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87자)

마주 춤

학 권법을 만든 학의 응징 · 마하솔

단학은 둑 위의 새장 안에서 하늘을 보았다⁠. 동쪽 바다 끝이 희어지고 있었다⁠. 무리는 개펄 위를 크게 돌고 있었다⁠. 수백의 날개가 한꺼번에 바람을 잡을 때마다 둑 위로 바람이 내려왔다⁠. 늙은 수컷이 맨 앞에서 원을 좁혔다⁠. 내려앉을 자리를 찾는 원이었다⁠. 원 아래에는 도랑과 말뚝이 있었다⁠.

막료가 열쇠를 쥔 채 둑 끝에서 내려다보았다⁠. 대사형이 사병 삼백 앞에 서 있었다⁠. 사병들 발치에 짚 두루미가 쌓여 있었다⁠. 개펄 가장자리 움막 앞에는 갈대 베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팔이 묶인 사내가 맨 앞에 있었고⁠, 아이 둘이 사내의 무릎 사이에 있었다⁠. 둑 위 한쪽에 석로가 문짝 위에 앉아 있었다⁠. 각운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 사형이 각운이 어디 갔느냐고 묻자 석로는 대답 대신 길게 하품을 했다⁠.

위소청이 둑 아래에 닿았다⁠. 맨발이었다⁠. 뒤에 교두 다섯이 따랐다⁠. 막료가 소리쳤다⁠.

“⁠장문인⁠, 새는 장문인의 걸음을 배우오⁠. 걸음을 정하시오⁠. 사병들이 기다리오⁠.⁠”

단학은 위소청을 보았다⁠. 위소청은 둑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

위소청은 둑 아래 개펄로 걸어 내려갔다⁠. 물이 빠진 개펄에 밀물이 처음 들어오고 있었다⁠. 도랑마다 물이 실처럼 차오르며 번졌다⁠. 위소청은 사병 대열이 내려다보는 자리⁠, 둑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물속에 섰다⁠. 물이 발목까지 왔다⁠. 위소청은 왼발을 들었다⁠. 발바닥을 오른 무릎 안쪽에 댔다⁠. 숨을 진흙까지 내렸다⁠.

“⁠내가 이겼소⁠.⁠”

위소청은 둑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병 삼백이 들었고⁠, 교두 열아홉이 들었고⁠, 막료가 들었다⁠.

“⁠새가 배울 걸음은 이것이오⁠. 내 걸음이오⁠. 서른 해 동안 마당에서는 다른 걸음을 가르쳤소⁠. 오늘부터 학권문은 목을 꺾는 손을 가르치지 않소⁠. 무당산 마당의 허수아비를 내리겠소⁠. 학포의 교두는 오늘 무당산으로 돌아가오⁠.⁠”

교두 다섯이 위소청 곁의 물속으로 들어가 왼발을 들었다⁠. 둑 위에서 교두 하나가 사병 대열을 빠져나와 둑을 내려왔다⁠. 다시 하나가 내려왔다⁠. 셋이 더 내려왔다⁠. 남은 아홉은 둑 위에서 대사형과 막료를 번갈아 보았다⁠.

막료가 부채를 접었다⁠.

“⁠약조를 깨는 거요⁠?⁠”

“⁠깨오⁠. 깬 대가는 내가 치르겠소⁠.⁠”

“⁠새를 내놓으시오⁠. 새장 열쇠는 내게 있소⁠.⁠”

“⁠문규요⁠. 새는 이긴 자의 걸음을 배우오⁠. 걸음은 내가 정했소⁠. 정한 걸음을 배우려면 새가 물에 들어와야 하오⁠.⁠”

막료는 둑 위의 사병들을 보았다⁠. 교두를 잃은 사병들이 막료를 보고 있었다⁠. 막료는 열쇠를 자물쇠에 꽂았다⁠. 문이 열렸다⁠.

*

단학은 새장 문턱을 넘었다⁠. 발을 높이 들어 대나무 문턱을 넘고⁠, 둑의 비탈을 내려갔다⁠. 디딜 때마다 발가락이 둑의 흙을 더듬었다⁠.

대사형이 비탈 중간에서 길을 막았다⁠. 대사형은 장문인의 말을 듣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사병들 쪽으로 돌아서서 소리쳤다⁠.

“⁠보아라⁠. 학권의 뿌리다⁠. 뿌리도 목이 꺾인다⁠.⁠”

손끝 다섯이 단학의 목으로 왔다⁠. 열흘 전 달밤에 위소청이 쥐었던 자리였다⁠. 대사형의 손은 위소청의 손보다 빨랐다⁠. 단학은 목을 감추었다⁠. 손끝이 허공을 쥐었고⁠, 쥔 손이 비자 대사형의 다른 손이 따라 들어왔다⁠. 단학은 감추었던 목을 폈다⁠. 펴는 힘을 부리에 실었다⁠. 매의 목을 꺾던 힘이었다⁠.

부리는 목으로 가지 않았다⁠. 대사형의 오른 손목⁠, 엄지 아래 뼈가 맞물리는 마디로 갔다⁠. 쪼고 거두지 않았다⁠. 마디 깊이 들어갔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단학은 디딘 다리 위에서 몸을 반 바퀴 돌려 왼 손목으로 갔다⁠. 같은 마디였다⁠. 같은 소리가 났다⁠.

대사형이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이 펴진 채로 내려왔다⁠. 대사형은 손가락을 모으려 했다⁠. 손가락은 모이지 않았다⁠. 다시는 손끝 다섯을 부리처럼 모을 수 없는 손목이었다⁠. 학취수가 나오지 않는 손이었다⁠. 대사형은 펴진 손을 진흙에 짚었다⁠. 짚은 손이 미끄러졌다⁠.

단학은 대사형을 지나 물로 내려갔다⁠. 짝의 깃은 학봉 샘가 바위틈에 꽂아 두고 왔다⁠. 가져올 것이 없었다⁠.

*

위소청은 물에서 나와 비탈의 대사형 앞으로 갔다⁠. 대사형은 펴진 두 손을 진흙에 짚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목이 벌써 부어올랐다⁠. 위소청은 제 소맷자락을 찢어 대사형의 오른 손목부터 감았다⁠. 대사형은 손을 빼지 않았다⁠.

“⁠장문인 손으로 하시지 그랬습니까⁠? 새 부리 말고⁠.⁠”

“⁠내 손은 너를 가르쳤다⁠. 가르친 손으로는 못 한다⁠.⁠”

위소청은 왼 손목을 감았다⁠. 감은 천 위로 대사형의 손가락이 떨렸다⁠. 모으려는 떨림이었다⁠. 손가락은 모이지 않았다⁠.

“⁠현판 아래에서 두 번 졌다⁠. 문규대로 이긴 자의 걸음을 배워라⁠. 너는 무당산으로 간다⁠. 우물가에서 한 다리로 서라⁠. 손은 이제 쓸 데가 없으니 발이나 배워라⁠.⁠”

“⁠빗자루는 쥘 수 있겠습니까⁠?⁠”

“⁠석로 어른께 여쭈어라⁠. 비질은 어른이 정한다⁠.⁠”

대사형이 웃었다⁠. 처음으로 소리 없이 웃었다⁠. 웃다가 진흙에 이마를 댔다⁠. 위소청은 대사형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얹었다가 떼었다⁠. 둑 위의 교두 아홉 가운데 넷이 비탈을 내려왔다⁠. 대사형을 일으키러 내려온 것인지 물로 가려고 내려온 것인지 위소청은 묻지 않았다⁠. 넷은 대사형을 일으켜 세운 다음 물로 걸어 들어갔다⁠.

*

석로는 둑 위에서 막료가 비탈을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막료는 대사형 곁을 지나치며 대사형을 보지 않았다⁠. 물가에 이르러 위소청 앞에 섰다⁠.

“⁠장문인⁠, 안무사께 올리겠소⁠. 학권문은 약조를 깨고 관부의 사병을 흩었소⁠. 산적을 기르는 소굴이라 올려도 할 말이 없을 거요⁠. 북쪽 병사들은 올겨울 굶을 것이고⁠.⁠”

“⁠올리시오⁠. 나도 관아에 가서 말하겠소⁠. 동쪽 도랑 셋의 말뚝 머리에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막료의 입이 닫혔다⁠. 막료는 둑 위의 석로를 올려다보았다⁠.

“⁠집사 어른⁠, 정본만 주시오⁠. 정본만 주시면 아무것도 올리지 않으리다⁠. 학권문은 무사하고⁠, 마을 셋도 무사하오⁠.⁠”

석로는 손을 들어 갈대숲을 가리켰다⁠. 개펄 서쪽 갈대숲에서 각운이 걸어 나왔다⁠. 함을 두 팔로 안고 있었다⁠. 갈대 잎이 머리에 붙어 있었다⁠. 막료의 하인들이 지키던 숲과 다른 숲이었다⁠. 석로는 각운과 둘째 사형에게 손짓했다⁠. 둘이 문짝을 들고 석로를 물가로 내렸다⁠. 둘째 사형은 아직 한쪽 팔로만 들었다⁠. 문짝이 기울었다⁠. 석로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가에 이르자 석로는 함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비급을 꺼냈다⁠. 갈대 베는 사내의 아내가 움막 지붕에서 걷어 온 판자 하나를 물 위에 띄워 주었다⁠. 석로는 판자 위에 비급을 올렸다⁠. 판자를 손으로 밀었다⁠. 판자는 밀물을 타고 물속에 서 있는 단학의 발치로 갔다⁠.

“⁠비급은 집사가 건넵니다⁠. 어르신께 건넵니다⁠.⁠”

석로는 단학이 무어라 대답하는지 듣지 못했다⁠. 들을 필요가 없었다⁠. 각운이 석로 곁에서 한 다리로 서 있다가 석로의 어깨를 한 번 잡았다⁠. 석로는 잡힌 줄 모르는 척했다⁠.

*

위소청은 단학이 판자 위의 비급을 부리로 넘기는 것을 보았다⁠. 한 장씩 넘겼다⁠. 첫 장의 한 다리⁠, 두 번째 장의 접은 날개⁠. 단학은 아홉 번째 장에서 오래 멈추었다가 넘겼다⁠. 열 번째 장은 실이 끊어진 채로 비급 맨 뒤에 붙어 있었다⁠.

단학은 열 번째 장을 부리로 물었다⁠. 고개를 들었다⁠. 삼백 년 묵은 종이가 부리 끝에서 찢어졌다⁠. 매의 목이 찢어졌고⁠, 새끼가 찢어졌고⁠, 조사의 글씨가 찢어졌다⁠. 단학은 찢어진 장을 물에 놓았다⁠. 밀물이 종이를 적셨다⁠. 먹이 번졌다⁠. 물결이 종이를 도랑으로 끌고 갔고⁠, 도랑은 종이를 말뚝 사이로 끌고 갔다⁠. 종이는 말뚝 하나에 잠깐 붙었다가 떨어져 나갔다⁠.

단학은 남은 아홉 장을 부리로 밀었다⁠. 판자가 물 위를 미끄러져 각운의 발치에 닿았다⁠. 각운이 판자를 내려다보았다⁠. 위소청을 보았다⁠. 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운은 들었던 발을 내리지 않고 몸을 굽혀 비급을 집었다⁠.

막료가 둑을 향해 손을 들었다⁠. 사병들에게 내려가라는 손이었다⁠. 사병들은 내려오지 않았다⁠. 교두를 잃은 사병 대열 맨 앞에서 볼이 팬 사병 하나가 모았던 손끝을 폈다⁠. 하늘에서 무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늙은 수컷이 먼저 물에 발을 디뎠고⁠, 수백이 뒤따랐다⁠. 말뚝과 말뚝 사이⁠, 도랑과 도랑 사이⁠, 밀물이 드는 개펄이 흰 날개로 덮였다⁠. 사병과 움막 사이가 두루미로 메워졌다⁠. 막료는 들었던 손을 내렸다⁠.

위소청은 막료에게 말했다⁠.

“⁠관아로 가겠소⁠. 당신 배로⁠. 약조를 맺은 것도 깬 것도 나요⁠. 학권문은 아무것도 모르오⁠.⁠”

막료는 한참 위소청을 보다가 하인에게 배를 대라고 일렀다⁠. 막료의 얼굴에서 웃음이 처음으로 다 빠져 있었다⁠. 웃음이 빠진 얼굴은 생각보다 젊었다⁠.

위소청은 허리춤에서 장문의 쇠패를 풀어 석로에게 건넸다⁠. 손바닥만 한 쇠붙이였다⁠.

“⁠다음 장문인을 정할 때까지 집사가 드시오⁠. 교두들은 무당산에 돌아가 마을 셋의 젊은이들에게 아홉 춤을 가르치게 하시오⁠. 산적이 오면 마을이 제 발로 서게⁠.⁠”

석로는 쇠패를 받아 들고 손바닥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무겁습니다⁠, 장문인⁠. 제 무릎으로는⁠.⁠”

“⁠어른 무릎으로⁠.⁠”

*

단학은 위소청이 배에 오르기 전에 물속에서 위소청을 마주 보았다⁠. 둘 사이가 다섯 걸음이었다⁠. 무리가 둘레에 내려앉아 있었다⁠. 물이 정강이까지 차올랐다⁠.

단학은 고개를 숙였다⁠. 삼백 년 동안 짝에게만 숙인 고개였다⁠. 갈대골 늪에서⁠, 학봉 샘가에서⁠, 학포 개펄에서⁠. 위소청은 아홉 번째 장의 그림을 보았을 뿐이었다⁠. 위소청이 고개를 숙였다⁠. 단학이 고개를 들자 위소청이 고개를 들었다⁠. 단학이 날개를 반쯤 펴자 위소청이 팔을 반쯤 폈다⁠. 단학이 디딘 다리를 굽히자 위소청이 디딘 다리를 굽혔다⁠.

단학은 뛰었다⁠. 다친 날개로는 높이 오르지 못했다⁠. 사람 키만큼 올랐다⁠. 위소청도 뛰었다⁠. 한 다리로 디딘 진흙을 박차고 손바닥 하나만큼 올랐다⁠. 둘은 같은 때에 물로 내려왔다⁠. 위소청이 기울었다⁠. 단학이 기울었다⁠. 둘이 같은 쪽으로 기울어 같은 박자로 일어났다⁠. 혼자서는 출 수 없는 초식이었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쪽이 받아야 일어설 수 있었다⁠.

단학은 짝과 출 때와 같은 박자로 추었다⁠. 박자는 같았고⁠, 받아 주는 몸이 달랐다⁠. 사람의 몸은 한 박자씩 늦었다⁠. 단학은 늦은 박자를 기다려 주었다⁠. 삼백 년 동안 짝 아닌 것을 기다려 준 적이 없었다⁠. 짝과 다시 출 수 없는 춤을⁠, 단학은 이 아침 사람에게 주었다⁠.

둑 위에서 사병 삼백이 보았다⁠. 움막 앞에서 아이 둘이 일어나 한 다리로 서 보다가 넘어졌다⁠. 석로는 문짝 위에서 보았다⁠. 석로의 귀에는 두루미 울음과 물소리만 들어왔다⁠. 석로는 쇠패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덮었다⁠.

위소청은 막료의 배에 올랐다⁠. 배가 강 어귀로 물러났다⁠. 위소청은 고물에 서서 왼발을 들었다⁠. 배가 흔들렸고⁠, 위소청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넘어지지 않았다⁠. 배는 점점 작아졌다⁠. 작아진 배 위의 한 다리가 물결 사이에서 오래 보였다⁠.

밀물이 도랑을 다 덮었다⁠. 말뚝 머리만 물 위에 남았고⁠, 머리 위로 물결이 넘어갔다⁠. 단학은 물속에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왼쪽 날개 끝⁠, 칼깃 두 개가 빠진 자리로 바다 바람이 지나갔다⁠. 각운이 물가에서 비급을 품에 안고 한 다리로 섰다⁠. 무릎이 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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