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53자)
날개 접기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단학은 밤새 현판 아래에서 한 다리로 서 있었다. 머리는 등 깃 속에 묻었고, 귀는 열어 두었다. 마당 귀퉁이에서 막료가 데려온 목수 둘이 대나무를 쪼개 새장을 짰다. 망치 소리가 밤의 한가운데를 일정하게 두드렸다. 한 번 두드릴 때마다 대나무 살이 하나씩 늘었다. 단학은 소리로 새장의 너비를 쟀다. 날개를 다 펴면 양쪽 끝이 닿을 너비였다.
자정이 지나 발소리가 왔다. 맨발이었고, 걸음마다 망설였다. 단학은 머리를 꺼냈다. 각운이 질그릇 하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서 있었다. 그릇 속에서 미꾸라지 여남은 마리가 꼬리를 쳤다.
각운은 그릇을 단학 발치에 내려놓고 세 걸음 물러나 왼발을 들었다. 단학은 이 아이를 알았다. 지난 여름 내내 밤마다 우물가에서 혼자 넘어지던 아이였다. 각운의 무릎은 굽어 있었다. 마보로 다진 무릎이라 펴지지 않았다.
“무릎을 펴라. 굽힌 무릎으로는 땅의 기울기가 안 읽힌다.”
각운의 눈이 커졌다. 첫 두 마디가 닿은 얼굴이었다. 숨이 터졌고, 들었던 발이 땅에 떨어졌다. 각운은 두 발로 서서 한참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금, 말을 하셨어요?”
단학은 대답 대신 미꾸라지 한 마리를 집어 삼켰다. 각운이 다시 발을 들려고 할 때 전각 모퉁이에서 국자를 든 주방 어멈이 나타났다.
“이놈, 그게 손님상 추어탕에 들어갈 미꾸라지야. 삼백 년 잔치 국을 새 입에 넣어?”
“삼백 년 전 손님이에요, 어멈.”
“삼백 년 전 손님이면 삼백 년 전에 먹었겠지.”
각운은 단학 뒤로 숨었다. 키가 단학보다 한 뼘 컸으므로 숨은 것이 아니었다. 어멈은 국자를 쳐들었다가, 한 다리로 선 두루미가 미꾸라지를 하나씩 천천히 삼키는 것을 보고 국자를 내렸다. 그릇이 비었다. 어멈은 빈 그릇을 집어 들고 각운의 귀를 잡아끌고 갔다. 끌려가면서도 각운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단학은 다시 머리를 등에 묻지 않았다. 새장 짜는 소리 너머로 손님 숙소의 창 하나가 늦게까지 밝았다. 대사형이 묵는 방이었다. 대사형의 소맷부리에 달린 깃을 단학은 낮에 가까이서 보았다. 끝이 검고, 검은 자리 가장자리가 쌀알만큼 패어 있었다. 봄마다 단학은 짝의 깃을 부리로 골라 주었다. 짝과 함께 산 서른 해 동안 단학의 부리는 패인 자리를 수백 번 지나갔다.
단학은 차례를 정했다. 한 사람씩. 대사형은 마지막이었다.
*
위소청은 아침 비무를 현판 아래 계단에서 지켜보았다. 막료와 촌장 셋이 곁에 앉았다. 대사형이 첫 상대로 나서겠다고 했지만 위소청이 막았다. 새가 무엇을 하는지 먼저 보고 싶었다.
둘째 사형이 나왔다. 대사형 다음으로 살수가 빠른 제자였다. 둘째 사형은 마보로 앉았다가 일어나며 단학에게 정중하게 포권했다.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는 무인의 인사였다. 두루미에게 포권하는 것이 우스웠는지 제자들 몇이 웃었다. 둘째 사형은 웃음소리를 귀에 담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연 때마다 허수아비 목을 가장 깨끗하게 꺾었고, 짚 부스러기 하나 튀기지 않았다. 둘째 사형은 웃음소리를 등지고 단번에 들어갔다.
학취수가 목으로 왔다. 오른손이 막히면 왼손이 뒤따르고, 왼손이 막히면 발이 무릎을 노리는 수였다. 위소청이 직접 가르친 순서였다. 단학은 오른손을 몸 반 뼘으로 비켰다. 왼손이 들어오는 순간 두 날개를 앞으로 모아 접었다. 날개가 문짝처럼 닫히며 둘째 사형의 팔뚝을 안에 품었다. 단학은 디딘 다리 위에서 몸을 사분의 일 바퀴 돌렸다. 둘째 사형의 몸이 제가 낸 힘을 따라 단학 옆을 지나갔다. 지나간 몸은 멈출 데가 없었다. 우물가 돌 물독에 머리부터 들어갔다.
물이 마당으로 넘쳤다. 손님 자리가 조용해졌다가 웃음으로 터졌다. 아랫마을 촌장은 무릎을 쳤다. 위소청은 웃지 않았다.
날개를 접어 팔을 품고 몸을 돌리는 수는 위소청도 알았다. 학권문에서는 팔 접기라고 불렀다. 품은 팔을 끝까지 돌려 팔꿈치를 꺾는 살수였다. 위소청의 사부의 사부가 날개 접기를 그렇게 바꾸었다. 단학은 같은 자리에서 돌리기를 멈추었다. 멈추었기 때문에 팔꿈치는 멀쩡했고, 사람만 물독에 들어갔다. 날개가 돌아가는 동안 단학이 디딘 발은 돌바닥 위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위소청은 무릎 위에 올린 손에서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사부는 학권의 처음 초식이 아홉이라고 했다. 어제 마당에서 한 다리 서기가 열렸고, 오늘 날개 접기가 열렸다. 접힌 손가락은 둘이었다.
둘째 사형이 물독에서 기어 나와 젖은 머리로 단학을 노려보았다. 위소청은 계단에서 내려가지 않고 말했다.
“현판 아래에서 졌다. 문규대로 이긴 자의 걸음을 배워라. 해 질 때까지 마당 한가운데 한 다리로 서 있어라.”
둘째 사형은 입술을 깨물고 마당 한가운데로 갔다. 왼발을 들었다. 세 숨 만에 넘어졌다. 다시 들었다.
막료가 위소청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재미있는 새요. 장문인, 잊지 않으셨겠지요. 동지까지요. 비급 정본만 넘기면 학권문은 막부의 무학 교두청이 되오. 관부가 정식으로 세운 무예 가르치는 관청이 되는 것이오. 마을 셋의 논에는 세금이 붙지 않고. 올해 조정이 군량을 작년의 세 갑절로 매겼다는 것은 아시지요?”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고 둘째 사형이 다시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두 해 전 흉년에 갈대골 노파의 손자는 볼이 홀쭉해져 문파 부엌 앞에 줄을 섰다. 흉년 든 겨울에 마을 곳간을 채운 쌀은 관부의 은으로 샀다. 위소청은 막료에게 짧게 말했다.
“잊지 않았소.”
*
석로는 오후에 비각 문을 열어 바람을 들였다. 비급을 두는 작은 전각이었다. 서른 해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이었다. 습기가 차면 종이가 운다. 석로는 비급이 든 오동나무 함을 꺼내 볕이 닿지 않는 자리에 내려놓고, 함 뚜껑의 먼지를 소매로 훔쳤다. 소매를 털 때 위소청이 문간에 나타났다.
장문인이 비각에 직접 온 것은 몇 해 만이었다. 위소청은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어른, 열쇠를 잠시 주시오. 막부에 넘길 정본을 손봐 두어야 하오.”
“비급은 집사가 지키고 집사가 건넵니다. 조사께서 정하신 겁니다. 장문인도 아시지요.”
“알기에 묻는 것이오. 누구에게 건네실 거요?”
석로는 함을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위소청이 무릎 소리를 들은 얼굴을 했고, 석로는 못 들은 척했다.
“아직 안 정했습니다.”
“동지까지 정하시오. 관부에 넘기는 것이 싫으시면 다른 사람을 고르셔도 좋소. 다만 동지까지요.”
“관부에 넘기실 거면 장문인 손으로 하십시오. 제 손으로는 못 합니다.”
“어른 손이 아니면 넘길 수가 없소. 조사가 일부러 그렇게 정했겠지.”
위소청은 문지방 너머에서 석로를 보았다. 석로는 장문인을 아이 적에 업어 키웠다. 업힌 아이가 등에 대고 한 다리 서기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것을 기억했다. 업혀 조르던 아이가 이제 문지방을 넘지 않고 서서 비급을 달라고 했다. 넘어와서 함을 빼앗았다면 석로는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
위소청이 돌아간 뒤 석로는 함을 열었다. 비급의 첫 장에는 조사가 먹으로 그린 두루미가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정수리에만 붉은 물감이 남아 있었다. 맨 뒤 한 장은 삼베 실로 꿰매 봉해져 있었다. 석로는 매듭을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서른 해 동안 열쇠를 찼지만 석로는 봉한 장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
위소청은 비각에서 내려와 조사당으로 갔다. 조사당은 학권문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었다. 기와 틈에 풀이 자랐고, 문짝은 손이 닿는 자리만 반들반들했다. 벽에는 조사가 그렸다는 두루미가 있었고, 두루미 아래에 사람 키만 한 비석이 박혀 있었다. 비석 글씨는 이끼에 반쯤 덮여 있었다. 위소청은 글씨를 읽지 않았다. 다 외우고 있었다.
등 뒤에서 비단 신발 소리가 났다. 막료가 문지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벽의 두루미를 올려다보았다.
“저 그림이 마당의 새라면, 새가 삼백 년을 살았다는 말이오?”
“그렇게들 전하오.”
“그럼 더 값이 나가겠소.”
막료는 웃으며 조사당 안으로 들어왔다. 위소청은 비석 앞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새장은 무엇에 쓰려는 거요? 문규를 걸었으니 새가 지면 데려가시라 했소. 지기 전에는 손대지 마시오.”
“장문인, 문규는 문파 안의 일이고 약조는 관부의 일이오. 안무사께서는 북쪽에 정규군을 다 보내고 남은 땅을 사병으로 지키고 계시오. 사병은 굶주린 농사꾼들이오. 농사꾼에게 창을 쥐여 주면 창을 무서워하오. 학권은 맨손이라 겁을 덜 내오. 그래서 은을 내고 사는 거요. 학권의 뿌리라는 새를 사병들 앞에 세워 두면 놈들 손끝이 더 빨리 여물 것이오. 새는 덤이고, 정본이 본전이오.”
“덤이라도 문규를 지나서 오시오.”
막료는 비석의 이끼를 손가락으로 긁어 보다가 손을 털었다.
“그럽시다. 내일은 대사형이 나선다 들었소. 대사형 손이면 새장 문을 오래 열어 둘 일이 없겠소.”
막료가 나간 뒤 위소청은 벽의 두루미를 올려다보았다. 그림의 두루미는 왼쪽 날개 끝까지 깃이 다 있었다. 마당의 두루미는 칼깃 두 개가 비어 있었다. 위소청은 빈 자리가 어디서 생겼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을 위소청은 조사당 문을 닫으면서 알았다.
*
단학은 해가 서쪽 전각 지붕에 걸칠 무렵 마당 한가운데의 둘째 사형을 보았다. 둘째 사형은 하루 내내 한 다리로 서다 넘어지기를 되풀이했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둘러서서 웃었다. 점심때가 지나자 웃음이 내기로 바뀌었다. 해 질 때까지 몇 번 넘어지는지를 두고 엽전이 오갔다. 각운은 서른을 걸었다가 마흔으로 바꾸었다.
석로가 물 한 사발을 들고 절뚝거리며 마당을 건너왔다. 둘째 사형이 손을 내밀자 석로는 사발을 등 뒤로 감추었다.
“두 발 디디고 마시면 문규를 어기는 거다. 한 다리로 서서 마셔라.”
“어르신, 아침에 물독에서 실컷 마셨습니다.”
“그건 물독이 너를 마신 거지.”
둘째 사형은 한 다리로 서서 사발을 받았다. 반은 마시고 반은 가슴팍에 쏟았다. 석로는 빈 사발을 받아 들고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석로의 걸음이 아침보다 한층 더 기울어 있었다.
해가 지붕 너머로 넘어가는 동안 둘째 사형은 넘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지쳐 더는 버틸 힘이 없자 오히려 힘이 빠지면서 무릎이 펴졌다. 숨이 발목까지 내려갔다. 단학은 숨이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숨은 거기다. 무릎을 펴면 땅이 말을 한다.”
둘째 사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단학을 보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가, 다시 단학을 보았다. 들었던 발이 떨어졌다.
“새가…”
제자들이 웃었다. 하루 종일 서 있더니 새 소리가 말로 들린다는 웃음이었다. 둘째 사형은 웃음 속에서 마흔한 번째로 주저앉았다. 각운이 엽전을 쓸어 모았다. 둘째 사형은 엉덩이를 바닥에 댄 채 단학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계단 위에서 대사형이 위소청 앞으로 나갔다. 단학은 계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일은 제가 서겠습니다. 시연하던 손이 아니라 진짜 살수로요.”
위소청은 마당의 둘째 사형을 내려다보았다.
“허락하오.”
막료가 손짓했고, 하인이 은 상자를 하나 더 내려 첫 상자 옆에 놓았다. 대사형은 계단을 내려오며 소맷부리의 깃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단학은 한 다리 위에서 깃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깃을 단 손이 내일 단학의 목으로 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