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49자)

목 감추기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석로는 아침부터 산문 앞에서 떡 장수와 싸웠다⁠. 두루미가 장문인과 말을 하고 사형을 물독에 처박았다는 소문이 하룻밤 새 한수 나루까지 내려갔다⁠. 아침이 되자 산 아래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왔고⁠, 떡 장수 하나가 산문 바로 앞에 좌판을 폈다⁠. 좌판에는 쌀가루를 두루미 모양으로 빚어 찐 떡이 쌓여 있었다⁠. 목이 길고⁠, 다리가 하나였다⁠. 다리가 둘인 것은 팔지 않는다고 떡 장수는 큰소리를 쳤다⁠.

“⁠여기는 문파 땅이다⁠. 남의 문 앞에서 장사를 하려면 떡 열에 하나는 내놔야지⁠.⁠”

“⁠어르신⁠, 문 앞은 문 밖입니다⁠. 문 밖은 나라 땅이고요⁠.⁠”

“⁠나라 땅이면 나라에 내라⁠. 나라가 받으러 오면 내가 비켜 주마⁠.⁠”

떡 장수는 한참 버티다 떡 하나를 석로 손에 쥐여 주었다⁠. 석로는 떡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쌀가루가 덜 쪄져 이에 붙었다⁠. 석로는 떡을 입에 문 채로 자릿세를 더 따지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떡 장수가 웃었다⁠. 석로는 떡을 다 먹고 나서야 이를 혀로 훑으며 산문 안으로 돌아섰다⁠.

나루에서 올라온 뱃사람 하나가 산문 옆에 앉아 짚신 끈을 매며 떠들었다⁠. 북쪽 양양 땅 너머까지 금나라 군사가 내려왔고⁠, 한수를 내려가는 군량선이 날마다 늘었다고 했다⁠. 석로는 들은 체하지 않았다⁠. 북쪽 소식은 해마다 비슷했고⁠, 해마다 조금씩 가까워졌다⁠.

마당으로 돌아오니 우물가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각운과 둘째 사형이 서로 등을 진 채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어제 물독에 들어갔던 사람이 오늘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제 발로 우물가에 나와 있었다⁠. 둘째 사형은 석로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느라 넘어졌다⁠. 석로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두 사람 발치를 한 방향으로 쓸었다⁠.

*

단학은 현판 아래에서 대사형을 기다렸다⁠. 해가 마당 한가운데까지 왔을 때 대사형이 계단을 내려왔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고⁠, 깃은 소맷부리에 그대로 달려 있었다⁠. 대사형은 포권하지 않았다⁠.

첫 수는 학취수가 아니었다⁠. 대사형은 어깨를 흔들어 왼쪽으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오른발로 단학의 디딘 다리를 쓸었다⁠. 정강이 하나를 꺾으면 두루미는 설 수 없었다⁠. 단학은 디딘 발을 들지 않았다⁠. 발바닥의 무게를 발가락에서 발뒤꿈치로 옮겨 몸을 뒤로 반 뼘 눕혔고⁠, 대사형의 발은 정강이 앞을 스쳐 갔다⁠. 마당 둘레의 구경꾼들이 숨을 들이켰다⁠.

다음은 학취수였다⁠. 손끝 다섯이 목으로 왔고⁠, 막히자 곧바로 팔 접기로 바뀌었다⁠. 단학은 날개를 접어 팔을 품었다⁠. 어제 둘째 사형은 품긴 팔을 빼내지 못했다⁠. 대사형은 품긴 팔을 빼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깊이 들어온 손이 단학의 왼쪽 날개 뿌리를 움켜쥐었다⁠. 칼깃이 빠진 날개였다⁠.

뼈마디가 비틀렸다⁠. 단학의 시야가 한순간 하얘졌다⁠. 대사형이 얼굴을 바짝 붙였다⁠. 짠물에 삭은 갈대 뿌리 냄새가 대사형의 입김에서 났다⁠. 대사형은 단학이 못 알아듣는다고 여기고 웃으며 속삭였다⁠.

“⁠강남 개펄에서 너 같은 놈 목을 꺾어 보였지⁠. 사병들이 그날로 따라 하더라⁠. 너 같은 늙은 놈은 아니었고⁠, 정수리가 더 붉었어⁠.⁠”

단학은 날개를 비틀어 빼냈다⁠. 깃 몇 개가 대사형 손에 남았다⁠. 대사형은 남은 깃을 털어 버리고 마지막 수를 냈다⁠. 오른손 손끝 다섯이 목을 쥐러 들어왔다⁠. 시연의 손이 아니었다⁠. 쥐면 꺾는 손이었다⁠.

손이 닿기 직전 단학은 목을 접었다⁠. 길게 뺀 목을 어깨 사이로 끌어내려 몸통 속에 감추었다⁠. 단학이 짝에게서 처음 배운 초식이었다⁠. 매가 덮칠 때 두루미는 목부터 감춘다⁠. 대사형의 손끝 다섯이 목이 있던 자리에서 허공을 쥐었다⁠. 손이 비면 몸이 앞으로 쏠린다⁠. 쏠린 몸 아래로 단학은 디딘 다리를 굽혔다가 폈다⁠. 감춰 둔 목이 아래에서 위로 펴지며 정수리가 대사형의 턱밑을 받았다⁠.

대사형이 뒤로 넘어갔다⁠. 등이 돌바닥에 닿는 소리가 마당 끝까지 갔다⁠. 단학은 대사형 가슴팍 옆에 한 다리로 섰다⁠. 고개를 숙여 대사형의 소맷부리를 부리로 물었다⁠. 붉은 실이 끊어졌다⁠. 끝이 검고 가장자리가 쌀알만큼 패인 깃이 단학의 부리에 들어왔다⁠.

*

위소청은 대사형이 일어나는 것을 계단 위에서 보았다⁠. 대사형은 입술이 터져 있었다⁠. 피를 손등으로 훔치고 단학의 부리에 물린 깃을 보더니⁠, 웃지 않았다⁠. 위소청이 접은 손가락은 셋이 되었다⁠. 목 감추기였다⁠.

“⁠현판 아래에서 졌다⁠.⁠”

위소청은 그렇게만 말했다⁠. 대사형은 위소청 앞으로 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꿇은 무릎이 떨리지 않았다⁠.

“⁠압니다⁠. 그런데 장문인⁠, 저는 내일 강남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학포 진영에서 사병 삼백이 저와 교두들을 기다립니다⁠. 사병 삼백이 우리 손을 배우고 있습니다⁠. 동지 전까지 개펄 일을 끝내야 한다는 것도 아십니다⁠. 장문인께서 막부와 맺으신 약조입니다⁠. 제가 여기서 한 해 동안 새 걸음을 배우면 강남 약조는 누가 지킵니까⁠?⁠”

마당이 조용해졌다⁠. 제자들 대부분은 강남으로 간 사형들이 관부의 무관이 되어 관아에서 녹봉을 받는 줄 알았다⁠. 사병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얼굴들이었다⁠. 아랫마을 촌장은 눈을 내리깔았다⁠. 촌장은 알고 있었다⁠. 마을 논에 세금이 붙지 않는 까닭을 해마다 관아 문서로 받았다⁠. 갈대골 노파가 손자 어깨를 짚고 앞으로 나왔다⁠.

“⁠사병이라니⁠? 학권을 관부 놈들 졸개한테 가르친다는 거야⁠?⁠”

막료가 부채를 펴며 웃었다⁠.

“⁠졸개라니 섭하오⁠. 나라를 지키는 의용이오⁠. 북쪽 싸움 때문에 강남이 비었소⁠.⁠”

위소청은 한 다리로 섰다⁠. 단학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숨을 내리자 말이 들어왔다⁠.

“⁠문규다⁠. 진 자는 남는다⁠. 네 조사가 현판을 걸던 날 정했다⁠.⁠”

“⁠압니다⁠.⁠”

“⁠알면 지켜라⁠.⁠”

위소청은 대사형을 내려다보았다⁠. 대사형을 남기면 교두 열아홉과 학포의 사병 삼백은 주인 없는 칼이 된다⁠. 막료는 동지 전에 약조가 깨졌다고 안무사에게 올릴 것이고⁠, 마을 셋의 논에는 세금이 다시 붙는다⁠. 대사형을 보내면 문규가 깨진다⁠. 백 명 제자가 보는 앞에서⁠, 장문인의 입으로⁠.

위소청은 발을 내렸다⁠. 단학의 말이 울음으로 돌아갔다⁠.

“⁠대사형은 내일 강남으로 내려간다⁠. 강남에서 걸음을 배워라⁠.⁠”

대사형이 고개를 숙였다⁠. 마당 둘레에서 누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둘째 사형이었다⁠. 어제 해 질 때까지 마흔한 번을 넘어지며 문규를 지킨 사람이었다⁠. 둘째 사형은 장문인을 보다가⁠, 들고 있던 발을 천천히 내렸다⁠. 각운은 내리지 않았다⁠.

막료가 부채를 접었다⁠. 은 상자 두 개는 수레 위에 그대로 있었고⁠, 새장은 마당 귀퉁이에서 문을 열어 둔 채 비어 있었다⁠. 단학은 깃을 문 채 위소청을 한 번 보고 몸을 돌렸다⁠. 한 다리로 선 장문인에게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두 발로 선 장문인에게는 아무 말도 닿지 않았다⁠. 단학은 발을 물 건너듯 높이 들며 산문으로 걸어갔다⁠. 구경꾼들이 길을 텄다⁠. 떡 장수가 좌판 위의 한 다리 떡을 두 손으로 덮었다⁠.

*

석로는 밤에 장문인 처소로 약탕을 들고 갔다⁠. 위소청은 서른 해 전부터 속이 쓰렸고⁠, 쓰린 날에는 석로가 달인 쑥 탕을 마셨다⁠. 오늘 밤은 묻지 않아도 쓰린 날이었다⁠. 복도 끝 장문인 방 앞에 둘째 사형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석로는 걸음을 멈추고 기둥 그늘에 섰다⁠. 약탕 그릇에서 김이 올라와 석로의 눈썹을 적셨다⁠.

방문이 열렸다⁠. 위소청이 문지방 안에 서서 둘째 사형을 내려다보았다⁠.

“⁠장문인⁠, 어제 저는 해 질 때까지 마흔한 번 넘어졌습니다⁠. 문규라서 넘어졌습니다⁠. 대사형은 내일 배를 탑니다⁠. 문규는 저한테만 문규입니까⁠?⁠”

“⁠너에게도 대사형에게도 문규다⁠. 대사형은 강남에서 걸음을 배운다⁠.⁠”

“⁠강남에서 누가 가르칩니까⁠? 강남에는 막료와 사병뿐입니다⁠.⁠”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장문인을 석로는 처음 보지 않았다⁠. 사부가 죽던 밤에도 위소청은 이렇게 문지방 안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우물가에 서지 않아도 된다⁠. 문규를 깬 장문인 아래에서 문규를 지킬 까닭은 없겠지⁠.⁠”

둘째 사형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아닙니다⁠. 서겠습니다⁠. 장문인께서 못 지키시니 제가 지키겠습니다⁠.⁠”

둘째 사형은 절을 하고 일어나 복도를 걸어 나갔다⁠. 기둥 그늘을 지나면서 석로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소청은 문지방 안에서 석로를 불렀다⁠. 석로가 약탕을 들고 다가가자 위소청은 그릇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식었소⁠, 어른⁠.⁠”

“⁠식은 약은 약이 아니지요⁠.⁠”

석로는 그릇을 제 입으로 가져가 단숨에 비웠다⁠. 썼다⁠. 위소청이 문을 닫기 전에 잠깐 웃었다⁠. 웃음은 짧았고⁠, 석로는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

단학은 이튿날 아침 산문 밖 바위에서 한수 나루를 내려다보았다⁠. 대사형이 교두 노릇을 하러 강남에 내려갈 제자 열아홉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막료는 남았다⁠. 동지까지 학권문에 머물며 비급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배가 물살을 타고 미끄러져 나갔다⁠.

단학은 바위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오른쪽 날개는 바람을 잡았다⁠. 왼쪽 날개를 펴는 순간 어제 비틀린 뿌리에서 뜨거운 것이 어깨까지 번졌다⁠. 칼깃이 빠진 자리로 바람이 새는 것과는 다른 아픔이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고⁠, 기운 몸을 다시 세울 힘이 날개에 없었다⁠. 단학은 산비탈을 따라 비스듬히 미끄러지다 갈대골 논배미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물을 대 두었다⁠. 진흙이 정강이까지 왔다⁠. 단학은 진흙 속에서 한 다리로 섰다⁠. 디딘 발 아래가 물렁했고⁠, 물렁한 바닥은 기울기를 알려 주지 않았다⁠. 예순 해 전 이 자리는 늪이었다⁠. 단학은 같은 자리에서 짝과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 늪일 때는 발바닥이 바닥을 알았다⁠.

논두렁 위에 노파가 서 있었다⁠. 지팡이 대신 들고 나온 호미를 내려놓고⁠, 노파는 논으로 들어왔다⁠. 발목까지 빠지면서 다가와 물 바가지를 내밀었다⁠. 단학은 마시지 않았다⁠. 노파는 바가지를 든 채 오래 단학을 보았다⁠.

“⁠너⁠, 늪에 오던 놈이냐⁠? 정수리 붉은 놈 둘이 봄마다 오면 아버지가 올해 풍년이라고 그랬어⁠.⁠”

단학은 대답했다⁠. 노파는 한 다리로 서지 않았으므로 두루미 울음만 들었다⁠. 노파는 바가지의 물을 단학 발치에 붓고 논두렁으로 돌아갔다⁠. 단학은 날지 않았다⁠. 배는 벌써 산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았다⁠. 단학은 진흙에서 발을 하나씩 높이 뽑아 산길로 걸어 올라갔다⁠.

*

석로는 밤늦게 조사당 앞을 지나다가 문짝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이면 문짝이 삐걱거렸을 텐데 문짝은 소리 없이 반쯤 열려 있었다⁠. 석로는 등잔을 들고 문지방을 넘었다⁠.

두루미가 비석 앞에 한 다리로 서 있었다⁠. 다리에 마른 진흙이 정강이까지 붙어 있었다⁠. 산길을 걸어 올라온 다리였다⁠. 등잔불이 흔들리자 벽의 두루미 그림과 비석 앞의 두루미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부리 끝에 흰 깃 하나를 물고 있었다⁠.

석로는 등잔을 문지방에 내려놓았다⁠. 기둥은 멀었다⁠. 기댈 데가 없었다⁠. 석로는 왼발을 들었다⁠. 무릎이 소리를 냈고⁠, 소리가 조사당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숨을 내렸다⁠. 한 숨⁠, 두 숨⁠. 세 숨째에 울음이 낱말이 되었다⁠.

“⁠빚을 받으러 왔다⁠.⁠”

석로의 무릎이 꺾였다⁠. 석로는 문지방에 주저앉았다⁠. 두루미는 석로를 보지 않았다⁠. 비석을 보고 있었다⁠. 비석의 이끼 아래에서 조사의 글씨가 등잔불을 받아 희미하게 떠올랐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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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31· 3화

    다리 하나인 두루미 떡만 판다는 떡 장수 너무 좋아요. 다음에도 나와요?

    • 마하솔작가2026.10.31

      떡 장수는 문 밖에서 끝까지 장사합니다. 문파보다 오래 버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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