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4자)
달밤의 비무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석로는 열흘 동안 움막에 누워 저녁마다 각운을 불렀다. 각운은 해 질 녘 개펄 가장자리에 가서 단학 곁에 한 다리로 섰다가 돌아와 단학의 말을 옮겼다. 석로가 시킨 일이었다.
“오늘은 뭐라시더냐?”
“물이 어제보다 손가락 한 마디 덜 빠졌대요. 그리고, 음, 대사형 막사의 불이 자정에 꺼졌대요. 그리고 어르신 무릎은 어떠냐고요.”
“그리고는 빼고 옮겨라. 새가 그리고를 셋이나 붙였을 리가 없다.”
“그럼 뭐라고 옮겨요?”
“새가 한 말만.”
각운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옮겼다. 짧아졌다. 석로는 짧아진 말을 눈을 감고 들었다. 각운의 목소리로 들어도 단학의 말은 단학의 말 같았다. 석로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닷새째 날 막료가 막부의 의원 하나를 데리고 움막에 왔다. 의원은 석로의 부목을 풀어 무릎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막료가 대신 말했다.
“막부에 가면 더 나은 의원이 있소. 뼈를 다시 맞추는 사람이오. 따뜻한 방도 있고. 비급만 건네주시면 내 가마로 모시리다.”
“무릎은 여기서 굳겠습니다. 굳은 무릎도 무릎입니다.”
막료가 돌아간 밤, 학포 교두 하나가 움막 문간에 조용히 와서 무릎을 꿇었다. 장문인이 다섯 해 전 학포로 보낸 아이였다. 교두는 석로에게 절만 하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해라. 무릎 꿇는 건 내가 지금 못 하니 네가 대신 오래 꿇을 것 없다.”
“교두들 가운데 넷이 무당산에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대사형이 무서워 말을 못 합니다. 장문인께서 한마디만 하시면 넷은 돌아갑니다.”
“장문인께 말해라.”
“장문인께서 아직 한마디를 안 하십니다.”
교두는 다시 절을 하고 돌아갔다. 석로는 등잔을 끄지 않고 오래 천장의 갈대를 보았다.
*
단학은 열흘을 기다렸다. 석로는 움막에서 부목을 댄 다리를 뻗고 누워 지냈다. 각운은 비급 함을 갈대숲 어딘가에 감추었고, 감춘 자리는 각운만 알았다. 대사형은 사병 막사에서 나오지 않았다. 막사 둘레에 사병 서른이 밤낮으로 둘러서 있었다. 단학은 막사가 보이는 개펄 가장자리에 한 다리로 서서 낮에는 썰물을, 밤에는 막사의 불빛을 보았다. 사병들은 물 길러 지나가다 단학을 보면 손끝을 부리처럼 모아 보이고는 서로 웃었다. 웃고 나서 몇은 모았던 손을 슬그머니 폈다.
동지를 사흘 앞둔 밤, 물이 가장 멀리 빠졌다. 달이 반쯤 찼다. 개펄이 달빛을 받아 끝없이 번들거렸고, 도랑마다 물이 실처럼 남아 빛났다. 단학은 진흙에서 발을 뽑아 막사로 걸어갔다. 발가락으로 진흙을 더듬고 무게를 옮겼다. 더듬은 자리로만 디뎠다. 사병 서른이 둘러선 자리까지는 쉰 걸음이었다.
서른 걸음째에 사람 하나가 개펄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한 다리였다. 위소청이었다.
단학은 걸음을 멈추었다. 위소청의 디딘 발은 진흙에 발목까지 들어가 있었다. 진흙에 빠진 다리로도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학은 위소청이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위소청의 바짓단이 물때만큼 젖어 있었다. 물이 빠지기 전부터 서 있었다.
*
위소청은 숨을 발바닥 아래 진흙까지 내렸다. 단학의 울음이 낱말이 되었다.
“비켜라.”
“내 제자는 내가 벌하오.”
“열흘 동안 벌하지 않았다.”
“벌하면 교두 열아홉이 대사형을 따라 막부로 가오. 막부로 가면 사병 삼백이 동지 뒤에 무당산으로 가오. 마을 셋으로 가오. 대사형은 그것을 알고 막사에 앉아 있소.”
“그럼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 가지는 하오.”
위소청은 젖은 소맷부리를 걷었다.
“문규는 장문인이 가는 곳에 함께 가오. 현판은 무당산에 있지만 장문인이 서는 자리가 현판 아래요. 겨룹시다. 당신이 이기면 내가 당신의 걸음을 배우겠소. 교두 열아홉을 거두고, 살수를 내려놓고, 대사형을 당신에게 넘기겠소. 내가 이기면 당신이 내 걸음을 배우시오. 막료의 새장에 들어가 동지 새벽 사병들 앞에 서시오. 학권의 뿌리로.”
둑 위에서 등불 하나가 흔들렸다. 막료가 언제부터인지 둑 위에 나와 있었다. 막료는 장문인의 말만 들었고, 장문인의 말만으로 충분했다. 막료가 부채를 펴는 소리가 개펄 건너까지 왔다.
“좋소. 새장은 짜 둔 것이 있소.”
단학은 위소청을 보았다.
“네가 이기면 개펄이 메워진다.”
“내가 지면 무당산이 메워지오. 산적이 오고, 관부가 오오. 춤만으로는 못 막소. 나는 이겨야 하오.”
“나도 이겨야 한다.”
막사 앞의 사병 서른이 둑으로 올라갔다. 막사 안에서 대사형이 나와 둑 위에 섰다. 개펄 가장자리 움막에서 갈대 베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
석로는 문짝 위에 실려 둑으로 올라갔다. 각운과 둘째 사형이 움막 문짝을 떼어 석로를 눕히고 앞뒤에서 들었다. 둘째 사형은 어깨가 아직 성치 않아 한쪽 팔로만 들었고, 문짝이 둘째 사형 쪽으로 기울었다.
“기울었다.”
“어르신, 둑이 기운 겁니다.”
“둑은 안 기울었다. 네 어깨가 기울었지.”
각운이 웃음을 삼켰다. 문짝은 둑 위에 내려졌다. 석로는 팔꿈치로 몸을 받쳐 일으켰다. 둑 아래로 개펄이 달빛에 젖어 펼쳐져 있었다. 개펄 한가운데에 사람 하나와 두루미 하나가 서른 걸음을 사이에 두고 한 다리로 서 있었다. 둘의 그림자가 진흙 위에서 같은 길이였다.
석로는 왼발을 들 수 없었다. 오른 무릎은 부목에 묶여 있었다. 석로는 두 다리를 뻗은 채 둘을 내려다보았다. 둘이 무엇을 주고받는지 석로는 들을 수 없었다. 위소청의 입이 움직였고, 단학의 목이 움직였다. 석로는 예순 해 동안 학권문에서 비무를 수백 번 보았다. 말소리 없이 보는 비무는 처음이었다.
갈대 베는 사내가 막대에 묶인 팔을 안고 석로 옆에 앉았다. 사내의 아내가 석로의 어깨에 거적을 덮어 주었다. 석로는 거적을 밀어내지 않았다.
*
단학은 첫 수를 기다렸다. 위소청은 살수로 왔다. 학취수가 목으로 왔고, 막히자 팔 접기가 왔고, 팔 접기가 풀리자 발뒤꿈치가 디딘 무릎으로 왔다. 대사형의 손보다 느렸다. 느린 대신 빈틈이 없었다. 단학은 목을 감추어 학취수를 비우고, 날개를 접어 팔을 품었다가 돌리기 전에 풀어 주고, 무릎을 배까지 들어 발뒤꿈치를 넘겼다.
넘긴 발을 내리는 자리를 위소청이 먼저 더듬어 두었다. 단학이 디디려던 진흙에 위소청의 발이 먼저 있었다. 단학은 발을 다시 들었다. 처음이었다. 삼백 년 동안 단학이 디디려던 자리를 먼저 차지한 사람은 없었다.
위소청의 손이 바뀌었다. 손끝이 모이지 않았다. 펴진 손이 날개 끝처럼 왔다. 단학이 몸을 옆으로 누이자 위소청도 옆으로 누웠다. 단학이 일어나자 위소청도 일어났다. 갈대 흔들기였다. 단학은 부리를 내리쳤다. 위소청이 손목을 뒤집어 마디를 감추었다. 부리 끝이 손등의 뼈를 스쳤다.
단학은 알았다. 서른 해 동안 새벽마다 학봉에 오르던 아이는 한 다리로만 서 있지 않았다. 사부에게 들은 이름을 붙잡고, 조사당 벽의 그림을 붙잡고, 아무도 없는 바위 위에서 아홉 춤을 혼자 추었다. 마당에서는 목을 꺾는 손을 가르치고, 새벽에는 같은 손을 펴는 춤을 추었다. 서른 해 동안 둘 다 했다.
둑 위에서 사병들이 웅성거렸다. 개펄 위의 두 몸이 같은 박자로 누웠다 일어났다. 사병들 눈에는 비무보다 춤으로 보였다. 단학은 아홉 번째를 떠올렸다. 마주 춤이었다. 단학은 떠올린 것을 밀어냈다.
*
위소청은 단학의 몸이 낮아지는 것을 보았다. 디딘 다리를 깊이 굽혔다. 위소청은 무릎 꺾기를 내지 않았다. 굽힌 다리는 꺾을 다리가 못 되었다. 뛰는 다리였다.
단학이 땅을 박찼다. 두 날개가 다 펴졌다. 칼깃 두 개가 빠진 왼쪽 날개까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번졌다. 단학은 위소청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여덟 번째 장의 그림이었다. 땅에서 발을 뗀 두루미. 위소청은 사부에게서 이름만 들었다. 날아오르기. 아무도 사람 몸으로 춘 적이 없는 초식이었다. 위소청은 고개를 들어 넘어가는 단학을 보았다. 위소청이 본 가장 높은 것이었다.
단학은 위소청의 등 뒤에 내려앉았다. 오른발이 진흙에 닿았다. 왼쪽 날개가 바람을 놓쳤다. 대사형이 비튼 뿌리가 내려앉는 무게를 받지 못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디딘 발이 진흙 속에서 반 치 미끄러졌다.
위소청의 몸이 먼저 돌았다. 손이 먼저 나갔다. 손끝 다섯이 단학의 목을 쥐었다. 감추었다 펴는 힘을 쥐는 자리, 열 번째 장의 자리였다. 디딘 다리 위에서 반 바퀴만 돌리면 되었다. 위소청의 손바닥 안에서 단학의 목이 뛰었다. 빠르고 가늘었다.
위소청은 돌리지 않았다.
단학은 움직이지 않았다. 위소청은 손을 떼지 않고 한 다리로 섰다. 숨이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뛰는 것이 숨을 흔들었다. 위소청은 세 번을 고쳐 내렸다.
“꺾어라.”
“꺾지 않소. 이긴 것으로 족하오.”
“문규다. 졌다.”
위소청은 손을 떼었다. 손을 뗀 자리의 깃이 눌려 있었다. 단학은 눌린 깃을 고르지 않았다.
*
석로는 둑 위에서 두루미가 날개를 접는 것을 보았다. 접은 날개가 몸에 붙지 않고 왼쪽으로 반쯤 처졌다. 둑 위의 사병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막료가 손짓하자 하인 넷이 대나무 새장을 메고 개펄로 내려갔다. 잔칫날 밤 무당산 마당에서 목수 둘이 짜던 새장이었다. 막료는 새장을 배에 싣고 학포까지 내려왔다.
“문규다.”
각운이 둑을 뛰어 내려가려 했다. 석로는 각운의 소매를 붙잡았다. 붙잡는 손에 힘이 남아 있었다.
“문규다. 놓아라. 네가 내려가면 새가 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 것이 된다.”
“어르신, 들리세요? 새가 뭐라고 해요?”
석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았다. 개펄에서 새장 문이 열렸다. 하인들이 다가가기 전에 단학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발을 높이 들어 대나무 문턱을 넘었다. 새장 문 앞에 위소청이 한 다리로 서 있었다. 단학이 무언가를 말했고, 위소청이 들었다. 석로는 장문인의 얼굴에서 두루미의 말을 읽으려 했다. 달빛 아래에서 위소청의 얼굴은 읽히지 않았다.
막료가 둑을 내려와 새장 문을 닫았다. 놋쇠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제 허리띠에 꿰었다.
*
위소청은 새장 앞에서 발을 내렸다. 대사형이 둑을 내려와 위소청 곁에 섰다. 대사형의 턱에 남은 멍이 달빛에 검게 보였다.
“장문인께서 이기셨습니다. 문규대로라면 새가 장문인의 걸음을 배우는 것이지요. 장문인의 걸음은 살수고요. 동지 새벽에 새가 사병들 앞에서 열 번째를 보여 주면 사병들 손이 하루 만에 여물 겁니다.”
위소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막료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쇠를 주시오. 이긴 것은 나요. 새가 배울 걸음은 내가 정하오.”
“걸음은 장문인이 정하시고, 새장은 내가 지키겠소. 동지 새벽 둑 위에서 다시 뵈리다.”
막료는 허리띠의 열쇠를 손바닥으로 덮고 둑으로 올라갔다. 대사형이 뒤따랐다. 위소청은 새장 곁에 남았다. 내려다본 오른손이 아직 손바닥 안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 모양으로 굽어 있었다. 빠르고 가늘게 뛰던 것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위소청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다 펴는 데 숨 열 번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