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55자)

문 앞의 방

이세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시급이 금화다 · 채온유

다율은 문턱을 넘어 바르텐의 방에 들어갔다⁠. 대차는 문턱에 걸쳐 두었다⁠. 바퀴 둘은 하르펜의 새 판자 위에⁠, 둘은 신림동의 타일 위에⁠. 도팔석이 뒤에서 대차 손잡이를 붙잡았다⁠. 손잡이에 매달린 금화 주머니와 수염과 헤드랜턴과 단검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방은 더웠다⁠. 패딩 안으로 땀이 배어 나왔다⁠. 다율은 바르텐 맞은편 의자에 앉았지만 술잔은 받지 않았다⁠. 대신 대차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제 건 제가 가져왔어요⁠.⁠”

“⁠현명하오⁠.⁠” 바르텐은 술잔을 거두었다⁠. 바르텐은 천칭에서 열쇠를 집어 들어 다율 쪽으로 내밀었다가⁠, 다율이 손을 뻗기 전에 다시 접시 위에 올렸다⁠. 접시가 기울었다가 금화 쪽과 맞춰 수평이 됐다⁠. “⁠이 쇠창살 문의 열쇠요⁠. 하룻밤에 금화 한 닢⁠. 그대가 이 값을 치르면⁠, 하르펜 사람들이 내 방을 지나 그대의 가게로 갈 수 있소⁠. 안 치르면 아무도 못 지나가오⁠.⁠”

“⁠하룻밤에 한 닢이면⁠, 한 달에 서른 닢이네요⁠.⁠”

“⁠셈이 빠르군⁠.⁠”

“⁠그다음 달엔 두 닢이고요⁠.⁠”

바르텐은 처음으로 대답 대신 웃었다⁠. 이 웃음이 대답이었다⁠.

다율은 쇠창살 쪽을 봤다⁠. 창살 너머 쥐꼬리 골목에 횃불이 몇 개 서 있었다⁠. 이 아래 사람들이 서성였다⁠. 진통제를 사러 온 성채 병사 하나⁠, 핫팩을 사러 온 대장장이⁠, 그리고 바나나우유 빈 병을 든 양초 장수 아낙⁠. 털모자 넷이 이들 앞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아낙이 빈 병을 흔들어 보이며 무언가 소리쳤지만⁠, 창살과 난로 소리에 묻혔다⁠.

“⁠안 살게요⁠.⁠” 다율이 말했다⁠.

“⁠그럼 그대의 손님은 저기서 얼어 죽소⁠.⁠”

“⁠그러면 회장님 집 앞에서 얼어 죽는 거죠⁠.⁠” 다율은 생수 뚜껑을 땄다⁠. “⁠하르펜 사람들이 그걸 다 봐요⁠. 아까 저울도 다 봤고요⁠.⁠”

*

방 안에는 바르텐 말고도 사람이 있었다⁠. 털모자 둘이 방 안쪽 벽에 기대 서 있었고⁠, 짐꾼 다섯이 방 구석에 상자를 쌓고 있었다⁠. 나무 상자였다⁠. 첫날 밤 창고에 밀려 들어왔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뚜껑 틈으로 보랏빛이 비쳤다⁠. 짐꾼들은 상자를 하나 쌓을 때마다 손을 바지에 닦았다⁠. 상자는 벌써 열둘이었다⁠.

다율은 이 상자를 세다가⁠, 상자를 쌓는 손을 봤다⁠.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 늙은 짐꾼의 손과 같은 손이었다⁠.

다율은 일어나서 대차로 갔다⁠. 도팔석이 눈썹을 올렸다⁠. 다율은 대차에서 삼각김밥 상자를 꺼내 방 한가운데 탁자 위에 올렸다⁠. 바르텐의 천칭 옆이었다⁠.

“⁠회장님 집에 온 손님이 회장님 일꾼한테 물건 파는 건 안 되나요⁠?⁠”

바르텐은 다율을 오래 봤다⁠. 그리고 해 보라고 손바닥을 펴 보였다⁠. “⁠팔아 보시오⁠. 내 일꾼들 주머니에 동전이 몇 닢인지 나는 알고 있소⁠.⁠”

“⁠동전 몇 닢이면 돼요⁠.⁠”

짐꾼 다섯은 움직이지 않았다⁠. 털모자 둘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율은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포장지에 찍힌 1⁠, 2⁠, 3 숫자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이게 부적이라는 거 아세요⁠? 신전 견습 사제님이 그러셨어요⁠. 순서대로 뜯어야 효험이 있대요⁠.⁠”

다율은 1번 띠를 천천히 당겨 내렸다⁠. 비닐이 가운데로 갈라졌다⁠. 2번⁠, 왼쪽 비닐을 빼냈다⁠. 3번⁠, 오른쪽⁠. 마른 김이 하얀 밥을 감싸며 바삭 소리를 냈다⁠. 방 안에 이 소리가 작게 울렸다⁠. 짐꾼 하나가 침을 삼켰다⁠. 다율은 이 삼각김밥을 이 짐꾼에게 내밀었다⁠.

“⁠동전 한 닢이요⁠.⁠”

짐꾼은 바르텐을 봤다⁠. 바르텐은 술잔만 봤다⁠. 짐꾼은 허리춤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삼각김밥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김이 이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안에 든 참치와 마요네즈가 혀에 닿자 씹던 것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스물을 갓 넘긴 얼굴이었다⁠.

다음부터는 쉬웠다⁠. 짐꾼 넷이 차례로 동전을 놓았다⁠. 털모자 하나가 벽에서 등을 떼고 탁자로 와서 삼각김밥을 집었다⁠. 포장을 순서대로 뜯지 못했다⁠. 3번부터 당겼고⁠, 김이 비닐에 붙은 채 찢겨 나갔다⁠. 밥만 남은 삼각김밥을 들고 털모자는 얼굴이 하얘졌다⁠.

“⁠부적이 찢어졌소⁠.⁠”

“⁠그럼 효험이 반이에요⁠.⁠” 다율은 진지하게 말했다⁠. “⁠반값만 받을게요⁠.⁠”

털모자는 동전 반 닢이 없어서 한 닢을 놓고⁠, 다율이 거슬러 줄 것이 없어서 핫팩 하나를 받았다⁠. 털모자는 핫팩을 쥐고 김 없는 밥을 먹었다⁠. 방 안 반대편의 털모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바르텐이 그쪽을 한 번 보자 웃음이 멎었다⁠. 그러나 이 털모자도 결국 탁자로 왔다⁠.

컵라면은 방 안의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 끓였다⁠. 바르텐의 난로였고 바르텐의 마정석이었다⁠. 다율은 이 물값을 계산하지 않았다⁠. 바르텐도 묻지 않았다⁠. 일곱 사람이 바르텐의 방에서 다율의 국물을 마셨다⁠. 천칭 옆에 동전이 열한 닢 쌓였다⁠. 다율은 이 동전을 하나도 챙기지 않고 탁자 위에 그대로 두었다⁠.

“⁠그건 왜 두오⁠?⁠” 바르텐이 물었다⁠.

“⁠회장님 저울로 달아 보세요⁠.⁠” 다율은 빈 상자를 접으며 말했다⁠. “⁠일곱 명이 오늘 밤 동전 열한 닢 쓰고 뜨거운 걸 먹었어요⁠. 회장님이 그 사람들한테 짐 하나에 두 닢 주시는 거⁠, 저 알아요⁠. 그 열한 닢이면 이 사람들이 짐 다섯 개 반 날라야 버는 돈이에요⁠. 오늘 밤엔 그걸로 배가 불렀고요⁠.⁠”

바르텐은 동전을 내려다봤다⁠. 이것을 천칭에 올리지 않았다⁠.

두 시 반⁠, 쇠창살 밖이 소란해졌다⁠. 횃불 여럿이 골목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맨 앞에 카샨이 있었다⁠. 투구를 쓰고 창을 들었고⁠, 뒤에 경비병 여섯이 따랐다⁠. 스무 살짜리도 끼어 있었다⁠. 장화 목에 핫팩 비닐이 삐져나와 있었다⁠.

털모자 넷이 창살 앞을 막았다⁠. 카샨은 이들 너머로 방 안의 바르텐을 봤다⁠.

“⁠쥐꼬리 골목은 하르펜의 길이다⁠.⁠” 경비대장의 목소리가 창살을 넘어왔다⁠. “⁠길을 막는 건 경비대 일이다⁠. 상회 일이 아니다⁠.⁠”

바르텐은 일어나지 않았다⁠. 탁자 위 천칭의 열쇠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접시가 흔들렸다⁠.

“⁠길은 막지 않았소⁠, 경비대장⁠. 나는 내 집 문을 닫았을 뿐이오⁠. 내 집 앞에 서 있는 내 일꾼들이 길을 막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들 덩치 탓이지⁠.⁠” 바르텐은 술잔을 들어 창살 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경비대장⁠. 녹봉이 끊긴 경비대가 상회 집 앞에서 창을 드는 건 좀 이르오⁠. 다음 달 은화를 다시 받고 싶으면⁠.⁠”

카샨은 창을 내리지 않았다⁠. 올리지도 않았다⁠. 한 박자가 지나갔다⁠. 다율은 이 한 박자를 셌다⁠. 휴대폰 타이머 없이도 길었다⁠. 경비대장은 창 자루로 돌길을 한 번 찍고 돌아섰다⁠. 경비병들이 따랐다⁠. 스무 살짜리만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창살 너머 다율에게⁠, 장화 목의 핫팩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보였다⁠.

도팔석은 그동안 내내 문턱 너머에서 대걸레를 쥐고 서 있었다⁠. 카샨이 돌아가자 바르텐이 도팔석을 향해 술잔을 들어 보였다⁠.

“⁠점장도 한 잔 하시겠소⁠?⁠”

“⁠근무 중이라⁠.⁠” 도팔석은 대걸레를 기대 놓고 매장으로 들어가더니 소주 한 병을 들고 왔다⁠. “⁠근데 손님 술만 받으면 예의가 아니지⁠. 바꿔 마셔요⁠.⁠”

도팔석은 소주병을 문턱 위에 놓았다⁠. 바르텐이 손짓하자 털모자 하나가 붉은 술병을 문턱 반대편에 놓았다⁠. 두 병이 문턱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섰다⁠. 도팔석은 붉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다⁠. 바르텐은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소주병을 자기 술잔 옆에 세워 두었다⁠. 돌려주지 않았다⁠.

*

같은 시각⁠, 빵집 지하 광은 춥고 좁았다⁠. 밀가루 포대와 장작더미 사이에 그롬바가 웅크리고 있었다⁠. 셔츠를 벗어 던지고 맨 팔로 곡괭이를 휘둘렀다⁠. 흙벽에 박힌 돌이 곡괭이 끝에 부딪혀 불똥을 튀겼다⁠. 빵집 할머니가 기름등을 들고 뒤에 서 있었다⁠.

“⁠조용히 파라니까⁠.⁠” 할머니가 속삭였다⁠.

“⁠드워프는 조용히 못 파오⁠.⁠” 그롬바도 속삭였다⁠. 속삭임이 광 안을 울렸다⁠. “⁠조용히 파면 그건 쥐요⁠.⁠”

굴은 광의 북쪽 벽에서 시작해 쥐꼬리 골목 창고 밑으로 비스듬히 내려갔다⁠. 창고 바닥은 바르텐이 새 판자를 깔았지만 이 밑은 옛날 그대로의 흙이었다⁠. 그롬바는 이틀 동안 사람 하나가 기어갈 만큼의 길을 냈다⁠. 판 흙은 밀가루 포대에 담아 할머니가 빵 반죽 통 뒤에 쌓았다⁠. 늙은 짐꾼이 밤마다 이 포대를 지게에 지고 성 밖 개울에 버렸다⁠. 바르텐의 털모자들은 밀가루 포대를 세지 않았다⁠.

그롬바는 곡괭이를 멈추고 흙벽에 귀를 댔다⁠. 위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럿이었다⁠. 그리고 바삭⁠, 하는 소리⁠. 이 소리가 무엇인지 알았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 계산대 앞에서 조상 이름을 셋 불렀다⁠.

“⁠위에서 부적을 뜯는군⁠.⁠” 드워프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거의 다 왔소⁠.⁠”

*

세 시 사십 분⁠. 다율은 대차에 빈 상자를 실었다⁠. 삼각김밥 서른 개와 컵라면 열두 개가 바르텐의 방 안에서 팔렸다⁠. 쇠창살 밖의 손님들에게는 하나도 팔지 못했다⁠. 창살 너머에서 양초 장수 아낙이 빈 바나나우유 병을 흔들다 돌아갔다⁠.

바르텐은 여전히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다율이 짐을 싸는 동안 술을 한 잔 더 비웠다⁠.

“⁠그대는 내 일꾼들에게 국물을 먹였소⁠.⁠” 바르텐이 말했다⁠. “⁠장날 밤에 그 일꾼들이 상자를 들고 그대의 가게로 들어갈 거요⁠. 국물을 먹은 손으로⁠.⁠”

“⁠알아요⁠.⁠”

“⁠그래도 먹였소⁠.⁠”

“⁠배고픈 손님한테 안 파는 편의점은 없어요⁠.⁠” 다율은 대차 손잡이를 잡았다⁠. “⁠회장님 일꾼이든 경비대든요⁠.⁠”

다율이 문턱으로 대차를 밀 때⁠, 방 구석에서 상자를 쌓던 짐꾼 하나가 상자를 하나 들고 문 쪽으로 왔다⁠. 처음 삼각김밥을 먹은 스무 살 남짓한 짐꾼이었다⁠. 짐꾼은 상자를 문 옆에 내려놓는 척하며 다율의 귀 가까이 몸을 숙였다⁠. 입에서 김 냄새가 났다⁠.

“⁠장날 밤엔 회장님도 문을 넘어가요⁠.⁠” 짐꾼이 속삭였다⁠. 거의 입술만 움직였다⁠. “⁠서울을 직접 보시겠대요⁠. 상자가 다 나가는 걸 그 가게 안에서 보시겠대요⁠. 종이 세 번 치면 서른이 들어가요⁠.⁠”

다율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짐꾼은 상자를 내려놓고 구석으로 돌아갔다⁠. 바르텐은 술잔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이때 바닥에서 소리가 났다⁠.

쿵⁠. 판자 밑에서 무언가가 위로 부딪쳤다⁠. 방 한가운데⁠, 탁자 다리 바로 옆이었다⁠. 털모자 둘이 동시에 바닥을 내려다봤다⁠. 짐꾼들이 상자를 쌓던 손을 멈췄다⁠.

쿵⁠.

도팔석이 문턱 너머에서 대걸레를 쥐었다⁠. 다율은 대차 손잡이를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손잡이에 꽂힌 실레아의 단검이 다율의 손등에 차갑게 닿았다⁠.

쿵⁠.

세 번이었다⁠. 소리는 그쳤다⁠. 방 안의 난로에서 마정석이 탁 튀었다⁠.

바르텐이 천천히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판자를 긁었다⁠. 탁자를 돌아 소리가 난 자리로 걸어갔다⁠. 털가죽 외투 자락이 판자 위를 쓸었다⁠. 이 자리에 서서 장화 뒤꿈치로 판자를 한 번 눌렀다⁠. 판자가 낮게 울렸다⁠. 속이 빈 소리였다⁠.

“⁠쥐가 많군⁠.⁠” 바르텐이 말했다⁠. 바르텐은 판자에서 발을 떼지 않고 다율을 봤다⁠. 문턱 위의 시계가 세 시 오십팔 분을 가리켰다⁠. “⁠쥐는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면 잡기 쉽소⁠. 이 판자를 뜯어 볼까⁠, 아니면 그대가 네 시 전에 이 문을 닫고 돌아가는 걸 볼까⁠? 그대가 고르시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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