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62자)
새장 앞에서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단학은 이틀 동안 새장 안에서 개펄을 보았다. 대나무 살이 개펄을 가늘게 잘라 놓았다. 살 하나를 지날 때마다 물때가 한 칸씩 옮겨 갔다.
낮에는 사람들이 새장을 보러 왔다. 갈대 베는 사람들의 아이들이 미꾸라지를 손바닥에 올려 대나무 살 사이로 내밀었다. 단학은 받아먹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가 다시 왔다. 사병들도 왔다. 물을 길러 가던 길에, 짚 두루미를 엮던 손을 쉬다가 왔다.
한 사병은 해 질 녘까지 새장 앞을 떠나지 않았다. 볼이 패고 손등이 터 있었다. 사병은 단학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몰랐고, 모르니 오래 말했다. 북쪽 회수 가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금나라 기병이 마을을 지나간 봄에 논이 다 밟혔다고 했다. 학포에 오면 하루 쌀 두 되를 준다기에 왔다고 했다. 두 되 가운데 한 되를 고향에 보낸다고 했다.
“너 진짜 학권 할 줄 아냐?”
사병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손끝을 모았다가 폈다.
“교두님이 학 목을 꺾는 걸 보여 주던 날 나 밥을 못 먹었어. 근데 이튿날부터는 먹었어. 두 되 주니까.”
사병은 일어나 짚 두루미 더미로 돌아갔다. 단학은 사병의 등을 보았다. 사병은 지난겨울 개펄에 있었다. 짝이 꺾이는 것을 본 삼백 가운데 하나였다. 단학은 사병을 미워할 수 없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삼백이었다.
*
위소청은 동지 전날 밤 새장 곁에 한 다리로 섰다. 새장은 둑 아래 막사 앞 마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대나무 살 사이로 단학이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새장 안은 날개를 다 펴면 양쪽 끝이 닿을 너비였다. 단학은 날개를 펴지 않았다.
각운과 둘째 사형이 문짝에 석로를 싣고 왔다. 석로는 새장 앞에 문짝째 내려지자 팔꿈치로 몸을 받쳐 일으켰다. 위소청을 보고, 새장을 보았다.
“장문인, 옮겨 주십시오. 하나도 빼지 말고.”
위소청은 숨을 내렸다. 단학의 울음이 낱말이 되었다. 위소청은 들은 대로 입으로 옮겼다. 위소청의 목소리였지만 말은 짧았다.
“석로야. 무릎은 굳었느냐?”
석로가 웃었다.
“굳고 있습니다. 굳은 무릎도 무릎입니다. 막료한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위소청은 석로의 말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단학은 사람 말을 다 알아들었다. 위소청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긴 자의 걸음을 배운다. 네가 이겼다. 그러니 묻는다. 네 걸음이 뭐냐?”
위소청은 말을 옮기다가 멈추었다. 묻는 말이 위소청 자신을 향해 있었다. 석로가 위소청을 올려다보았다.
“장문인, 새가 장문인한테 묻는 겁니까, 저한테 묻는 겁니까?”
“나한테 묻는 것이오.”
“그럼 대답하십시오. 저도 듣게.”
위소청은 대답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가르친 걸음은 마보와 학취수였다. 새벽에 바위에서 춘 걸음은 한 다리와 아홉 춤이었다. 위소청은 서른 해 동안 둘을 다 걸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물음이었다. 고르지 않으면 새는 막료가 정한 걸음을 배운다. 대사형이 말한 열 번째를.
석로가 문짝 위에서 몸을 조금 더 일으켰다.
“장문인, 제가 업고 다닐 때 장문인은 제 등에서 한 다리를 들고 섰습니다. 떨어진다고 말려도 들었습니다. 제 등이 기울면 같이 기울었고요. 저는 여태 그게 장문인 걸음인 줄 알았습니다.”
위소청은 석로를 보았다. 석로는 대답을 바라는 얼굴이 아니었다. 석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음 말을 했다.
“어르신께 하나만 더 여쭈어 주십시오. 비급을 누구에게 건네야 합니까?”
위소청이 옮겼다. 단학의 대답은 짧았다.
“내게 묻지 마라. 너도 이미 안다.”
“그렇게 말했소.”
석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한참 새장의 대나무 살을 보았다. 석로가 무엇을 아는지 위소청은 묻지 않았다.
*
석로는 움막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막료를 맞았다. 막료는 등불을 든 하인 둘을 문간에 세워 두고 혼자 들어왔다. 손난로를 쥐고 있었다.
“동지가 내일이오, 집사 어른.”
“압니다. 내일 새벽 둑 위에서 건네겠습니다.”
“누구에게요?”
“건넬 때 보십시오.”
막료는 손난로를 무릎 위에 올렸다.
“각운이 갈대숲 어디에 감추었는지 나는 모르오. 다만 사병 삼백이 내일 아침부터 갈대를 다 베면 나올 것이오. 어차피 벨 갈대요.”
“갈대를 다 베시면 개펄 일이 일찍 끝나겠습니다. 막료께는 좋은 일이지요. 다만 각운이 감춘 자리가 갈대숲이라고 누가 그럽디까?”
막료의 손이 손난로 위에서 멈추었다. 석로는 이를 혀로 문질렀다. 시큰한 데가 아직 있었다. 석로는 막료의 얼굴을 보며 시큰한 이를 오래 문질렀다. 막료가 먼저 일어났다.
“내일 둑 위에서 뵙겠소. 어른이 무엇을 들고 오시든.”
막료는 문간을 나서며 하인들에게 갈대숲을 지키라고 일렀다. 하인들은 개펄을 둘러싼 갈대숲 가운데 어느 숲인지 묻지 못했다. 막료가 나간 뒤 각운이 문간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르신, 그거 갈대숲에 감춘 거 맞아요.”
“알아. 막료는 이제 모르지.”
*
위소청은 새장을 떠나 움막촌으로 갔다. 팔이 묶인 갈대 베는 사내가 움막 앞에 앉아 갈대를 엮고 있었다. 한 손으로 엮었다. 엮은 갈대가 비뚤었다.
“내일 새벽에는 움막에서 나오지 마시오.”
사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나오지 말라니. 내일이면 움막이 없을 텐데 어디서 안 나오란 말이오? 사병들이 오면 지붕부터 걷소. 걷힌 지붕 아래 앉아 있으라는 거요?”
위소청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내가 엮던 갈대를 내려놓았다.
“당신이 학권문 장문인이라 들었소. 내 팔을 꺾은 손을 가르친 사람. 집사 노인은 내 팔을 맞췄고. 내일은 당신 손이 무엇을 할지 나도 좀 봅시다. 움막 앞에 앉아서.”
사내의 아내가 움막 안에서 등잔을 들고 나왔다. 아이 둘이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따라 나왔다. 낮에 새장 앞에서 미꾸라지를 내밀던 아이들이었다. 위소청은 아이들의 맨발을 보았다. 진흙에 발목까지 빠져 있었는데 둘 다 흔들리지 않았다. 개펄에서 자란 발이었다.
*
단학은 자정이 넘어 새장 앞에 쪼그려 앉는 사람을 보았다. 대사형이었다. 혼자였다. 대사형은 대나무 살 사이로 단학을 들여다보았다. 숨에서 술 냄새가 났다.
“네 말을 장문인은 들었다던데. 나는 안 들려. 들을 생각도 없고.”
대사형은 손가락으로 대나무 살을 하나씩 튕겼다.
“막료가 약조했어. 교두청이 서면 내가 맡는다고. 장문인은 무당산에서 마을 셋이나 지키면 된다고. 장문인이 서른 해 걸려 못 한 걸 내가 다섯 해에 했어. 사병 삼백. 내년엔 천이야.”
단학은 대사형을 보았다. 대사형은 단학이 보는 것을 알았다.
“네 짝 말이야. 왜 그랬는지 알려 줄까? 사병들이 학을 무서워했어. 학권을 배운다는 놈들이 학을 무서워하면 손이 안 나와. 그래서 보여 줬지. 학도 목이 꺾인다고. 이튿날부터 놈들 손이 나왔어. 짚 두루미를 엮은 것도 놈들이야. 내가 시킨 것도 아니야.”
대사형은 일어나 무릎의 흙을 털었다.
“내일 네가 열 번째를 보여 주면 놈들은 다시는 학을 안 무서워해. 그럼 다 끝나. 학도 끝나고.”
대사형이 돌아서는데 막사 그늘에서 위소청이 걸어 나왔다. 단학은 위소청이 처음부터 그늘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위소청의 발소리는 대사형이 오기 전부터 멎어 있었다.
*
위소청은 대사형 앞을 막았다. 둘 사이에 새장이 있었다.
“교두들을 거두어라. 내일 새벽 개펄에 하나도 내려보내지 마라.”
“못 합니다.”
“장문인의 명이다.”
“장문인의 명이지요. 저는 이제 막부 사람입니다. 교두청이 서면 제가 맡습니다. 막료가 약조했습니다. 장문인께서 막부에 비급을 넘기러 오셨잖습니까. 넘기시면 교두청이 서고, 교두청이 서면 제가 장문인보다 높습니다.”
“네 손은 내가 가르쳤다.”
“그러니 장문인 손입니다. 사병들 손도 장문인 손이고요. 짝을 꺾은 손도.”
대사형은 웃지 않았다. 웃지 않고 위소청의 눈을 보았다. 대사형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위소청은 대사형의 손목을 보았다. 단학의 부리에 쪼인 팔뚝 안쪽 마디에 아직 검푸른 자국이 있었다. 열흘이 지났는데도 가시지 않았다.
“내일 새벽에 보자.”
“네, 장문인. 둑 위에서요.”
대사형이 막사로 들어갔다. 위소청은 새장 앞에 서서 단학을 보았다. 숨을 내리지 않았다. 단학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소청은 새장을 지나 교두들의 막사로 걸어갔다.
*
석로는 각운에게 업혀 교두들 막사 앞까지 갔다. 문짝은 너무 무거웠고, 석로는 오늘 밤만은 업히겠다고 했다. 각운의 등은 위소청이 아이 적에 업혔던 석로의 등보다 넓었다. 석로는 각운의 등에서 막사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적 문 틈으로 등잔 하나가 보였다.
막사 안에 교두 열아홉이 누워 있었다. 위소청이 막사 한가운데 들어가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왼발을 들었다. 등잔불이 흔들렸고, 위소청은 흔들리지 않았다.
교두 하나가 먼저 깼다. 다섯 해 전 학포로 간 아이였다. 몸을 일으켜 장문인을 보았다. 다른 교두들이 하나씩 깼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열아홉의 눈이 막사 한가운데의 한 다리를 보았다.
자정이 지났다. 등잔 기름이 바닥나 심지가 지직거렸다. 위소청은 그대로 서 있었다. 석로는 각운의 등에서 내려 거적 옆 땅바닥에 앉았다. 꺾인 무릎을 뻗었다. 각운이 석로 곁에 한 다리로 섰다.
새벽 첫닭이 울기 전, 다섯 해 전 학포로 간 교두가 일어나 위소청 곁으로 걸어가 왼발을 들었다. 무릎이 굽어 있었다. 마보로 다진 무릎이었다. 교두는 천천히 무릎을 폈다. 다음에 둘이 일어났다. 또 하나가 일어났다. 석로는 손가락을 접어 세다가 손가락이 모자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넷이었다. 곧 다섯이 되었다. 나머지 열넷은 누운 자리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석로는 거적 틈으로 장문인의 디딘 발을 보았다. 맨발이었다. 발가락이 막사 바닥의 흙을 움켜쥐고 있었다. 예순 해 전 우물가에서 석로가 넘어질 때마다 우물 건너편의 두루미가 디디고 있던 발과 같았다.
*
단학은 동지 새벽 북소리를 새장 안에서 들었다. 짧게 세 번, 다시 세 번이었다. 물이 가장 멀리 빠질 때였다. 개펄이 어둠 속에서 젖은 빛을 냈다.
하늘이 울었다. 단학은 고개를 들었다. 북쪽 하늘이 아직 검었고, 검은 하늘에서 울음이 내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백이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무리가 학포를 마지막으로 내려앉을 데로 알고 오고 있었다. 늙은 수컷과 다섯이 앞장서 있을 것이었다. 무리는 아직 말뚝을 몰랐다. 울음이 가까워질수록 둑 위의 사병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짚 두루미를 들고 있던 몇은 짚 두루미를 땅에 내려놓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짚이 아니었다.
하인 넷이 새장을 메었다. 새장이 기울었다. 단학은 기우는 새장 안에서 한 다리로 기울기를 받았다. 새장은 둑 위로 들려 올라갔다. 둑 위에 사병 삼백이 줄지어 있었다. 맨 앞에 대사형이 있었고, 둑 끝에 막료가 서 있었다. 막료가 허리띠의 열쇠를 꺼내 쥐었다.
“장문인, 보여 주시오.”
둑 아래 개펄에서 위소청이 걸어오고 있었다. 맨발이었다. 뒤에 다섯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