⁠.⁠”

위소청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벽안개 사이로 갈대골 논배미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쉰 해 전 큰 흉년이 들었소⁠. 제 사부가 젊은 장문인이던 때였소⁠. 사부는 갈대골 늪에 둑을 쌓고 물을 빼서 논 서른 마지기를 얻었소⁠. 그해 갈대골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소⁠. 다른 골짜기에서는 아이들이 죽었소⁠.⁠”

“⁠늪이 마르던 봄에 나는 그 자리에서 짝과 춤을 추고 있었다⁠. 이듬해에는 춤출 물이 없었다⁠.⁠”

“⁠서른 해 전에는 흑풍채가 왔소⁠. 사부는 날개 접기로 산적 셋을 넘어뜨렸소⁠. 넘어뜨리기만 했소⁠. 넷째가 등 뒤에서 찔렀소⁠. 사부를 찌른 놈은 사부가 넘어뜨린 셋 가운데 하나였소⁠. 일어나서 다시 왔던 거요⁠.⁠”

위소청의 숨이 흔들렸다⁠. 단학의 말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네 사부는 춤을 덜 배웠다⁠.⁠”

“⁠덜 배운 춤으로 사람이 죽었으니⁠, 저는 다 배운 살수를 만들었소⁠. 산적이 다시 오면 누가 막소⁠? 춤이 막소⁠?⁠”

“⁠보여 주마⁠.⁠”

단학은 짧게 말을 끊고 바위를 내려갔다⁠. 위소청은 한 다리로 선 채 산 아래 한수를 보았다⁠. 군량선 다섯 척이 물살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돛에 관부의 붉은 표식이 있었다⁠. 배가 지나간 물 위로 해가 떴다⁠.

*

석로는 아침 모임에서 전공 장로가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 전공 장로는 문파의 무공 수련을 맡은 늙은 사형이었다⁠. 장로는 장문인 앞에서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제자 넷이 새를 따라 계곡에 갑니다⁠. 마보도 안 하고⁠, 허수아비도 안 칩니다⁠. 한 다리로 서서 물만 봅니다⁠. 대사형이 데려간 열아홉에 넷이 더 빠지면 마당에 누가 남습니까⁠?⁠”

위소청은 문규를 들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걸음을 배운다⁠. 둘째 사형은 졌고⁠, 나머지 셋은 지지 않았지만 따라갔다⁠. 장로는 지지 않은 셋을 끌어오겠다고 했다⁠. 위소청은 막지 않았다⁠. 허락하지도 않았다⁠. 석로는 모임이 끝나자마자 주방으로 갔다⁠.

주방 어멈은 미꾸라지 바구니 앞에 국자를 들고 지키고 서 있었다⁠.

“⁠어멈⁠, 학봉 손님 아침이다⁠.⁠”

“⁠집사 어른까지 왜 이러세요⁠? 잔치 끝나고 남은 미꾸라지로 제자들 국 끓여야 해요⁠.⁠”

“⁠삼백 년 묵은 손님이다⁠. 제자들은 서른 해도 안 묵었고⁠.⁠”

어멈은 한참 버티다 바구니 하나를 내주었다⁠. 석로는 바구니를 허리에 끼고 계곡으로 가는 비탈길을 내려갔다⁠. 각운이 뒤따라와 바구니를 받으려 했다⁠.

“⁠어르신⁠, 제가 들게요⁠. 무릎이⁠…⁠”

“⁠내 무릎은 내가 안다⁠. 너는 네 무릎이나 펴라⁠.⁠”

석로는 바구니를 끝까지 혼자 들고 갔다⁠. 비탈을 다 내려갔을 때 바구니 뚜껑이 열려 있었다⁠. 미꾸라지는 세 마리가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비탈길 어딘가에서 제 발로⁠, 정확히는 제 꼬리로 계곡까지 먼저 내려갔다⁠. 각운이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졌다⁠. 석로는 남은 세 마리를 바위 위에 공손히 내려놓았다⁠.

*

단학은 계곡 얕은 여울에 한 다리로 서 있다가 미꾸라지 세 마리를 보고 하나만 먹었다⁠. 나머지 둘은 물에 놓아주었다⁠. 석로가 아깝다는 얼굴을 했다⁠.

여울에는 사람이 넷 서 있었다⁠. 각운과 둘째 사형⁠, 우물가에 따라 나왔던 젊은 제자 둘이었다⁠. 넷 모두 물이 정강이까지 오는 자리에 한 다리로 서 있었다⁠. 물살이 정강이를 밀었다⁠. 밀릴 때마다 넷의 몸이 한꺼번에 하류로 기울었다⁠.

단학은 걸음을 보여 주었다⁠. 무릎을 배 높이까지 들었다⁠. 발을 내릴 때는 발가락부터 물에 넣었다⁠. 발가락이 바닥의 돌을 더듬는 동안 몸무게는 아직 디딘 다리에 있었다⁠. 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가락이 알고 나서야 무게를 옮겼다⁠. 흔들리면 발을 다시 들었다⁠.

“⁠더듬지 않은 자리는 밟지 않는다⁠.⁠”

각운과 둘째 사형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들었다⁠. 젊은 제자 둘은 두루미 울음만 듣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각운이 단학의 말을 옮겨 주었다⁠. 옮기느라 숨이 흔들려 다음 말을 놓쳤다⁠.

“⁠물 건너는 걸음이다⁠. 싸움에서는 발을 걸어 오는 다리를 넘는다⁠. 넘은 발은 더듬은 자리에만 내린다⁠. 상대는 제 발이 디딘 자리를 모른다⁠.⁠”

석로가 바위 위에서 일어났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었다⁠. 각운이 말리기도 전에 여울로 들어왔다⁠. 물이 차가워 석로의 입에서 소리가 났다⁠. 석로는 왼발을 들었다⁠. 한 숨⁠, 두 숨⁠, 세 숨⁠.

“⁠발가락부터⁠.⁠”

석로가 들었다는 얼굴로 발가락부터 물에 넣었다⁠. 넣은 발가락이 이끼 낀 돌을 더듬었다⁠. 돌이 흔들렸다⁠. 석로는 발을 다시 들지 않고 무게를 옮겼다⁠. 엉덩이부터 물에 앉았다⁠. 넷이 동시에 넘어질 뻔했다⁠. 석로는 물속에 앉은 채 손을 내저었다⁠.

“⁠들었다⁠. 들었는데 무릎이 안 들었다⁠.⁠”

*

위소청은 한낮에 마당에서 살수 수련을 이끌었다⁠. 남은 제자 일흔이 마보로 앉아 허수아비를 쳤다⁠. 서른 개 가운데 열아홉 개 앞이 비어 있었다⁠. 강남으로 내려간 자리였다⁠. 위소청은 줄 사이를 걸으며 손끝의 각도를 고쳐 주었다⁠. 맨 끝 줄의 어린 제자 하나가 학취수를 낼 때마다 어깨가 먼저 나갔다⁠.

“⁠무릎을 펴라⁠.⁠”

말이 먼저 나갔다⁠. 어린 제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위소청을 올려다보았다⁠. 마보는 무릎을 굽히는 자세였다⁠. 학권문 장문인이 마보 자세의 제자에게 무릎을 펴라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줄 앞의 제자들까지 고개를 돌렸다⁠. 위소청은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했다⁠.

“⁠어깨를 넣어라⁠. 어깨가 먼저 나가면 목을 쥐기 전에 들킨다⁠.⁠”

막료가 객사 툇마루에 앉아 수련을 구경하다가 손짓으로 위소청을 불렀다⁠.

“⁠장문인⁠, 정본은 동지에 받더라도 사본 한 권을 먼저 역참으로 보내 주시면 좋겠소⁠. 대사형이 학포에서 기다리오⁠. 사병들 손이 비급 한 장마다 빨라질 것이오⁠.⁠”

“⁠비급은 집사가 건네오⁠. 사본도 같소⁠.⁠”

“⁠집사 어른은 무릎이 시원찮으시던데⁠. 무릎 시원찮은 분께 학권문의 앞날을 맡기셨소⁠?⁠”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고 허수아비 줄로 돌아갔다⁠. 셋째 사형이 전공 장로의 명을 받았다며 계곡에 내려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위소청은 허수아비 목에 감긴 붉은 끈을 고쳐 매며 말했다⁠.

“⁠장로에게 받은 명이면 장로에게 물어라⁠.⁠”

*

석로는 젖은 바지를 바위에 펴 말리다가 계곡 위 비탈에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열이 넘었다⁠. 맨 앞에 셋째 사형이 있었다⁠. 대사형과 둘째 사형 다음으로 살수가 빠른 제자였고⁠, 마보 자세로 하루를 앉아 있어도 땀 한 방울 안 흘린다고 자랑하던 사람이었다⁠.

“⁠전공 장로 명이다⁠. 셋은 마당으로 돌아간다⁠. 둘째 사형은 문규라 하니 두겠다⁠.⁠”

젊은 제자 둘이 물에서 나오려 했다⁠. 각운은 나오지 않았다⁠. 각운은 셋째 사형에게 지지 않았으므로 문규로 붙잡혀 있지 않았다⁠. 문규 없이 서 있는 사람이었다⁠.

“⁠저는 여기 있을게요⁠.⁠”

셋째 사형이 여울로 내려왔다⁠. 물을 튀기며 다가와 오른발로 각운의 디딘 다리를 쓸었다⁠. 마당에서라면 각운은 넘어졌을 것이다⁠. 각운은 들고 있던 무릎을 배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셋째 사형의 발이 각운의 발밑을 지나갔다⁠. 각운은 들었던 발을 발가락부터 물에 넣었다⁠. 돌을 더듬었다⁠. 흔들리지 않는 돌이었다⁠.

셋째 사형은 발을 거두지 못했다⁠. 쓸고 지나간 발이 이끼 낀 돌을 디뎠다⁠. 셋째 사형은 돌을 더듬지 않았다⁠. 몸이 뒤로 넘어가며 여울 한가운데에 큰 물보라를 일으켰다⁠. 따라온 열이 둑 위에서 얼어붙었다⁠. 석로는 바위 위에서 젖은 바지를 털며 중얼거렸다⁠.

“⁠더듬지 않은 자리는 밟지 않는 거다⁠.⁠”

석로는 방금 들은 말을 제 말처럼 썼다⁠. 셋째 사형이 물을 뱉으며 일어났다⁠. 일어난 셋째 사형은 각운을 보지 않고 단학을 보았다⁠. 단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다리로 서서 물만 보고 있었다⁠.

*

단학은 셋째 사형 무리가 비탈을 올라간 뒤에도 여울에 남았다⁠. 각운이 단학 곁에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오래 서 있었고⁠, 무릎은 아침보다 펴져 있었다⁠.

“⁠허수아비 목을 왜 못 꺾었느냐⁠?⁠”

각운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려고 입을 열 때마다 숨이 흔들려서 들었던 발을 다시 고쳐 들었다⁠.

“⁠붉은 끈을 감아 두면요⁠, 사람 목으로 보여서요⁠. 어릴 때 우리 동네에 목을 맨 사람이 있었어요⁠. 끈이 붉었어요⁠. 그 일 있고 나서는 붉은 끈만 보면 손가락이 안 모아져요⁠.⁠”

단학은 각운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이 길었다⁠. 부리처럼 모으면 살수가 되고⁠, 펼치면 날개 끝이 되는 손이었다⁠.

“⁠모으지 마라⁠. 펴라⁠. 날개를 펼 때 손가락이 끝이다⁠.⁠”

각운이 손가락을 펴 보았다⁠. 들고 있던 다리가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단학은 왼쪽 날개를 조금 들어 보았다⁠. 대사형이 비튼 뿌리에서 아직 열이 났다⁠. 이대로면 겨울이 오기 전에 강남까지 날 수 없었다⁠. 학포 개펄에는 해마다 동지 무렵 두루미 떼가 모였다⁠. 올해는 짝이 없었고⁠, 단학이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홉 가운데 넷을 열었다⁠.⁠”

“⁠아홉이요⁠?⁠”

“⁠다섯이 남았다⁠. 남은 다섯은 마당에서 열리지 않는다⁠.⁠”

각운이 무슨 뜻인지 물으려 할 때 산 위에서 북이 울렸다⁠. 잔칫날의 북과 다른 소리였다⁠. 짧게 세 번⁠, 다시 세 번이었다⁠.

*

위소청은 해가 기울 무렵 산문 앞에서 아랫마을 촌장을 맞았다⁠. 산문 망루의 제자가 비탈을 뛰어오르는 촌장을 보자마자 북을 쳤다고 했다⁠. 촌장은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숯막골 고갯마루 너머에 흑풍채 깃발이 올랐다고 했다⁠. 서른 해 전에 쓸어 낸 산적들의 남은 무리였다⁠. 학권문 교두 열아홉이 배를 타고 내려갔다는 소문이 고개 너머까지 갔다⁠.

막료가 객사에서 나와 부채를 부쳤다⁠.

“⁠관군은 북쪽에 있소⁠. 강남 사병을 부르려면 한 달이 걸리오⁠. 학권문이 막으시오⁠. 그러라고 관부가 학권문 논에 세금을 안 매기는 것이오⁠.⁠”

“⁠학권문 논이 아니오⁠. 마을 셋의 논이오⁠.⁠”

“⁠어느 논이든 장문인께서 지키시오⁠.⁠”

위소청은 막료의 부채를 보았다⁠. 부채 끝이 일정하게 흔들렸다⁠. 서른 해 전 흑풍채가 왔을 때 관군은 사흘 뒤에 왔고⁠, 와서는 불탄 방앗간의 숫자를 세어 갔다⁠. 불탄 방앗간 앞에서 위소청은 관부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서른 해가 지나 위소청은 관부에 학권을 팔고 있었다⁠.

위소청은 계곡에서 올라오는 단학을 보았다⁠. 단학의 다리는 젖어 있었다⁠. 뒤에 각운과 둘째 사형이 따라왔고⁠, 맨 뒤에서 물에 빠졌던 셋째 사형이 젖은 옷을 짜며 따라왔다⁠. 위소청은 한 다리로 섰다⁠.

“⁠보여 주시겠다 했소⁠. 춤으로 막아 보시오⁠.⁠”

“⁠네가 살수로 막는 옆에서 막겠다⁠.⁠”

숯막골 고갯마루에서 연기가 올랐다⁠. 처음에는 숯가마 연기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숯가마 연기는 하얗고 곧게 오른다⁠. 고갯마루의 연기는 검었고⁠, 바람을 따라 옆으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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