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02자)
잔칫날 아침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석로는 동이 트기 전부터 마당을 쓸었다. 싸리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끌었다. 빗자루 끝이 돌바닥 틈에 낀 은행잎을 긁어낼 때마다 무릎 안쪽에서 마른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났다. 석로는 무릎 소리를 못 들은 척하는 데 쉰 해를 썼다.
“각운아.”
마당 건너편에서 각운이 빗자루를 든 채 돌아보았다. 스물넷이 되도록 짚 허수아비의 목 하나를 제대로 꺾지 못해 시연 대열에서 빠진 제자였다. 각운의 빗자루는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비질은 한 방향이다. 왔다 갔다 하면 먼지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르신, 이렇게 하면 두 배로 빨라요.”
“두 배로 더러워지지.”
각운은 입을 다물고 빗자루를 한 방향으로 끌었다. 세 번 끌고 나서 다시 왔다 갔다 했다. 석로는 혀를 찼다.
오늘은 학권문이 문을 연 지 삼백 년 되는 날이었다. 전각 처마 밑 현판에 금칠을 새로 했고, 「학권문」 세 글자가 아직 어둑한 하늘 아래서 먼저 빛났다. 현판 아래 돌바닥에는 짚 허수아비 서른 개가 줄지어 있었다. 허수아비마다 목에 붉은 끈을 감아 두었다. 해가 오르면 제자 서른이 손끝으로 끈 감은 자리를 꺾을 것이었다.
석로가 학권을 처음 배운 아침에는 허수아비가 없었다. 열두 살 머슴 아이였던 석로를 늙은 장문인이 우물가로 데려가 한 다리로 세워 두었다. 해가 우물 지붕을 넘어갈 때까지 세워 두었다. 석로는 아침 내내 넘어졌다. 넘어질 때마다 우물 건너편에 서 있던 두루미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했고, 두루미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예순 해가 지났지만 석로는 학권을 생각하면 목덜미보다 발바닥이 먼저 떠올랐다.
해가 산마루에 닿자 산문 밖에서 북이 울렸다. 아랫마을 촌장이 쌀 다섯 섬을, 숯막골 사람들이 숯 열 짐을 지고 올라왔다. 갈대골 노파는 지팡이 대신 손자 어깨를 짚고 왔다. 맨 나중에 가마 하나와 짐수레 하나가 산문을 넘었다. 가마 앞에는 강남 한 지방의 군사와 백성을 맡은 큰 벼슬, 안무사의 깃발이 서 있었다. 가마에서 내린 사람은 안무사 막부에서 일을 꾸미는 관리인 막료였고, 뒤를 따라 장문인의 맏제자인 대사형이 강남에서 올라왔다.
막료는 장문인 위소청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북쪽에서 금나라 기병이 회수 가까이 내려왔다 하오. 군량이 더 들 것이오. 삼백 년 잔치에 좋은 소식만 가져오지 못해 미안하오.”
대사형이 막료 뒤에서 나와 위소청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남에 있는 아이들이 장문인께 절을 올리랍니다. 다들 교두 노릇을 제법 합니다.”
“사병들 손끝이 이제 제법 매서워졌소.”
막료가 웃으며 거들었다. 위소청은 대사형을 일으켜 세우고 막료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잔칫날이오.”
막료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청은 손님마다 허리를 같은 깊이로 숙였다. 석로는 빗자루를 기둥에 세워 두고 쌀섬을 세었다. 다섯 섬이 맞았다. 마지막 섬을 짚었을 때 학봉 꼭대기에서 길고 마른 울음이 내려왔다.
*
단학은 학봉 바위에서 몸을 띄우기 전에 왼쪽 날개를 두 번 접었다 폈다. 날개 끝에서 바람을 가르는 긴 깃을 칼깃이라 하는데, 왼쪽 칼깃 두 개가 빠진 자리로 바람이 샜다. 지난겨울 강남 개펄에서 빠진 깃이었다. 빠진 자리를 지날 때마다 바람은 단학을 왼쪽으로 끌어내렸고, 단학은 오른쪽 날개를 그만큼 덜 저었다. 내려가는 길은 길지 않았다.
마당 위에서 원을 두 번 그렸다. 아래에서 사람 서른이 두 발을 벌리고 무릎을 굽혀 앉아 있었다. 말에 올라탄 사람처럼 앉는 자세를 사람들은 마보라고 불렀다. 서른의 손끝이 부리처럼 모여 허수아비 목으로 들어갔다. 짚 꺾이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맨 앞에서 구령을 붙이는 사내가 한 번 더 외쳤고, 서른 개의 짚 목이 한 번 더 꺾였다.
단학은 허수아비 줄 한가운데, 비어 있는 자리로 내려앉았다. 돌바닥은 남쪽으로 손가락 한 마디만큼 기울어 있었다. 오른발 하나로 땅을 짚으며 기울기를 발바닥으로 읽었고, 왼발은 배 깃 속으로 접어 넣었다. 발가락 셋이 돌의 차가움을 나눠 받았다. 숨을 발목까지 내리자 몸이 흔들리기를 멈췄다.
구령이 끊겼다. 사람 서른이 마보 자세 그대로 두루미를 쳐다보았다. 누구 하나 한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두 발이었고, 모두 무릎을 굽혔다. 단학은 굽힌 무릎들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았다.
“쫓아내.”
구령을 붙이던 사내가 말했다. 제자 셋이 다가와 팔을 휘저었다. 단학은 서 있던 다리를 굽히지 않고 몸만 손톱만큼 기울였다. 팔들이 깃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내가 직접 나왔다. 손끝 다섯을 부리처럼 모아 목을 찌르는 살수, 학권문 사람들이 학취수라 부르는 손이었다. 손끝이 목 깃에 닿기 직전 단학은 디딘 발바닥의 무게를 발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으로 옮겼다. 몸이 저절로 반 뼘 비켜났다. 손끝은 허공을 찔렀다.
손님 자리에서 박수가 터졌다. 막료가 가장 크게 쳤다.
“삼백 년 잔치답소. 새까지 불러다 세우다니.”
*
위소청은 박수 소리 속에서 손님 자리를 떠나 계단을 내려갔다. 조사당 벽에 그려진 두루미가 있었다. 왼다리 하나로 서서 목을 길게 뺀 두루미였고, 정수리가 붉었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두루미도 정수리가 붉었다. 그림보다 깃이 거칠었고, 왼쪽 날개 끝이 비어 있었다.
“모두 물러나라.”
제자들이 허수아비 뒤로 물러났다. 위소청은 두루미에게서 다섯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왼발을 들어 발바닥을 오른 무릎 안쪽에 댔다. 손님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장문인이 손님 앞에서 한 다리로 서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위소청 자신도 서른 해 동안 아무도 없는 새벽 학봉에서만 이렇게 섰다.
숨을 배꼽 아래로, 다시 발바닥으로 내렸다. 처음에는 두루미 울음이 길게 났다. 울음이 숨과 맞물리자 낱말이 되었다.
“서른 해 동안 새벽마다 봉우리에 오르던 아이구나.”
위소청의 숨이 한 번 엉켰다. 낱말은 바로 울음으로 돌아갔다. 위소청은 발가락으로 돌을 움켜쥐고 숨을 다시 내렸다.
“학봉의 두루미시오?”
“단학이다. 네 조사에게 첫걸음을 보여 준 새다. 학권을 거두러 왔다.”
“무엇을 거두신다는 말씀이오?”
“목을 꺾는 손을. 내가 준 것은 날개를 지키는 춤이었다. 너희는 춤을 칼로 만들었다.”
손님들에게는 장문인의 목소리만 들렸다. 장문인이 두루미와 묻고 답하는 모습을 보며 막료는 웃음을 거두었고, 대사형은 소맷부리를 털었다. 위소청은 손님들도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살수가 되지 않았으면 문파는 산적에게 진작 망했소. 서른 해 전 흑풍채 산적 떼가 산 아래 마을 셋을 덮쳤소. 제 사부는 춤으로 막다가 칼을 맞았소. 사부가 쓰러진 자리에서 제가 목을 꺾는 손을 만들었소. 그 손으로 흑풍채를 쓸어 냈소. 믿지 못하시겠으면 산 아래 사람들에게 물으시오.”
아랫마을 촌장이 먼저 나왔다. 두루미의 말은 못 들었지만 장문인의 말로 무엇을 묻는지 알아들었다. 촌장은 소매를 걷어 팔뚝의 불에 덴 자국을 내보였다.
“흑풍채 놈들이 방앗간에 불을 질렀소. 장문인 손이 두목 목을 꺾지 않았으면 우리 마을은 숯이 됐소.”
숯막골 사람 하나가 뒤에서 거들었다.
“우리는 진짜 숯이 될 뻔했고.”
손님 몇이 웃다가 입을 막았다. 갈대골 노파가 손자 어깨를 짚고 나왔다.
“내 아들이 그해 열 살이었어. 춤이 산 게 아니야. 살수가 산 거야.”
단학은 노파를 오래 보고 나서 위소청에게 말했다.
“사실이다. 산적의 목을 꺾은 손이 지금은 무엇을 꺾느냐?”
위소청의 숨이 흔들렸다. 대답하기 전에 낱말이 울음으로 돌아갔고,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
단학은 위소청이 대답을 놓친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보았다. 마당 끝 돌담 너머로 한수가 굽어 흐르고, 물가에 마을 셋이 엎드려 있었다. 방앗간 물레가 도는 아랫마을, 연기가 여러 줄 오르는 숯막골, 반듯한 논배미가 바둑판처럼 놓인 갈대골이었다.
예순 해 전 갈대골은 논이 아니었다. 봄마다 단학은 짝과 함께 갈대골 늪에 내려 미꾸라지를 쪼았고, 물이 정강이까지 오는 자리에서 짝과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 어느 봄 늪가에 흙둑이 생겼고, 이듬해 봄에는 물이 없었다. 흉년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둑이 생긴 이듬해부터 단학은 늪 대신 강남 바닷가의 개펄로 날아가 겨울을 났다.
노파가 손자 어깨를 짚은 채 단학을 보고 있었다. 노파의 눈이 단학의 붉은 정수리에 오래 머물렀다. 단학은 노파의 얼굴을 몰랐다. 늪가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계집아이들은 많았다.
막료 뒤에 선 하인 둘이 손가락을 펴서 단학의 키를 재고 있었다. 하나는 새장의 너비를, 하나는 다리 길이를 중얼거렸다. 사람은 새를 보면 늘 크기부터 쟀다.
바람이 남쪽으로 돌았다. 허수아비 줄 앞에서 개펄 냄새가 왔다. 짠물에 삭은 갈대 뿌리와 진흙 냄새였다. 무당산 마당에 있을 냄새가 아니었다. 지난겨울 강남의 학포 개펄에서, 짝이 쓰러진 진흙 위에서 맡은 냄새였다. 단학은 냄새가 어느 몸에서 오는지 아직 가려내지 못했다. 허수아비 앞에 사람 서른이 있었고, 강남에서 올라온 사람이 몇 더 있었다.
단학은 위소청에게 고개를 돌렸다. 삼백 년 전 조사가 처음 현판을 걸던 날, 단학이 보는 앞에서 정한 문규가 하나 있었다. 위소청이 다시 숨을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단학은 문규를 말했다.
*
석로는 위소청이 한 다리로 선 것을 보자마자 빗자루를 놓고 기둥 뒤로 갔다. 장문인만 듣게 둘 수는 없었다. 기둥에 등을 대면 안 된다는 것쯤은 예순 해 전에 배웠다. 석로는 기둥에서 손가락 하나만큼 떨어져 왼발을 들었다. 무릎이 먼저 소리를 냈다. 숨을 내렸다. 울음의 끝자락이 낱말이 되어 귀로 들어왔다.
“…현판 아래에서 진 자는…”
오른 무릎이 꺾였다. 석로는 아랫마을이 지고 온 쌀섬 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쌀섬 하나가 터져 쌀이 돌바닥에 쏟아졌다. 각운이 달려와 빗자루로 쌀을 쓸어 모았다. 이번에는 한 방향으로만 쓸었다. 석로는 쌀더미에 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에서는 위소청이 단학의 말을 옮기고 있었다.
“학권문의 첫 문규를 쓰자고 하시오. 현판 아래에서 진 자는 이긴 자의 걸음을 배운다. 내일부터 제자들과 한 사람씩 겨루겠다 하시오. 지는 제자는 한 해 동안 이 두루미의 걸음을 배우오.”
제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 마보로 다져 온 다리들이었다. 늙은 새 한 마리가 무엇을 하겠느냐는 웃음이었다. 위소청은 웃지 않았다.
“지면 당신은 무엇을 배우시겠소?”
위소청이 잠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 손님들에게 전했다.
“이긴 자의 걸음을 배우겠다 하시오.”
막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수레에서 상자 하나를 내려 뚜껑을 열게 했다. 은덩이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번졌다.
“장문인, 저 새가 지면 내가 사겠소. 학권의 뿌리라면 강남 사병들 앞에 세워 둘 만하오. 새장은 오늘 밤 안에 짜 두리다.”
위소청은 은 상자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지면 데려가시오.”
석로는 쌀더미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단학을 보았다. 단학은 위소청 곁을 떠나 허수아비 줄 맨 앞으로 걸어갔다. 발을 물 건너듯 높이 들어 한 걸음씩 옮겼다. 맨 앞에는 구령을 붙이던 대사형이 서 있었다. 단학은 대사형 앞에서 멈추었다. 대사형의 소맷부리에 붉은 실로 묶은 흰 깃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끝이 검은 칼깃이었다.
석로는 예순 해 동안 두루미를 여러 번 보았다. 두루미가 목털을 곤두세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대사형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깃을 튕겼다. 깃이 흔들렸고, 단학은 디딘 다리 하나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